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눈 내리는 날의 풍경 - 횡성 '태기산'

adam53 2024. 2. 7. 10:53

2024. 2. 6

눈 내리는 겨울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산이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12월과 1월, 자 가웃 정도 눈이 내려쌓이면 눈꽃이 예뻐서 찾는 산, 횡성 [태기산]입니다.

2월로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한겨울이라 제법 춥군요.

추위에 떨지는 않을까 두꺼운 겨울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섭니다.

남산공원을 지나고 남대천 '단오문'으로 들어가

창포다리를 건너면서 바라 본 남대천은, 눈 온 다음날의 급격히 내려간 기온으로 인해 추워서 퍼렇습니다.

그래도 물이 얼지는 않았군요.

'칠사당' 지붕과 도로변의 자동차에도 흰 눈은 살포시 내려앉아서, 아직은 깊은 겨울임을 실감합니다.

때마침 도착한 태기산 行 산악회버스에서 내다 본 바깥

의료원 앞을 지나며 우리동네를 바라보고

4월이 오면 벚꽃으로 뒤덮히는 남산도 바라보고...

09:25

태기산의 들머리 양구두미재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980m인 양구두미재는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에서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로 넘나드는 고개인데, 이 고개로 이어지는 6번국도는 2018 동계올림픽 직전 양구두미재 밑으로 태기산 터널이 뚫림으로 인해, 이제는 차량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은 고개가 되었습니다.

일단은 아이젠과 스패츠부터 착용하고,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바리게이트 안으로 들어갑니다.

태기산 산행은 산행이라기보다, 임도를 따라 정상석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트레킹입니다.

그러니까 차량이 다니는 평탄한 길을 서,너시간 정도 걷는 거죠.

어제 내린 눈으로 나뭇가지는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었습니다.

생각보다는 적은 양의 눈이 내렸지만, 도로 양편으로는 눈꽃이 피어 온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2023.10.19일 강원특별자치도는 횡성 청태산·태기산이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했었죠.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청태산·태기산 생태탐방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춰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강원도와 횡성군은 국가생태관광지역 지정을 계기로 자연보호활동 연계프로그램 강화, 일자리 창출, 친환경 농산물 판매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 합니다.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2024년부터 운영·관리를 위한 국비와 컨설팅 지원을 받기 때문에, 횡성군은 청태산과 태기산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동시에 이를 이용한 체험행사를 운영할 방침이라는군요.

태기산은 적설량이 풍부해서 설경이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풍력발전기들이 하얀 눈꽃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드는 멋진 곳입니다. 그래서 찬바람 쌩쌩불고 눈내리는 한겨울이면 태기산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눈 내리면 아름답지 않은 산이 어디 있겠냐마는, 泰岐山은 1,261m의 높은 산이라서 설경이 더 아름답습니다.

눈 썰매를 갖고 온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태기산 임도의 내리막에서는 눈썰매를 타기 좋거든요.

09:55

바람개비 동산에 왔습니다. 이 바람개비 동산은 '태기산 2봉'이라고도  합니다.

오늘은 바람불지 않는 온화한 날이라서 바람개비는 돌지 않고 멈췄네요.

바람개비 동산 뒷편으로 청정체험길이 있다기에 그리 가려했지만,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눈길이고 내리막이라서, 안가는 게 좋다고 해서 그냥 지나칩니다.

태기분교 삼거리에 왔습니다.

바람개비 동산에서 20분 거리입니다.

저만큼 태기분교가 보이는데 가 봐야죠?

오늘도 혼자서 갑니다.

해발 1200m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학교'인 태기분교는 1968년 6월에 개교했는데, 처음엔 횡성군 갑천면 봉덕국민학교 태기분실로 문을 열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둔내면 덕성국민학교 태기분교로 변경되었고 3년 뒤인 1976년에 문을 닫았다고 해요.

1965년 9월. 화전민 정착사업에 따라 횡성 군내에 흩어져 있던 74가구(399명, 1968년 7월 통계)가 태기산으로 올라와 화전민 부락을 이루었습니다. 3년간 정부 지원을 약속을 믿고 태기산 일대로 들어온 사람들은 원시림을 벌목하고, 산을 깎아 계단식 밭을 만들며 움막에서 생활했는데, 화전민에게 정부가 제공한 것은 밀가루가 전부였답니다.

