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9
길이 험해서 대청봉 가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는 그 '귀때기청봉'에 오늘 도전합니다.

버스시간에 맞춰서 가는 길.
창포다리를 건너며 내려다 본 남대천에는 바닥에만 물이 있습니다. 강물은 흐른다기 보다 고여있는 상태입니다.
봄 가뭄이 계속되는 요즈음입니다. 전국에 비가 내릴 때도 이상하게 영동지방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달포가 넘도록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아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지난해의 가뭄때처럼 바짝 마른 강물을 보며,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도 아끼고 아끼며 지냈던 작년 여름을 떠올리며 비가 내리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다행히 시민들의 식수원인 '오봉댐'은 물이 가득차 있어 걱정없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농사짓는 사람들입니다.
4월초에 한번 찔끔내린 뒤로는 비 구경을 못해서 농작물은 자라지를 못하고, 바짝 마른 밭작물에 물을 줘보지만 가뭄만 더 해 갈 뿐, 기온은 거의 매일 30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내일과 모레 이틀간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던데 제발 좀 흠뻑 내리길,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뚝방에는 장미꽃이 한창입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속은 숯덩이같이 시커멓지만 활짝 핀 꽃을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한계령 고갯길을 구비 구비 돌아서 올라가는 버스, 간신히 멀미를 참아가며 도착한 한계령휴게소.
지금 시간은 09시 25분입니다.

양양군 서면 대청봉길1, 한계령휴게소에는 많이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그젓께인 5월 15일자로 설악산의 입산금지가 해제되면서, 대청봉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버스로 오고 승용차로 와서 한계령주차장은 차량들로 그득합니다.
국립공원공단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봄철 산불조심기간을 맞아, 산불 예방과 자연 자원 보호를 위해 3월 4일부터 5월 15일까지 일부 탐방로 출입을 통제했는데요, 통제 대상은 비선대, 백담사, 서북 능선, 한계령 등 탐방로 입구에서 대청봉으로 연결되는 고지대 구간이었습니다. 73일 정도 엄격히 통제했던 걸 개방을 하자, 첫날에만 무려 1만 6,000명이 넘는 탐방객이 설악산의 웅장한 비경을 보려고 찾았답니다.

체력과 젊음이 넘치는 건각(健脚)의 청년들이 대청봉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젊음의 열기로 아주 활기가 넘치는 군요.

44번 국도에 있는 '한계령휴게소'는 한계령만큼 사랑을 받는 곳이라 하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그래서 1982년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받은 빼어난 작품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부드럽게 안겨 있는 듯한, 온통 검은 색의 겸손한 건물로 4면이 개방된 구조, 자연을 조망하는 긴 테라스, 설악의 바람과 눈을 견디는 경사진 지붕이 일품이랍니다.

귀때기청봉을 간다는 건 용기가 필요해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대청봉을 갈 때도 그랬습니다. 막상 걸음을 떼며 걷다보면 그런대로 가게 되는 것을, 매번 전투에 나서는 병사처럼 비장한 마음을 먹게 되더군요.

모두들 같은 마음일까요? 눈앞에 보이는 108계단 앞에서 멈칫 멈칫,
주춤 주춤하다가 우루루 한꺼번에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힘든 산행이라해도 옆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든든해지고 힘이 나고, 용기가 나는 거겠죠.

단단히 마음먹으며 오르는 계단옆으로 연두색 나뭇잎이 싱그럽습니다.


계단을 오르자 설악루앞에서 또 머뭇거립니다.

젊은이들을 먼저 보내고나서 가자고 해요. 아무래도 그들보다는 걸음이 조금 느리니까 뒤에서 가자는 겁니다.



한계령 탐방지원센터앞에는 위령비가 있습니다.
이 위령비는 과거 험준했던 이 고개에 군부대 장병들이 길을 만들면서, 사고로 사망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碑)라고 합니다.
젊은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그때의 군단장인 김재규장군이 위령비를 세웠다고 해요.



설악산 귀때기청봉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 서북능선에 있는 1,578m의 봉우리입니다.

산행할 때는 대부분 해발 920m의 한계령에서 출발해 귀때기청봉을 간 다음 대승령을 지나 장수대로 하산을 하지만, 그리하면 13km나 되는 거리를 7~8시간 이상 걸어야 하기에 오늘은 귀때기청봉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기로 했죠. 그래도 5시간은 걸린다 해요.

