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7
어답산은 하도 많이 들어서 서너번은 다녀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산이었네요.
횡성 어답산. 그 산을 오늘 갑니다.
9시 45분
횡성군 갑천면 삼거리 95-6, '횡성온천' 앞 큰길에서 하차를 하고 온천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어답산 기슭에 있는 횡성온천은 횡성의 유일한 온천으로서, 약알카리성인데다 중탄산과 물의 깨끗함을 나타내는 유리탄산 성분이 월등히 높아 피로회복, 만성피부병, 고혈압, 심장병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 인기있는 온천이었답니다.
대부분의 온천이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횡성온천은 쌓인 피로를 푸는 건 물론 인근의 어답산과 병지방계곡, 횡성댐등의 관광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여행지로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죠.
2002년 3월에 개장한 우리나라 최고의 중탄산온천인 횡성온천도 영업난으로 폐업을 한 모양입니다. '횡성온천 실크로드' 간판글씨도 떨어져 나가고, 주차장에는 방문차량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답산 들머리는 횡성온천 앞마당을 지나고 '산아래 막국수' 집 마당도 지나갑니다.
'어답산 등산로' 안내판 오른쪽에 들머리가 있습니다.
간이화장실 옆으로 올라갑니다.
처음부터 계단이 있다는 건, 길이 가파르다는 거죠?
그래서 빡세게 올라갑니다.
10시 15분.
능선에 올라서서 웃옷을 벗습니다. 휴~
겨우 500m를 올라왔군요.
그런 뒤, 능선길을 걷는다 싶었는데 통나무계단이 이어집니다.
듬성 등성 놓인 통나무계단이 끝나면 이내 쇠밧줄구간이 나타나고,
약한 듯 하면서도 강인한 쇠막대기와 밧줄은, 흔히 봐 온 모습이 아니라서 신선한 느낌입니다.
온 산을 덮어버린 참나무類의 낙엽들.
갈색의 낙엽은 스산한 겨울산을 더 황량하고 삭막한 느낌을 줍니다.
낙엽이 쌓인 길을 걸을 땐 조심해야 해요.
새 신발이라고 해도, 주루룩 미끄러집니다.
바람이 불지않아서 그다지 춥다는 느낌은 안드네요.
사실 추운 겨울날도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따뜻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어답산(御踏山)은 횡성군 갑천면에 있는 산입니다.
新羅의 박혁거세에 쫓긴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이, 횡성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태기산을 거쳐 이곳 어답산으로 피해왔기에, 왕이 밟은 산이라 하여 '어답산'이라 합니다.
'태기왕이 여기에 와서, 왕이 깔고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는 도구인 '어탑(御榻)'을 놓고 쉬었다고 하여 '어탑산'이라고도 한답니다.
10시 35분
산행거리는 짧아도 어답산은 결코 쉬운 산이 아니군요.
'기껏해야 800m도 안되는 山인데' 하고, 만만하게 볼 산도 아닙니다.
어답산 근처에는 태기왕과 연관이 깊은 지명과 전설이 여럿 남아 있는데요, 어답산 북쪽 '병지방리'는 태기왕이 병사를 모아 방비하던 곳이라 합니다.
어답산 소재지인 갑천면의 '갑천' 혹은 '갑내'란 지명은, 태기왕이 태기산(泰岐山)에서 다시 일어나기를 꾀하며 군사를 훈련하다가, 계천(桂川)을 지날때 피묻은 갑옷을 씻었다고 鉀川(갑천)이라고 한답니다.
어답산 산길은 정상을 중심으로 세 가닥으로 나뉘는데, 정상 남동쪽 방면에서는 횡성온천, 선바위, 장송, 낙수대
정상 남서쪽 방면에서는 삼거리 마을회관, 남서릉, 낙수대 그리고 정상 북서쪽에서는 병지방2리 산뒤계곡,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있지만, 겨울 적설기의 어답산은 횡성온천을 기점으로 다시 횡성온천으로 원점회귀하는 게 좋다고 해요.
오늘 산행을 해 보니까, 그 길이 제일 힘이 덜 드는 무난한 코스라는 생각이 듭디다.
어답산을 가르켜 갑천면 삼거리(三巨里) 북단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山이라고 말하지만,
산행할 때의 느낌은 뾰족한 세모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파르게 올랐다가 가파른 산길을 내려왔거든요.
커다란 바위가 보입니다.
바위앞에는 쉴 수 있는 벤치 2개가 있구요.
나무에 가려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지만, 산 중턱에 30m높이로 우뚝 서 있는 이 바위는 선바위랍니다.
어떤 이는 맞은편에 있는 이 바위가, 서 있는 형국이라 선(立)바위라고 합디다만...
선바위를 지나면서 이내 밧줄구간이 시작됩니다.
