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0
마등령을 넘어보기로 맘 먹었습니다.
오랜시간 산길을 걷는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였지만 더 늦기전에, 아직 왠만한 산은 오를 수 있을 체력이 될때 가봐야지 결심을 하고 떠났습니다.
8시 45분
인제군 북면 용대리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곤 노폭(路輻)이 좁아 정원이 34명밖에 안되는 좁은 버스에 승차해서 백담사로 갑니다.
중국 관광길에 타고 다니는 작은 버스, 딱 그 정도 크기의 버스에 몸을 의지하고서...
안전벨트 매는 건 필수. 백담사까지는 10여분 정도 걸립니다.
백담사로 가는 길은 이따금씩 차량이 서로 비킬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정도의 도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은 도로를 포장한 덕분에 덜컹거리는 게 덜하다는 것.
9시 정각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셔틀버스 요금은 편도 2,500원입니다.
백담사로 갑니다.
한용운의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이 절은 647년, 신라 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慈藏)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고 합니다.
창건한 지 50여 년 만인 690년(신문왕 10)에 失火로 소실되어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는데,
「심원사사적기」에는 이 때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요.
낭천현(狼川縣,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는 비금사(琵琴寺)가 있었으며, 주위의 산은 짐승들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답니다.
그래서 사냥으로 인한 살생 때문에 터가 부정해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에게 공양하였고.
이런 부정함을 싫어한 산신령이 어느날 밤 신통력으로 비금사를 설악산의 대승폭포 아래 옛 한계사(寒溪寺) 터로 옮겼답니다.
이튿날 승려들이 일어나 보니 절은 틀림없이 비금사인데 주변 지형은 생판 달라져 있어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나타나 "낭천에 있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다고 알려주었대요.
백담사는 그 뒤로 여러 번 불이 나서 여기 저기 옮겨가며 재건하기를 반복하였으며, 사찰 이름도 자주 바꾸었다가 조선 정조 7년(1783)에 현재의 '백담사'라는 寺名을 지었답니다.
전설에 의하면, 화재가 있을 때마다 주지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분이 나타나 변을 알려주었다고하며,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도포를 입고 머리가 백발인 산신령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 터까지 웅덩이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라." 하였대요. 날이 밝자 주지가 일어나 꿈에서 들은 대로 산에서부터 절까지 물 웅덩이 수를 세어보았더니 꼭 100개였으므로 절 이름을 백담사(百潭寺)라고 지었다 해요.
담(潭)자가 들었기 때문인지 그 뒤부터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담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여러 작품을 남긴 절로, 출가한 이후 이 절에서 잠시 머물며 '님의 침묵'을 비롯한 시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용운의 인지도는 높았지만 백담사 절 자체의 인지도는 그렇게까지 높진 않았었죠.
이 절이 유명해진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부부가 '5공 청산'의 일환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11월 23일부터 1990년 12월 30일까지 약 2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백담사 경내로 들어서면서 오른쪽에 있는 범종루.
범종루는 범종각이라고도 하는데, 범종각에는 범종과 목어, 법고, 운판 등을 설치하며 이들은 중생의 교화를 상징하는 佛具로 쓰입니다.
만해기념관은 만해의 문학사상과 불교사상, 독립사상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만해스님의 행장(일대기)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마당 한쪽에는 만해의 '나룻배와 행인' 詩碑 그리고 흉상이 있습니다.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해당'은 만해 연구원인가 봅니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 나한들을 모시는 법당입니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이며 모든 번뇌를 소멸하신,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춘 분들을 말합니다.
다른 이의 사진을 보면, 나한전 내부는 이렇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보전.
아미타불 좌우로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의 상징으로 중생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널리 비추어 지옥, 아귀, 축생인 삼도의 고(苦)를 없애고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랍니다.
매월당 김시습의 '저물 무렵' 詩碑도 있습니다.
저물 무렵
- 김 시습 -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거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저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사이 남아 있으리.
느긋하게 둘러 볼 시간이 없다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백담사를 둘러보고
길 떠납니다.
뒤돌아 본 백담사
연두색의 숲길은 예뻐요.
백담탐방지원센터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의 길은 평지입니다.
간혹 데크도 있고, 납작 납작한 돌길도 있지만
개울을 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가는 호젓한 길입니다.
영시암까지의 거리는 3.5km.