한여름 날씨같이 무덥습니다. 바람도 불지않고 비 오기 직전처럼 푹푹 쪄댑니다.
흐리고 선선하면 산행하기 좋을텐테, 이런 날씨라면 금방 지쳐서 산행이 힘들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됩니다.

09시 45분. 첫번째 쉼터.
겨우 20분을 걸었을 뿐인데, 빡센 오르막이라 그런지 힘드네요. 몇분간 쉬어갑니다.

이제 시작인데,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축 쳐지는데다 땀이 막 흐릅니다.

연두색 나무숲에서 철쭉이 피었습니다. 이제야 피어나는 연한 붉은색의 철쭉꽃은 너무도 깨끗해서, 가면서 들여다 보고 가다가 마주치면 또 들여다 봅니다.


설악산은 이제야 봄이 왔습니다. 그래서 연두색으로 물들어 가는 숲 색감이 너무 예쁩니다.


귀때기청봉은 처음 갑니다. 한번도 가 보지 못했기에 더 궁금했고 그래서 더 잔뜩 기대를 하고 갑니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이 이어지고 숨이 가빠오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이기에 힘든 걸 참고 갑니다.

10시 25분입니다. 1km를 왔는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참 보기힘든 귀한 식물을 만났습니다. 몇해전에 소백산에서 한포기를 본 후로 처음인 '나도 옥잠화'입니다.
깊은 산, 숲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나도 옥잠화'는 잎 모양이 옥잠화와 비슷하다고 그 이름을 가졌습니다. 백합과의 식물로 한국에는 1種만 있구요.


가는 길 내내 길가에는 철쭉꽃이 반겨줍니다.

철쭉꽃과 인사하며 씩씩하게 봉우리를 넘는데, 맞은 편에 우람한 암봉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역시 설악산 답습니다. 기암과 괴석들이 하늘향해 우뚝 우뚝 솟아서 어느나라에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설악산입니다.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합니다.

우람한 바위산은 아름답고 멋져서 자꾸만 눈길이 가고.



산이 높은 설악산에서 '금강애기나리'를 만났습니다.
잎과 줄기를 보면 '애기나리'와 '금강애기나리'를 구별하기 어렵지만, 꽃을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애기나리의 꽃이 흰색인데 비해 금강애기나리는 꽃잎에 황백색의 점이 있거든요.
깊은 산골짜기나 고도가 높은 산림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써, 한국 특산식물이며 진부에서 처음 발견하였기에 '진부 애기나리'라고 하다가 지금은 '금강애기나리'로 이름이 바뀌었죠.

'금강애기나리'는 '금강죽대아재비'라 부르기도 해요.

벌깨덩굴도 꽃이 핍니다. 벌깨덩굴은 5월에 개화하는 꿀풀과 식물로써, 산 숲속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데요, 개체 수가 많아서 어디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고 개화 기간이 길어서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야생화입니다.
이름 뒤에 ‘덩굴’이 붙어있지만 줄기를 타고 오르거나 옆으로 길게 뻗는 그런 류의 덩굴식물은 아니고, 곧게 섰던 줄기가 옆으로 누우면서 땅에 닿으면 뿌리가 새로 돋아나 번식함으로 덩굴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무엇보다도 보라색 색감이 너무 예뻐요.



눈개승마도 꽃이 핍니다.
'눈개승마라'는 이름은 이른 봄 고산지대에서 '눈을 뚫고 나오는 마(麻)라는 뜻인데, 이 나물은 인삼과 두릅과 소고기의 3가지 맛을 가져 삼나물이라고도 합니다. 눈개승마는 맛 뿐만 아니라 질감도 소고기 같다고 소고기나물로 유명합니다. 고기처럼 단백질도 풍부하다고 하죠.
눈개승마에는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 항암, 황노화작용을 하며 해독과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원기가 부족한 사람에겐 기운을 돋아주는 효과가 있어 목이 붓거나 초기 감기증상에도 좋다고 합니다.
노화도 방지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노졸증, 동맥경화계통 질병예방에 좋으며 특히 뇌경색, 심근경색, 뇌질환등의 예방과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요즘은 재배를 많이 하기에 흔한 나물이 되었지만요.