어답산 등산로는 처음부터 이 가느다랗고 약해보이는 스텐레스 재질의 말뚝과, 나일론 소재의 밧줄로 되어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밧줄이 제일 맘에 들었는데요, 재질이 재질인만큼 산행길에 흔히 봐오던 일반 밧줄처럼 허옇게 보풀이 일어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10시 48분
헷갈릴 수 있는 갈림길에서는, '이쪽이 등산로이다'라고 세워둔 이정표도 좋았구요.
오며 가며 쌓은 돌무더기를 지납니다.
첫눈이 내리던 날, 어답산에도 많은 눈이 내렸는가 봅니다.
폭설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들이 종종 보입니다.
어답산은 여름에 오면 좋은 산입니다.
조망은 기대하지 않고 더위를 피해 숲 그늘을 걷는, 그런 산으로 적당하지 싶습니다.
나무로 둘러쌓여 있는 등산로이기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과 삼거리저수지가 보입니다.
삼거리(三巨里)는 산수목(山水木)이라 해서 큰 산, 큰 물줄기, 큰 나무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능선에 우뚝 선 제법 굵은 굴참나무.
나무껍질을 굴피라 부르므로 굴피나무라고도 하죠.
수피의 코르크질이 두껍게 세로로 골이 깊게 파져있어서, 골이 파인 참나무라는 뜻에서 골참나무라 부르다가 굴참나무로 바뀌었다고 추정한다고 해요.
아무튼 코르크질이 두껍게 발달한 수피(굴피)를 코르크 마개는 물론 굴피집 지붕에도 쓰이고, 바다에 띄우는 부표(浮票)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부표는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지만 과거 60~70년대만 해도 부표는 이 굴참나무 껍질을 썼었댔죠.
이 계단을 올라가면 산소 1기를 마주합니다.
풍수지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눈에도 묘자리는 명당처럼 보이건만, 봉분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디 이 산소 뿐이겠습니까? 산소도 가까이 있어야 자주 찾아 볼텐데, 험한 산 중턱에 있어 후손들이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등산로 옆으로 벗어나면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으로 굴렀다 하면, 도저히 올라올 수 없을 정도로 경사가 심합니다.
내려갔다하면 잡고 올라 올 나무도 마땅찮은 험한 산입니다
윗쪽으로 올라갈 수록 잔설(殘雪)이 보이고
전망대가 있군요.
후딱 올라가 봅시다.
여기는 조망이 시원스럽습니다.
횡성호와 푸르게 보이는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횡성호는 1990년 첫삽을 뜬후 11년만에 완공된, 횡성댐을 막아 생긴 호수입니다.
댐 길이 205m, 높이48.5m, 유역면적 200평방km가 넘으며 횡성 다목적댐으로서 횡성과 원주시민의 식수는 물론, 농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하죠.
갑천면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거리저수지는 5만평 규모의 준계곡 저수지로서 수질이 뛰어나 피라미,빙어등이 서식하므로 강태공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고 해요.
11시 05분
호수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는, 어답산 장송이 있는 곳입니다.
바위틈에서 자란 300년이나 된 장송.
커다란 龍이 하늘로 오르려고 꿈틀거리는 듯한 樹形도 아주 멋집니다.
위, 아래 2개의 데크중에서 아랫부분의 데크로 내려와 봅니다. 아래에서 보는 소나무 수형도 아주 준수(俊秀)하군요.
전망대에서 몇걸음 가면 작은 데크가 있습니다.
데크를 지나면 내리막
그리고 다시 오르막
정상까지는 짧은 거리임에도 어답산은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합니다.
가파른 산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밧줄구간이 이어지구요.
보기엔 이래보여도 상당히 가파른 길입니다.
밧줄을 잡고서 한발짝 한발짝씩 내려옵니다.
11시 18분
정상이 멀지 않았습니다. 430m 남았다면 거의 다 온 거죠.
봉우리 하나를 또 넘어갑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원줄기가 부러진 소나무 사이로, 뻗어나간 산 줄기들이 검게 보입니다.
등을 맞대고 기대앉은 戀人같이, 벤치 2개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군요.
정답게 보이는 저 벤치에도 한번 앉아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등산로에는 많은 벤치가 있었습니다.
호수를 바라보거나 산과 나무가 그려내는 풍경을 보며, 느긋하고 여유있게 산행하라고 설치를 해 두었건만 뭐가 그리도 급하다고 벤치마다 흘낏 한번 바라보고는 그냥 지나갑니다.
내리막에는 밧줄을 매어놓았어요.
다시 또 봉우리를 올라가고
그러다가 경치좋은 곳에 다다랐습니다.
낙수대입니다.
