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진눈깨비 내리는 선자령...

adam53 2024. 3. 11. 16:33

2024. 3. 5

산행하는 날 아침,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어, 계획했던 금수산 산행을 다음으로 미루고, 대관령 선자령으로 갑니다.

선자령에는 눈이 올테니까요.

08시 45분

(구)대관령 상행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했던 대로 눈이 내립니다.

이 정도의 눈이라면 그냥 눈을 맞으며 가도 괜찮습니다.

계곡길과 능선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대부분은 능선길로 가네요.

평상시 같았으면 포장도로라서 발바닥이 아프다고 이 길을 피하던 길이, 눈이 있어 발이 편하다고 그리로 가지만 그래도 선자령은 양떼목장 울타리 옆으로 가는 계곡길로 가야 제맛이죠. 

발이 푹 푹 빠져서 걷기 힘듭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다녔던 길은 눈이 다져저서 한결 낫네요.

금년에는 눈이 자주 와서 눈 구경은 실컷합니다.

2월중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눈이 왔거든요.

계곡길은 능선길보다 조금 더 걷습니다.

계곡길이 5.8km라면 능선길은 5km정도 돼요. 길 좋을 때는 3시간이면 충분히 한바퀴 휘돌아올 수 있죠.

아직 겨울이지만 날씨는 포근한 편이라, 개울물은 졸졸 흐르고

전나무잎도 점점 푸르러갑니다.

양떼목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눈에 파묻혔어요.

양떼목장 울타리가 보여, 발걸음을 빨리합니다.

여기를 지날 때면 마음을 다 가져 가버리는 풍경에, 오늘도 온 마음을 다 빼앗깁니다.

언제봐도 싫증나지 않는 이 풍경.

죽 죽 곧게 자란 낙엽송과 나무로 지은 작은 집, 그리고 산책로

산책로 옆의 소나무도 이 겨울이 그려놓은 그림입니다.

강풍에 견디다 못해 옆으로 가지가 쏠린 나무

목장 언덕위의 집도 수묵화 한 점입니다.

뒤돌아 봐도

앞을 바라보아도 눈과 나무와 사람이 한데 어울려 그림같은 양떼목장 울타리길.

잣나무숲에 접어들었습니다.

선자령으로 가는 이 길은 잣나무숲, 전나무숲, 낙엽송과 자작나무 그리고 소나무숲을 지나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눈은 1m가 넘게 내려쌓였습니다.

길가의 이정표가 겨우 목 만 내밀고 있을 정도에요.

소나무 사잇길을 걸어서

국사성황사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이정표마다 턱 밑까지 눈이 쌓였군요.

낙엽송 숲길을 지납니다.

비가 올 때마다 길이 파이고 돌맹이가 들어나, 걷기 나쁜 길이

오늘은 눈이 쌓여서 평지 같습니다.

재궁골 갈림길

많은 눈이 내렸음에도 아직까지는 길을 잘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다녔던 사람들이 낸 길을 따라 걷는 발 밑에는, 연신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새소리처럼 정겹게 들립니다.

자작나무 숲길을 지납니다.

자작나무는 냉대기후에서 자라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북유럽, 동아시아 북부, 북아메리카 북부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대전 이남에서 심으면,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하고 말라죽어서 남한에서 제대로 된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는 곳은 강원도 뿐이라고 합니다.

하얗고 벗기면 종이처럼 벗겨지는 자작나무 수피도 처음에는 다른 보통 나무처럼 갈색 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 껍질은 벗겨지고 수피에 함유되어 있는 '베툴린산(betulinic acid)'이라는 물질이 빛을 반사해서 흰색으로 보인다고 하죠.

수피는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습기에 강하고 불에 잘 타는데, 옛날  결혼식 때 신방을 밝히는  촛불의 재료로 사용되었기에 흔히 결혼식 첫날밤을 '화촉(樺燭)을 밝힌다'고 해요. 또 불에 탈 때 '자작 자작'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라고도 하죠.

