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2
'여름'은 너무 짧다는 듯 처서를 하루 앞두고 있는데도,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하고 기온은 30도를 웃도는 날이 계속됩니다.
7시 20분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오늘 아침도 기온이 장난이 아닙니다.
길가의 꽃댕강나무 꽃향기를 맡으며 버스를 타려고 가는 길
나팔꽃도 반갑다고 인사합니다. 나팔꽃 동요를 가만 가만 불러봅니다.
"햇님이 방긋 웃는 이른 아침에
나팔꽃 아가씨 나팔 불어요.
잠꾸러기 우리아기 일어나라고
아기방에 또또따따 나팔불어요."
인도가 원산지인 나팔꽃은 관상용으로 심지만, 길가나 빈터의 어느곳에도 잘 자라는 식물이기도 한데 한낮이 되면 꽃은 시들어버립니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폐광이 되면서, 탄광에 종사하던 많은 사람들이 떠난 '태백 철암'을 지나
버스는 태백의 산속으로 자꾸 자꾸 올라갑니다.
11시 10분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도착했습니다.
청량산 산행들머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입석'에서 올라갑니다.
그리 크지 않은 길가에 있는 바위 '입석'에서 출발.
아직 여름이 채 가지 않은 이 즈음에 청량산을 오르려면,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만 할까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은 올라가 보자구요.
더운 날씨에 오늘은 좀 적게 걸어보고자 청량사에서 주봉으로 갔다가 하산하려 맘 먹었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당초의 계획도 그러한데 모두 다, 오늘의 산행계획을 무시하고 응진전 방향으로 가는군요.
혼자 청량사 방면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해서 뒤따라 가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에 숨이 차오는 군요.
청량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린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입니다.
산이 높지는 않지만 크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산이기도 하죠.
그래서 청량산은 몇번을 다녀갔던 산입니다. 지난해 봄에도 왔다 갔구요.
저만큼에 응진전이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건들거리기만 할 뿐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동풍석'도 변함없이 잘 있네요.
응진전 뒤 그 크고 웅장한 금탑봉의 위용을 보면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물렀던 곳이랍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피난왔을 때,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정진한 곳이고 기도영험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나한 기도도량이기도 한데,
이 16나한상들은 노국공주와 시녀들이 깎았으며 그 중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형상화한 상도 있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응진전 마당에 올라서면서, 대나무가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가 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금탑봉 밑에는 샘물이 흐르고, 아주 작은 금동불상 세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다시 돌아나와서 응진전 앞 작은 밭가에서, 응진전과 위압감을 느끼는 바위를 바라봅니다.
오늘도 내부를 둘러보지 못하고 암자 바깥만 바라보고 갑니다.
작은 암자이지만 둘러보고 가도 좋을텐데 관심이 없어 그런가, 여유롭게 산행을 하지 못하고 쌩~ 하고 가는 일행들과 너무 떨어지면 안되어 부랴부랴 뒤따라갑니다.
예전의 청량산에는 연대사를 비롯한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이 남아 있는데, 산의 남쪽 연화봉 기슭에는 내청량사가 있으며, 그 동남쪽에 자리한 금탑봉의 남쪽 기슭에는 응진전(외청량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풍혈대는 오늘도 패스합니다.
풍혈대를 지나면서 마주치는 총명수
신라 말,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난 뒤에 더욱 총명해졌다는 총명수도 그냥 지나칩니다.
샘물이 깊어보여서 가까이 가 보니 어둡고 컴컴한 게, 샘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거든요.
전망대에서 바라 본 청량사.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지은 절이며, 청량산에는 연대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했던 곳이였답니다.
'어풍대' 안내문이 있는 전망대에서 숨 한번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청량산 최고의 절경으로 꼽힌다고 하는군요.
길 가에 '돌덧널무덤'이라고 해서 울타리로 보호하는 곳이 있습니다.
석곽의 장축방향은 동-서이며 두 장벽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70cm 떨어진 곳에 호석(護石)이 있는데, 무덤이 조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무덤에서 격자(格子) 문양의 토기편이 수습되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의 석곽묘는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야산에 여러 기가 모여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무덤은 위치와 분포 밀도면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돌덧널무덤의 안내문 내용입니다.
김생굴까지 왔습니다.
