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점심을 먹었는데요,
엄청 추워서 먹는 둥 마는 둥 일어섭니다.
잔뜩 흐린 날씨이지만 출발할 때는 전혀 춥지 않았었는데,
추워요. 무척 추워요.
헬기장이 또 있네요.
벗었던 웃도리를 꺼내입어도, 추위는 몸 속으로 파고듭니다.
손도 시리오면서 아프기도 해요.
얼굴은 빨개졌구요.
오늘아침에 본 관악산은 가을에 물들어 갈색의 낙엽에 덮혔지만 지금은 겨울,
아무리 부정하고 거부를 해도, 우리곁에 성큼 다가오는 겨울을 막을 수 없나봅니다.
추운 건 정말 싫은데...
생각보다 암릉구간이 많네요.
평탄한 흙길을 걷는다 싶으면
짠~ 하고 나타나는 바위
근엄한 아버지같은 길을 오릅니다.
겉으로는 과묵하고 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따뜻한 아버지처럼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막상 올라보면 그냥 평범한 바위길.
밥상 앞에서/ 박목월
나는 우리 신규가
젤 이뻐
아암 문규도 예쁘지.
밥 많이 먹는 애가
아버진 젤 예뻐.
낼을 아빠 돈 벌어가지고
이만큼 선물을 사갖고 오마.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비가 변한 눈 오는 공간.
무슨 짓으로 돈을 벌까.
그것은 내일에 걱정할 일.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의 하늘.
아빠, 참말이지.
접때처럼 안 까먹지.
아암, 참말이지.
이만큼 선물을
사갖고 온다는데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바람이 설레는 빈 공간.
--- 이하 생략.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은 자꾸만 발길을 붙잡고...
지도바위 돌틈으로 빠져나갑니다.
여기가 지도바위에요.
왜 지도바위냐구요?
음,
우선 바위주변 풍경부터 감상하구요.
자연이 그려내는 이런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되는데
자꾸 여기 저기 사방을 둘러보게 되네요.
사진 왼쪽 윗부분, 그러니까 빨간 옷입은 친구 머리위에 지도모양이 보이죠?
그래서 그리 부릅니다.
눈앞에 우뚝 서있는 바위를 본 파란셔츠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귀여운 표정으로 바위위에 섰어요.
----------------------- 요즘에는 저런 모양의 v를 안하던데.
예전에 사진찍을 때는 '소심한 v' 라고 해서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는 모양을 취하곤 했었는데,
요즘의 그 모양은 '사랑해'라는 표시로 많이 사용하드군요.
바위 아랫쪽으로는 횃불바위 윗부분만 보이고...
정상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조금 빨리 걸어야겠어요.
빨간색의 연주대는, 빨리 오라 자꾸 손짓하는 듯 해요.
사람의 길도 산길처럼
봉우리가 보이면 좋겠다.
그래서 그만 내려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다면
산길처럼, 푸르른 나무그늘
땀 식히며 가파른 길 돌아볼
빈 자리도 있다면
엎어지고 미끄러질 때 있긴 있어도
멀어져 갈 수록 깊어져서
새소리 물소리 다 품을 수 있다면
다 비워낼 수 있다면
산길 밖에서도 산길에서처럼 이렇게
마음이 고요할 수 있다면
고명 詩 '산길에서'
지나온 길 뒤돌아보면
그냥 그 모습 자체가 그림입니다.
정상가기 전 마지막 계단,
이 철계단을 설치하기 전에는 아래 2장의 사진처럼, 쇠사슬을 잡고 오르거나 내려가야 했었죠.
겁이날 정도로 위험하고 조심스럽던 곳에 계단이 생겨서, 지금은 안전하게 올라갑니다.
그러고 보니 관악산의 계단은 모두 철계단이었지, 나무계단은 없었던 것 같네요.
지상 제이더관측소도 멋있게 보입니다.
저기를 한번쯤은 올라가 볼 수 있으련만, 넉넉하지 못한 시간때문에 오늘도 그냥 패스하고...
관악산 정상입니다.
해발 629m.
인증사진 한장 찍고서
응진전으로 가 봅니다.
응진전 입구에는 기도 수행중이니까, 아무나 막 들어오지 말라는 글귀가 ...
경기도 기념물 제20호인 연주대는,
깎아지른듯한 바위 벼랑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은 30㎡쯤 되는 대가 구축되어 있고,
거기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요,
연주대 주변은 뛰어난 경관때문인지 전해오는 얘기도 많다고 해요.
원래는 의상대라 했다는데,
신라 문무왕 17년(677)의상 대사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당시 함께 건립한 것인데
후일 이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답니다.
연주대라 이름한 것은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해요.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뒤 방랑하다가 이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또 하나는 1392년(태조 1) 이성계(李成桂)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康得龍)이 연주대라고 불렀다는데,
강득룡,서견(徐甄),남을진(南乙珍)등이 이곳에서 개성(松都)을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
응진전을 보고오는 사이에 또, 혼자가 되었습니다.
둘러볼 건 다 둘러봐야하는 호기심때문에, 산행할 때 마다 혼자가 되는군요.
