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7
오랜만에 영월의 '구봉대산'을 갑니다.
몇년 전, 산악회원들과 처음으로 가 보았던 구봉대산은 산행 경험이 많지 않아 그랬는지 몰라도, 당시엔 아주 깊은 인상(印象)을 주었기에 후일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갔었던 그 구봉대산을 다시 가보는거죠. 이번에도 산악회 버스로 갑니다.
푸르던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한 늦가을 아침은 제법 선선합니다.
10시25분
법흥사 가기 전, 구봉산장 앞에서 하차하자 마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통상적으로 구봉대산 산행코스는, 법흥사 주차장에서 1봉,2봉~9봉을 거쳐 칼바위삼거리, 일주문까지 9.7km정도를 걷는데, 오늘 우리는 일주문 근처에서 음다래골을 지나 9봉,8봉~1봉, 널목재, 법흥사 주차장까지 거꾸로 걷습니다.
포장도로를 걷고
민가를 지나고
개울을 건너 오른쪽길로 접어듭니다.
정상인 8봉까지는 3km 가량 된답니다.
이정표가 가르키는대로 왼쪽길을 가요.
또 다시 개울을 건너면 지금부터는 오르막입니다.
낙엽이 덮혀있는 돌길, 된비알.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려니 힘드네요,
선선한 아침이건만 너무 힘들어 땀이 막 나는군요.
1봉에서 차례대로 오를 때는 비교적 수월하다 생각했는데, 9봉에서 시작하는 길은 땀 꽤나 빼는 길입니다.
매번 1봉에서 일주문으로 내려가는게 재미없다고 오늘은 코스를 달리했지만, 이 길은 맘에 썩 들지않는군요.
밧줄 구간을 지나고
바위사이로 길을 찾아 오르고
돌맹이 투성이지만 어쨋든 능선에 올라서니 숨이 쉬어지는 듯 합니다.
들머리가 600m정도 되어서 한 300m 올라가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주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구봉대산(九峯臺山)은 이름 그대로 아홉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입니다.
봉우리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봉우리 이름으로 지었죠.
1봉은 양이봉, 2봉은 아이봉, 3봉은 장생봉, 4봉은 관대봉, 5봉은 대왕봉, 6봉은 관망봉, 7봉은 쇠봉, 8봉은 북망봉, 9봉은 윤회봉이라고 하는데요,
제1봉인 양이봉은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 잉태함을 나타냅니다.
제2봉 아이봉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남을 나타내며, 제3봉 장생봉은 인간이 유년, 청년기를 지나는 과정을 의미하고,
제4봉 관대봉은 인간이 벼슬길에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제5봉 대왕봉은 인간이 인생의 절정을 이룬 뜻을 의미하고, 제6봉 관망봉은 지친 몸을 쉬어감을, 제7봉 쇠봉은 인간의 병들고 늙음을,
제8봉 북망봉은 인간이 이승을 떠남을 의미한답니다
마지막으로 제9봉은 윤회봉으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를 둔 것이구요.
정상까지 920m 남았습니다.
구봉대산 등산로는 이런 바위길을 올라가고 내려갑니다. 길이 나빠서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위로 된 봉우리가 나름대로 산행하는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칼바위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조망은 아예 없다고 봐야죠.
9봉에 도착했을 때, 나무사이로 보이는 백덕산은 상고대로 하얗게 뒤덮혔습니다.
9봉 윤회봉
삶을 다하고 맞이할 또 다른 세상에서의 당신 모습을 생각해 보았냐구요?
9봉 왔을 때 그나마 산이 그려내는 모습과, 고사목이 그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백덕산은 멋지네요.
목책과 로프가 있어 안전하지만, 좁고 불편한 돌길을 갑니다.
아홉개의 봉우리를 가는 동안에 평평한 길은 없습니다.
봉우리를 찾아갈 때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합니다.
어쩌다 낙엽쌓인 편안한 흙길을 걷게 되면서
봉우리에 올라서자 8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1시 55분
901m의 구봉대산 정상.
여기까지 1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구봉대산 정상석이 새로 바뀌었네요.
몇년 전의 정상석은 받침대가 깊지 못해, 정상석에 손을 짚으면 이리저리 넘어지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었는데, 새로 세우면서 이름도 구봉산으로 바꿨군요.
처음 왔을때의 사진을 보면,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예전의 이 정상석은 손을 대면 바로 옆으로 쓰러졌었죠.
그래서 넘어지지 말라고 받침대앞에 정상석을 세워놓고 갔었습니다. (이 사진은 두번째 왔을 때의 사진임)
위치도 지금과는 정반대의 장소에 있었구요,
그리고 전과 달라진게 있는데 산 높이가 달라졌네요. 해발 870m가 901m로 바뀌었습니다.
봉우리 설명문 재질도 나무로 바뀌었구요. (위 사진은 처음 산행 때 찍었던 것임)
육신은 삶이라는 거센 강물을 건네준 뗏목과 다름없답니다.
