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소백산 - 참, 오랜만에 걸어보는 그 길 '비로봉에서 희방사까지'

adam53 2024. 5. 30. 19:01

2024. 5. 28

소백산 철쭉꽃을 보려고 가는 길.

오늘도 단오제를 개최하는 '단오문'으로 들어갑니다.

'단오門'은 신목(神木)이 들어오고,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門)이죠.

이 '단오문'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문 윗부분은 강릉단오제의 멋과 풍류를 담는 기와 모양을, 아랫부분은 강릉단오제 신주(神酒)를 담는 술항아리 즉, 신주단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며칠 남지않은 단오제 행사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네요.

올해의 강릉단오제는 6월 6일부터 13일까지 '솟아라, 단오'라는 주제로 남대천 단오장에서 펼쳐집니다.

지난 5월 12일 '칠사당'에서 신주(神酒)빚기 하는 걸 시작으로, 22일에는' 대관령산신제 및 국사성황제'를, 6월 8일에는 '영신제 및 영신행차'를 하므로써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이 됩니다.

단오굿과 그네뛰기, 씨름 등의 각종 행사와 난장 그리고,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떠밀려가는 수 많은 인파로 붐비는 단오를 맞이 할 생각에, 강물은 잔뜩 긴장을 한 것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명주동 작은 골목을 지납니다.

'명주동 골목'은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강릉에 오면 이 골목길에서, 한복을 입고서 사진을 찍고 작고 아담한 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듭니다.

볼거리 많고 화려한 곳이 아닌, 소소한 일상과 명주동을 지키고 있는 추억속의 건물들을 하나 하나 찾으며 걸어보는,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작은 골목. 

이 명주동 골목은, '작은 골목' 이란 제목으로 지역주민들이 출연하고 제작한 영화도 개봉했었죠. 

작은 공연장 '단'도 명주동 명소 중의 하나입니다.

칠사당 앞에는 일찍 나온 일행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네요.

'칠사당(七事當)'은 조선시대 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단속 등 7가지 정무를 보던 관헌입니다.

매년 음력 4월 5일 강릉단오제에 쓸 제례주(祭禮酎)를 빚는 장소이기도 하죠.

그리고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뭉게구름이 둥실 떠 가는 창 밖 풍경을 보며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새밭로 842)의 그리 크지 않은 '새밭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10시 정각.

버스에서 하차 후, 심호흡 한번하고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오늘도 힘차게 걸어보자구요.

평소같았으면 어의곡에서 천동으로 내려갔을 터인데, 오늘은 어의곡에서 비로봉과 연화봉을 거쳐서 희방사로 내려갑니다.

대략 12km를 7시간 가량 걸을꺼에요. 

7시간을 걷는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지만, 까짓거 마음 굳게 먹고서 한번 걸어보죠, 뭐.

들머리로 접어듭니다.

길옆 고추밭에는 고추를 아주 촘촘히 심었습니다. 이쪽 지역에서는 이렇게 심는 가 봅니다.

물론 '이랑'이야 넓지만 우리지역보다는 더 촘촘히 심는군요.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 사이의 소백 산맥 줄기에 있는 산

소백산 등산코스는 7개나 됩니다.

단양 방향의 천동, 어의곡, 죽령, 도솔봉코스와 영주 방향의 희방사, 삼가, 초암사 죽계구곡 코스가 대표적이죠.

그중에서 비로봉까지 가는 가장 짧은 코스가 어의곡 탐방로이구요,

탐방로는 거리가 5.1㎞되며 소요시간은 편도 약2시간 40분 정도라 해요.

어의곡 탐방로는 원시상태의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탐방객이 집중되지 않아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과 탐방로옆 맑은 계곡물이 있어, 이 코스를 찾는 탐방객이 증가하고 있답니다.

푸른 숲 사이로 갑니다.

어의곡 탐방로 입구

어의곡에서 올라갈 때면 오른쪽 나무다리를 건너 어의곡탐방지원센터를 지나갔었는데, 지금은 못 건너게 막았네요. 

집중호우로 탐방로에 세굴이 발생해서 그런답니다.

