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자욱이 남아있는 ..... 울진 '응봉산'

adam53 2025. 1. 9. 15:03

2025. 1. 7

올해의 새해 첫 산행은 언제나 그랬듯이 응봉산입니다.

산행을 하고난 뒤 온천욕을 하므로써, 지난해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려는 마음에서 연례행사처럼 찾아 옵니다.

09시 40분

덕구온천 뒤의 산불감시초소앞에서 첫 발걸음을 뗍니다.

들머리는 처음부터 계단이구요.

계단을 올라오면 모랫재까지 산책로같은 길을 걷죠.

그리곤 이내 눈에 띄는 그을린 소나무들

2022년 3월 4일 오전 11시 14분경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산불은, 건조한 날씨에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삼척 원덕읍으로 번졌습니다.

산불 발화(發火)는 두천리 지역을 지나던 2대의 승용차 중 1댁가 버린 담배불로 추정하지만, cctv에는 차량번호가 선명하지 못해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는데요, 4일부터 9일까지 울진과 삼척 지역에 큰 피해를 입힌 산불은 발생 9일 만에 진화되긴 했지만, 역대 최장시간인 213시간 43분 동안 탔다고 해요.

그로 인한 피해도 엄청 컸었는데, 울진군 4개 읍,면과 삼척시 2개 읍,면이 주택 353채,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종교시설 등 31개소 등 총 643개소가 소실되었고 337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2000년 4월의 동해안 산불 이후 최대의 산불이었답니다.

불에 그을린 나무들은 새잎이 돋아나지 않는군요.

등산로 주변에는 군데 군데 불에 타서 죽은 나무를 베어내어 쌓아두었구요.

10시 05분

모랫재에 도착했습니다. 원탕과 정상 갈림길이죠.

산불 이듬해에는 원탕으로 가는 길을 막았었는데, 2024년 부터는 등산로를 개방했기에 일행 대부분은 원탕으로 내려가고 대여섯명만이 응봉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검게 탄 나무만큼이나 까맣게 가슴이 아려오는데,

오늘따라 찬바람은 왜 이렇게 불어댄답니까?

강릉에서 100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응봉산.

우리지역보다 따뜻해서 매번 찾을 때 마다 봄이 참 일찍 온다는 걸 피부로 느꼈었는데,

엇그제 소한이 지났음에도 매서운 겨울바람은 윙윙 소리를 내며 불어댑니다.

금강소나무는 강릉을 대표하는 수종인데요, 금강소나무는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울진과 봉화와 영덕 그리고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로, 결이곱고 단단하며 쭉쭉 뻗은 최고의 소나무로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랍니다.

2003년도에 한국갤럽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나무를 조사했는데 소나무 43.8%, 은행나무 4.4%, 단풍나무 3.6%, 벚나무 3.4%, 느티나무 2.8% 순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30년 동안 산림청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조사했는데 여기서에서도 소나무는 으뜸을 차지할 만큼, 우리 겨레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랍니다.

10시 10분

'민氏 묘'를 지나갑니다.

울진군에는 '금강송면(金剛松面)'이 있습니다.

원래의 面이름은 '서면(西面)'이었는데, 울진 읍내에서 서쪽에 있어 서면이라 했다가, 지역내에 금강송 군락지가 있어 2015년 4월 21일 '금강송면'으로 행정구역 명칭을 변경하였답니다. 그만큼 울진에는 금강소나무가 많이 있죠.

그 자랑스럽게 여기던 소나무가 응봉산 일대를 휩쓸고 간 화마로 인해, 지금 이렇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삼척시 원덕읍과 인접한 경북 울진군은 과거에는 강원도에 속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신라시대부터 1,000년 이상 강원도 관할이었다가, 1962년 12월 12일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는데요,

강원도청에 볼일이 있어 춘천까지 다녀오려면 거리가 너무 먼 것도 그렇고, 그 당시 대구에 있던 경북도청은 강원도청보다 더 가까울 뿐만아니라 경제활동도 대구와 포항에 의존하고 있던 터라, 지역유지들이 경북으로의 편입을 줄창 요구하면서 그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강원도 소속이었던 시기가 훨씬 더 길기에, 경상도 다른 지역보다 강원도 정서가 좀 더 강한 편이고 또, 관동지방의 뛰어난 명승지인 관동팔경 기성면의 망양정과 평해읍 월송정 2곳도 울진에 있죠.