강을 건네준 뗏목이라 해서 지고 갈 수 없으니까, 뗏목 버리는 연습을 해봤냐고 하는군요.
이런 심오한 글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점심부터 먹기로 합니다.
8봉은 그리 크지는 않아도 헬기장이라서, 평평할 뿐만 아니라 다른 봉우리에 비해 넓은 편이거든요.
12시 30분
햇살이 따사로운 정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난 뒤, 배낭을 둘러멥니다.
여태까지는 땀 흘리며 왔는데, 점심식사 후 내려가는 길에는 한겨울 찬 바람이 불어댑니다.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손이 엄청 시려서 얇은 장갑은 끼나 마나에요.
벗었던 자켓을 다시 입고서 7봉으로 갑니다.
7봉의 돌무더기는 많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과거 사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이나죠?
아마도 모진 강풍과 눈,비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나 봅니다.
7봉의 글귀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태어난 것은 소멸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거늘, 욕망과 집착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버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움켜쥐고 있으려고만 하죠. 돌아갈 때는 빈손인 것도 모르고 ...
7봉에서 6봉으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습니다.
밧줄을 꽉 잡고 내려가야해요.
오르막에는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었군요.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6봉에 올라갑니다.
조심스럽게 바위 위로 올라가야 해요. 쉽지 않거든요.
6봉에 올라서면 조망이 시원스럽습니다.
구봉대산 아홉개의 봉우리 중, 사방이 탁 트이고 멋진 곳은 이 6봉 뿐입니다.
이 멋진 풍경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죠.
저 바위 뒤로 돌아가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바위 뒷편의 풍경입니다.
일행들은 여기서 떠날 생각을 하지않는군요.
바위와 고사목으로 그림이 되는 6봉이 좋아서...
420m 앞에 5봉이 있다는데,
5봉으로 가는 길도 순한 길은 아닙니다.
이 바위도 사실은 멋진 바위인데, 그늘이 져서 별로이군요.
그래서 예전의 사진을 가져와 봤습니다.
사진은 산행하는 날의 날씨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거든요.
사진을 꼭 찍고가야 할 멋진 곳 부근은 경사심한 내리막
신경 바짝 쓰느라 땀이 납니다.
계단을 설치한 건 여기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계단도 설치 못할 정도로 좁고 험한 바윗길
다른 구간과 마찬가지로 5봉 가는 길도 내리막과 오르막의 연속입니다.
5봉에 왔습니다.
바위뿐인 봉우리 아래는 서 있기도 힘든 경사로.
산비탈에서 삐딱하게 서 있기도 힘들어 4봉으로 출발합니다.
법흥사 주차장은 2.5km 남았답니다.
비탈길을 내려와
4봉에 왔습니다.
4봉은 봉우리라는 느낌은 전혀 ....... 없습니다.
저 아래에 법흥사가 보입니다.
법흥사에서 보면 여기가 산봉우리로 보일까요?
4봉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타납니다.
주봉인 8봉과 마찬가지로, 헬기장은 헬기가 내려앉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4봉과 3봉사이는 짧은 거리
3봉은 이정표 뒤 소나무가 서있는 윗쪽으로 올라갑니다.
3봉도 바위로 된 봉우리 주변이 별로 넓지 못하고, 바위 뒷편은 낭떠러지입니다.
나무뿌리와 바위로 된 편편치 못한 곳이라 주의해야 해요. 자칫하면 사고 날 위험이 있거든요.
바윗돌이 사방에 굴러다니는 3봉
3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2봉이 보이고
2봉과 몇발짝 떨어진 곳에 1봉이 있습니다.
1봉과 2봉도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1봉에서 폴짝 뛰면 널목재 갈림길이 있죠.
이젠 내려갈 일 만 남았으니까, 거의 다 왔다고 봐야죠.
널목재 갈림길에서 한동안은 가파른 길을 내려와야 해요.
수북히 쌓인 낙엽 아래에는 돌이 깔려 있으므로 돌뿌리에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낙엽에 미끄러져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구요.
조심 조심하며 내려오다보니 개울까지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예쁜 길을 걷습니다.
늦가을 오후의 숲길에는 기지개를 켜듯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극락교를 건너면 법흥사 주차장이 보입니다. 시간은 2시 20분.
오늘 산행거리는 6.4km였지만, 3시간 5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건 그만큼 산이 험해서 산행이 힘들었다는 거죠 . 평균속도는 1.7km였답니다.
오늘 9봉에서 1봉까지 걸으면서 느낀 결과, 구봉대산 산행은 1봉에서 9봉까지 간다음 일주문으로 내려가기를 강추합니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오는 것보다는, 올라가는 게 훨씬 더 낫거든요.
구봉대산 산행도 여기서 끝마칩니다.
산행코스: 구봉산장 - 이정표 - 음다래골 - 칼바위삼거리 - 9봉, 8봉(정상), 7봉, 6봉, 5봉, 4봉, 3봉, 2봉, 1봉 - 널목재 - 법흥사주차장 (6.4km, 3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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