가 본적 없는 처음가는 길을 걷다가

얼마 가지않아 이 다리를 건너면서 부터는, 늘 가던 그 길로 갑니다.

푸른 숲을 보니 눈이 맑아집니다.

흐르는 물소리에 머리도 맑아지구요.

길 옆 부엽토가 많은 축축한 곳에 수정란풀 꽃이 피었습니다.

나무그늘 밑에 자라는 수정란풀은 전체가 흰색으로 되어있어, 누구나 처음 본다고 해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잎은 비늘모양으로 어긋나며 그 줄기 끝에 은백색으로 1개의 꽃이 피는 데, 각각의 꽃은 포엽에 싸여있고 10개의 수술이 있으며 수술대에는 털이 나 있죠.

매년 5월말이면 '소백산 철쭉제'가 열립니다. 

단양에서는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소백산 일원과 단양읍에서, 영주시에서는 5월 25일과 26일 이틀간 철쭉제를 했는데요,

지난 16일에 때 아닌 눈이 오고 찬바람이 불어대므로 인해 철쭉 꽃봉오리는 다 떨어져버려, 꽃이 없는 상태에서 철쭉제를 개최했었답니다.

그런 소문이 들리긴 했지만 설마,

정상에 가면 철쭉이 피어있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갑니다.

돌을 깔아놓은 등산로

돌로 만든 계단길을 지나고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힘든 구간은 다 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로봉까지 갈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지만, 지금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거든요.

어의곡리를 들머리로 하는 이 코스는,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 중 천동코스 다음으로 쉽다고 말하죠.

천동에 비해서 거리도 1km 이상 짧고 길의 형태도 다양하여 덜 지루할 뿐만 아니라, 소백산의 울창한 숲을 제대로 즐길 수 있고 난이도도 적당하여 이 쪽이 초보자용 코스로 적합하다고는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게 사실 좀 힘들어요. 잠깐 잠깐씩 몇번을 쉬며 왔거든요.

11시 35분

능선길을 걷기 전에 좀 쉬었다 갑니다.

정상까지 2km 남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태까지 아무일 없던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을 멈췄어요. 할 수 없이 지금부터는 휴대폰으로 소백산의 모습을 담아봅니다.

색감이 다르죠? 카메라는 부드러우면서도 찐한 제 색깔을 담아내는데 비해, 휴대폰은 밝으면서도 흐릿하고 화질도 약간 거친 느낌이 들죠.

색깔도 누루끼리하군요.

잣나무 숲을 지납니다.

길섶에는 은방울꽃이 희고 깨끗한, 그야말로 '은방울'같은 꽃을 피웠습니다.

'눈개승마'도 지금 한창 꽃이 핍니다.

잎이 삼(麻)잎을 닮았다고 '삼나물'이라 하는 눈개승마는, 쫄깃한 쇠고기맛과 두릅맛 그리고 인삼맛이 나서 삼(參)나물이라고도 하죠.

강원도에서는 찔뚝바리, 삐뚝바리라고도 하는데 이른 봄 어린 순을 초무침으로 또는 묵나물로 해서 육개장에 넣어서 먹기도 하는데, 양기를 올려주는 삼 잎을 닮은 풀이, 누워있는 개승마(升麻)라는 뜻으로 '눈개승마'라 합니다.

눈개승마는 사포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암 예방은 물론,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억제하므로써 혈관을 건강하게 하며 뇌경색, 심근경색에도 좋은 고급나물입니다.

야자매트가 깔린 이 길에 들어서면 소백산의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비로봉으로 가는 능선길 오른쪽으로 '주목감시초소'가 보입니다.

넓고 푸른 초원에 있는 주목감시초소는, 가요의 한 구절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처럼 그림같은 모습입니다.

이국적인 모습이기도 하죠.

'쥐오줌풀'도 꽃이 핍니다. 뿌리에서 쥐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름붙은 '쥐오줌풀'이지만, 자세히 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어요?

쥐오줌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뿌리를 진정제나 담배의 향료로 이용하기도 해요.

오른쪽에 보이는 바위.

비로봉이 바라보이는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사진찍는 사람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발이 편하라고 폐 타이어를 깐 이 계단을 올라서면 갈림길입니다.