마냥 걷기 좋은 길이라서 누구라도 1시간이면 갈 수 있죠.
개울물은 많지 않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비가 조금밖에 내리지 않아서 옥빛같이 푸르고 맑은 沼(소)와 潭이 즐비하던 이곳이, 물 졸졸 흐르는 개울이 되었습니다.
물레나물 노란꽃은 지고 있었지요. 가는 봄을 더 이상은 붙잡을 수 없다면서 말이죠.
설담당 부도가 있다기에 들어가 봤습니다. 궁금한건 못 참으니까요.
설담당 부도 / 雪潭 18세기 (생몰 미상)
신계 재익(新溪 載益)을 은사로 출가하신 설담스님의 법호는 태활(泰闊)이다.
용암(龍岩)의 법통을 이어 받았으며 정월 지순(淨月 知淳)에게 법통을 전수했다.
1781년(辛丑)에 영남지역에서 올라와 설악산 심원사(尋源寺)에서 수행,정진하셨다.
그해에 최붕(最鵬) 등과 함께 대웅전과 향각 불사를 하고 2년 뒤인 1783년에 심원사를 백담사로 개칭하였다.
그 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스님의 부도가 심원사 옛터 인근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 생각없이 봤던 부도였는데,
화재가 자꾸나서 절 이름을 고치려고 하던 주지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웅덩이(潭)이 몇개인지 세어보라고 해서 세어봤더니 100개이기에 절 이름을 '백담사'라 개칭(改稱)했다던 바로 그 스님의 浮屠였네요.
영시암으로 가는 편안한 흙길.
길옆에는 조록싸리꽃이 피었습니다.
계곡물은 너무도 깨끗해서 돌맹이 하나 하나 다 보입니다.
뱀무 노란꽃도 피었습니다.
뱀무 어린 잎과 줄기는 나물로 먹죠.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8~9월경에 캐어 물에 씻은 후 날것 또는 바람에 말리어 이뇨제로 쓰는데, 두통이 심할 때나 눈이 피로할 때에 효과가 있고, 불면증에도 도움이 된답니다.
10시 30분.
영시암에 도착했습니다.
백담사에 들리지 않았다면 10시경에 도착했겠죠.
영시암은 1709년 조선 후기의 유학자 김창흡이 심원사 남쪽의 조원봉 아래에 창건한 암자였답니다.
김창흡은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사사(賜死)된 뒤로는 세상에 진출할 뜻이 없었는데, 1705년(숙종 31) 모친상을 마치고 난 후 설악산으로 들어가 백담사에서 3년을 지내다가, 1707년(숙종 33) 조원봉 남쪽 벽운사 옆에 벽운정사(碧雲精舍)를 지었대요.
이후 건물에 불이 나자 서쪽으로 몇 리 더 깊숙한 곳에 정사를 지어 머물렀다고 합니다.
「삼연 김선생 영시암 유허지비(三淵金先生永矢庵遺墟之碑)」에 의하면 “기축( 1709)년 10월에 다시 절에 돌아왔다가 동쪽 수리(數里)에 있는 조원봉 아래 북쪽에 판잣집 8칸을 짓고 영시암(永矢庵)이라고 이름했다”고 해요.
영시암(永矢庵)이란 이름은 김창흡이 이 절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의 뜻을 담고 있다 하는데,
그가 이곳에 머문 지 6년이 되던 해인 1714년(숙종 40) 10월에 함께 지내던 거사 최춘금이 호랑이에게 물려 변을 당하자 춘천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찰은 그 뒤 폐허가 되었답니다.
그 후 인제현감 이광구(李廣矩)가 「김삼연유허비(金三淵遺墟碑)」를 세웠으며
1691년에 오세암의 주지였던 설정(雪淨)이 조원봉 북쪽에 승당 24칸과 비각 1칸을 중건하고 자비성상(慈悲聖像)을 봉안했고,
1760년 11월 7일에는 절에서 제일 오래되고 큰 석존불에 개금(改金)을 하였다고 합니다.
'개금'이란 불상(佛像)에 금칠을 다시 하는 것을 말하죠.
1925년에는 영시암 주지로 이기호가 부임하면서 절을 중수하였지만, 1950년 6·25전쟁 때 전각들이 불에 타버린 것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이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김창흡의 후손인 서예가 형제 김충현(金忠顯)과 김응현(金膺顯)의 후원을 받아, 법당과 삼성각을 지어 오늘에 이르렀답니다.