언제 다시 여기를 오게 될지 기약할 수 없어,
한번 더 쳐다보고...
정상에서 내려가면, 연주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다다릅니다.
여기가 우리나라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감탄을 하게되는 연주대.
관악산은 원래 화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海駝)를 만들어 세우고,
또, 관악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는 얘기가 있답니다.
연주대에서 돌계단을 내려 가다보면, 아래와 같이 갈림길이 나오는데요,
왼쪽길로 접어 듭니다.
오른쪽은 학바위 능선길이구요.
돌계단을 올라가
여기에서 과천 향교방향을 몰라 계단을 내려가기도 하는데,
그냥 오른쪽 길로 직진해야 해요.
그러면 영산전 건물 울타리에 향교로 가는 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정목에다 표시를 해두었다면, 初行인 山客들은 헤매지 않아 좋을텐데 말이죠.
얼마 안가서 연주암이 있습니다.
연주암은 677년(문무왕 17).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했답니다.
그리고 대웅전앞에 있는 3.6m 높이의 삼층석탑은 효령대군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유형문화재 제104호인 이 삼층석탑은 고려후기의 우수한 작품이라고 해요.
연주암은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龍華殿)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으며,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
1886년에는 역시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전각과 요사를 중수하였대요.
그 후에도 여러번 중수와 개축을 거치다가,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영산전에 있던 이정표를 보고 계단을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 온 일행들과 합류하여 함께 갑니다.
오른쪽 흰벽의 건물은 해우소.
나무계단 설치하기 전에는 왼쪽의 돌계단을 이용했었나 봅니다.
우리는 서로를 알게 모르게
방어벽을 쌓았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쳤다.
보험 급제동, 에어백을 장착했다.
이중삼중 비밀번호 세콤장치를 했다.
철마다 예방주사를 맞았다.
사방팔방 안팎으로 완전무장해 보이지만
요새일수록 막다른 골목이라는 걸
요새도 무너진다는 걸
요즈막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지체없이.....
임성숙 '가루가 되고 싶어진다' 중
계곡을 끼고 걷는 길.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겨울인데도 시원스러운게 참 듣기 좋군요.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 같아요.
개울가 저편에는 샘터가 있네요.
먹어도 되는 샘물이랍니다.
향교까지는 아직도 1.6km 남았대요.
관악산은 바위와 숲,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이랍니다.
그래요.
오늘 걸었던 이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어요.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추위에 조금 떨기는 했지만, 등산로 주변은 참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었죠.
길옆의 돌집은 '산악인의 대피소' 였네요.
감동입니다.
통나무의자 세개만이 있었지만, 비바람을 막아 줄 이런 배려를 한다는게 중요하죠.
폭풍우 치거나 거센 눈보라가 몰아칠 때, 몸을 보호해 줄 장소를 마련해 준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마을입구에 왔습니다.
오늘의 詩 '공수래 공수거'와
국조 단군상,
그리고 고조선 단군 재위표를 보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오늘은 8km 정도 걸었구요, 4시간 10분 소요하였습니다.
산행코스 : 사당역(4번 출구) - 국기봉 - 관악산 - 연주암 - 과천 향교 (8km, 4시간 10분 소요)
관악산 (629m)
관악산은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명산으로서 산 이름이 구의 명칭이 되어 관악구의 상징이자 자랑이 되고 있으며, 관악구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관악산에서 비롯되었다.
1968년에 건설부 고시 제34호로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로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는 관악산은 산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누구나 하루 일정으로 산에 오를 수 있는데
봄에는 관악산 입구 쪽으로 벚꽃이 만발하고, 철쭉이 필 때는 철쭉제가 열리기도 한다.
봄철에 무리지어 피는 철쭉꽃과 여름의 짙은 녹음과, 계곡 깊은 곳에 동폭포, 서폭포의 물소리가 장엄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명산 관악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관악산 정상에는 지상 레이다 관측소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연주사와 원각사 두 절을 지어 화환에 대처했다고 하는 정상의 원각사와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데,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는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빼어난 기암절벽과 울창한 산림이 어우러진 관악산은 갓 모양을 닮은 아름다운 바위산이다.
서울과 경기도 경계에 널찍이 자리 잡은 관악산은 예로부터 수많은 전설과 문화유적을 남겼다.
주봉인 연주봉에는 고려 충신들의 애환이 담긴 연주대가 자리하고,
그 아래에는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연주암이 있다.
산자락에는 과천향교, 온온사 등 다양한 볼거리가 풍성하여 4계절 모두 사랑받는 산이다.
------ 산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이라고
했다 한다.
○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9위
수려한 경관에 다양한 산행기점과 코스로 서울,과천,안양시민들의 휴식처로 사계절 인기가 있다.
또한 입장료가 폐지되고 부담이 없어 주말이면 많은 인파가 몰린다.
○ 산림청 100대 명산 선정사유
예로부터 경기 5악의 하나로서 경관이 수려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도시자연공원 (1968년 지정)으로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주봉은 연주대(戀主臺)로서 정상에 기상레이더 시설이 있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조선 태조가 중수(1392년)한 연주암과 약사여래입상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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