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4
진달래꽃 산행에 나섰습니다. 강릉에서 강화도는 300km 정도되는 먼거리라 5시간을 달려서 갑니다.
강화도에 있는 고려산은 진분홍색으로 산 정상을 물들이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어, 진달래꽃 명소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고려산은 몇년전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마니산 산행 후 고려산을 간 거였죠.
그때는 화도 국민관광지주차장에서 마니산과 첨성단을 거쳐서 함허동천 국민관광지주차장으로 내려온 다음, 고비고개에서 고려산 정상으로 갔다가 낙조봉을 지나 미꾸지고개로 내려왔었습니다.
마니산을 5.2km(3시간 소요) 걸었고 고려산을 6.8km(3시간 소요) 내리걸었기에 많이 지쳐 있는 상태라서, 꽃을 봐도 별 감흥이 없고 심드렁했었습니다. 4월 하순이라 꽃이 지고 있어서 볼 게 없기도 했구요.

그때의 기억을 떠 올려보면 그저 그랬기에 몇번이나 망설이다 떠난 고려산

강화도에는 이제 벚꽃이 피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보는 벚꽃인데도, 꽃을 보자 먼동이 터 오듯 마음이 환하게 밝아옵니다.

바다같은 저수지 옆길로 갑니다.

언뜻보면 바다같이 보이는 이 저수지는 고려저수지랍니다.

10시 35분
미꾸지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 고개에서 출발 후, 낙조봉을 지나 고려산을 간 다음 청련사가 있는 국화리 마을회관으로 내려 갈 겁니다.

미꾸지고개에는 우리들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달래 군락지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고려산 들머리로 여기를 선택하지 않는가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꾸지고개는 마니산을 산행 후 고려산을 갔다가 이리로 내려왔건만 기억이 전혀 안 나는 생소한 곳입니다. 아마도 6시간을 걸었었기에 지칠대로 지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봅니다.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길, 새로운 길을 걸을 때면 늘 마음이 설렙니다.
오늘도 고려산 진달래꽃 구경 할 생각에, 어릴 때 소풍가던 날처럼 마음은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면 들머리가 있습니다.

따뜻한 봄볕에 조개나물꽃이 피었습니다.
양지바르고 나지막한 묘지나 잔디밭에 자라는 이 털복숭이꽃은 늦은 봄에 꽃이 피건만, 한낮이면 20도 가까이 오르는 날씨 때문인가 벌써 꽃이 피었습니다. 조개나물이란 이름은 흰털이 수북한 사이로 꽃이 피는 모습이 조개가 입을 삐죽 내민 모습과 닮았다고 그리 부르는데, 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동의나물, 삿갓나물처럼 독성이 있으므로 '나물'이라고 해서 먹으면 안됩니다.

등산로는 참 좋습니다.

오르막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나지막한 언덕길


동네 뒷산같이 편안한, 그냥 산책로같은 길입니다.


제비꽃도 보라색 꽃을 피웠습니다.
제비꽃과의 이 식물은 종류가 너무 많아서 우리나라만 해도 50여종이나 된다고 하죠. 미확인종까지 합하면 80여종이 넘고 세게적으로는 806종이 있다고 합니다. 제비꽃, 흰제비꽃, 노랑제비꽃, 호제비꽃, 왜제비꽃, 남산제비꽃, 단풍제비꽃, 알록제비꽃, 털제비꽃, 콩제비꽃, 종지나물, 삼색제비꽃 등 종류가 너무 많아서 꽃색깔과 꽃생김새와 잎으로 구분을 하는데, 이는 제비꽃種 자체가 변이(變異)가 심하고 교잡(交雜)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랍니다.


산복숭아꽃도 피었습니다.
돌복숭아, 개복숭아라고 하는 야생에서 자라는 이 나무 열매가 천식, 기침, 기관지염 등을 완화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매실처럼 청을 담아 먹거나, 술을 담가 마십니다.
매실청 닮글 무렵 새벽시장에 나가보면 매실과 함께 이 나무열매도 파는 데, 양이 적고 귀해서 쬐끔 비싼 값에 팔리고 있습니다.

앵두나무도 꽃이 피었어요.
앵두나무의 열매인 앵두는, 동그랗고 조그만 빨간 그 모습이 예뻐서 사람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열매로, 앵두는 앵도(櫻桃)라고도 합니다. 이 앵두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제민요술 齊民要術≫에 재배의 기록이 나오는 걸 보면 오래 전부터 먹어오지 않았나 한답니다. 고려시대의 문헌인 '포은집(圃隱集)'에도 기록이 있다고 해요.

