여행-행복한 순간들

일본 큐슈여행 사흘째 - 다자이후로 이동, [텐만구]를 관람하다.

adam53 2024. 4. 11. 21:42

후쿠오카에 가면 반드시 들려봐야 하는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는 학문의 신 '스가와라 노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는 신사입니다.

주차장에서 내린 후 점심식사를 합니다.

골목에 있는 작은 한식당에서 오랫만에 韓食을 먹습니다.

반찬가지 수는 몇 안되지만 '김치'라고 하는 것도 먹어보고, 밥도 추가해서 쓱쓱 비벼먹습니다.

이 식당에서 밥과 반찬은 추가로 주문해도 그냥 무료로 줍니다. (아쉽게도 식당이름도 없고 사진도 없네요)

비오는 거리에 나섰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건 아니지만 우산없이 가기도 뭣한 그런 정도의 비가 내립니다.

다자이후 (太宰府) 市에는 1,300년 전 큐슈(九州) 전체를 다스리는 ‘다자이후’라는 커다란 관청이 설치되어, 500년 동안 그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역사를 알려주는 다자이후 유적, 미즈키(성) 유적, 간제온지(절), 지쿠젠 고쿠분지(절), 다자이후 텐만구(신사) 등 많은 유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교토市에 있는 일본 전역에 위치한 텐만구(天満宮)의 총본산인 기타노텐만구(北野天満宮)를 비롯하여 야마구치현의 호후텐만구와 함께 일본 3대 텐만구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호후텐만구이며, 3개의 신사 모두 다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길 건너편에 다자이후 역(驛)이 보이지만, 꽉 짜여진 일정 때문에 가 볼 여유가 없어 조금은 아쉽습니다.

일본의 역사(驛舍)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보고싶기도 했거든요.

건물과 건물사이 좁은 곳에 다자이후(太宰府) 경찰서가 보입니다.

다자이후 경찰서도 차 한대를 간신히 주차할 정도의 공간에 있습니다. 그래도 관공서인데 좀 너무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게 '파출소'이든 '지구대'이든 간에 관공서라면, 어느정도의 면적에 건물도 좀 그럴싸한 것이라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몰라도 여기는 한,두사람이 근무하는데 이 정도면 족하다는 것 같아 보입니다.

커다란 도리이(鳥居)가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신성한 곳이 시작됨을 알리는 관문인 '도리이'는 주로 일본의 신사앞에 세워져 있죠.

일본의 이 도리이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앙 인도에 위치한 산차의 門인 '토라나'와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이론은 '토라나'는 진언종의 설립자 쿠카이가 신성한 의식에 사용되는 공간을 구별하기 위해 채택한 것이라 하는 것이구요,

다른 학자들은 도리이가 중국의 패루(牌楼)나 한국의 홍살문(紅살門)과 관련이 있다고도 하죠.

'도리이'라는 말의 기원도 불분명하답니다. 

"닭이 머무르는 자리"를 의미하는 한자 "鶏居"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신토 에서 닭을 신의 전령이라고 여기는 것이고,

다른 건 "통과해 들어가다"라는 뜻의 '도리이루'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메가에 모찌를 파는 가게.

다자이후 텐만구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게 모찌(찹쌀떡)입니다. 그리 달지 않으면서도 쫀득쫀득한 여기만의 명물이죠.

헤이안 시대(794–1185) 이름난 학자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는 똑똑해도 너무 똑똑했대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학자적 잠재력과 문학적 재능을 보였으며 11살에 이미 중국 고전시를 통달할 정도였답니다. 

33살의 나이에는 당시 학자들에게 수여 되는 계급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계급이었던 문장박사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스가와라는 그가 세운 업적들로 인해 황제에게 인정을 받게 되어 정계의 요인이자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고문이 되었고, 황제에 대한 스가와라의 영향력은 그 당시 막강한 권력의 정치적 지배 세력이었던 후지와라가문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답니다.

위협을 가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후지와라가문은 거짓으로 스가와라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남용했다는 혐의를 씌웠고,

결국 스가와라는 그의 가족과 교토 조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자이후로 유배되었는데, 그가 올 때 매화도 따라왔답니다.

'미치자네'는 매화를 너무도 사랑했다고 해요.

옛날에는 문을 창호지로 발랐었지요 (우리나라 한옥(韓屋) 문(門)도 창호지를 바릅니다).

유배를 와서 갇혀지내는 걸 본 동네의 할머니가 미치자네가 너무도 불쌍해서, 그에게 뭘 먹이면 좋을 까 고민하다가 미치자네가 좋아하는 매화를 넣어 떡을 만들었대요. 

할머니는 매화가지에 떡을 얹어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안에다 넣어줬대요.