그래서 그런지 응봉산은 무척이나 친숙하게 느껴지고 정이 가는 산입니다.

제1헬기장에 왔습니다.

10시 25분

쉴 만한 장소도 없고 바람도 쌩쌩 불어대서 그냥 갑니다.

뒤돌아 본 1헬기장

경북 울진군 북면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걸쳐있는 응봉산은, 울진 쪽에서 바라보면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응봉산이라 부른답니다.  

옛날에 조씨(趙氏) 성을 가진 사람이 매 사냥을 하다가 매를 잃어 버렸는데, 산봉우리에서 매를 찾았기에 응봉(鷹峰)산이라 한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좋은 묘 자리가 있어, 조씨(趙氏)는 부모의 묘를 써 집안이 번성하였다고도 해요.

응봉산 동쪽 기슭에는 덕구계곡이, 덕구계곡 남쪽 등 너머는 구수곡계곡이 있어 맑은 물이 항상 흐르는데,

덕구계곡은 1983년 10월 5일 덕구온천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약 600여년 전 발견된 덕구온천이 있습니다.

40℃ 가량의 자연용출온천 '덕구온천'은 칼슘과 칼륨, 철, 염소, 중탄산, 나트륨, 마그네슘 등 을 함유하고 있어 신경통, 피부질환, 중풍, 당뇨병은 물론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 어느 곳 보다 水質이 진짜 좋다고 사람들은 말하죠.

덕구계곡 남쪽 상당리의 구수곡계곡은 2001년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었는데, 덕구계곡 못지않게 구수곡계곡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몇해전 여름, 구수곡계곡의 명성을 듣고 산악회 회원들과 찾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가 본다고 떠났었는데 계곡입구 '지킴터'에서 우리를 막더군요. 비 올때는 미끄러워 위험하다고 절대로 갈 수 없다고 완강히 막기에,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습니다.  그 후론 갈 기회가 없어 여태까지 못 가 봤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라서 그런가 구수곡계곡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응봉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블랙야크 100대 명산, 한국의 산하, 월간 산에도 이름을 올린 산이기도 합니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는 응봉산이지만,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조망다운 조망은 볼 수 없습니다. 

거리가 짧은데도 쉬지않고 걸으면 정상까지 2시간 가량 걸리는 건 물론 1,000m 가까이 오르는 길은 대청봉을 오르는 것 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게다가 위로 올라갈 수록 등산로에는 돌맹이로 깔려있거든요. 쉬운 듯 하면서도 은근히 힘든게 응봉산입니다.

10시 45분

1시간 가량 걸려서 바위구간에 도착했습니다.

추락방지를 위해 목책을 설치했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응봉산 등산로에는 계단이 많지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짤막 짤막하게 있죠.

목책을 설치한 곳도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건 등산로가 완만하다는 것을 뜻하지만, 걸어보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됩니다.

맨 꼭대기까지 다 타버린 소나무

미끈하게 잘 생긴 소나무들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11시 15분

제2헬기장에 왔습니다.

작은 소나무아래에 주저앉아서 쉬어갑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뼈 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때문에 물 한모금도 안 마시고 쉬지않고 걸었었기에, 물도 마시고 간식으로 출출한 배를 달래봅니다.

이제 다시 걸어볼까요?

5분 정도 쉬었더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네요.

응봉산 13지점까지 왔습니다.

이 일대는 완전히 다 타버렸습니다.

정상을 320m 남겨둔 이 지점에서 불길이 활활 치솟을 때, 소방대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진화작업에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답니다.

온몸을 다해, 필사적으로 불길을 잡으려 애썼던 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산불 이듬해에 응봉산을 왔을 때는 가슴이 먹먹하고 너무너무 속이 아렸었는데, 한해 두해가 가고 그을린 樹皮도 어느 정도 벗겨지고 나니 그때보다 조금은 마음이 덜 아파옵니다.

가뭄이 계속되어 나뭇잎이 바짝 마른 이 시기에는 산불이 나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한 심정입니다.