10월 초부터 서리가 내리는 고원지대 기후가 작물 생육에 적합하지 않아서, 밭을 일구고 곡식을 심어도 제대로 수확하기 힘들었답니다. 해방과 분단, 6.25 전쟁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생계가 막연했던 사람들에게, 어린아이라도 일하면 밀가루를 받을 수 있다는 태기산 화전민촌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횡성뿐만 아니라 평창, 홍천 등 120여 가구가 이주했었대요.

어려운 역경 속에서 못 배운 한을 대물림하게 하지 않으려는 화전민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갈망이 무척 컸겠죠?

그렇지만 학교에 가려면 산길을 30㎞ 이상 내려가야 해서 가르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국가에서도 어쩌지 못한 학교 건립은 당시 20대 중반이던 이명순교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답니다.

태기산 화전민촌 아이들을 모아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던 이명순 선생님이 횡성 교육장을 만나고 강원도지사를 만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서 국제 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아 학교 건물을 세울 수 있었대요.

76명의 학생을 전교생으로 첫 입학식을 한 태기분교는 한 때 150여명이나 되었지만, 정부의 화전지 개발사업 실패로 화전민을 다시 강제로 내몰면서 태기분교는 개교 8년만인 1976년 문을 닫았답니다.

화전민들이 모여살던 태기리는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갑천면에서 둔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76년 4월 행정공부(行政公簿)에서 사라진 마을이 되었구요.

태기분교 뒷편으로도 산책로를 조성했군요.

갈림길에서 태기분교를 지나가는 이 길은 '태기왕 전설의 길'입니다.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기어 이곳에 태기산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 박혁거세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그래서 태기산 산 자락인 성골 골짜기에는 허물어진 성벽을 비롯해 집터와 샘터등이 흩어져 있답니다.

청일면 신대리에서 작은 성골을 거쳐 가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태기산성을 볼 수 있는데, 완만한 양두구미재 코스에 비해 된비알이 많아 힘이 들지만 태기산성을 지나면서 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진다네요. 기회가 되면 그 길도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횡성 갑천, 청일, 둔내 일대에는 태기왕과 관련된 지명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신라군에 패해 횡성 일대로 들어온 태기왕 군사들이 냇가에서 갑옷을 빨아 널었다는 갑천, 태기왕 군대가 주둔했다는 병지방, 피난 온 태기왕이 화동 골짜기에서 볍씨가 나와 농사를 지었다는 둔내면 화동(禾洞)리, 태기왕이 군사들을 훈련한 활터에서 유래한 궁종(弓宗)리, 태기왕이 산성을 쌓았다고 해서 덕고산에서 명칭이 바뀐 태기산, 태기왕을 추격해온 박혁거세가 올랐다고 하는 어답산, 재기에 실패하고 태기왕마저 숨을 거둔 후 태기왕이 이끌던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마을을 개척하고 살았다는 신대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죠.

10:15

도로에서 바라 본 언덕위의 태기분교.

이 건물은 태기분교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의미의 건물이죠.

(실제의 학교는 아래 사진을 참조)

화전집 터 헛간에서 공부하던 1965년도 이후 1970년도에 들어와 당시 박경원(朴敬遠) 강원도지사 지원으로 지어졌다는 100평 크기 분교 건물 사진.  이 사진은 분교 터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 중 하나라고 하는데 사진을 보면, 그  당시에는 산에 나무가 없어 뒤에 보이는 산은 왼쪽이 신대리 성골 건너 봉복산이고, 오른쪽은 덕고산이랍니다. 

태기분교 터에는 1968년 개교부터 폐교까지의 자료사진들과, 당시 이명순 선생이 쓴 근무일지와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은 비품일지,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과 화전민들의 생활도구, 부엌 등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건물 앞면

건물 앞면의 전시한 사진

분교 건물은 아주 작아서 가정집 정도의 크기였구요, 내부는 들어갈 수 없게 자물쇠로 잠가놓았습니다.