커다란 암벽 밑에서 김생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 굴(窟)
김생굴 옆 '김생폭포'에는 물방울이 한,두방울씩 똑 똑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계곡의 물이 합류하여 폭포를 이루어, 오산당(吾山堂)에서 바라보면 천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흰 물줄기가 장관이라는 김생폭포.
지금은 물이 없어 그런 광경을 보기 어렵습니다.
'김생굴'은 통일신라시대 김생筆法을 만들어 한국서예사에 한 획을 그은 서예가 김생이, 글씨공부를 한 굴(窟)이랍니다.
김생과 청량봉녀의 설화도 전해집니다.
김생이 경일봉아래의 바위굴에서 글씨공부를 한 지 9년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하자,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길쌈 솜씨와 김생의 글씨 솜씨와 겨루어보자고 제의했답니다.
김생의 처녀의 제의를 수락하고 불을 끈 다음 굴속에서 서로의 실력을 발휘하였는데, 불을 켠 후 비교해 보니 처녀가 짠 천은 한올의 흐트러짐없이 가지런했지만 김생의 글은 그렇지 못했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은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 뒤 명필이 되어 세상에 나갔다고 하며, 솜씨를 겨뤘던 그 처녀는 청량봉녀(淸凉縫女)였답니다.
김생굴을 지나면 청량사, 청량정사로 가는 길이 또 있습니다만, 그리로 가지 않고 자소봉 쪽으로 갑니다.
자소봉 가는 길은 조금 힘든 길입니다.
참매미와 털매미, 쓰르라미까지 청량산은 매미소리로 가득하지만 '여름'은, 아직 떠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자꾸만 밍기적거리는 바람에 오늘도 온 몸은 땀에 젖어갑니다.
바람이 불어오지만, 힘든 오르막을 오르느라 흘리는 땀방울을 식혀 주기에는 택도 없네요.
8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당분간 폭염은 계속될꺼라고 하고,
여름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서성거리고
가을 오고 겨울이 오고 '어, 추워'하며 떨면서 산행할 때는 지금의 이 더위도 그리워지겠지만, 올해의 더위는 그 어느 해보다 더 덥군요. 더워도 너무 더워요.
조금 넓다싶은 이곳은 만월암지(址)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2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했죠? 여기가 그 절터 중 하나라고 ...
더위에 지쳐서 자소봉 가는 길에 몇번을 쉬며 갑니다.
이제는 체력도 다 떨어져, 한발 한발 떼는 것도 힘이 듭니다.
자소봉 바로 밑.
나무사이로 자소봉이 보이는군요.
자소봉 계단을 온 힘을 다 해 올라봅니다.
쳐다보면 올라 갈 엄두가 나지않는 가파른 계단.
드디어 자소봉에 올랐습니다.
눈앞의 저 암봉을 오를 수 없어, 봉우리옆 넓직한 암석위에 정상석이 있습니다.
해발 873.7m
자소봉은 원래 보살봉(普薩峯)으로 불리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답니다.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 가운데 가장 높고, 청량산에서는 3번째로 높은 봉우리라고 해요.
자소봉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각 층마다 있었다 해요.
이게 믿어지나요?
12시 20분
자소봉에서 점심을 먹고갑니다.
주위도 한번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와 탁필봉으로 갑니다.
탁필봉은 자소봉 지척에 있습니다.
탁필봉 가기 직전에서 바라 본 자소봉
봉우리 생김새가 붓끝을 모아놓은 것 같다고 筆峯이라 했는데, 주세붕이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과 견주어 이름지었답니다.
855.6m의 높은 봉우리이지만, 탁필봉도 자소봉처럼 올라갈 수 없는 봉우리입니다.
마주보고 있는 자소봉과 탁필봉
탁필봉과 몇분 거리에는 연적봉이 있습니다.
연적봉을 가려면 이 계단을 올라가야 해요.
'또, 계단이야?' 하며 지레 겁먹지 말고 연적봉은 들렸다 가요.
계단을 올라가면 몇발짝 안가서 연적봉 정상입니다.
연적봉에 올라보면 탁필봉과 자소봉이 나란히 서 있는데,
그 멋진 풍경은 목석같은 사람도 사진 한장 찍고 가는데, 오늘은 혼자 올라 온 연적봉입니다.