들여다 보면 참으로 사연많은 영시암이지만, 뜰앞의 작약은 '난 아무것도 몰라' 하듯이 시침 뚝떼고 방긋 방긋 웃고 있습니다.
영시암에 오면 잠시 쉬었다 가야해요.
봉정암을 가던, 오세암을 가던 그 어디를 가던지, 영시암에서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 쉬었다가 기운차리고 힘내서 가요.
영시암에서 조금 올라오면 봉정암과 오세암 갈림길이 있습니다.
오세암으로 갑니다.
영시암에서 오세암까지 거리는 2.5km,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요,
오늘산행은 백담사에서 영시암, 오세암을 거쳐서 마등령에 오른 다음, 비선대로 하산해서 소공원까지 가는겁니다.
오세암으로 접어든 길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물이라고는 전혀없는 작은 계곡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가끔씩 마주치는 숙은노루오줌과 눈맞춤하며
도란 도란 얘기 하면서 가는 길.
봉정암에 갔다가 오세암으로 내려올 때는 힘들어 죽는 줄 알았었는데,
다리에 쥐가 나면서 마비현상과 통증으로 에어파스를 뿌려가며 간신히 내려왔었는데,
생각보다는 올라가는 길이 의외로 쉽네요.
오세암 가는 길에 접어든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거겠죠?
아니면 그 때는 당일치기로 봉정암까지 갔다오는 길이라 지친 상태여서 그런거였는지..... !
야외활동이 많은 계절입니다. 이 시기에는 진드기를 매개로 하는 감염병인 중증열성혈소판 감소증후군(SFTS)과 쯔쯔가무시병, 라임병 등을 주의해야 합니다. SFTS의경우에는 SFTS바이러스에 감염된 진드기에 물려 발생하는데요,
참진드기의 일종인 작은소피참진드기가 주 매개체이며, 물렸다고 해서 반드시 SFTS에 감염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풀숲이 많은 곳에서 감염되기 쉬우므로 공원이나 산, 농삿일 등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다고 해요
SFTS에 걸리면 4~15일정도 잠복기를 거쳐 열이 38도에서 40도까지오르는 고열 증상과 혈소판, 백혈구감소, 구토등의증상이나타나는데, 건강한 사람은 가볍게 앓거나 자연치유되기도 하지만 중증으로 진행되면 근육떨림을 비롯한 신경계증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네요.
문제는 SFTS는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제나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없다는거죠. 그래서 SFTS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생기나며 치사율도 10~20% 된대요.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기저질환자에게는 치명적이랍니다.
진드기 매개로 감염되는 질병으로 쯔쯔가무시병이 있는데요, 쯔쯔가무시병은 쯔쯔가무시균에 감염된 털 진드기 유충에 물려 감염되는 열성질환으로 고열,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이것도 잠복기는 4~15일이랍니다.
라임병이라고 해서 SFTS바이러스를 보유한 작은 소피참진드기에 물려 감염되는 열성질환도, 진드기 매개감염병 중 하나랍니다.
라임병 역시 잠복기는 1~3주이며 고열, 오한, 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군요.
진드기 매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야외활동 시 감염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데요, 가장 좋은 방법은 야외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진드기 기피제를 사용하는 게 좋답니다.
또, 풀밭에 앉거나 활동을 할 때는 긴 소매, 긴바지를 입어 노출을 최소화 해야하며, 야외활동이나 농삿일을 한 뒤에는 반드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랍니다. 또, 야외활동 이후 아무 이유없이 관련증상이 나타난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해요.
이제는 잔디밭이나 풀숲도 함부로 앉으면 안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오세암 가는 길' 팻말이 보이는 곳에서 오세암으로 내려가지 않고, 일단은 오른쪽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무런 표시도 없고, 가파르고 험한 암릉이 있는 이 길은 만경대로 가는 길입니다.
산행을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장소, '만경대' 가는 길은 진짜로 너무 험합니다.
너무도 험하기에 위험하다고,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가거든요.
그렇지만 멋진 풍광을 두고 그냥 간다면 서운하겠죠?
스틱도 배낭도 놔두고 기다시피 올라 온 만경대.