뒷면

앞면과 뒷면 모두 유리가 어른거려서 선명하지 못합니다.

태기왕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은 이렇습니다.

삼한시대 말기 맥국의 마지막 왕 '泰岐王'이, 예국군에게 쫓기어 여기에다 태기산성(1.8km)을 쌓고 군사를 길러 예국과 싸웠다는 전설.

태기왕이 춘천지방에서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원주로 옮기고, 세력확보를 위해 강릉지방의 예국(濊國)과 최후의 전투를 벌렸는데, 전력에 밀려 태기산성이 함락되고 급히 피난을 떠났답니다. 태기왕은 워낙 당황하였는데다 적군의 추격에 급히 피난하던 중, 옥산대(지금의 안흥동)에서 옥새를 잃어버리고, 왕을 호위하던 군사들도 모두 전멸하여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삼형제장군은 단신으로 왕을 모시고 백옥포(白玉浦: 白衣장군이 옥체를 업고 물에 빠졌다하여 백옥포라 부름)에 투신하여 최후를 마쳤다는 얘기입니다.

태기왕의 생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평창군 봉평면 멸온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멸(滅)은 죽음을 뜻하고 온은 백(百) 또는 온통이라는 뜻으로 '수많은 군사가 죽어 멸망했다'는 멸온에서 유래한 지명이, 1914년 행정구역 통합할 때 지금의 '면온리'로 개칭됐다고 해요.

태기분교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태기산 풍력발전' 사무실이 있는데요, 2008년에 건설된 풍력발전 단지에는 풍력발전기 20기가 세워져 있는데, 그 발전기마다 풍력발전 직원들이 눈을 깨끗하게 치웠드군요.

2008년 11월 운전 개시한 태기산풍력발전은 태기산 정상 바람의 힘으로 풍차를 돌리고, 그 힘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드는데 풍력발전기는 높이 80m, 날개 직경 80m나 되며, 태기산풍력발전단지 2MW급 20기 40MW 규모의 풍력발전를 조성하고,

바람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바람부는 방향으로 맞추어져, 24시간 365일 운전하여 횡성과 평창 지역 약 25,000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태기산풍력발전단지 시설용량 40MW는, 지난 2006년 준공된 국내 최대의 대관령풍력단지 98MW의 절반규모로, 발전량은 연간 약 9만8,300MWh이며,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연간 6만톤 줄이는 3000ha규모의 산림대체 효과를 갖게 된다고 해요.

풍력발전기를 관리하려면 차(車)가 다닐 수 있도록 눈을 치워야해서, 풍력발전 직원들은 수시로 눈을 치웁니다.

길 왼편으로는 또 다른 탐방로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6.7km의 '낙수대 계곡길'이라 해요.

이 길은 어떤 길일까 궁금한 마음에 철문 저쪽을 내다봅니다.

잣나무(?)가 줄지어 선 예쁜 길이네요.

오늘은 설경을 보려고 여기를 왔지만, 다른 계절에 와서 저 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임도로 도로 와서

눈발이 흩날리는 흐린 하늘을 보며 걸어갑니다.

태기산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일면과 평창군 봉평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1,261m의 횡성군 최고봉입니다.

본래는 덕고산(高山)이라 불렀는데,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이 신라 박혁거세에게 쫓겨 산성을 쌓고, 신라군과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는 곳이라 하여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산자락 봉평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가산 이효석의 생가가 있어, 산행을 끝내고 거기를 한번 들려보는 것도좋습니다.

흰눈은 소리없이 내려 마른풀에 앉으면서 토닥토닥 어루만지고

나뭇가지에도 소복히 쌓였습니다.

한참을 앞서가던 일행들이 모여있네요.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발걸음을 빨리 해 봅니다.

10:30 

횡성군을 대표하는 한우와 두마리의 앵무새 모형이 있어 사진을 찍느라 그랬군요.

이렇게 ~

저기 보이는 파란 철문으로도 길이 나 있어, 그쪽으로 간다해도 눈 내린 풍경은 멋질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바라봐도 아름다운데...

정상으로 향하는 길가 낙엽송에는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

이 너무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보려고 태기산을 찾아옵니다.

