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5
7월의 마지막 산행지는 정선 '취적봉'입니다.
강릉과 인접해 있는 정선郡은 본래 예맥(濊貊)의 땅인데,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고구려 땅에 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지역은 한강 유역을 확보하려는 고구려와 신라의 밀고 밀리는 접전으로, 점령 세력의 군사적 요충지가 되기도 했으며, 미천왕(美川王) 때 고구려의 속현이 되었답니다.
장수왕(長壽王)이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하정책을 강하게 펴면서, 죽령(竹嶺) 이북까지 영토를 확장해 충주고구려비를 세울 무렵 정선지역은 고구려의 행정구역에 속해 잉매현(仍買縣)으로 불리기 시작했구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당나라를 축출하여 삼국통일을 이룩한 뒤인 757년(경덕왕 16), 국토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행정구역을 개편했는데, 이때부터 잉매현(仍買縣)은 정선현(旌善縣)으로 이름이 바뀌어 명주(溟州)의 속현이 되었다네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1018년(고려 현종 9) 정선현으로 유지되다가 이후 정선군(旌善郡)으로 승격되었구요.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1291년(고려 충렬왕 17)에는 도원(桃原)으로 개칭되었고, 1310년(고려 충선왕 2)에는 심봉(沈鳳)으로, 그리고 1353년(고려 공민왕 2)에 다시 정선으로 환원되었다고 해요.
정선군은 비록 평야는 많지 않으나, 산이 높고 물이 깊으며 산림이 울창하고 약초가 많은 지역입니다.
금, 은, 동, 철, 석탄, 석회석, 기타의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화암면 일대에는 금광석으로 이름났으며, 특히 무연탄이 많아 1950~1955까지 고한읍, 사북읍, 신동읍 내 광업소 등지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국내 연료 수요의 대부분을 공급했던 보고(寶庫)이나, 1996년도부터 「석탄광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지금은 대부분 폐광되었구요.
09:50
인접한 지역인데도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덕우삼거리 인근의 석공예단지에서 하차했습니다.
424번 지방도와 59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석공예단지.
잠깐 동안이라도 석공예단지를 둘러보려고 했지만, 모두 다 달리기 선수처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네요.
그래서 급히 뒤따라 가느라 사진도 못찍었습니다.
석공예단지내에는 6개 업체 미광 공예사, 희방 공예사, 고려 공예사, 조양 공예사, 도화 공예사, 흥왕공영 대흥광산(정선칠보석광산)이 있는데요, 정선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신기한 돌들이 많아서 돌을 이용한 석공예 단지가 생겨났고, 정선의 석공예품들은 정선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돌을 가공하는 공장과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이 있답니다.
단지 주차장에서 보이는 저 다리(하돌목교)를 건널꺼에요.
취적봉의 주요 들머리인 백오담과 하돌목.
백오담(白烏潭)마을의 석공예단지에서 하돌목교를 건너면 취적봉으로 가는데요,
돌목(石項)이란 정선읍 덕우리와 인접한 화암면의 관문으로, 기암절벽이 금강산을 옮겨다 놓은 듯 아름다운 자연석으로 된 석문(石門)이 있어 불리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이곳에 석공예단지가 생겨난 것도 있구요.
덕우리 지명의 유래에 관한 얘기도 있습니다.
연산군이 폐위되던 해에 그의 네 아들이 유배되어 취적봉에 와 살다가 사약을 받고 죽자, 흰 까마귀가 이 연못가로 날아와서 석 달 열흘을 울었다고 해서 ‘백오담(白烏潭)’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백오담(일명 백우담)과 덕산기의 이름을 따서, 이곳 취적봉 북쪽과 남쪽을 통합한 지명이 덕우리(德雨里)라는 전설이 전해 온답니다.
하돌목교를 건너면 왼쪽에 간이화장실이 있고,
취적봉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 제방둑길입니다.
이 둑길을 걸어가다가
왼쪽의 고추밭 사잇길로 접어듭니다.
고추는 이어짓기를 싫어하는 작물이라, 올해에는 고추밭이 되었다가 내년에는 콩밭이 되기도 하고, 내후년에는 옥수수밭이 되기도 하죠.
밭 사잇길로 가는 게 쫌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만, 길은 그거 하나라 어쩔 수 없네요.
고추는 아주 크고 단단하며 실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글쎄 사람 키 만큼 크더라니까요. 옥수수 크는 것 같았죠.