천지개벽 당시 낙수대 아래까지 물이 차올라 돌에 걸터 앉아 낚시를 했다는 낙수대
낙수대에도 전망대가 있습니다.
낙수대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아주 좋으네요.
어답산의 전망 좋은 곳은 '300년 장송전망대'와 '낙수대전망대' 2군데 뿐입니다.
산아래 굽이 굽이 휘돌아 마을로 가는 도로가 그림같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은 어답산 정상이구요.
발아래에 펼쳐진 횡성호와 저수지를 돌아보며 정상으로 향합니다.
산 능선을 걷고 있지만 양 옆을 바라보면 겁이날 정도입니다.
별로 높은 산이 아니면서도 발딱 서 있는 어답산.
작은 체구에도 앙칼지고 사나운 '발바리' 같은 산이기에, 한눈팔며 가면 안되는 조심스런 산.
11시 50분
어답산 '장군봉'에 왔습니다.
2.8km정도의 거리인데도 2시간 남짓 걸렸군요.
해발 789m의 장군봉.
힘들게 올랐기에 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정상 바로아래 2개의 벤치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하산은 병지방리로 할꺼에요.
어답산을 찾는 대부분의 산객들이, 難코스라고 기피하는 그 길로 내려갑니다.
거리가 1km라기에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을 했죠.
그랬는데 웬걸.
첫발을 떼면서부터 내리막이 장난이 아닙니다.
한 70도 된다싶은 내리막길이 가파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수북히 쌓인 가랑잎 아래에는 삐죽 삐죽한 돌맹이가 있어서 주루룩 미끄러지는게 다반사입니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데도 연신 엉덩방아를 찧어댑니다.
그러다 이제는 괜찮겠지 했는데
내려꽂힐 듯한 산길은 이어집니다.
어답산을 찾거든 이쪽으로는 내려가지 마세요.
횡성온천으로 도로 내려가던가 아니면, 낙수대를 지나 호수로 가는 길이 훨씬 나을겁니다.
지금까지 산행하는 동안, 살다 살다 이런 길은 처음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런 길이 재미있다고도 하겠지만, 이쪽길로 하산하는 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습니다. 결코 추천하고 싶지않은 길입니다. '두번 다시는 이 산을 찾지 않겠다'고 일행들은 이를 갑니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등산로 양 옆으로는 진달래나무 군락지가 이어집니다.
봄이 오고 진달래가 피어나면, 이 길도 참 아름다운 꽃길이 될테죠?
시종일관 산행하는 내내 우리와 함께했던 나일론으로 꼬아만든 밧줄은 어답산의 상징물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답산에 대한 기억을 좋게 남겨주었습니다.
13시
이제 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임도를 걷습니다.
병지방계곡은 어답산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산세 깊은 골로, 여름철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청정계곡이랍니다.
흘러내리던 물은 그대로 고드름이 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고드름을 따서 입에 뭅니다.
'아, 이 시려!'
이 길은 병지방 MTB길이네요.
MTB는 '산악자전거'라고 하죠.
Mountain bike 또는 Mountain bicycle의 약자로 산악지형 또는 오프로드(비포장도로)용 자전거를 뜻하는데요, 포장도로에 특화된 로드바이크(일반 자전거)와 대조적으로, 바위, 나무뿌리, 자갈, 계단, 턱 등이 즐비한 산길을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전거입니다.
MTB는 1938년 슈윈(Schwinn)사에서 그 당시 쌀집자전거에 버금가는 우월한 내구성을 보여주는 엑셀시어(Excelsior)라는 물건이 출시되면서 MTB역사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요.
미국에서 한창 자전거가 잘나가던 시절인 1940~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에서는 대량생산으로 인한 대중화가 완성되었으며, 1970년대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혈기넘치는 젊은이들이 이 튼튼한 프레임을 기초로 튼튼하고 완충성능이 우수한 벌룬 타이어, 간단한 변속기를 달고 있는 슈윈 마제스틱 클렁커(Majestic Klunker) 등에 약간의 보강을 하여, 멀쩡한 길 놔두고 산을 타기 시작하는 것에서 그 기원을 둔다고 하죠.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개울을 건너고
개울을 건넌 후, 오른쪽으로 꺾어서 車道를 걸어갑니다.
커다란 암벽에는 소나무와 학을 입체적으로 그려놓았네요.
13시 43분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이런 놀랍도록 험한 산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이 산을 갔다왔다는게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내일은 몸살이 나서 앓아누울 것 같아요.
오늘은 6km정도 걸었습니다. 4시간이 걸렸구요.
------------- 어답산 산행도 여기서 끝냅니다.
산행코스: 횡성온천 - 선바위 - 장송 - 낙수대 - 정상 - 병지방 임도길 - 병지방리 (6km, 4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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