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소백산 눈꽃 산행 (어의곡에서 천동까지)

adam53 2022. 2. 17. 09:52

2022. 2. 15 (정월 대보름 날)

올해는 봄이 더 일찍 찾아오는 듯 했는데 갑자기 한파가 찾아 와 쌀쌀한 아침, 소백산으로 떠납니다.

대관령을 넘어 평창휴게소를 지날 무렵부터 흩날리던 눈발은, 단양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내리고... 

단양 가곡면 어의곡리 '어의곡 새밭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어의곡에서 정상까지 간 다음, 천동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갈려구요.

소백산은 많이 왔던 곳이라, 이렇게도 가고 저렇게도 가 보는거죠.

어의곡에서 비로봉까지는 5.1km,  비로봉에서 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는 7.4km,  총 12.5km거리이구요,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으로 잡습니다만,

일단은 한번 걸어보자구요.

눈 내리는 겨울날이지만, 그닥 춥지는 않네요. 

그냥 좀 스산한 날씨같다고나 할까?

한 때는 쓰레기를 열심히 줍고 다녔던 적이 있었죠.

--------- 등산객들의 생각이 바뀌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되면서 지금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이 꽃처럼 예쁘네요.

야! 예쁘다.

참 예쁘다!

'너무도 예쁘다' 하면서 걷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광경이 펼쳐질 줄은...

쌓인 눈은 아이젠을 신으면 좋고, 

안 신어도 좋은정도라서 그냥 갑니다.

잠시동안 과일 한조각씩 나눠먹고

주위를 둘러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작은 나무에 살포시 앉은 눈송이는 안개꽃 같고, 희디 흰 목화송이 같아요.

솜같이 보드라운 눈송이는 후우~ 불면, 민들레 홑씨처럼 흩어질 것 같군요.

이야! 멋지다,

'이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어찌해야 할꼬' 그려면서 가는데

이건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한발 한발 발걸음을 뗄 적마다 

눈앞에 펼쳐보이는 모습은 너무도 환상적이라 말문이 막힙니다.

겨울나라로 들어갑니다.

눈은 그쳐서 사방은 고요하고

들리는 건 뽀드득하는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 뿐.

그리고 연방 터져 나오는 감탄사. 

작은 나무가지에 앉은 눈은 더 예뻐보입니다.

사각거리는 山竹을 솜털같이 덮은 모습도 예쁘고

너덜길을 덮은 모습도 예뻐보입니다.

雪景 좀 보면서 가요.

계단을 오를 때는 손이 시려워졌어요.

시린 걸 넘어서서, 손가락 끝이 막 아려옵니다.

끊어질 듯한 아픔이 있기에 이런 환상적인 모습을 보는 거지만, 

아파도 너무 아파요.

볼 수록 황홀한 경치에 어질 어질 할 것 같습니다.

어때요?

볼 만 하죠?

눈으로 볼 때는 엄청 멋진 풍경들이

카메라에는 멋진 모습 그대로 찍히질 않네요.

카메라 렌즈에게는 그냥 무감각하고 감동도 감흥도 없는, 그저 그런 나무들의 모습으로 비치는가 봅니다.

실제로 봤을 때의 이 나뭇가지는, 말도 못할 정도로 엄청 예쁘고 아름다웠는데도 말이죠.

계단을 다 올라와 비로봉 방향으로 갑니다.

다시 또 오르막이에요.

환상적인 설경은 자꾸 발길을 더디게 합니다.

눈꽃

봄 가을에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겨울 숲에 피는 눈꽃도 아름다워라

언 바람이 살을 훑고 지나간 몸에

스스로 벌하듯 묵묵히 서서

어둠 속 뿌리로 피워올리는

겨울 숲에 하얀 눈꽃도 아름다워라

- 박노해 시 "눈꽃"

눈꽃
       - 조태일

슬픔 슬픔
너의 슬픔
차마 슬픔이라 말 않겠네.

예까지 밀려 떠돌며
가까스로 피어 오른 뜻

밤새도록 울며 쌓여
기여이 황홀한 모습 드러냈고,

 

밤 풍경
밤 사연
한 올 한 올 짜내어서,

바람 불면 무너진다
슬픔으로 쌓은 공.

놓칠세라
꼬옥꼬옥
끼리끼리 얼싸안네.

