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1
강릉의 낮 기온이 30도를 웃돕니다.
그런데요, 날씨가 단단히 고장이 났나 봅니다.
글쎄, 지난 16일에는 왕산 대기리 '안반데기'에 때 아닌 눈이 내려서, 명이나물같은 산나물과 배추들이 얼어죽는 피해를 봤다니까요.
그러고 나더니 한 낮은 완전 여름이면서 아침 저녁으로는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춥고.
무슨 날씨가 이렇단 말인가요? 참, 나 원, 오뉴월에 눈이 온다는 게 말이 되나요?
날씨가 완전 미쳤어요! 미쳐버렸어요.
오늘도 남산공원을 지나, 남대천 '단오문'으로 들어간 다음 창포다리를 건넙니다.
그리고 명주동 '작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우체국 맞은편에 있는 칠사당, 거기서 산악회 버스를 탑니다.
아침 10시
두시간을 달려와 인제 방태산자연휴양림입구에 도착합니다.
방태산은 심심치 않게 찾아오는 산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매봉령, 구룡덕봉, 주억봉을 거쳐서 내려 올 꺼구요.
한번은 늘 가는 방태산 산행코스를 달리해 본다고, 상남면 미산리 개인약수를 들머리로 한 적이 있었는데요,
일곱 여덟명 모두 다 初行이라 길을 잘못 들어서 두어시간을 산 속에서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6월의 아침나절에, 이리저리 얽히고 얽힌 잔나무들을 헤쳐가며 길도 없는 산속을 헤집고 다녔던 그 일은 한동안 심심치 않은 화제꺼리였었지만, 그쪽으로 가는 도로도 좁고 급하게 꺾이는 커브 길 등 여러모로 볼 때 그 쪽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팍 꺾이는 커브길 때문에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고, 돌리지도 못하고 아슬 아슬하고도 위험하게 빠꾸를 하면서 아래로 내려왔거든요.
버스를 타고 오는 아침 내내 흐리고 선선했던 날씨는, 휴양림에 도착하자 쨍~하고 해가 납니다.
그냥 그대로 흐렸더라면 산행하는 게 더 좋았을 텐데, 해가 나면 아무래도 많이 덥겠죠?
매표소에서 등산로 입구까지의 1km가량의 도로 주변은, 나무들이 연두색으로 물들어 공기가 상큼하고 기분도 상쾌합니다.
제1주차장을 지납니다.
대형버스가 주차해야 할 이 곳에 승용차들이 주차했습니다.
휴양림에 공사를 하고 있어 버스는 들어오지 못하고 승용차만 올 수 있었거든요.
1주차장을 지나면 왼쪽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화장실인 거죠.
신선하고 맑은 아침공기는,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입니다.
길모퉁이에 있는 '이단폭포'는 하산길에 잠깐 들려 볼려구요.
구룡교를 지나고
제1야영장도 지나고
야외취사장은 출입을 못하게 붉은 줄을 쳤습니다.
그래서 취수장 뒷편의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제2야영장도 이용하지 못하게, 금(禁)줄을 쳤습니다.
10시 25분
제2주차장에 왔습니다.
주차장 오른쪽 끝 귀퉁이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입니다.
시원스레 흐르는 계곡물소리에 몸도 마음도 시원해집니다.
갈림길에 왔습니다.
왼쪽은 매봉령으로 가고, 오른쪽은 주억봉으로 가는 가장 짧은 코스입니다.
주억봉으로 가는 길은 거리가 짧은 대신, 많이 가파릅니다.
매봉령으로 돌아가는 길은 거리가 좀 더 먼 대신에 완만하다고 하죠.
그러나 처음에는 완만하다 싶다가도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길입니다.
곧바로 주억봉으로 가는 길에 비하면 완만하다고 할 수 있죠.
어쨋든 방태산은 사방으로 긴 능선과 깊은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육산입니다.
교통이 불편해서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계곡을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의 아침가리골의 짙푸른 물은 암반위를 구슬처럼 굴러 떨어지고, 적가리골은 펼쳐진 부채 같은 독특한 땅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숲 그늘에는 감자란이 수줍게 피었습니다.
오뉴월에 황갈색의 꽃이 피는 감자蘭은, 뿌리가 감자처럼 둥글다고 이름 붙여졌죠.
연영초도 흰꽃을 피웠습니다.
잎 3개가 손바닥만한 연영초도 응달진 곳에 자라는데,
나이를 연장해주는 풀(延齡草)이라고 하는 건, 한방에서 뿌리를 우아칠(芋兒七)이라고 해서 풍을 다스리고 혈액순환 촉진과 진통, 지혈효과가 있어 약으로 썼을 때 수명을 연장하는 풀이라고 해서 '연령초'라 한답니다.
축축한 숲속 그늘진 곳에 졸방제비꽃도 피었습니다.
제비꽃 중에서도 20~40cm 정도로 키가 훌쩍 큰 꽃.
감자란은 의외로 종종 눈에 띕니다.
아직까지는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가요.
일곱개의 잎이 빙 둘러싼 줄기 한 복판에 쥐똥같이 까만 꽃이 피었습니다.