눈 덮힌 이 산과 풍력발전기는 그림 그 자체입니다.

탄성을 올리며 사진을 찍고, 또 찍어봅니다.

3일후에는 우리의 명절 '설'이 다가옵니다.

태양력이 국제표준이 된 지금 1월 1일이 새해의 시작이건만, 우리가 오랜동안을 지켜 온 전통은 '음력설'입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1895년 을미개역으로 서양의 그레고리력을 도입하면서 양력을 채택하고, 建陽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황제는 그해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선포하는 조칙을 반포하면서 양력설(新正)이 등장했습니다.

그때부터 음력설은 舊正으로 밀려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신정을 거부하고 구정을 설날로 맞아 때때옷을 입고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했습니다.

신정을  3일간 공휴일로 정하고 구정을 휴일에서 제외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구정을 고집했고 결국 정부는 1985년부터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 했더랬죠. 그러다 1989년 부터는 '설날'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하면서 3일간의 휴일로 지정하였고, '신정'은 하루만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엔이 올해부터 그 '음력설'을 휴일로 지정했지 뭡니까!

유대 명절, 힌두교 명절, 페르시아 새해 명절 등과 함께 전 세계 유엔직원들이 연중 기념하는 8번째 선택휴일의 지위를 부여받은 겁니다.

게다가 유엔은 '음력 설(Lunar New Year)이라고 칭했다는 거죠. 한국을 비롯하여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러나라들이 가장 큰 전통 명절로 기념하는 것을 감안한 호칭인 겁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주가 음력 1월 1일을 공립학교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아시아 음력설'이라 표기한 것과 같은 맥락인 겁니다.

여러나라가 공유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특정국가 이름으로 표기하는 것(예를 들면 '중국 설'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죠.

우리의 '설날'을 국민들이 지켜냈듯이 '음력설' 또한 아시아 다수 국가가 지켜낸 전통의 소산인 것입니다.

길 왼편으로는 길을 새로 내었습니다.

물론 일반탐방객을 위한 길은 아닙니다. 산림을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해 낸 길이겠죠.

어떤 남자가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100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그러자 의사는 남자에게 질문했죠. 

"술이나 담배를 즐기십니까?".   

"아니오, 그런 건 전혀 안하고 있습니다."

"그럼 도박을 하거나 여자와 놀거나 하십니까?".

"아니오, 그런 건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다시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흠, 그럼 무엇때문에 100살까지 살고 싶은 건가요?"    그러게요. 무엇 때문일까요?

국수는 삶을 때마다 항상 양 조절이 문제가 되죠?

면을 더 먹자니 배부르고 또 남겨뒀다 먹기엔 면이 불 것 같아 걱정일 때, 참기름을 면에 부으면 기름에 면발이 코팅되어서 냉장고에 하루,이틀 넣어둬도 면이 불지않은 상태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고기 구워 먹을 때마다 생기는 기름은 키친타올로 닦지말고 호일에 부었다가, 기름이 굳으면 그대로 접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랍니다.

또,

밥도둑인 '스팸'같은 육류가공식품은 특유의 냄새와 짠맛때문에 꺼려질 때도 있는데요, 우유로 스팸의 냄새와 짠맛을 잡을 수 있답니다.

스팸을 용기에 담고 우유를 붓고 약 10분 정도 담가두면 짠맛과 냄새를 제거할 수 있는데, 캔에서 꺼낸 그대로 담그기 보다는 되도록이면 슬라이스해서 담궈두는 게 더 효과적이랍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세요.

우리 몸은 75%가 수분으로 이뤄져있어, 적당량의 물을 마시지 않으면 신체에 변화가 감지되고 건강에도 안좋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체내 총 수분량 2%정도 손실 시 가벼운 갈증을 느끼게 되며, 수분이 약 4% 손실되면 근육이 피로함을 느낀다는데요, 

12%의 수분이 손실되면 무기력 상태에 빠지는데, 이때부터는 물을 마셔 수분을 보충하는 것만으로는 체내의 수분 평형을 맞추기 어렵다네요. 체내 수분햠량의 20%를 손실하게 되면 의식을 잃게 되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구요.