처음엔 다 같이 출발했지만 이곳 저곳 둘러보다보면, 일행들은 저 멀리 앞서서 가버리고 매번 혼자서 산행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멋진 풍경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죠.
고사목도 그림이 되는 연적봉
연적봉은 그 생김새가 연적(硯適) 같다고 그리 부릅니다.
보살봉을 자소봉으로, 필봉을 탁필봉으로 그렇게 바꾼 이름이 아닌, 金塔峯처럼 옛이름 그대로 부르는 봉우리입니다.
하늘다리까지 800m 남았다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것도 죽을 지경입니다.
하늘다리까지 가면 장인봉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 해 걷습니다.
청량산이야 더할 나위없이 멋있고 아름다운 산이지만, 무더운 여름날에 산행한다는 건 아주 진을 다 빼는 것 같아 힘이 드는군요.
청량산이란 이름은 이곳의 뛰어난 산수 절경과 맑은 물이 중국 화엄종의 성스러운 산으로 간주되는 청량산과 비슷하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 진답니다.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구요.
이 봉우리만 넘으면 하늘다리가 있죠.
봉화군이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하나로 21억원을 들여 2007년 4월 착공해 1년여의 공사끝에 2008년 5월에 준공된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826m)과 자란봉(806m)을 연결하는 산악형 현수교량(길이 90m)입니다.
높이 70m, 바닥폭은 1.2m되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있다고 해요.
오죽이나 그리웠으면 다시 찾은 하늘다리야
꽃반지 끼워주며 송이 따던 내 사랑아
새하얀 내 가슴에 사랑을 그려 놓고
너무 쉽게 떠나간 사람아
정답게 오르던 청량산 길에
하얀 목련꽃은 나를 반기는데
반겨야 할 내 사랑은 어디 갔을까
기다리다 청춘만 저물어
그래도 잊지 못해서
행여 찾은 청량산에는
하늘다리만 외로이 떠 있네’
이태호 노래 '하늘다리'
하늘과 가장 가깝다 해서 ‘하늘다리’로 이름 붙인 이 다리는, 그 당시 산악지대에 설치된 보도형 교량 중 국내 최장, 최고를 자랑한다고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었죠.
다리가 개통되던 그해 청량산을 찾은 연간 관광객은 50만 2000명에 달했다고 해요.
요즘은 각 지자체마다 출렁다리를 설치함으로써, 지금은 90m 길이의 하늘다리는 화제꺼리도 안됩니다.
예를들면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는 길이가 200m, 울렁다리는 404m나 되거든요. 울렁다리의 폭도 2m(교각 중심부 폭은 4m) 되는데, 여기저기 각 지역마다 앞다투어 출렁다리를 설치하기에 이 기록은 또 언제 깨어질지 모릅니다.
출렁다리라지만 바람이 없어 조금의 흔들림도 없네요.
하늘다리를 건너 산등성이를 내려가면 청량폭포로 가는 길이 있고, 그냥 곧장 가면 장인봉으로 갑니다.
청량산의 봉우리들은 곧추 서 있어 계단도 가파릅니다.
청량산의 또 하나 특징은 이정표가 많다는 겁니다. 도립공원답게 이정표는 무척이나 많이 세웠기에 처음 오는 사람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금 가면 이정표, 조금 가면 이정표가 있습니다.
장인봉으로 오르기 전 청량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지금은 통행금지를 하는군요.
폭우로 인해 등산로 일부가 훼손되었는가 봅니다.
장인봉 가는 철계단.
청량산 계단들이 다 그렇듯이, 이 계단도 무척이나 가파릅니다.
그래도 이 계단을 올라가서 조금만 더 가면 장인봉에 다다르죠.
장인봉입니다. 해발 870m.
'청량산 장인봉' 글자는 김생 글씨체입니다. 글씨 모음집에서 한자 한자씩 따와 새겼습니다.
정상석 뒷편에는 주세붕이 풍기군수 시절 이곳에 올라 읊은 시가 있습니다.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 받치니
햇빛은 머리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이제는 그냥 죽 내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청량산은 어떤 산입니까?
해발 800m 남짓한 산이지만 곧추 서다시피한 계단을 보면 머리가 띵 해집니다.
끝났나 싶으면 다시 또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청량산은 계단, 계단의 연속입니다.
전망쉼터는 안들려 볼 수 없죠.