근근히 겨우 겨우 살아가던 미치자네는 굶고 병들어서 유배 2년 만인  903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은 후 무죄를 선고받았고, 사후에는 그의 청렴결백한 성품과 높은 학식으로 더욱 존경을 받아,

이 다자이후 텐만구는 1,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숭배하는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무덤위에 세운 것이 지금의 신사이며, 905년 스가와라의 무덤 주변에 지어졌던 지금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신사가 919년에 재건축되었으며, 이것을 다시 1,591년에  재건축한 것이 바로 지금의 本殿입니다

도리이가 보이고 또, 보이고

그리고 길옆의 이 멋진 건물은 다자이후의 스타벅스 매장인데, 사진이 어째 영 신통치 못하네요.

급하게 찍어서 그런가 봅니다.

다자이후의 명물인 이 스타벅스는 일본 유명 건축가인 <쿠마겐고>가 직접 설계한 것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쿠마겐고'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목재를 사용해서 일본의 멋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요. 

여기에 쓰인 나무는 삼나무이며, 이 디자인이 훌륭한 점은 여러겹의 목재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짜여 있다는 것입니다.

텐만구는 '학문의 신'을 모신 곳이라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들은 물론이려니와, 입시를 앞 둔 부모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입시철이 되면 부처님께 자식들의 합격을 빌며 기도하는 우리나라처럼, 여기도 공부 잘 하기를 그리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러 옵니다.

이 도리이를 지나면 오른쪽 앞에 '고신규'라고 하는 청동 황소상이 있습니다.

이 나무는 수백년된 녹나무.

신사내에는 이런 오래된 녹나무가 꽤 많아보입니다.

신사로 가는 도리이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는 현지인들.

이 황소의 뿔을 만진 다음 곧 바로 머리를 쓰다듬으면 머리가 똑똑해진다고 해요. 그래서 황소의 뿔은 하도 만져대서 누런 황금색으로 빛납니다.  만약에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면, 크기는 작아도 똑 같은 황소가 신사 안에 들어가도 있으니까 거기서 해도 됩니다. 

황소의 뿔과 얼굴을 만지는 일행

다시 강조하지만 뿔을 만지고 난 다음엔, 곧바로 내머리를 쓰다듬어야 해요.

비는 거의 뜸해진 상태라 우산을 접고 들어가 봅니다.

신지이케(心字池)에 놓여 있는 고신쿄(御神橋)

신사로 가는 길에는 3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다이코바시'라 하는데요,

경내에 있는 "마음 심(心)"이라는 한자를 본 뜬 신지이케(心字池) 연못에 놓여 있는 3개의 붉은 고신쿄(御神橋)는, 삼세 일념(三世一念)이라는 불교 사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앞의 무지개 다리가 "과거", 가운데 평평한 다리가 "현재", 마지막의 무지개 다리가 "미래"에 해당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건너는 것으로 참배자의 몸을 깨끗이 한 뒤 혼덴(本殿)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리라고 합니다.

다리를 건널 때는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다.

첫번째 '과거의 다리'에서는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자꾸만 지난 과거에 얽매이므로 안 좋다는 거죠.

'현재의 다리'인 두번째에서는 멈추지 말것.

6월이 되면 창포꽃이 피는 연못.

세번째 '미래의 다리'에서는 걸려서 넘어지지 말것.

녹나무는 무척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나무들 대부분이 수백년도 더 된 듯 해요.

녹나무는 장뇌목(樟腦木)으로 귀중한 향료인 장뇌(樟腦)를 얻을 수 있어 이용가치가 높은 나무입니다.

이 장뇌는 향료를 비롯한 방충제, 살충제, 강심제를 만드는 원료가 되며, 또 이 나무는 장뇌의 강한 방향(芳香)이 있어 벌레가 먹지 않고 썩지 않으며 보존성이 높아, 예로부터 왕후 귀족의 관재(棺材)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죠.

나무의 색과 결이 고우며, 일반적인 용도로는 건축의 내장재, 가구재, 완구, 조각재 등으로 사용되고, 특히 사찰의 목어(木魚)를 만드는 데는 최고급재가 된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나무도 이 나무이고,

(아래 3장의 나무사진)

(돗토리현 마츠에城으로 가는 계단옆의 이 나무가 '토토로'에 나오는 그 나무라고 해요.

'이스턴 드림'카페리가 동해항에서,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市의 사카이항에 5월 25일 시범 운항을 하고 난 후에,  8월 2일부터 정식으로 운항을 한다고 하니 돗토리현 여행이 다시 재개되어 마츠에성으로 가면, 이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후쿠오카시와 나고야시, 히로시마시등 수십 곳에서는 시목(市木)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과 판옥선도 녹나무로 만들었다고 하죠.