고구려나 신라에서는 종이 대신으로 사용했는데 천마총의 천마도 그림도 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것이고,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었답니다.

핀란드나 러시아에서는 사우나 할 때, 잎이 달린 이 나무가지를 자기 몸에 툭툭 치는 것으로 술기운을 없앤다고 하며, 20세기 후반 이후 자일리톨 성분을 추출하여 껌을 만들고 천연감미료로 사용하는 나무이기도 하죠.

눈 위에서 잠시 쉽니다.

쉬지않고 걸었더니 조금 힘드네요.

그리곤, 눈 산행을 한다고 선자령을 찾았던 사람들이 길을 찾지 못해서 밟고 다닌 길, 원래의 길이 아닌 눈 위에 새로 난 길을 따라갑니다.

얼마 전 2월 중순에는 선자령 등산객 11명이 눈속에서 길을 찾지못해 헤매다가, 119에 구조요청을 해서 간신히 탈출한 사건도 있었죠.

몇해전에는 선자령 눈 산행을 하던 부부가 눈속에서 사망한 일도 있을 정도로, 선자령은 해발이 높아 눈이 많이 오고 그럴 때는 길을 잃기쉬우므로 눈 온다고 무턱대고 선자령을 찾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거 봐요, 엉뚱한데로 길이 났지 뭐에요?'

'그러게요. 많이 돌아가네요.'

원래의 선자령 가는 길로 가다가도

눈 때문에 새로 난 길을 갑니다.

임도에 다다랐습니다.

순환도로는 눈이 많아서

곤신봉 방향의 임도로 갑니다.

선자령 뒷길로 올라가는 거죠.

뒷길 올라가는 중간쯤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그야말로 죽여주는데, 진눈깨비 내리는 오늘은 뿌연게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그저 앞만 보고 가요.

선자령 마루에 올라섰습니다.

눈이 좋아서 선자령을 찾은 사람들

11시가 지났군요.

눈길이라 평소보다 더 걸렸습니다. 세시간이나 소요되었거든요.

눈 속에서 찍어보는 인증사진.

눈은 내리고,  그래서 사방은 뿌예서 암것도 안 보이고

에이, 그만 내려가야겠다.

넓디 넓은 목장은 온통 눈 세상입니다.

여기저기 백패킹한 흔적들도 많군요.

가까이에 있는 풍력발전기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흰 도화지에 약간의 물감을 무심히 찍어놓은 듯한 풍경

지금은 3월.

봄이 오고 있을 계절입니다.

눈 산행도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한동안은 보지못할 풍경을, 눈에 담고 또 담으며 내려갑니다.

선자령을 찾는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고

사람들의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하고

누군가가 만든 굴 앞에서 점심을 먹고있는데, 작은 새 한마리가 폴짝 날아와 눈 위에서 부리로 뭔가 쪼아댑니다.

벌레도 나무열매도 하나 없는 이 한겨울에 작은새는 무얼 먹으며 살까요?

가엽고 애처러운 생각에 먹던 밥을 남겨둡니다.

줄지어 선 이 나무들을 보면 포장도로에 다 와 가는 겁니다.

숲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눈 덮힌 포장도로를 따라 쭉 가면 됩니다.

갈림길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정표 왼쪽은 국사성황사, 산신각으로 내려가는 길.

길 오른쪽은 반정으로 내려가는 길.

눈이 내려서 더 예쁜 길

눈이 쌓여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물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도, 멋진 그림이 되는 길을 걸어 걸어서

국사성황사 입구까지 왔습니다.

차 바퀴가 눈에 빠졌나봅니다. 레카차가 출동했어요.

3월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선자령을 한바퀴 돌아오니 3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10.8km의 거리건만, 앞서 눈 산행을 했던 사람들이 만든 눈길을 걸었기에 12km나 되었구요, 평균 3.3km의 속도로 걸었습니다.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듯,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도 눈물같은 진눈깨비는 그칠 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