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원주 치악산의 남대봉, 향로봉 눈(雪) 산행

adam53 2025. 2. 17. 14:54

2015. 2. 11

참 오랜만에 가 보는 남대봉입니다.

치악산 남대봉은 10여년전에 두어번 간 적이 있는데, 남대봉 가는 길목의 그림같은 상원사는 어제 본 것 마냥 생생한 모습으로 남아있었죠.

09시 50분

오늘의 산행 시작은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해발 400m의 성남탐방지원센터.

남대봉으로 가는 마을길 양편에는 눈이 남아있습니다.

영동지방은 계속되는 겨울가뭄으로 비가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영서지방을 비롯한 중부, 남부지방에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날씨도 엄청 추웠구요.

'소한'에 진눈깨비가 약간 날린 후 '대한'에는 봄이 온 듯 따뜻했었죠. 그러다가 입춘이 지나면서 때 아닌 강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추운 철원지방의 아침기온이 영하 22도나 되고,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정도 되었으니 얼마나 추운지 짐작할 수 있겠죠?

강추위는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엄청 춥겠지하고 두꺼운 겨울바지, 두꺼운 셔츠, 두꺼운 점퍼를 입고 왔는데 이게 뭔일이다요? 봄날처럼 포근하지 뭡니까?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다리 윗쪽은 눈이 쌓여서 아이젠을 장착합니다.

아이젠을 하고 난 뒤 발이 무겁고 둔해졌지만, 아이젠 없이 그냥 가기에는 눈이 좀 많군요.

철문을 걸어 잠근 별장주인은, 겨울철엔 별장에 와 보지도 않는가 봅니다.

집앞에 쌓인 눈을 치우지도 않은 걸 보면...

푸석 푸석한 눈은 걷기가 힘드네요.

물기를 약간 머금고 살짝 녹고 있는 상태라면 걷는 게 훨씬 더 나았을텐데요.

그러나 솜사탕같이 보송 보송한 눈은 길에 깔린 자잘한 돌맹이들을 덮고

뒹굴어 다니던 낙엽들을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덮어주고

봄이 오면 쑥쑥 자라게끔, 헐벗은 나무 밑둥에 조금씩 녹아듭니다.

10시 30분.

눈이 없을 때는 승용차 몇대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40분 걸렸네요.

지금부터는 좁은 산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10시 35분

'상원사 탐방로'까지 왔습니다.

탐방로 문옆에는 작은 건축물이 있는데요, 여기는 상원사로 가져 갈 물품을 놔두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남대봉으로 가는 등산객은 여기에 있는 물품을 상원사까지 들고갑니다.  상원사로 가는 불자(佛者)들은 지게에 짊어지고 가는 거죠. 지게작대기를 겸한 단단하고 예쁜 나무지팡이도 여러개 준비되어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간이 화장실도 있네요.

상원사까지는 2.6km, 남대봉은 3.3km를 가야합니다.

들머리 '성남탐방지원센터'에서 여기까지 오는 건 2.6km이구요.

스님과 남대봉 탐방객들이 밟고다녀서 생긴 눈길

첫번째 철제다리 '상원1교'를 건너갑니다.

눈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다님으로써 다져진 길이므로 발목이 푹푹 빠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눈길을 걷는 건 힘듭니다.

과거에는 없던 계단도 생겼습니다.

이정표는 참 많습니다.

한참을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아까전에 봤던 이정표에서 겨우 400m를 올라왔습니다.

그만큼이나 속도가 나지 않는군요.

10시 50분

산행을 하기 전에는 남대봉과 향로봉을 거쳐서 행구탐방지원센터까지 가는게 5시간이면 넉넉할 꺼라고 했는데 왠 걸요, 이 정도의 속도라면 7시간도 더 걸리겠습니다.

그래서 말도 아껴가며 쉬지않고 열심히 걸어봅니다.

치악산은 원주시와 횡성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으로, 은혜갚은 꿩의 전설이 있는 산입니다.

치악산의 원래 이름은 '적악산(赤岳山)'이었다고 하죠.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붉은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꿩과 관련된 전설로 인해 '치악산(雉岳山)'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답니다.