고추밭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고,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취적봉까지는 1.3km 밖에 안된답니다.
아주 만만하죠?
취적봉은 많이 알려진 산이 아니라서, 길은 풀과 잡목으로 덮혀있습니다.
이서진과 옥택연의 '삼시세끼' 1편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등산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취적봉 산행할 때는 긴팔, 긴바지를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워낙에 더위를 많이 타기에 오늘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오긴 했지만, 취적봉에는 긴옷 입으시길 추천합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산소.
풀숲에는 산원추리가 피었습니다.
산에서 자생하는 산원추리는 관상용 왕원추리보다 줄기가 가늘고 연약하며, 여리디 여린 노란꽃이 핍니다.
여름은 원추리의 계절입니다.
서,너기의 산소 옆을 지나고
숲내음이 상큼한 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가끔씩 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옵니다.
소사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숨이 가빠오고 땀이 흐릅니다.
산소를 지나면서 가파른 된비알이 시작된 거였죠.
정상까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 해도,
취적봉이 높은 봉우리는 아니라 해도 이 길은 처음부터 아주 빡셉니다.
작다고 만만하게 생각할 산이 아닌, 작으면서도 큰 산 그게 취적봉입니다.
나무사이로 어천이 보입니다.
소사나무군락지가 서,너군데 있지만, 회양목도 빽빽히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등산로가 어떤지 짐작이 가나요?
길게 자란 풀 사이로 가랑잎이 쌓인 곳이 등산로입니다.
사모바위는 나무에 가려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덕우리에서 보면 신랑이 쓰는 사모와 비슷하게 보인다는 사모바위.
이 바위에 그림자가 보이지 않으면 낮 12시를 알려 준다고 해서 시계바위라고도 한답니다.
사모바위 우측으로 돌아서 가면 밧줄을 잡고 올라야하는 곳이 나오고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인 가랑잎 때문에 풀이 자랄 수 없는 곳을 지나
능선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덥군요. 가끔씩 바람이 불어오긴 했지만, 더위를 식혀주기에는 택도 없습니다.
'살인 진드기병'이라 불리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증후군(SFTS)으로 올해에 4명이 사망했답니다.
진드기 매개 감염병 위험이 높은 6~11월에는 각별히 더 주의를 해야하는데요,
SFTS로 올해 19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 중에서 4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최근 3년동안의 발생 추이를 보면 2020년에 243건, 2021년 172건, 2022년 193건이었다고 해요.
SFTS는 야외활동 중 바이러스를 보유한 작은소피참진드기에 물리면 감염이 되는데, 잠복기는 5~14일 정도되며 발열, 피로감, 소화기계 증상, 근육통, 두통 등의 증상이 있답니다.
치명률은 무려 18.7%에 달하지만, 현재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고 해요.
진드기 매개 감염병요인의 절반 이상은 농작업이랍니다. 지난해 50.8%의 환자는 농작업 중 진드기에 물려 감염되었다고 해요.
그러므로 작업전에는 긴소매와 긴바지를 입고, 장갑과 장화를 신으랍니다. 소매를 단단히 여미고 바지는 양말 안으로 집어넣어 진드기가 옷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게 중요한데요, 진드기가 옷에 달라붙었을 때는 바로 알 수 있게 밝은색 옷을 입으랍니다.
풀 위에 함부로 앉지말고 , 진드기 기피제를 약 4시간마다 옷과 노출된 피부에 뿌려주면 예방에 좋답니다.
작업 후에는 바로 세탁을 하고, 몸을 씻으면서 벌레물린 상처나 진드기가 붙어있는지 확인을 하되, 몸에 붙은 진드기를 손톱으로 터뜨리거나 무리해서 떼어내면 진드기의 혈액에 의해 추가 감염우려가 있어 가까운 보건소나 의료기관에 방문해서 제거를 해야 한대요.
트럭을 몰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10톤이나 되는 커다란 트럭을 몰고 다닌 친구였는데, 운행하다가 잠시 쉴 때에 풀밭에 앉았었답니다.
그 친구가 원주기독교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에 가까운 친구 몇이서 허둥지둥 병원에 갔을 때, 그 친구는 의식이 없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그 친구를 보고 너무도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죠.
그의 어머니가 친구를 발가벗겨놓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있었는데, 글쎄 그 친구의 몸은 바람을 잔뜩 넣은 풍선같이 퉁퉁 부어있는 겁니다. 부은 정도가 아니라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푼거에요.