여기부터는 잣나무 숲길.

소나무 잎들은 은백색으로 빛이 나네요.

잣나무 숲은 해질녘처럼 어둑 어둑해도

멋진 모습은 어떻게 감출 수 없어요.

이 고개를 넘으면,

좀 수월하다 싶은 능선길.

눈 오는 지도

                  -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 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것이냐,

네 쪼꼬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길 - 박수근의 그림

                  - 허만하

 

잎 진 겨울나무 가지 끝을 부는 회초리 바람 소리 아득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있다

울부짖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다른 아이 손을 잡고 여덟팔자 걸음을 걷고 있는 아득하고 먼길.

길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 위에 광주리를 이고,

또는 지친 빨랫거리를 담은 대야를 이고

바람소리 휘몰아치는 길 위에 있다.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어머니

짐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손이 모자라는 어머니는 허리 흔들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아득하고 끝이 없는 어머니의 길.

저무는 길 너머로 사라져 가는 어머니.

길의 끝에서 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하학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던

내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 나의 눈시울은 어머니를 담은 바다가 됩니다.

어머니의 바다는 나의 바다를 안고도 흘러 넘칩니다.

어머니 들립니다.

어디까지 와았나,

임정리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와았나,

골목 끝에 부는 바람소리

나는 한 마리 매미처럼 어머니 등에 붙어 있었지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 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 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밝고,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가지 끝에 바람이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쉼터인 듯, 전망대인 듯한 곳에서 점심밥을 먹기로 합니다.

정상 가까이에는 먹을 만한 장소도 그렇고 또, 추울꺼라고 해서 여기서 밥을 먹는데요,

눈 위에 털썩 주저앉아서 먹는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 없죠.

먹는 둥 마는 둥, 몇술 뜨다가 자리를 털고 다시 걷습니다.

사실은 손이 시려서 먹을 수가 없었거든요.

와! 이래도 되는 건가요?

올라가면 갈 수록 설경은 더욱 더 환상적이고,

'이 아까운 모습을 어찌 두고 간다는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보다 더 멋진

C.G(컴퓨터 그래픽)보다 더 한 아름다움.

황홀한 풍경에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손가락이 시리다 못해 아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르고

무심한 척 하던 사람들도, 여기에서는 휴대폰을 다 꺼내드는군요.

앞으로 진행하기가 힘드네요.

넋이 나간 것 마냥, 눈꽃에 빠져들어 발걸음을 뗄 수가 없어요.

장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소백산 능선길이 좋아서 떠났던 오늘 아침,

철쭉꽃 피는,  봄의 소백산을 떠 올리며 떠난 오늘이

크나 큰 행운이고, 

기분좋은 선물같고,

 또, 축복과도 같은 날이 되었습니다.

뭔가 횡재를 한 느낌같다고 할까요?

능선길에 올라서자 불어대는 바람.

비로봉이야 의례히 추울 꺼라고 생각은 했지만,

여기서부터 이리도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댈 줄이야,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셔터를 누릅니다.

이 멋진 모습을 포기할 수 없거든요.

국망봉 가는 갈림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군요.

예비로 챙겼던 패딩을 꺼내입고, 넥워머와 귀마개를 하고 모자를 푹 눌러써도 온 몸을 파고드는 추위.

살다 살다, 다리까지 추워보기는 처음입니다.

내의를 입고 올 껄 하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다리가 싸늘한 게, 덜덜 떨려요.

이러다 얼어죽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갗을 파고드는 강추위.

입춘도 지나서, 봄이 오고있다고

조금 가볍게 입고 온 사람들은 혼났을꺼예요. 

지난 해 5월 중순에 왔을 때도 엄청 추웠던 걸 생각하면,  2월인 지금의 소백산은 아주 깊은 겨울입니다.

소백산을 간다면 단단히 준비하고 가세요.

만만하고 예사로 볼 그런 산은 절대 아니거든요.

이 눈꽃 좀 보세요.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어대는 지,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네요.

바람에 날릴까 봐 잔뜩 웅크리고서 한발 한발 뗍니다.

사방이 막힘하나 없는 곳에 왔는데도,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군요.

국망봉 쪽을 바라봐도 마찬가지구요.

비로봉에서의 바람과 추위는 뭐라고 말 할 수 없네요.