고려 원 간섭기 때는 제주도의 녹나무가 매우 귀한 나무로 취급되었는데, 고려 원종14년(1273)에 원나라에서 황제의 용상을 만들 녹나무를 요구하였고, 이어서 10여 년 뒤인 충렬왕 9년(1283)에는 특별히 탐라도의 녹나무를 보내 달라는 기록이 있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이 녹나무는 쓸모가 많은데, 정유성분 덕에 균이 번식하지도 않고 잘 썩지도 않아서 도마나 수저 등 주방용구를 만드는 데도 쓰고

향이 강해서 잡신이 못 들어오게 막아준다고 해서, 천황이 사망하면 녹나무로 관을 짠다고 하며 신사 주변에 심는답니다.

신사안에 들어가면 청동 기린상이 있습니다.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이 아닌 상상의 동물 '기린'인데,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하고 있습니다.

기린은 장수와 기품, 지혜와 칭송을 상징하기 때문에 '스가와라 미치자네'가 가졌던 높은 자부심을 보여주는 동상이라고 합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누각문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데미즈샤'라고 해서 참배하기 전에 정화수로 손과 입을 씻는 곳이 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으면 됩니다. 안 해도 참배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 신사의 지붕은 풀과 나무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꽃나무들도 보이는군요.

그런데,

여기를 왔는데, 그만 잘못해서 본전(本殿) 사진이 없네요.

혼덴(本殿)은 1591년에 5년 동안 재건된 혼덴(本殿)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잠든 무덤이기도 한데 말이죠.

400년이 경과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모모야마(桃山)시대'의 건축 양식을 현대에 전하는 훌륭한 신전이라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사진이 없어요. 이런 중차대한 실수를 하다니요?

 

마당 이쪽 저쪽에는 황소상이 있습니다.

입구보다는 훨씬 작지만, 여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뿔과 머리를 만져서 그 부분은 닳아서 누렇게 광택이 납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세상을 떠난 후, 달구지를 끌고 가던 소가 갑자기 그 자리에 누워서 꿈적도 하지 않고 버텼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치자네를 그 자리에 묻었고, 그 곳이 지금의 본전이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발자욱' 티스토리(블로그)의 쥔장도 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아! 저런,  배가 볼록나온 게 그대로 찍혔어요. 사진찍을 때는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어야 했는데...

건물앞에 기다란 나무상자 같은 게 보이죠?

가까이 가서 보면 길게 가로로 지른 나무는 약간의 틈을 주고, 그 옆으로 또 그 옆으로 길게 짜여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틈이 있는 곳에 동전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여기서 참배를 하는데요, 방법은 그 틈에다가 동전을 넣고 고개숙여 두번 인사한 다음 박수를 두번칩니다.

그러고 나서 소원을 빌고 인사를 한번 하면 끝입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단상에 나란히 앉아있는데요. 이들은 여기에 6,000만엔 이상 후원금을 낸 이 들로써, 그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를 해주고 있는 상황이라 하드군요.

마치 교회에 특별헌금을 하면 그 사람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 주듯이, 여기도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기도를 해준답니다.

진중하고 엄숙하게 의식을 진행합니다.

이건 말하자면 그 뭔가, 소원을 적어 걸어둔 것?

다지이후 텐만구에는 6,0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본전 오른편에 있는 매화 '토비우메'는 교토에서 날아왔다고 해요.

'미치자네'를 너무도 그리워한 이 나무는, 스스로 뿌리를 뽑고서 다자이후로 날아와서 하루만에 꽃을 피웠답니다.

그래서 '날아 온 매화'라고 '토비우메'라 하는데,

봄이 되면 이 나무가 제일 먼저 꽃이 피고 그 다음에 다른 매화들도 꽃을 피운답니다.

 

동풍이 불거든 너의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여 !

주인이 없다 하여 봄을 잊지 말아라.

--------- 매화를 사랑한 '미치자네'의 詩.

우메(매화)모찌 가게에 들려서 일행들이 함께 나눠 먹을 찹쌀떡을 삽니다.

이 모찌를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죠.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다자이후의 명물이니까, 여기를 오면 한번 맛보고 가요.

옛날 교토에는 우리나라에서 건너 간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우리의 후손이었다고 해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다섯 살에 일본 고유의 시 '와카(わか)를 짓고, 열 살부터 한시를 척척 짓던 신동이었습니다.

교토의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과 후쿠오카 다자이부 텐만궁(太宰府天満宮)에서 학문의 신이자 천신(天神)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그 조상이 신라係라고 합니다.

그의 집안을 보면 신라왕자 '천일창'에서 일본 스모의 '조상 노미네(野見宿禰)'로, 그 다음에는 '하지(土師)' 그 다음엔 '스가와라(菅原)'로 성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해요.

일본인들 사이에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간케분소(管家文草)》, 《간케코슈(管家後集)》가 있으며, 역사 편찬에도 참여해 《루이주코쿠시(類聚國史)》,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에도 관여하는 등 58살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주절 주절하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까지 걸어 왔습니다.

일본의 우체통은 우리 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큐슈여행도 이제는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3박 4일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후쿠오카 타워'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