그 때문에 물을 자주 마셔주는 것이 좋은데, 20대 기준 물 권장 섭취량은 남성 2600ml, 여성 2100ml로 하루 6~8컵 분량이라고 해요. 

특히 유아와 노인은 수분손실이 크거나 손실 정도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수분 섭취가 중요한데요,

유아는 피부와 묽은 소변으로 인한 수분손실이 가장 크며, 노인의 경우엔 갈증에 대한 예민도가 떨어져 제때에 수분을 섭취하지 못해 탈수가 오기 쉬우므로,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습관적으로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아주 좋답니다.

그러면 음료수나 카페인 또는 술을 마시면 수분 섭취에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당함량이 높은 음료수를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오히려 갈증을 느끼게 된답니다.

카페인과 알콜은 수분균형을 조절하는 항 이뇨호르몬에 영향을 줘서 소변을 통한 수분배설을 증가시킨다 해요. 수분을 많이 섭취한 것 같지만 사실상 수분을 손실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물을 마시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니까, 수시로 물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이제 다 왔네요.

오른쪽에 보이는 전망대와 정상석을 둘러보고 

이 언덕길을 올라가려고 합니다.

태기산 전망대는 사진작가들에게 꽤 유명한 장소랍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주 그만이래요.

전망대에 서면 횡성읍과 둔내면, 청일면 마을이 보일 뿐만 아니라, 치악산 비로봉도 보인다는데 눈 내리는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게 전망대에서 바라본 거 전부입니다.

눈 속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

태기산 정상은 둔내11경 중 ‘태기백운’으로, 변화무쌍한 구름의 오묘한 조화가 장관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군통신부대가 있어 출입을 통제하므로 올라갈 수 없어서 여기가 정상을 대신합니다.

위 사진은 2016년도 9월에 찍은 태기산 정상석입니다. 

그때도 양구두미재에서 시작해 10여분 걷다가 산길로 접어들었죠. 하산은 아래의 지도에서 보듯이  옹장골갈림길에서 안흥동 6번도로로 내려갔었구요. 6.5km를 3시간 걸은 후 봉평 '메밀꽃 축제장'을 들렸더랬습니다. 몇년전에는 그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가 없죠.

10:50

쉬지않고 걸었기에 여기 정상석까지 1시간 25분 걸렸네요.

정상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길가의 눈 덮힌 나무들은 그림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덕길의 눈은 군인들이 치웠구요.

군부대까지 가면 조망이 좋다기에 올라 가 보려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모두가 기막힌 풍경입니다.

부대앞까지 왔습니다.

철조망이 처져있어 더 이상은 갈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희뿌옇게 흐린 하늘은 눈발이 날려서 아무것도 보지못합니다.

되돌아서서 전망대까지 왔지요.

이번에는 양치식물길로 들어가 봅니다.

상고대 핀 낙엽송 숲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숲에는 사슴가족과 호랑이가 눈을 맞고 있네요.

겨울왕국으로 들어온 것 같이 멋진 곳

눈에 담고 또 담으며 아쉬운 발길을 돌립니다.

한무리의 탐방객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이 시간에 여길 오는 걸 보면, 멀리서 왔나봅니다.

이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네요.

11:15

한우와 앵무새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태기산 풍력발전 직원들은 수시로 눈을 치워서,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지질 않아 편하게 걷습니다.

철문으로 막은 저기 저곳은, 과거에 태기산 정상으로 올라가던 길이었습니다.

이제 양구두미재에 다 와 갑니다. 이 고개에 전해오는 비둘기에 관한 얘기가 있죠.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라고 해요.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이 때 땅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가 버렸답니다. 그 후로 이 고개를 '양구데미'라고 불렀다는 그런 얘기...

눈꽃을 보러 온 탐방객들로 인해 고개에는 승용차와 버스들이 꽤 많이 몰렸네요.

12시 15분

주차장에 도착해서 아이젠을 벗고, 오늘 산행도 여기서 마칩니다.

오늘은 9.9km를 걸었어요. 2시간 50분 소요되었구요,  평균속도는 3.4km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