왼쪽은 국망봉으로, 오른쪽은 비로봉으로 가고.

소백산의 완만한 능선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돌맹이 투성이의 오르막길을 걷다가, 이 완만하고 넉넉한 능선에 올라서면 푸근하고 정겨운 풍경이 어머니의 품 같다고 들 하죠.

세갈래 길을 가르키는 이정표

국망봉 가는 쪽의 연두빛 산이 무척이나 예뻐 보입니다.

초원에 지은 작은 집, 소백산을 올 때마다 저기 보이는 자그마한 '주목감시초소'에서 점심을 먹곤 했는데, 아마 오늘도 그럴꺼에요.

지형의 분류 중 고원의 한 종류로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란 게 있습니다. 해발 400m~1,300m 정도되는 높은 곳의 평탄한 평지를 말하는 데요, 오대산 '동대산'의 들머리인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가다보면 고위 평탄면이 있습니다. 남한산성과 진안고원도 고위평탄면이죠.

소백산에도 전형적인 고위평탄면이 있습니다.

바로 비로봉 정상 일대인데, 나무들은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나무들도 크게 자라지 못하는 반면, 풀밭은 아주 넓게 분포하고 있죠.

 이렇게 된 주 원인은 바람 때문입니다.

비로봉 일대에는 바람이 사시사철 강하게 불어서 심할 때는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불어대는데, 이 때문에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풀밭이 목초지처럼 광대하게 형성되었답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옆으로 눞는 풀밭은 융단처럼 보입니다.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 박성룡 '풀 잎'

이 목가적(牧歌的)인 풍경을 보며 걷노라면, 오늘이 선물이고 축복같은 생각이 듭니다.

11시 38분.

정상에 다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군요.

언제나 세찬 바람이 불어대는 정상이, 오늘은 바람도 없고 화창합니다.

해발 1,439.5m의 비로봉.

우리나라의 산봉우리에는 '비로봉'이 많은데요, 봉우리 이름은 불교와 연관이 깊습니다.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에서 온 이름이고, '연화봉'은 비로자나불이 설법하는 세계인 '연화세계'에서 유래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 본 연화봉

정상석 바로 아래 햇빛 따사로운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갑니다.

당초 계획은 주목감시초소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바람도 안부는 양지쪽이 좋다고 그리합니다.

삼가사쪽으로 내려가는 산객도 보면서...

 점심을 다 먹을 때 까지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군요.

연화봉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주목감시초소가 있는 이 풍경은 목장같은 느낌입니다.

 

아침마다 내가 싱싱해지는 것은

밤새 누가 다녀가기 때문이다

어둠 속으로 은밀히 와서

말없이 머물다 가는 조용한 사람

맑은 눈물 소복이 남기기 때문이다.

그 눈물 자륵자륵 내 핏줄로 흐르고

남아 맺힌 낙루(落淚) 몇 방울 반짝이기 때문이다.

​                                    김 주완 '풀잎'

뒤돌아 본 비로봉

앞서 간 일행들은 보이지도 않고, 혼자서 감시초소로 갑니다.

너무도 예쁜 모습이라 그냥 갈 수 없거든요.

주목감시초소에서 바라 본 비로봉

연화봉 방향으로 가는 데크에는 야자매트가 깔려있어 아주 편안한 길입니다.

갈림길에 왔습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천동으로 갑니다. 직진하면 연화봉으로 가는데

이정표를 확인하며 산행하는 건 기본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이정표를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머리가 많은 소백산은 더 신경써야 하는데도, 아무 생각없이 '천동'으로 갔던 일행 1명은 거금 45,000원을 주고 희방탐방지원센터까지 택시 타고 왔었습니다. 이정표를 보지않고 앞만 보고 걸었던 값을 톡톡히 치른거죠.

연화봉은 여기서 직진합니다.

3.7km를 가야 연화봉이랍니다.

노린재나무 흰꽃이 피었네요.

5월에 흰색꽃이 많이 피는 이유는, 흰색은 다른 색에 비해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필 수 있다고 해요.

즉, 생식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중 매개체를 불러 모으는 색깔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면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더 많은 매개체를 불러 모은다는 거죠. 