사람몸이 그렇게 빵빵해 질 수 있다니.
빵빵해진 몸을 닦으면서 그의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친구는 입원한 지 사흘만에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런 기막힌 상황에 얘기도 못하고 돌아왔던 그 때의 그 일은 해마다 여름이 돌아오면 생각이 납니다.
풀밭에 앉아 휴식을 취했던 그 친구는 들쥐가 옮기는 '유행성 출혈열'이나 살인진드기가 옮기는 SFTS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산행 중이나 야외에서 풀밭이 좋다고 드러눕거나 앉는 행동은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야외활동 할 때는 긴 소매와 장갑, 장화, 마스크 등을 착용하여 최대한 피부 노출을 줄이고 외출 뒤에는 몸을 깨끗이 씻는것이 최상책입니다.
소사나무는 키가 작고 이파리도 작아서 분재로 많이 가꿉니다.
그런데 취적봉의 소사나무는 아주 키가 큽니다. 이런 나무로 분재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네요.
드디어 취적봉에 다 왔습니다.
연산군12년(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페위될때 왕자들도 폐위돠었는데, 왕비 신씨소생 세자 이황(당시10세)은 강원도 정선에, 창녕대군 이성은 황해도 수안에, 숙의 이씨소생 양평군 이인은 제천에, 불명소생 돈수왕자는 우봉으로 유배 되었는데,
유배온 폐세자 '이황'이 피리를 불며 옛 생각을 달랬다 하여 취적봉(吹笛峰)이라고 불려지며, 폐위된지 22일만인 중종1년 9월 24일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였다 합니다.
해발 728.2m의 취적봉.
폐세자와 왕자 등 4명이 이곳 버드내(유천리)에 유배되어 감자로 목숨을 연명하면서, 피리를 불며 지내다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하여 취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슬픈 얘기가 전해오는 취적봉.
취적봉이란 이름은 하돌목교를 건너면 보이는, 뼝대를 이룬 취적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취적봉 정상에서 바라 본 어천과 마을.
땀깨나 흘리며 함께 오른 사람들끼리 사진 한장 찍고
덕산기계곡으로 가는 길은 정상석 뒷편으로 갑니다.
길이 없는 것 같아보이지만, 바위에서 내려다 보면 희미한 길이 보입니다.
정상 바로밑은 가파른 바위.
그래도 밧줄이 매어있어, 그걸 잡고 내려갑니다.
4~5m 남짓 된다고 해도 거의 수직에 가까우므로 조심해야 해요.
밧줄잡고 내려온 취적봉.
등산로는 아직까지 제대로 손을 본다거나 다듬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밧줄이 있는 게 다입니다.
밥알 2개를 물고 있는 듯한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등 며느리에 관한 꽃들은 왜 슬픈 얘기가 전해올까요?
옛날 끼니거리가 부족한 몰락한 양반가에서 며느리를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필 그 집 시어머니가 엄청 모진 사람이였다고 해요.
그 시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어느날, 새댁이 저녁밥을 짓다가 뜸이 잘 들었나하고 밥알 두개를 입에 물었는데 하필
그때 시어니가 부엌으로 들어오다가 그걸 보았답니다. 시어머니는"어른들께 먼저 드릴 생각은 안하고 부엌에서 너 혼자 훔쳐 먹느냐"고 화를 내면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다고 해요.
며느리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저는 밥을 훔쳐 먹은것이 아니라 밥이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두알을 입에 물었을 뿐이다" 라는 말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죽고 말았다는 슬프디 슬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며느리가 묻힌 산속 무덤가에는 밥알 2개를 물고있는 붉은꽃이 피어났는데, 그게 며느리밥풀꽃입니다.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죠.
땀 흘리며 걷다가 잠시 쉬면서 먹는 점심은 그렇게 맛있을 수 가 없습니다.
생강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내려가고
취적 2봉에 오릅니다.
온몸은 땀에 흠뻑 젖고
손이 가지 않은 등산로는 너무도 가파릅니다.
그냥 내려꽂히 듯 해요.
소나무가 자라는 평지를 잠시 지나다가
다시 산을 치고 오릅니다.
강릉유씨묘가 있는 여기는 취적 3봉(790.7m)입니다.
서래야라는 이 가 상돌목봉이라 이름해서, 상돌목봉이라고도 하죠.