'상원5교'를 지날 때는 11시 05분.

갈길이 멉니다.

'상원6교'를 건너면 더 이상의 철제다리는 없습니다.

계곡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의 시작이라는 거죠.

나무계단도 다믄 다믄 설치했네요. 

1km를 가면 '상원사'랍니다. 

여기는 해발 700m쯤 되구요.

상원사를 본다는 생각에 기운이 납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이 나무울타리도 없었고, 그때와는 다르게 길도 약간 변형되었습니다.

11시 40분

상원사 일주문이 보입니다.

상원사 일주문에는 흰색의 개 두마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절에 살아 佛心이 깊어서인지 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들과는 初面인데도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곁에 다가와서 반겨줍니다.

상원사는 신림면 성남2리에 위치하는데요, 2024년 기준으로 연간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명소랍니다.

옛날 옛날, 한 선비가 산길을 가던 중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서 죽이려는 것을 보고, 재빨리 활을 쏘아 꿩을 구해 주고는 갈 길을 재촉했답니다. 그러다 산속에서 날이 어두워져서 잘 곳을 찾다가 마침 불빛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예쁜여자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차려내 온 저녁밥을 먹고는 잠자리에 들었다고 해요.

밤중에 자다가 갑갑해진 선비가 눈을 떴더니 여자가 구렁이로 변해 선비의 목을 감고는, “나는 아까 너에게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만약 자정까지 절 뒤에 있는 종이 세번 울리면 살려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답니다.

선비는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하고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는데, 때마침 절 뒤의 종이 3번 울렸답니다.

그러자 구렁이가 '종이 3번 울렸으니 약속대로 너를 살려주마'하고 스르륵 사라졌다고 해요.

종이 3번 울린 걸 이상하게 생각한 선비는, 날이 밝자마자 절 뒤에 있는 종각으로 가 보았더니 꿩 암,수 두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 땅에 떨어져 있더라는 겁니다.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머리로 종을 들이받아 종소리를 울리고 죽었던 거죠. 

그 후로, 죽음으로써 꿩이 은혜를 갚았다 하여 이 산을 치악산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936년 1월, 강원도 원주군 원주읍에서 박동필氏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서, 1958년 최상수(崔常壽)의 [한국민간전설집]에 소개 된 거랍니다.

종루(鐘樓)도,

종루로 올라가는 계단도 새로 설치했군요.

이 종을 3번치고 소원을 비는데요, 적은 금액이라도 보시를 하고 종을 치세요.

드디어 상원사가 보입니다.

여기 이쯤에서 바라보는 상원사는 기막히게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망불대(望佛臺) 하나만으로도 멋진 그림이 됩니다.

11시 57분.

상원사.

상원사는 남대봉 중턱 해발 1,100m에 위치하는데, 우리나라 절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寺)입니다.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이라는데,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說)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說도 있습니다.

창건 이후 고려 말 나옹(懶翁)선사가 중창하였고, 월봉(月峯), 위학(偉學), 정암(靜巖), 해봉(海峯), 삼공(三空), 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여기서 수도하였답니다.

조선시대의 여러 王들은 이 절에서 국태안민(國泰安民)을 기도하게 했다고도 하죠.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 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의성(義成)이 중건했다 합니다.

갈증이 나서 샘물을 찾던 중, 때마침 볼일을 마치고 절로 올라온 젊은 스님이 가르쳐 준 거북이 조각상 샘물.

시원하면서도 달디 단 샘물로 목을 축이고 대웅전으로 가 봅니다 .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王師였던 無着스님이 지었다는 설이 있는 대웅전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18호 입니다.

이 대웅전은 낮은 기단위에 조성되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다포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앞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했다는 3층 석탑 2기가 있죠.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아름다운 3층 석탑 2기가 있는데요,

이 탑은 상원사의 창건과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상륜부(上輪部)에 둥근 연꽃 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동쪽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炎文)을 보이는 섬세한 불상의 광배(光背)와 연화대석이 있어, 원래 이 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해요.