머지않아 봄이 오고 양간지풍이 불 무렵이면, 더 더욱 마음을 졸이게 되는데요, 2023년 4월 강릉의 산불도 우리들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었댔죠.

그러니까 11일 아침 8시 30분경 강릉 난곡동에서, 소나무가 강풍에 쓰러지면서 전깃줄에 닿아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인근 골프장과 주택, 펜션마을 등을 덮치며 경포 바닷가까지 번졌습니다.

산불발생 8시간만인 3시 30분경 진화된 이 불은, 1시간 뒤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면서 완전히 진화되었는데요,

이 산불로 인해 주택과 펜션 125채, 차량 1대, 불길을 피하지 못한 80대 남성 1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을 뿐 만 아니라,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방해정'이 반소(半燒)되고, '상영정' 정자와 '인월사' 절이 전소되었으며, 강릉의 자랑인 170ha가량의 松林을 포함해서 경포 일대 379여 ha가 쑥대밭이 되었을 정도였답니다.

불에 타서 무너져버린 집들과 소나무들은 그 지역을 지나갈 때마다 눈물이 절로 흐르며 가슴이 쓰려왔는데요, 

까맣게 탄 나무들을 말끔히 베어내고, 폐가와도 같았던 집들도 싹 다 허물고 새로 지은 뒤의 모습은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는 있지만, 우리는 그 끔찍했던 산불을 잊지못합니다.

눈이 내렸나 봅니다.

정상가까이의 등산로에 약간의 흰눈이 보입니다.

겨울나무 사이로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어오고...

이제 다 왔습니다.

정상 바로밑의 헬기장

11시 50분

해발 998.5m의 응봉산을 오늘은 2시간 10분 걸려 도착했습니다.

여느때는 서너번을 쉬며 올라와도 2시간 걸렸는데, 쉬지않고 불어대는 찬 바람이 발길을 더디게했나 봅니다.

날려갈 듯 부는 찬바람속에서도 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정상석 오른쪽으로 삼척 가곡면의 덕풍계곡으로 가는 길이 보이고

이건 정상석 뒷편으로 난 길입니다.

이정표에는 덕풍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표시했어요.

1998년 11월 23일 울진군수가 세운 정상석 뒷면에는 '응봉산'의 유래와 중탄산과 나트륨 함량이 많아 피부병, 신경통, 빈혈증에 효험이 크다는 덕구온천에 대한 얘기가 있구요.

헬기장으로 내려와 동해바다를 바라봅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산도 바라보고

산불 이후 부서진 계단을 수리하려고 가져왔던 자재들도

원탕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보며

다시 또 장쾌하게 줄지어 있는 앞산을 봅니다.

12시

점심을 먹기 딱 좋은 시간이지만, 그냥 내려가야겠습니다.

너무 추워서 밥 먹기가 좀 그렇거든요.

오늘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원탕으로 가지 않고, 올라왔던 길로 도로 내려갑니다. 왕복 3시간 반이면 되거든요.

원탕으로 내려가면 세계의 유명한 다리를 본 뜬, 13개의 다리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리하면 4시간 반이 걸립니다.

제2헬기장에 왔을 때는 12시 15분.

여기에 왔을 때는 12시 35분.

자갈이 깔린 길과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

불에 탄 나무들을 베어낸 산을 보며, 뛰다시피 걸어서 원탕 갈림길까지 왔습니다.

얼른 가서 바람에 뒤집어 쓴 몸을 깨끗이 씻고난 뒤, 허기 진 배를 채워야겠습니다.

13시 10분에는 원탕 갈림길까지 왔습니다.

들머리 계단까지 왔지요.

계단을 내려와서 주차장까지는 포장도로를 한참 걸어가야 해요.

13시 27분.

火魔가 휩쓸고 지나간 자욱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응봉산.

응봉산에 오면 그 누구라도 산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는 응봉산.

오늘은 내내 산불얘기만 한 것 같군요.

 응봉산 산행도 여기서 이만 마칩니다.

우리 모두 불조심, 산불조심합시다.

산행코스: 산불감시초소 - 원탕 갈림길 - 민씨 묘 - 제1헬기장 - 제2헬기장 - 정상 - 다시 되돌아서 산불감시초소까지 원점회귀(12km, 주차장까지 3시간 50분 소요, 평균 3km속도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