오랜세월 돌보지 않은 묘지는 낮게 내려앉았고 '學生 江陵 劉公' 비석만이 서 있습니다.
비석 왼쪽으로 난 길 역시 가파른 내리막.
이 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봉우리가 곧추 서있는 모양새입니다.
행여 다리 접지를까 조심 조심하며, 급경사를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덕산기계곡에 왔습니다.
개울을 건너 왼쪽으로 갑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숲속 책방'으로 갑니다만, 짧으면서도 힘든 산행을 했기에 책방을 들리는 건 생략합니다.
물은 개울 가득 흐릅니다.
물밑 돌맹이 하나 하나 모두 보이는 깨끗한 계곡.
덕산기계곡은 산간계곡 자연휴식년제(2022년 5월 1일~지정해제 시까지)로, 계곡 입구(덕산1교)에서 차량 출입을 통제한답니다. 펜션이나 마을주민들은 통행이 가능하구요.
보기와는 달리 물은 꽤 깊어보입니다.
그래서 물에 잠긴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한여름 땡볕에 덕산기계곡의 포장도로를 걷는 건 별로 맘에 안들지만,
물 속에 몸을 담갔다가 나오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습니다.
덕산 1교까지 가는 동안, 도로가 물이 잠기는 곳은 3군데 있드군요.
비와야폭포도 보고 갑니다.
비가 와야만 멋진 폭포가 되는 비와야 폭포.
누가 이름지었는지 '비와야 폭포'는 참 그럴듯한 재미있는 이름입니다.
옥빛 물색 좀 보세요.
펜션 '덕산기의 아침'을 지나고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덕산기 가족민박앞에서 오늘의 산행을 종료합니다.
버스가 여기까지 마중을 왔거든요.
여기는 웃고개입구입니다.
산행코스: 석공예단지 - 하돌목교 - 사모바위 - 취적봉 - 취적2봉 - 상돌목봉(강릉유씨묘) - 덕산기계곡 ( 7.2km, 4시간 소요, 평균속도 1.7km)
자연이 살아 숨쉬는 태고의 신비 정선 '취적봉)728.2m)'
정선군 정선읍 석곡리와 덕우리에 위치한 취적봉(吹笛峰)은 자연이 살아 숨쉬고 전통과 문화의 향기가 그윽한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오지의 산이다.
조선시대 폭군이었던 연산군의 아들이자 세자였던 이황(당시 10세)이 폐세자로 귀양와서 감자로 연명하며 피리를 불던 곳이라 하여 취적봉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주위의 빼어난 경치를 노래한 동계 12경 또는 덕우 8경이 있다.
또한, 취적봉을 휘돌아 흐르는 덕산기계곡은 우리땅에 몇 곳 남지않은 오지의 땅으로 계곡 트레캉의 조건을 잘 갖춘 곳이며, 1박 2일과 삼시세끼 촬영지 그리고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식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취적봉은 강원 정선군에 있는 산으로서 정선군 중앙에 있는 오지 산행지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동서로 뻗어있으며, 정상부는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에는 뛰어난 경치를 품고있는 '덕산기계곡'이 있다.조망은 무척 무수하며 남쪽으로 어천(川)과 정선군 화암면 일대가 그림처럼 다가오고북쪽으로는 기암절벽, 老松, 덕산기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특히 서쪽기슭 어천에는 기암절벽 낙모암과 제월대, 구운병, 옥순병, 반서정, 문금장, 백우담, 취적대 등 수려한 경관의 '덕우 8경'이 있다.취적봉이라는 이름은 "불 취(吹), 피리 적(笛)"라로서, 조선시대 폐위된 연산군의 아들 4명이 이곳으로 유배된 후 취적봉에 올라 피리를 불었다고 하여 취적봉이라 한다.실제 이들이 피리를 분 곳에 취적봉 서남쪽 아래에 있는 석벽(石壁)인데, 이곳이 '덕우 8경' 중 하나인 '취적대'이다.
덕산기계곡
덕산기계곡은 정선군 정선읍에 있는 계곡으로서, 우리나라에 얼마남지 않은 오지 계곡이다.
전체 길이는 약 12km인데 높이가 100m인 뼝대라는 층암절벽이 계곡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그 아래에는 푸른 빛의 자갈위로 맑은 물이 흘러 무릉도원을 방불케 한다.
또한 계곡 상류에는 울창한 낙엽송과 덕산기마을 '예림골'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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