상원사에 가면 꼭 봐야하는 것으로 대웅전의 법당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그리고 노사나불, 후불탱화, 지장탱화,신중탱화가 그것입니다.

석탑(雙塔)과 광배도 봐야 한답니다.

해발 1,100m의 높은 곳에 2개의 3층 석탑이 있는 건 무척이나 특이한 것이며,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는데 탑 내부에서 신라시대 4구 금동불상(관음보살 좌상, 인왕상, 아미타불 입상, 석가여래 입상)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광배에는 불꽃무늬와 연꽃 조각이 새겨져 있다는데, 갈길이 멀다는 핑계로 우리는 절 둘레를 한바퀴 둘러보고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상원사 범종각

12시가 넘었어요.

스님은 공양간 앞의 작은 종을 한번 치고서 공양간으로 들어가십니다.

눈을 치우던 처사는 우리를 보고 공양간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가라하는데

남대봉까지 가서 점심을 먹겠다고 그냥 갑니다.

700m 가면 남대봉이 있거든요.

상원사에서 성남탐방지원센터는 5.2km를 가야 하구요.

계단위의 작은 건물은 화장실입니다.

화장실을 지나 상원사에서 300m에 갈림길이 있습니다.

남대봉 가는 길은 오르막.

허기도 지고 눈길에 지쳐서, 주저앉고만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힘을 내게 하는 건 이정표.

아주 아주 친절하게 이정표는 참 많이도 세워 놓았습니다.

남대봉은 원주시 판부면, 신림면과 횡성군 안흥면의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남태봉(南台峰)이라고도 하며, 태백산맥의 치악산(雉岳山, 1288m)에 딸린 산봉으로서, 망경대라고도 부른답니다.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飛蘆峰, 일명 시루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14㎞의 능선 말단부에 솟아 있으며,

비로봉까지 병풍처럼 이어진 능선 곳곳에는 기암절벽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장관을 이루고, 남대봉에서 남쪽으로 떨어져내린 안부(鞍部)를 가리파재(가리파고개)라고 부르는데, 국도(國道)와 루프식 터널이 딸린 中央線의 치악산 터널이 통과한다고 하죠.

12시 33분

마침재 남대봉에 도착했습니다.

치악산의 남단 최고봉인 남대봉은 해발 1,181m.

12시 38분

남대봉 안전센터앞에 모여앉아 점심을 먹습니다.

흰 눈위에 이름을 써 놓았네요. '재영'이와 '수진'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랍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눈위에 이름을 썼습니다.

향로봉으로 가는 길은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푸석 푸석한 눈은 발걸음을 더 더디게 합니다.

다닌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집니다.

평소같았으면 그저 평범하기만한 이 길이 오늘은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계단을 덮어버린 눈 때문에, 철제난간을 붙잡아도 쭈르르 미끄러져 내립니다.

디뎠다하면 허벅지까지 푹 빠지면서 주저앉고, 그러다가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굴러내릴까봐 진땀이 납니다.

전망대가 보이는군요.

13시 25분

사방이 뻥 뚫린 전망대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쉬어갑니다.

저 멀리 보이는 남대봉도, 평소같았으면 눈 덮힌 산이 그림처럼 멋있고 아름답게 보일텐데,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조차 조심스런 오늘, 눈 산행이 겁나는 건 처음입니다.

그나마 함께 가는 일행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기운차려서 다시 떠납니다.

다시 또 시작되는 내리막길 그리고 미끄러짐.

14시

이런 눈길에 아이젠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도움되라고 신은 아이젠은 하나도 도움이 안됩니다.

발 한번 잘못디디면 미끄럼틀 타듯이 그냥 막 내려갑니다.

일부러 미끄럼 타는 게 아닙니다.

걷잡을 수 없이 내리쏠리는 몸은 쇠 난간을 잡음으로써, 속도를 잠깐 잠깐 멈추어서 내려갑니다.

엄청 많이 가파르거든요.

미끌어지다가 돌맹이에 간신히 멈춘 일행은, 잡을만한 나뭇가지 하나 없어 비명을 지릅니다.