두루미꽃도 피어납니다.
꽃이 두루미 머리와 목을 닮고, 잎과 잎맥 모양이 두루미가 날개를 넓게 펼친 것과 비슷하다고 '두루미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답니다.


오르기 힘든 구간에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있어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등산인구가 많아서 등산로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우리나라 등산 및 숲길 체험 인구는 전체 성인 남녀의 약 78%인 3,200만 명이나 된다고 해요. 이 중 한 달에 한번 이상 정기적으로 산을 찾는 인구는 약 1,500만~2,300만 명 규모로 추산되며, 전 연령대에서 고루 즐기는 대중적인 여가 활동으로 자리 잡았답니다.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약 91%)의 참여 비율이 가장 높지만, 최근에는 2030 세대에서도 취미와 운동으로 등산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이구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산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지형 대부분이 산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생활환경에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성인 10명 중 7명 이상이 등산이나 숲길을 걷는 등 숲길 체험활동을 '最愛 취미활동'으로 즐기는 것이랍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산 대부분의 등산로는 걷기 좋도록 잘 정비가 되어 있습니다.


10시 50분
한계령 삼거리까지 600m 남았습니다. 몇분간만 쉬었다 가요.


'붉은병꽃'도 피었습니다.
붉은병꽃나무는 낙엽 관목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에 자생한다고 하죠.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데, 요즘은 원예용으로 개량한 것도 있습니다. 붉은색 꽃이 피는 병꽃나무라고 해서 '붉은병꽃'인데요, 연한 황록색으로 꽃이 피는 '병꽃'나무도 있습니다.


한계령에서 1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1981. 10 .3 한계령에서 '정덕수' -


대청봉으로 가는 젊은이들과 함께 갑니다. 오늘 대청봉으로 가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많아 A그룹과 만나 같이 걷다가 헤어지고 B그룹을 만나 함께 걷고, 그러다 C그룹과도 같이 걷는 그런 상황이 계속됩니다.

한계령(寒溪嶺)은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 고갯길입니다. ‘차가운 시내’라는 말이죠.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 미시령, 진부령 중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준령이며,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오색약수터가 나옵니다.
물 좋기로 소문난 오색약수는, 1500년경 설악산 주전골 '성국사'의 승려가 개울가 암반에서 용출하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고 해요.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그 당시 성국사 후원에 있던 다섯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3개의 약수터 중 윗쪽 약수는 철분이 많고 아랫쪽 2곳은 탄산질이 많은데, 한때는 오색약수와 오색온천으로 관광객들이 넘쳐나던 곳이었죠. 그러다 약수 용출량이 적어지면서 관광객도 예전만큼은 아니지요.
그러나 가을이 오고, 설악산 주전골, 흘림골에 단풍이 들면 선녀탕과 금강문, 십이폭포 등 아름다운 계곡의 비경을 보려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오색마을입니다.

계단을 올라 고개마루에서 바라 본 우주선 닮은 바위

조선시대에는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불렸지만, 일제 치하 때 한계령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개 이름을 두고 인접한 두 지자체 간에 갈등이 있었답니다. 양양군은 ‘오색령’으로 복원하길 원했으나 인제군이 반대했는데, ‘오색’은 양양군 서면 오색리, ‘한계’는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지명으로 쓰이기 때문이었죠.
이곳이 관할구역인 양양군은 한계령 휴게소에 ‘오색령’이라 적힌 표지석을 설치했고 오색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인제군은 휴게소에, 정덕수 시인의 시를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개사한 '한계령' 노래비를 설치하려고 노력했지만, 무위로 끝났구요.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11시 18분. 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날씨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는군요.
이 상태라면 예정시간 보다 시간이 더 걸리겠는데요?.
------------- 한계령 삼거리에서 왼쪽은 귀때기청봉으로 가고, 오른쪽 길은 대청봉으로 갈라집니다.

한계령 삼거리는 BAC 인증장소입니다.

땀에 흠뻑 젖은 몰골을 하고서도 사진을 찍어요. 치신이 매른없는데도 말이죠. ㅎ

인증사진 등록 후, 이내 귀떼기청봉으로 향합니다.

귀때기청봉까지 거리는 1.6km
곧 마주하게 될 크고 작은 바위너덜길에서는 각별히 조심하라고 해서 긴장이 되고, 가슴이 두근 두근합니다.




너덜길의 시작입니다.