두 번째는 초록이 짙어지는 시기에 가장 잘 보이는 색이 하얀색이라는 겁니다.

특히 수분을 돕는 곤충들은 녹색이 짙어지면 녹색과 빨간색 등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빛 반사를 통해 흰색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해요. 게다가 흰색의 꽃은 큰 덩어리로 뭉쳐서 피기 때문에 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5~6월에 꽃피는 식물이 많다는 건, 한정된 수분 매개체(곤충)를 두고 식물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며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당수의 식물은 흰색을 선택했고,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뭉쳐서 꽃차례를 형성했으며 강한 향기와 꿀로 곤충을 유인하고 있는 이유로 인해,

우리는 5월부터 흰색의 꽃세상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아름답고 푸른 소백산 비로봉을 가꾸기 위해 소백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군요.

우리는 처음부터 이런 풀밭인 줄 알고 있었죠.

벌깨덩굴 색깔은 왜 이리도 예쁘답니까?

한국과 일본, 중국 원산지인 벌깨덩굴은 산지의 그늘진 응달에서 자라는데,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먹고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 또 관상용으로도 심기도 한답니다.

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풀꽃 2'

사람하나 다닐 정도의 길.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 양쪽은, 잔나무들과 풀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큰애기나리'는 애기나리보다 키가 더 커서 그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꽃들이 피고지는 소백산은 '천상의 화원'입니다.

평소에 보기 힘든 식물들도 소백산에서는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식물이 살고있죠.

백당나무도 꽃이 피려고 합니다.

중앙의 정상화 주변으로 중성화(가짜꽃)가 달리는 모습은, 산수국과 아주 비슷합니다.

연화봉은 3.3km를 가야 한다는데,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자꾸만 발길을 더디게 합니다.

이 능선길을 걸으면 마음이 마냥 푸근해져서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됩니다.

돌계단 윗쪽에 전망대가 있습니다만 굳이 전망대에서 보지않더라도, 양쪽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마음을 빼앗는군요.

조선 명종때의 예언가 '남사고'는 소백산을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했었다죠.

토질이 기름져서 과거 화전민들이 많이 살기도 했고, 전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피난지 역할도 했다고 해요.

'정감록'에서 언급된,  자연상태의 어떤 지역이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 즉, '십승지(十勝地)' 에서 첫번째로 거론된 풍기 금계리는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랍니다. 참 살기좋은 곳이 소백산이라는 거죠.

완만한 능선길도, 야자매트와 폐타이어로 깐 데크도 장시간을 걸어야 하는 산객들에게는 정말 좋군요.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이 길은 17여년도 더 된 오래 전에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소백산을 처음 왔던 날이었고, 철쭉제에 맞춰서 왔건만 철쭉은 아직 피지 않아 봉우리가 이제 막 뾰죽 내밀고 있던 상태였죠.

삼가사에서 희방사까지 내려가는데 주어진 시간은 4시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주위를 둘러 볼 시간은 더 더욱 없던 상태에서 부지런히 걸었더니 5시간 걸렸더라구요.

가는 도중에 마주친 산객에게, 산행시간이 보통은 얼마 걸리냐고 물어보니 7시간 거리랍니다. 그런 걸 5시간 걸었으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겠냐구요?

오늘 여유있게 걸으면서 둘러보는 소백산은 정말 멋지고도 아름다운 산입니다.

다믄 다믄 '붉은 병꽃'도 보입니다.

오늘 철쭉꽃은 한 개도 못 봤습니다.

비로봉 주변도, 연화봉으로 가는 이 길에도 철쭉꽃은 없습니다.

모간(毛茛)이라고도 부르는 '미나리아재비'

처음 본 이 식물의 이름은 뭔가요?

이게 꽃은......... 아니겠죠?

두루미꽃도 무리지어 피었습니다.

졸방제비꽃도 모여서 자라는군요.

'제1연화봉'이라 쓰인 이 이정표에서는 사진 한 장 찍고 가요.

블랙야크의 백두대간 인증장소이거든요.