만경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만가지 경치라고 해서 만경대라 한대요.
만경대에 올라서면 산자락에 포근히 둘러쌓인 오세암이 그림처럼 예쁘게 보입니다.
둥그런 바위뒤로 돌아가면 그 또한 멋진 경치를 볼 수 있구요.
눈앞의 저 뾰죽 뾰죽한 산들은 용아장성입니다.
만경대에 올라서 바라보면 앞에 보이는 산이 옥녀봉이라네요.
너무도 위험해서 사고가 많이 난다고 출입을 금한 용아장성.
이 바위 뒷길은 조심해서 갔다가 와야해요.
위험을 감수하고 가 보면 경치야 끝내주지만,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가야겠어요.
올라올 때 힘들었으니 내려갈 때도 힘든 건 당연지사죠.
멋진 풍광을 보았다는 뿌듯함으로 내려 오는 길.
마등령으로 가는 길이라면 여기는 꼭 들려봐야해요.
100m 정도 가면 되구요, 갔다오려면 30분가량 소요됩니다.
어디쯤인지 아시죠?
바로 이 바위 맞은 편의 산입니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도 괜찮습니다.
흔히 걷는 난이도 下 정도의 산길이라 보면 돼요.
오세암에 도착했죠.
五歲庵은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 하였으며, 1548년(명종 3)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다고 해요.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이며, 우리모두가 알고있는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전해지고 있죠.
설정(雪淨)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대요.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답니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죠.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답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했고,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 한대요.
그 뒤 1888년(고종 25)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하였으며, 당시에는 법당을 2층으로 짓고 박달나무로 기둥을 세웠는데, 매끄럽기가 부드러운 명주옷으로 문질러도 결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절은 수선도량(修禪道場)인 동시에 유명한 기도도량으로 손꼽힌답니다. 아늑한 맛으로는 설악산 내 사찰들 중에서 제일이며, 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고 해요.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머물렀던 곳이고, 조선 중기 불교의 부흥을 꾀하다 순교한 보우가 수도하였으며, 근대의 고승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김시습과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면서 『십현담(十玄談)』의 주석서를 쓴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고 해요.
범종각의 범종은 황금색입니다.
오세암의 주 법당인 '천진관음보전'에는 반가상 자세로 앉아 설법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백의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답니다.
편액은 '松泉'이란 분 글씨이구요.
'백의관음보살'
(다른 이의 사진을 가져 온 것입니다)
5歲동자가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동자전도 건립한거죠. 동자전각은 오세암이 유일하답니다.
동자전 내부
이 사진 역시 다른 이의 것입니다.
팔만대장경 홍보관
감로수와 공양간.
조그만 동자승들이 보이죠? 동자승 아래에는 지폐가 있는데요, 이건 공양 후의 성의표시를 그렇게 하고 가는 겁니다.
천진관음보전
12시 20분
모두 다 배낭에다가 점심밥을 싸왔지만 절밥이 맛있는 걸 아는 우리들은, 오세암에서 점심 공양을 합니다.
흰쌀밥에 미역된장국, 단무지 무침이 전부였지만, 단촐하고 소박한 절밥이기에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봉정암에서 내려오거나, 백담사에서 마등령으로 갈 때 오세암에 도착할 때 쯤이면 점심시간이기에, 절에서는 길손들을 위해 공양을 준비합니다. 11시경 부터는 식사를 할 수 있죠.
공양간을 관리하는 듯한 처사 한분은 우리들에게 점심공양 후 커피도 마시고, 마실 물도 넉넉히 채워가라고 합니다.
공양간 맞은편에는 커피자판기가 3대 있구요, 그냥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했드군요. 자판기 옆에는 사탕도 비치해두고
중생들에게 베품을 실천하는 인심 후한 오세암입니다.
공양간 옆의 시무외전.
'시무외'는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의미의 법당이라고 하는데,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면 수많은 불상들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어 뜨락에서 살짝 찍어봤습니다.
법당 내부를 찍으면 죄스러운 거 같아 내부사진은 찍지 않기에, 다른 이의 사진을 빌려왔는데요,
시무외전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음보살상과 그 주변은 이렇게 금빛으로 법당안을 환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했지요.