너덜길 직전에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점심을 먹고 있네요.
귀때기청봉을 가려고 새벽부터 달려 온 사람들

11시 25분
너덜지대에 들어섰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바위덩어리들입니다.

평지같은 길에 납작 납작한 바위들이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댔는데, 이건 산으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이런 길입니다.

너덜길을 오르다가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면, 푸른 잎으로 둘러쌓인 바위산이 그림같습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널려있어 발목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바위와 바위밑으로는 깊고도 깊은, 그래서 잘 못딛여 다리가 빠졌다하면 올라오기 힘들뿐만 아니라, 크게 다칠 우려가 있어 조심 조심해서 바위를 딛고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바윗돌들이 서로 뒤엉켜있어, 딛어도 흔들거리지 않는 그것 하나는 좋군요.


조망이 좋아 경치 하나는 끝내줍니다.


11시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점심을 먹자고 해요.
정상에 도착해서 먹으면 좋겠지만 이런 너덜구간을 2개나 더 지나야 하고, 눈앞의 봉우리와 그 뒤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를 넘어가야 정상이라고 안된답니다. 시간도 꽤 걸릴뿐만 아니라 체력소모가 많아, 지쳐서 못간다는 군요.

한번 다녀갔던 사람의 말을 들어야죠. 그래서 저마다 적당한 바위위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다시 또 시작된 너덜길
드믄 드믄 스테인레스 폴대가 꽂혀 있고, 폴대에는 노란색 형광테이프도 붙여놓았습니다.

귀때기청봉은 왼쪽의 너덜지대 봉우리를 넘고, 오른쪽의 뾰죽한 산을 넘어가야 있답니다.


11시 45분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용의 이빨같다는 '용아장성'과 그 뒷편으로 '공룡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저 멀리엔 둥근 공처럼 생긴 군사시설이 있는 중청봉, 오른쪽으로 대청봉도 아스라히 보입니다.

가까이 있는 이 암봉은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털진달래가 피었습니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높은 산지에 자라는 털진달래는 바람이 심한 곳에서 자라기에 나무는 2~3m 정도이며, 줄기에 있는 어린가지, 잎의 뒷면에는 비늘조각과 털이 있어 털진달래입니다.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 척박한 암릉과 너덜지대 사이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털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선행개화의 특성을 지닌 희귀 관목이라는데, 우리가 너무 늦게 왔기에 털진달래는 기다리다 지쳐시 지고 있습니다.

비가 내려서 미끄러울 때, 눈이 내린 직후에 길 찾기 어려울 때는 이 폴대를 따라 가라고, 너덜길에는 스테인레스로 된 폴대를 세웠습니다.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도 굳건히 서 있는 폴대(鐵棒)

마가목나무도 꽃이 핍니다.

사진 찍겠다고 바위위에 선 일행을 보는 마음이 조마 조마합니다.



'귀때기청봉(1,578m)'이란 이름은, 설악산의 봉우리 가운데 자기가 가장 높다고 으시대다가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삼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것이랍니다.
귀때기청이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산봉우리들이 자기보다 낮더랍니다. 뒤에 있는 능선에는 가리봉(1,519m)이, 그 옆에는 주걱처럼 보이는 주걱봉(1,401m)이 솟아 있지만 자기보다는 아래였던 거죠.

그래서 기고만장한 귀때기청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높다고 으시댔는데, 이 소문이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1,708m)과 중청봉(1,676m) 그리고 소청봉(1,633m) 삼형제에게 들어갔답니다.

이에 화가 난 삼형제가 건방지다며 '귀때기청봉'의 귀싸대기를 세게 때렸다고 해요. 그러자 가리봉과 주걱봉을 비롯한 주변에 있는 봉우리들이 '귀싸대기 맞은 봉우리'라며 놀려댔고 그 후부터 '귀때기청봉'이 되었다고 해요.
대청봉 삼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귀때기청봉'은 화가 나서, 삼형제가 오지 못하도록 봉우리앞에 큰 너덜지대를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서북주능선 등산로는 등산객들이 곤욕을 치르는 구간으로 유명합니다.

바위덩어리들은 날카롭기도 해서 한발 한발 내딛는 게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대청봉보다 귀때기청봉을 덜 가는 이유는 바로 이 바위너덜길 때문입니다.

만약에 귀때기청봉을 또 간다고 하면 선뜻 나서기가 망설여질 것 같습니다.