산마루를 훌쩍 넘어서자 약간의 내리막이 시작되고

비상구급약품을 보관하는 곳이 있네요.

이 안내판은 교체를 해야겠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이 상태로 방치했군요.

미나리냉이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났어요.

아!

이런, 여기까지 오느라 엄청 많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는데...

그래도 한발 한발 발을 뗍니다.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연화봉과 제2연화봉으로 나뉘는 군요.

계속 돌계단 오르막입니다.

나무그늘에 진분홍색 '큰앵초'가 피었습니다.

꽃은 작아도 이건 큰앵초입니다. 잎이 단풍잎을 닮았거든요.

힘겹게 돌계단을 다 올랐을 때에 하늘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드디어 연화봉에 왔습니다.

이 계단만 올라가면 되거든요.

연화봉 주변은 넓직하고 평평하고, 사방도 탁 트여서 시원스럽습니다.

발아래에 소백산 천문대가 보입니다.  사진 오른쪽 아랫부분의 작은 건물은 화장실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천문대인 소백산천문대는, 1972년 5월 국립천문대 설립위원회에서 '볼러&치븐스社'의 24인치 반사망원경을 연화봉에 건설하기로 결정, 1974년 11월에 반사망원경을 도입하면서 본격 천문대 역할을 시작했다고 해요.

1974년 국립천문대로 설립한 후, 1986년 소백산 천문대로 개칭한 소백산 천문대는 일반시민들의 주간견학이 가능한데,

주간 견학은 매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있으며, 주간 견학의 경우 망원경 등 관측 시설 및 장비 견학과 천문우주과학 설명이 중심이고,  낮이라서 천체관측은 불가하답니다.

소백산 천문대는 한국 현대천문학의 시초이라죠.

1974년 주경 61cm 반사망원경이 설치된 후, 1975년 12월 국내 천문학자들이 처음으로 '오리온' 대성운 을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이 소백산 천문대의 첫 연구성과였답니다.

1974년도에 설치된 이 반사망원경은 40여년간 소백산에서 국내 천문관측의 기둥 역할을 해왔고,

현재도 해마다 약 5~6편의 논문을 낼 정도로 톡톡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요.

해발 1,383m의 연화봉

사방 막힘이 없어, 어디를 둘러봐도 조망이 기막히게 좋습니다.

이 연화봉 정상석은 1987년 5월 31일, 단양군과 영주시가 철쭉제를 기념하여 세웠었죠.

14시 45분

정상석 왼쪽의 희방사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연화봉 정상석 맞은 편으로는 '죽령'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으니까,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해요. 

내리막이지만 그런대로 갈 만한 길입니다.

새잎이 돋아 난 숲에는 싱그럽고 풋풋한 나무냄새가 납니다.

공기가 너무나도 깨끗해요.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나무

15시 25분

깔딱고개 쉼터에 왔습니다.

쉼터에서 잠시 한숨 돌리고 희방사로 내려갑니다.

이런 길은 세상에 또 없을꺼에요.

소백산을 처음 왔었던 17여년 전에 이 깔딱고개를 내려갈 때는, 딛으면 그냥 굴러 떨어지던 자연 그대로의 돌길이었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 돌(石)로 계단을 만들고 손 잡을 쇠파이프를 설치해서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가파른 길은 여전하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까 신경을 바짝 쓰면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에 이렇게 땀을 흘리다니...

이제 다 내려왔습니다. 휴~

깔딱고개 이 길은 왜 그리 길기만 하던지...

희방폭포로 곧바로 내려갈 수 도 있지만, 그래도 희방사를 들렸다가 가야죠.

희방사에서 내려가도 폭포를 만나거든요.

1,300년 전 신라 때 두운조사가 소백산 초막에서 수도를 하던 겨울, 호랑이 한마리가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듯 하더랍니다. 스님이 입 안을 들여 다 보니 은비녀가 있길래 빼내어 줬고 '두번 다시 인간을 해치지 말라'고 했대요.

그런 일이 있은 며칠이 지난 밤중에, 호랑이가 혼수상태에 빠진 처녀를 데려다 놓고 사라졌답니다.

스님은 그 처녀를 극진히 보살폈고, 기운을 차린 처녀를 부모에게 보냈다고 해요.