관세음보살은 일반적으로 성(聖)관음, 천수천안(千手天眼)관음, 마두(馬頭)관음, 십일면(十一面)관음, 여의륜(如意輪)관음, 준제(准提)관음 혹은 불공견색관음의 6관음을 말하고, 그 중에 성관음이 본신이고 다른 것은 보문시현의 변화신이라고 합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천개의 팔과 천개의 눈을 갖추고 있으며 육도 중에 주로 지옥을 관장하고 있고, 관음 중에서도 가장 힘있는 구제자로 신봉되고 있다고 해요.
12시 50분.
마등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세암에서 마등령까지 거리는 1.4km 되지만, 짧은 거리임에도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답니다.
등산로는 온통 바위들
가파르고 험한, 아주 빡센 구간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봉정암의 해탈고개는 길이나 좋지,
해탈고개를 넘으며 힘들다고 했던 게,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 이런 길을 올라갑니다.
계단도 가파른데,
깨끗한 순백의 산목련을 보며 힘을 얻습니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겨우 400m를 왔군요!
2023년 6월 11일 0시.
강원도는 '강원특별자치도'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1395년 조선태조 4년에 만들어진 '강원도'라는 명칭은 628년만에 폐지된거죠.
강원특별자치도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에 이어 국내 3번째로 특별자치광역지자체가 된 것입니다.
지난 해 5월 29일 제정된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금년 5월 25일 통과된 강원특별자치도법 전부개정을 통해 특별한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은 건데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것처럼, 강원특별자치도에 '高度의 자치권'이 부여된거죠.
이로써 강원특별자치도민들은 강원특별자치도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먼저 환경분야에서 시 군.민간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을 도지사가 갖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환경영향평가라던가 자연경관영향협의, 기후변화영향평가, 건강영향평가 협의에 대한 권한이 환경부로부터 이양된대요.
'국방'쪽으로 보면 지역소멸 위기에 처했던 접경지역의 경제가 활성화 된다고해요.
접경지역 농,축,수산물을 軍 급식과 수의계약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지자체 미활용 군용지 토양 오염 등의 제거를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산림'분야에서는 산림자원을 활용한 산악관광과 신산업 활성화도 가능해진답니다. '산림이용진흥지구'를 신설하고, 산지전용허가와 일시사용허가의 권한도 산림청에서 이양된다는군요.
'농지'분야에서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았던 절대농지를 해제하여 농촌활력 기반을 조성한답니다.
----------- 지난 50년 간 강원도는 온갖 규제에 시달렸었는데요, 군사. 농업. 환경. 산림 4대핵심규제 총면적은 강원도의 1.3배가 넘었답니다.
공장이나 기업을 가져오려 해도 규제때문에 어려웠었는데, 4대 핵심규제를 풀 수 있는 권한을 이번에 가져 온 거랍니다.
새롭게 시작한 '강원특별자치도'에 도민의 한사람으로서,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철쭉나무 이파리에는 하나같이 동그란 노란색반점이 있습니다.
어쩌다 한,두개 있는 게 아니고 모두 다 그렇네요.
산꿩의 다리 흰꽃이 피었습니다.
산에서 자라는 꿩의다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꿩의 다리들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답니다.
꿩의 다리는 종류도 많아서 꿩의 다리, 산꿩의 다리, 은꿩의 다리, 금꿩의 다리, 자주꿩의 다리, 연잎꿩의 다리, 그늘꿩의 다리, 큰꿩의 다리 등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자생종으로 19종, 재배종으로 7종이 등재되어 있다는군요.
박새도 은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큰 키 만큼이나 꽃도 엄청 많이, 아주 그냥 무더기로 핍니다.
박새는 사람 키를 훌쩍 넘어요.
박새는 유독성 식물이지만, 한방에서는 살충, 해열, 감기, 생선중독, 뱀독, 곽란, 혈뇨, 고혈압, 중풍, 황달, 치통과 생리통 등 다양한 약재로 이용 한다네요.
마등령에 다 왔습니다.
마등령삼거리의 벤치에 배낭을 벗어놓고
앞으로 몇발짝 걸어가 봅니다.
다람쥐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변을 알짱거립니다. 손바닥에도 올라오네요.
오늘도 마등령 산행길을 좀 더 자세히 알려주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기에, 1부와 2부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한번에 다 올리려면 제약이 많아 사진 업로드가 안되거든요.
그럼 2부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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