거대한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암괴류 너덜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여기.
발 디딜 때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여기를 또 온다는 건, 깊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너덜지대 옆에는 구상나무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가다가 뒤돌아 본 첫 너덜지대.
우리가 점심을 먹던 그곳에 사람들이 올라오는 게 조그많게 보입니다.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암릉.
어떤 이는 저기를 1383릿지라고 부릅디다.


너덜지대를 지나는 데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 때문인가 다리가 뻣뻣해지며 쥐가 날 것 같습니다.
이래서 이 구간을 오르는데 체력소모가 많다고 하는 가 봅니다.

올라가면 또 나타나는 너덜지대는 크게 3곳입니다.
끊어질 듯 하다가 이어지는 이 바위구간은 정상까지 내내 이런 길을 가야합니다.

가다가 잠시 멈춰서 쉬고, 또 가다가 잠시 쉬면서 올라갑니다.




그러다 조금 넓은 곳에 다다르고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물을 마십니다. 오는 도중에 조금씩 조금씩 물을 마셔봤지만, 무더운 날씨에 목은 자꾸 마르고 갈증은 쉬 가시지를 않습니다. 오늘 물을 3병이나 가져오길 참 잘했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털진달래가 아래보다 더 많이 피었습니다. 이른 봄 야산에서 피는 진달래보다 꽃이 더 작습니다. 바람세찬 고산에서 살려면 꽃이 작아질 수 밖에요.

다시 또 너덜구간


처음보는 나무에 노란꽃이 피었습니다.

검색해봐도 신통한 答은 들을 수 없습니다. 괴불나무라는 군요, 각시괴불나무처럼 꽃 색깔이 노란 건 비슷하다지만 도통 모르겠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집니다.

장엄한 산봉우리들이 시원스레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고

구상나무 고사목이 보입니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산지에만 자생하는 고유종으로, 바늘 모양의 돌기가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데서 유래했는데 환경이 좋지 못해서 그런지 자꾸만 죽어갑니다.

구상나무가 자꾸만 죽어가는 건,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변화가 나무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랍니다. 겨울철에는 적설량(積雪量)이 크게 줄고 기온도 상승하기 때문이며, 봄이면 적설량 감소와 함께 강우량(降雨量)이 부족하면서 토양이 건조한 게 원인이라는 거죠. 본격적으로 성장해야 할 봄철에 수분이 부족해서 고사(枯死)로 이어 진답니다.

국립공원연구원은 집단 고사위기에 처한 지리산 반야봉 구상나무군락을 복원하려고, 어린 구상나무 160그루를 시험 이식했다고 합니다. 고산지대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한 시도라고 해요.
세석평전에 심은 어린 묘목들이 환경 적응훈련을 마치고 고사 피해지역으로 옮겨 심었는데, 이번에 심은 160그루의 자연 적응과 성장상태를 집중적으로 관찰해서, 결과가 긍정적이면 지리산 전역을 대상으로 구상나무 복원계획을 수립한다고 합니다.

저 멀리엔 가리봉과 그 뒷편에 뾰족하게 솟은 주걱봉이 보입니다.

완만한 능선과 키 작은 나무 그리고 드믄 드믄 고사된 나무들을 보며 문득 지리산 제석봉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너덜길은 끝이 없습니다. 정상까지는 이 바윗길을 따라서 가야합니다.

12시 45분
정상까지 400m 남았습니다.

4월에 피기 시작하는 털진달래는 5월 중순까지 귀때기청봉 주변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인다고 하던데, 우리가 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가 못보고 가면 서운해할까 봐, 털진달래는 약간만 남아 있습니다.


이 길은 서북능선의 한부분입니다. 서북주릉이라고도 하는 이 능선은 대청봉에서 시작해 귀때기청봉, 대승령을 거쳐 안산까지 이어지는 장장 18km 길이의 능선입니다.
설악산에서 가장 긴 능선으로, 내설악과 외설악의 멋진 비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어 등산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곳이죠. 그렇지만 많은 시간을 걸어야 하는 중상급 정도의 코스이기에, 일부분인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까지 걷는 것도 힘이 듭니다.



정상 부근에 핀 털진달래.
산철쭉은 털진달래가 질 무렵인 5월 중순부터 핀다고 하죠. 털진달래는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고, 산철쭉은 잎과 꽃이 같이 피는데 지금 이 털진달래는 꽃이 지고 있어서 잎과 꽃이 같이있는 겁니다.