사시나무 떨 듯 떨어가며, 마비가 된 듯한 손으로 사진 한장 남깁니다만,

아뿔사,  이런 낭패가...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카메라가 절로 꺼져버리네요.

켜면 꺼지고, 켜면 꺼지는 상태에서 간신히 건진 사진입니다.

그리고 여기,

아래의 사진 5장은 나중에, 일행이 찍은 사진을 빌려왔습니다.

비로봉에서 희방사, 천동으로 가는 방향의 멋진모습도 찍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몇장을 빌렸지요.

제 사진과는 확연히 색감이 차이 나죠?

감시초소가 있는 이 사진을 보면, 너무도 춥고 손이 아파서 휴대폰을 꺼내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도저히 사용할 엄두가 나질 않았거든요.

희방사로 가고, 천동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자꾸만 꺼지는 카메라를 달래가며 또 한장 찍어봅니다.

이 고사목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도 잦아들어 휴대폰으로 찍었는데요,

휴대폰도 배터리가 가랑가랑 합니다. 휴대폰도 카메라도 만땅으로 충전해서 갖고 왔었는데,

해발도 높고, 춥기도 하고 그래서 둘 다 배터리가 자연적으로 소모되었어요.

어찌 되었든, 휴대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까지 만이라도 찍어보려고 작정합니다.

천동계곡을 내려가는 길 

여기도 설경이 예쁘군요.

눈이 내려서 덮히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여요.

어쩌다 비로봉에서 부터 혼자가 되어 내려오는 길,

여유롭게 걸으면서 주변 풍광을 둘러봅니다.

아마도 눈꽃산행은 이번이 마지막이겠지요.

아무리 막고 막아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눈 내린 겨울풍경을 눈에 담고 또, 담고...

천동안전센터가 보입니다.

이 건물 왼쪽끝에는 화장실이 있....어요.

소백산이 좋아서 온 타 지역 산악회 회원.

도란 도란 얘기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정겨워 보입니다.

길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마련해 놓았군요.

계곡물은 바짝 얼었어요.

탐방로끝에서도 주차장까지는 한참 더 걸어가야 해요.

이 다리를 건너

조그마한 산모퉁이를 돌면 다리안폭포가 있죠.

산악인 '허영호'기념비도 있구요.

다리안폭포도 꽁꽁 얼었습니다.

이거,  여기에 봄이 올려면 한참 걸리겠는데요!

고산자 '김정호'추모비와 다리안 국민관광지 조성기념탑을 지나면 주차장에 다다릅니다.

별 생각 안하고 떠난 소백산 산행.

뜻밖의 선물같았던 꿈처럼 행복하고 황홀한 눈꽃산행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네요.

오늘 산행도 여기서 끝냅니다.

목적지에 도착했거든요.

산행코스:  어의곡 새밭 주차장 →어의곡 탐방센타 →계단쉼터 →어의곡 삼거리 →비로봉 →천동삼거리 →

              천동쉼터 →천동탐방센터 →다리안폭포 →천동매표소(12.6.km, 4시간40분)

 

 

 

 

소백산 <1,439.5m>

 

소백산은 한반도의 중심에 우뚝 솟아, 백두대간의 장대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민족의 명산으로

형제봉을 시작으로 신선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등 명봉들이 웅장함을 이루고 있다.

충북에서는 70년 속리산, 1984년 월악산에 이어 1987년 세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소백산의 사계는 봄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의 야생화, 만산 홍엽의 가을단풍과 백색 설화가 만개한 정상풍경은 겨울 산행의 극치를 이룬다.

또한 1,439.5m 비로봉 정상의 넓은 초지가 사시사철 장관을 이루어 한국의 알프스를 연상케 하며,

국망봉은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서린 곳으로, 선조(宣祖) 때 수철장(水鐵匠) 배순(裴純)이 왕이 승하하자 이곳에

올라와서 왕성을 바라보며 3년 동안 통곡하였다 하여 이 산을 국망봉이라고 이름 지었다고도 하지만,

안내문에는 천년사직이 무너진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 흘린 봉우리가, 국망봉(國望峰)이라는 설명이 있다.

1,349m 연화봉에 자리한 국립천문대는 우리나라 천문공학의 요람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6월초에는 소백산과 단양군 일원에서, 전국적인 축제인 소백산철쭉제가 성대히 개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