얼마나 멋진데요!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白鷗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桃花야 물 따라 가지말라 어자(漁子) 알까 하노라
---------- 퇴계 이황 '청량산가(淸凉山歌)'
저 멀리 산꼭대기 푸른 천이 쳐진 곳은 밭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산사태를 막으려고 덮은거네요.
전망쉼터는 올라와 볼 만하죠?
쉼터에서 내려와 안내소(주차장) 방향으로 갑니다.
장인봉부터는 내리막만 있어 힘들일 없다지만, 땀에 젖고 지칠대로 지쳐서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할배할매松'에서 잠시 쉬면서 기운 차리고.
거대한 돌산을 지날 때는 여기가 우리나라 맞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금방이라도 돌 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릴 것 같은 길을 걸으며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마을을 보고
금강굴도 보고
'3父자 松'도 봅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만난 일행.
홍천 공작산에서도 썼던 양파망을 오늘도 썼군요. 벌레들은 유독 이 친구에게만 달려드는 가 봅니다.
청량지문 옆 개울에서 더위를 식히며, 여름 막바지의 청량산 산행도 여기서 끝냅니다.
오늘은 6.5km를 걸었습니다. 4시간 40분이 소요되었구요, 평균속도는 1.4km랍니다.
산행코스: 입석 - 응진전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연적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주차장
-------------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옆에 있는 태백 구문소를 아주 잠깐 들렸습니다.
구문소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 417호로, 전기고생대 지층 및 하식지형으로 고생대의 따뜻한 바다 환경에서 퇴적된 지층이 널리 분포된 지역입니다.
구문소는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도 등의 문헌에 천천(穿川)으로 표기되고 낙동강의 근원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천천'은 구멍뚫린 개울이라는 뜻이랍니다.
봉화와 태백 삼거리에 있는 이 구문소에, 차량이 통행하는 저 바위 구멍은 1937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석탄 운반을 위하여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것이라 해요.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큰 석문(石門)을 만들고, 그 아래로 깊은 소(沼)를 이루었다는 뜻의 구문소는 ‘구무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랍니다.
‘구무’는 ‘구멍’ 또는 ‘굴 ’의 옛말인데요, 다른 말로는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고 해 ‘뚜루내’라고 하며,『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등의 고문헌에는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구문소의 저 안쪽 암벽에는 五福洞天子開門(오복동천자개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옛부터 태백 사람들은 이곳을 오복동이라 불렀는데 정감록에 나오는 우복동(牛腹洞)과 비슷하다고, 소가 마음 놓고 되새김질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표현된 곳이라 하여 이 글을 새겼다고 합니다.
이상향인 오복동(五福洞)에 들어가는 자시(子時, 23시~01시)에 열리는 문이라는 뜻이라고도 해요.
이 글씨는 태백의 향토사학자 김강산 선생이 1988년에 새겼다고 합니다.
구문소에는 전설이 있는데요.
안동 영호루(映湖樓)를 지을때 대들보로 쓰려고 두문동재에서 구한 큰 싸리나무를 물길로 운반하던 중 이곳 암벽을 때려 굴이 생겼다는 전설,
태백에 큰 물난리가 나자 고대 중국 우(禹)왕이 칼로 석벽을 잘라 구멍을 만들었다는 전설,
마지막으로 황지천의 백룡과 철암천의 청룡이 살면서 낙동강의 영역싸움을 위해 다투었지만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는데, 황지천의 백룡이 두 강을 가로막는 이 산 석벽을 뚫어서 그곳으로 기습 공격을 하여 청룡을 이기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그런 전설이 전해온답니다.
1억 5,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을 가로지르는 구문소.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뒷편으로도 가 보고 자세히 보고 싶기도 했었지만, 아주 잠깐 시간을 내었기에 몇장의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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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부릅니다
청량산이 중생에게 손짓합니다.
마음을 담아 청량산에 닿았습니다
폭포 물줄기에 가슴이 젖습니다.
옛 선비 머문 곳에서 머리를 조아립니다
번민을 벗으며 외로움을 달래봅니다.
하늘다리 건너 천상에 올랐습니다
선남선녀들과 함께 했습니다.
형형색색 기암괴석 자연의 신비함
오늘은 이 내 몸의 청량제였습니다.
안광석의 '청량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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