잎모양이 삿갓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하는 '삿갓나물'은 먹을 게 부족했던 예전에 어린 잎과 순을 나물로 먹었다는데, 식물 전체에 독성이 있어 먹지 않는게 좋습니다. 나물이란 이름때문에 막 먹으면 안되거든요.
현재까지는 그런대로 올라갈 만 했지만
지금부터는 힘들게 올라갑니다.
보기엔 그저 밋밋해 보일지 몰라도
자주 쉬고 물도 많이 마셔야 해요. 안그러면 쥐가 나기 쉽거든요.
커다란 나무밑에서 잠시 쉽니다.
풀솜대도 흰꽃이 핍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같이, 옛날 보릿고개 때 주린 배를 채워 준 고마운 나물이라고 '지장보살'이라고도 하는 풀솜대.
풀솜대는 대나무의 일종인 솜대새싹이 올라올 때 하얀 가루같은 게 있어, 솜에 비유해서 풀솜대라 하는데 줄기에 흰털이 많은게 솜대를 닮았다고 그리 부릅니다. 봄에 줄기와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그 맛과 식감이 깜짝 놀랄 정도라고 합니다.
11시 30분.
매봉령에 왔습니다. 1시간 반 걸렸군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도 못합니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고 다리는 뻣뻣해져서 파스를 서너번 뿌리며 올라왔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최고의 원시림이라 90% 이상이 숲 그늘이라 해도 해가 쨍하고 난데다가, 빡센 오르막을 별로 쉬지도 못했기에 당연히 땀도 흘렸었댔죠.
그래도 연두 연두한 색감의 숲길이라서 싱그럽긴 해요.
옛날 한 마을에 일곱아들과 딸 하나를 둔 섭氏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답니다. 아들들은 늠름했고 딸은 아름다워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구요.
그렇게 잘 지냈는데 갑자기 산에서 큰 이무기가 나타나서 가축을 잡아먹고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쳤다지 뭡니까.
일곱 아들들은 이무기를 죽이기로 하고 이무기를 찾아 가서 싸움을 벌였지만 모두 다 죽었답니다. 그래서 딸이 오빠의 복수를 하고자 낮에는 무술을 연마하고, 밤에는 이무기와 싸울 때 입을 옷을 짰다고 해요.
그리고 49일 되었을 때 갑옷이 완성되고 딸은 부모님께, 오빠와 마을사람들의 원수인 이무기를 잡겠다 말하고는 산에 올라가 이무기와 싸웠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힘이 약한 딸은 이무기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는데,
이 딸의 갑옷은 바늘로 만든 것이라 갑옷을 삼킨 이무기는 고통이 심해서 49일 동안 뒹굴다가 죽어버렸대요.
마을사람들은 일곱형제와 딸의 의로운 뜻을 기리려고 성대하게 제사를 지냈는데, 얼마 후 이무기가 죽은 곳에서 이상한 풀이 돋아났대요.
그 풀은 7개의 깃잎이 있고 꽃 한송이가 아름답게 피었는데, 꽃 속에 금빛바늘같은 것이 있더랍니다.
사람들은 일곱형제와 여동생 넋이 꽃으로 자라났다고 칠엽일지화(七葉一枝花)라고 했는데, 그게 삿갓나물이라는 겁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할 만큼 좋은 때입니다.
붉은 병꽃도 지금 피었습니다.
붉은색의 좁은 통 모양의 꽃과 마주보는 잎의 붉은 병꽃나무는, 꽃이 화려하고 대기오염에도 강해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습니다.
육산이라고 해서 아니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뜻일까요?
이 길은 이정표를 제외하면 등산로에 설치한 시설물은 전혀 없습니다.
이제는 흔하디 흔한 계단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흙을 밟으며 가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계단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식물을 찍었는데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군요.
애기나리 중에서도 귀한 '금강애기나리'는 지리산, 태백산, 오대산, 덕유산, 소백산, 한라산 등과 같은 고산지역에서 자라는 다년생 풀입니다. 고산지역의 산등성이나 침엽수림 주변에 자생하며 부엽질과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데, '금강애기나리'는 한국 특산식물이며 진부에서 발견되었다고 '진부애기나리'라고도 한답니다.
아주 조금, 붉은색이 들어간 산철쭉도 꽃 피었습니다
매봉령을 지나서도 경사가 좀 있는 돌계단을 올라갑니다.
이제 능선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만난 임도.
개인약수쪽에서 오면,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여기서 만났었지요.
숲을 벗어나면서 흰구름이 둥실 떠 가는 푸른 하늘을 봅니다.
이제 막 돋아난 여리 여리한 나무이파리는 꽃처럼 예쁩니다.
이 젊은이들도 그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는군요.
새잎이 돋아난 이 모습을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날씨는 너무도 화창합니다.
땀에 젖은 마음도 덩달아 환해집니다.
헬기장에 왔습니다.
12시 30분
전에도 그랬듯이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갑니다.
연두색의 산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그냥 그대로 그림입니다.
헬기장은 빙 둘러가며 울타리를 쳤습니다.