알고보니 이 처녀의 부모는 경주 계림의 호장 딸이었는데, 처녀의 부모는 스님이 거처하던 움막에 고맙다고 절을 지어 줬답니다.

'은혜를 갚아서 기쁘다'고 희방사라 이름지였다는 희방사. 山神閣 위에는 호랑이 狀이 있다고 합니다.

희방사(喜方寺)는 신라시대 두운조사가 선덕여왕 12년(643년) 해발 850m에 창건한 절이랍니다.

1850년에 불에 타서  다시 지었으나, 한국 전쟁때 다시 불에 타 1953년에 중건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고 해요.

희방사 5층 불사리탑은, 무여스님이 미얀마에서 모셔 온 불 사리와 아라한 사리 5과를 봉안했기에  불 사리탑이라 하는데, 40여년 전 폭우로 훼손된 것을 2022년 6월에 복원한 탑이랍니다.

1568년(선조 1년)에 새긴 '월인석보' 1, 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한국 전쟁으로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고 .....

법당 앞에는 돌로 만든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권오준 작가의 '희방사 500나한'을 조각한 이 돌 들은, 전국의 강에서 모은 돌로 조각을 했다고 하는군요.

1986.12.11 지정한 경북유형문화재 제226호 희방사 동종(喜方寺銅鐘).

이 동종은, 조선 영조 18년(1742)에 주조된 것으로 머리부분이 둥글고 아래로 가면서 살짝 벌어지는 형태의 종(鐘)인데,

종을 거는 고리는 2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으며, 몸통은 가운데 2줄의 띠를 둘러 2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위쪽 어깨부분에는 범자를 새겨 둘렀으며, 아래에는 4군데에 유곽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보살입상을 두었죠.

 

몸통 아랫부분에 명문이 새겨 있으며, 입구에서 조금 올라간 부분에는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띠를 두른 이 동종은 전통적인 수법에 외래 요소인 쌍룡의 고리와 띠 장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 범종의 한 유형인 혼합 형식의 종으로 비교적 안정감이 있는 범종이랍니다.

16시 10분

산신각에는 산신, 독성, 칠성 탱화가

산신각 앞에는 전망대도 보이건만 올라가 보지 못하고 그냥 내려갑니다.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서 마냥 지체하기도 뭣하고 해서.

------------------------------   어의곡에서 희방사까지의 거리는 12km네요.

영남 제1의 폭포라하는 희방폭포.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도 시원스럽고, 물소리도 우렁찹니다.

오래전에는 희방폭포를 지나면 조금 넓은 공터가 있고, 버스주차장까지 운행하는 택시들이 줄 지어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장시간의 산행으로 지친 상태에서, 버스주차장까지 1km 남짓한 거리를 이리저리 꼬불 꼬불 돌아가는 포장도로가 너무도 힘들어 여기서 택시를 타고 내려가는 등산객들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계곡옆으로 탐방로를 만들어 놓아서, 택시 승강장은 없어졌습니다.

폭포에서 주차장까지 포도를 걸어가던 그 때도 힘들었지만, 희방계곡 자연관찰로를 걸어 주차장까지 가는 오늘도 힘든 건 똑 같습니다.

17여년 전 그 때는 젊었다고 해도 산행시간이 5시간 걸릴 정도로 쉴 사이 없이 걸어서 힘들었었고,

지금은 여유있게 걸었어도 체력이 딸려서 힘든가 봅니다. 

탐방로를 내려오니 이 포장도로와 만납니다.

이내 희방탐방지원센터와 대형버스 주차장이 보이고, 산악회 버스도 보입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그렇게 10여 년도 훌쩍 더 지난 후에 다시 걸어 본 '희방사로 내려오는 길'

완만한 능선길과 길 옆으로 펼쳐 진 푸른 초원,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그려내는 풍경과 따스하게 내리쬐던 햇살은 두고 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두서없는 소백산 산행기는 여기서 이만 끝내야 되겠네요.

오늘은 13.5km를 걸었습니다. 6시간 40분이 소요되었구요, 평균속도는 2.0km 였습니다. 보통 걸음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