'아! 어떻게 해'

지금까지 이렇게 신경을 바짝 써가며 눈 산행을 하는 건 처음입니다.

14시 52분

힘주어가며 빡세게 걸었더니,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은데 다리도 아파옵니다.

허벅지가 뻐근한 게 쥐가 날 것만 같아요.

제발 아무 탈없이 하산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눈이 없다면, 그냥 뾰족한 산봉우리를 몇개 넘는구나 하고 걸었을껍니다.

즐겁게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 했겠죠.

그렇지만 폭설이 내린 뒤의 산행은 정말 위험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헬기장을 지나고

돌무덤도 지나고

향로봉 안전센터를 지나면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립니다.

15시 35분

향로봉에 왔습니다.

해발 1,043m의 원주시 행구동, 판부면, 신림면과 횡성군 강림면에 걸쳐 있는 향로봉.

향로봉은 치악산의 한 봉우리를 이루며 치악산 주봉(主峰)인 비로봉(飛蘆峰:1,288m)에서 남쪽으로 5㎞ 지점에 솟아 있습니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 비로봉, 남으로 치악평전(금두고원)과 금대리, 그너머 백운산(白雲山:1,087m) 줄기 등이 잘 보이며, 남쪽 능선에 있는 치악평전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조금 넓은 평탄한 분지형 골짜기로서 억새가 가득히 자라고 있으며,

햇빛을 받으면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장관은 널리 알려져 있다는데...

향로봉은 교통이 편리한데다, 찾는 이가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한적한 산행을 하기에 좋다고 합니다.

국형사(局享寺)를 기점으로, 행구동 매표소에서 보문사(普門寺)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거리가 짧아, 당일 산행지로 적합하다고 하죠.

또한 위치상 북쪽 비로봉이나 남쪽 남대봉 등을 연계하여 치악산 종주산행을 하는 이들도 자주 찾는다고 해요.

산 아래 보문사까지는 1km.

거진 다 내려온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눈길은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듭니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행을 보며, 아예 주저앉아 미끄럼을 탑니다.

눈이 오면 눈 덮힌 산이 멋있다고, 눈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눈 산행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치악산 남대봉하면, 1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한 '상원사'가 기억속에 선명히 남아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남대봉에서 향로봉으로 가던 그 두려울 정도의 눈길 산행이 잊혀지지 않을껍니다.

샘터에 왔을 때는 이젠 다 내려왔다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쉽니다.

길 왼쪽 언덕에 '용왕각'이 보여서 올라가 봤습니다.

龍王閣 앞은 너무도 좁아서 여러사람이 움직이기가 좀 그렇네요.

용왕각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보문사.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말 할 기력도 없는 상태라 그냥 지나칩니다.

보문사는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이랍니다.

신라 경순왕(재위:927∼935) 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였으며,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고 해요.

《보문암창기(普門庵創記)》에 따르면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중창된 것으로 보인답니다.

당시에 중창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신행결사 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普門蓮社)라고 불렀다는 군요.

유물로는 보문사칠층석탑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석탑은 높이 1m 정도에 불과한 작은 탑이지만, 해인사와 금산사,법주사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점판암으로 된 석탑으로, 일명 청석탑(靑石塔)이라 불리며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1970년경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중 땅 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는데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대갑석, 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당시에 새로 만들었으며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합니다.

16시 15분

보문사 바로밑에서 부터 포장도로가 주차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승용차로 보문사로 오려면 이 포도(匍道) 끝까지 와서 주차를 하고 절로 올라가야 합니다.

아니면 아래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보문사까지 걸어오던가...

도로의 눈은 말끔히 치웠네요.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내려오니 행구탐방지원센터가 보이네요.

오늘 산행을 끝 내면서 하는 당부의 말.

"폭설이 내린 뒤의 산행은 되도록이면 하지 마세요.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는 그런 산이라면 더더욱 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16시 40분

지친 몸으로 힘겹게 걸었던 남대봉, 향로봉 산행도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오늘은 12km를 걸었습니다. 6시간 50분 소요했구요.

평균속도는 1.8km 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