헬기장에 울타리를 친 건 무슨 이유일까요?
주억봉은 2.4km 남았다는데,
뒤돌아 본 헬기장
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붉은 병꽃이 무리지어 피었습니다.
여기는 방태산에서 제일 전망좋은 곳이라서, '방태산'하면 생각나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길이죠.
방태산을 찾아오는 이유가, 이 구간을 지나는 게 좋아서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망대는 3곳이 있는데, 세군데 다 사방이 탁 트여서 조망은 참 좋습니다.
이 높은 곳에 민들레가 피었습니다. 바람에 홑씨가 날려서 여기에 뿌리를 내린 서양민들레.
길가나 공원, 아파트단지, 잔디밭 등 습기 있는 흙이 있는 곳에 자라는 유럽 원산의 귀화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이 '서양민들레'에 대해서 1920년에 기록되어 있다지만,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들어온 경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민들레는 대부분 이 서양민들레이며, 토종민들레는 거의 보이지 않는 희귀식물이 되었습니다.
저 연두색으로 물든 산 좀 보세요. 얼마나 예쁜가!
단풍 든 산도 예쁘지만, 이맘때의 산이 제일 예쁩니다.
주억봉으로 갑니다.
여기서 1.7km 가면 정상이라고...
주억봉 가는 길도 썩 좋지 못합니다.
삼거리에 왔습니다.
일단은 주억봉을 갔다가 뒤돌아와서, 휴양림으로 내려갈 요량입니다.
돌맹이들이 걷어 채이는 오르막
주억봉에 왔습니다.
산의 모양이 주걱처럼 생겼다고 해서 주걱봉(주억봉)이라고 부른다죠.
돌무더기 윗쪽을 보면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리로 올라가요.
그러면 방태산 정상석이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데,
딸랑 사진 한 장 찍고는 다시 내려옵니다.
정상목이 있는 넓은 곳에서 사방을 빙 둘러봅니다.
'전경 안내판'은 재정비를 해야겠습니다.
비 바람과 눈 때문에 다 찢겨졌어요.
14시 14분
다시 삼거리
풀숲에서 큰앵초가 손짓합니다.
산에서 만나는 앵초는 꽃이 작아도 다 '큰앵초'입니다. 잎이 단풍잎을 닮았거든요.
'앵초', '앵초'하는데 앵초는 이파리가 세모꼴 형태이며 약간 꼬들꼬들해 보입니다.
꽃 모양은 흡사하지만 관상용으로 심는 화초 대부분은 '앵초'입니다.
나무 목침계단이 놓여 있는 길은, 엄청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오는 것도 장난 아닙니다.
이런 계단을 내려 올 때는 옆으로, 천천히 내려와야 해요.
자칫하다가는 무뤂 나가기 딱 알맞은 급경사거든요.
전해오는 얘기로는, 방태산 정상에는 약 2톤 가량의 암석이 있고 여기에는 수작업으로 정을 꽂아 뚫은 구멍이 있었는데,
옛날 그 어느 땐가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곳에다 배를 떠내려가지 않게하기 위해 밧줄을 매달았다고 하여, 그 돌을 가르켜 배달은 돌(배달은 石, 해발1415.5미터)이라고 부르며,
그 당시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방태산 정상에는 지금도 바위 틈바구니의 흙이나 모래속에서 조개껍질이 출토되고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돌을 찾아볼 수 없답니다.
여기까지 내려왔으면, 지금부터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걷습니다.
산골짜기, 개울가, 숲 변두리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미나리냉이도 흰꽃이 피었습니다. 줄기는 높이 50cm까지 자라며 곧게 자라죠.
오늘 산행하면서 본 꽃들은 대부분 그늘진 곳, 물기 촉촉한 곳에 자라는 꽃 들 뿐이었네요.
평평한 나무다리를 몇개나 건너고
고추나무꽃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꽃이 피었습니다.
갈림길에 왔네요.
여기서 매봉령으로 또, 주억봉으로 갈라섰었죠.
방태산 산행도 거의 끝나갑니다.
제2주차장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
길가에 핀 매발톱을 보며
이단폭포까지 왔습니다.
잠깐이나마 폭포를 보고 갑니다.
이단폭포 윗폭포는 높이가 10m랍니다. 아랫폭포는 3m 이구요,
일년내내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이 폭포는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단풍이 들었을 때 더 멋있다고 하죠.
16:00
방태산 산행은 여기서 끝냅니다.
오늘은 14.7km를 걸었구요, 6시간 걸렸습니다. 램블러가 그러는데 평균 2.7km로 걸었다는 군요.
남대천 창포다리의 '관노가면극'의 등장하는 인물 들 양반, 소매각시, 장자마리, 시시딱딱이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강릉관청의 관노(노비)들이 진행하던 탈 놀이로써 1900년대 이후 맥이 끊기면서 현대에 복원하여 진행하는 탈놀이 인데, 곧 있을 단오 행사장에서 행해질 겁니다.
국내의 존재하는 탈놀이중 유일하게 무언극으로 연희되며, 태평소와 사물을 사용하여 반주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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