드디어 귀때기청봉에 왔습니다. 해발 1,578m

정상석은 없습니다.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합니다. 귀때기청봉 명성에 비해 초라한 느낌입니다.

헬기를 동원해서 번듯하게 정상석을 세웠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힌 곳 하나 없어 조망은 참 좋은데 말이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분다고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하는 '귀때기청봉'은 'BAC 명산100 플러스' 인증장소입니다. 또한 '2026 강원20챌린지' 인증장소이기도 합니다.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털진달래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높은 산에 올라서 털진달래꽃을 본 것 만으로도 감사해하며 하산을 합니다.
어렵게 찾은 귀때기청봉인데 올해의 꽃 피는 시기와 맞았었다면,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겠죠.

위 사진은 한국관광공사 홍정표님의 사진을 빌려 온 겁니다.

한계령으로 되돌아갑니다.

귀때기청봉에서 대승령까지는 6km를 가야 하죠.
대승령에서 장수대분소까지 거리는 2.7km를 가야 하구요. 앞으로 도합 8.7km를 간다면 대여섯시간 걸어야 하는데 오늘 이 비 오기 직전같이 덥고 습한 날에 그쪽으로 가지 않은 건 잘한 일이겠죠?

다시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또, 처음보는 나무를 만났습니다.

단풍잎같은 이파리에 노랗고 작은꽃이 핀 이 나무도 생전 처음으로 봅니다.

눈에 확 띄는 색깔은 아니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풀꽃처럼 가녀리고 조그마한 꽃이 참 예쁩니다.


구상나무는 암수 한그루로 오뉴월에 꽃이 핍니다. 수구화수는 1cm 길이의 타원형으로 5~10개의 황갈색 꽃이 피고, 암구화수는 길이가 1.8cm로 수구화수보다 조금 더 길며 짙은 자줏빛을 띠는데, 구상나무와 비슷한 나무로는 분비나무가 있습니다.
분비나무의 솔방울은 끝이 다소 뾰족한 원통형이고 약간 노출된 포린이 젖혀지지 않는데 비해, 구상나무 솔방울은 계란형이고 끝이 둔하며 노출된 포린이 젖혀지는 것으로 이 두 종을 구별합니다.


13시 55분
너덜지대를 내려오며 너무 힘 주어서 그런가, 다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 약을 먹고 파스를 뿌려봅니다. 아직 갈길이 먼데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제발 산행이 끝날 때 까지는 아무 일 없기를 바래봅니다.


14시 10분
한계령 삼거리까지 왔습니다.

쥐가 나서 애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갑자기 무리를 해서 많이 걸은 탓이지요.

삶는 것 같은 날씨입니다.
비가 오려고 할 때의 그 울키는, 습하고 끈적 끈적한 날씨인 걸 보면 아무래도 내일은 비가 오려나 봅니다.


아침에 두번째로 쉬던 곳까지 내려왔습니다.
14시 30분.
지금까지 5시간 걸렸습니다.

14시 55분
출발하기 전의 하산 예정시간은 14시 30분이었습니다. 아직 한참은 더 가야 하는데 예정시간을 초과해 버렸네요.

15시 15분, 처음 쉬던 곳
이왕 늦은 거 몇분만 쉬었다 가요.


언뜻 보면 강아지를 닮은 바위를 보며 발길을 재촉합니다.



서북능선은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닙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깔려있던 너덜바위 구간이 끝없이 이어져,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가고 시간도 적잖이 소요되는 그런 길입니다.
그래도 늘 가봤으면 하던 곳이라, 많이 힘들었음에도 마음은 개운하고 기분은 상쾌합니다.

15시 20분
위령탑을 지납니다.




이젠 다 왔습니다.
다행히 아무 탈없이 하산을 했습니다.

등산로 입구에는 버스로 함께 왔던 일행이 손 흔들며 맞아줍니다.

15시 30분
꼬박 6시간이 걸린 귀때기청봉 산행도 여기서 마칩니다.
오늘 걸었던 거리는 9.5km랍니다. 평균속도는 1.5km였구요.

산행코스: 한계령휴게소 - 한계령삼거리 - 귀때기청봉 - 한계령삼거리 - 한계령휴게소 (9.5km,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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