이제 막 새잎이 돋아나는 이 떡깔나무 좀 보세요. 단풍 든 것처럼 발그스럼한 이파리가 너무 예쁩니다.



걷다 보면 가끔씩 이정표가 보입니다만, 정상까지의 거리가 짧다고 그런건가 거리를 표시하지 않은 게 조금 아쉽군요.

새잎이 돋아 나 연두색으로 바뀌고 있는 등산로에

개별꽃도 피고

조팝나무도 꽃 피었습니다.


아시아 온대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개별꽃은 4, 5월에 하얀색의 꽃이 피는데 5개의 하얀 꽃잎 끝은 요철형으로 되어있고, 꽃밥은 검붉어져서 점을 찍은 것같이 예쁘게 보입니다. 길 가다 만나는 이 작은 꽃을 보면 누구나 다 예쁘다고 말합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데, 개별꽃은 소화기관을 튼튼하게 해서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 등에 쓰며, 폐를 튼튼하게 하므로 폐결핵으로 인한 기침에도 쓴다고 해요. 정신적인 피로나 가슴 두근거림, 病後 체력허약과 식은 땀 등에도 사용한다고 하며, 개별꽃 뿌리에는 사포닌과 과당, 전분이 들어있어 덩이뿌리는 '태자삼'이라 하여 약용한다고 합니다.

그냥 평지길인 등산로 주변에는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납니다.

이른 봄에 피는 현호색도 피었습니다. 제비꽃 만큼이나 종류도 많은 현호색. 그래서 현호색도 꽃색깔과 잎모양을 보고 구분을 합니다.
현호색이란 이름은 색이 검다는 뜻의 현(玄),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뜻하는 호(胡), 그리고 색(索)은 싹이 꼬이면서 돋아난다는 뜻이랍니다.
현호색科의 식물에는 현호색 무리들과 괴불주머니 무리들이 있으며, 현호색이라는 이름의 식물 종류들은 주로 홍자색 꽃들이 많고, 괴불주머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식물들은 노란색의 꽃들이 많은 편입니다. 현호색 종류들은 모두 땅속에 둥근 덩이줄기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약재로 쓰인다고 해요.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나무

이맘때 돋아나는 여리 여리한 새순은, 꽃처럼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진달래가 피어있는 언덕에 오르자 바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늘과 산과 바다와 마을은 그림이 됩니다.


전망대가 있으면 들려보고 가야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기에, 전망대가 있는 겁니다.

전망대 데크 밑에도 진달래는 피고


저 멀리엔 간척지 논들이 자로 잰 것처럼 반듯 반듯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말라버린 억새풀과

산복숭아꽃이

전망대와 함께 그리는 봄 풍경

저수지 너머로 서해바다가 구름처럼 흰색을 띄고


전망좋은 쉼터에서 다시 또 바라보는 서해바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 흰구름같은 바다

개구리를 닮은 바위


저기 저 곳에 낙조대가 보입니다. 서해바다에 낙조가 질 때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곳

털보같이 흰털이 수북한 조개나물



낙조봉에 왔습니다.

11시 45분

낙조봉에서 오른쪽의 길로 내려가면 낙조대가 있어, 그리로 가 봅니다.

낙조대까지는 340m라기에 별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는데, 좀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이 바위를 지나서 100m쯤 갔지만, 경사가 심해서 다시 올라오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도로 올라옵니다.
여기가 고향이라는 이 길에서 만난 부부는 꼭 한번 들려보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갈길이 먼데 落照를 본 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서해 수평선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며 해지는 광경은 '강화8경' 중 하나라고 하는 낙조대.
적석사에서 낙조봉으로 올라오는 도중에 있는 낙조대가 너무도 궁금해서, 다른이의 사진을 빌려와 봤습니다.


다시 고려산으로 향하는 길

마음이 평온해지는 이 길을 걷고 있는 중에도, 연두색은 점점 사방으로 번져갑니다.



아 ! 이 색감 좀 봐요. 어쩜 이렇게도 예쁠수가 있을까요?
새 잎이 나오고 연두색으로 바뀌는 4월과 5월, 이 때의 모든 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쁜 계절입니다.

꽃이 핀 산도 예쁘고, 단풍이 들고 흰눈이 내린 산도 예쁘지만, 봄이 찾아와 연두색으로 바뀔 때의 산처럼 예쁜 건 없죠.





고인돌군에 왔습니다.
이 길에는 고인돌군 2곳이 있는데요, 여기의 고인돌들은 잘 다듬어진 板石 3~4개로 짜맞춘 석식을 지상에 축조하고, 그 위에 평평한 큰 돌을 얹어서 책상모양을 하고 있는 '북방식 고인돌' 모습이 아닙니다. 안내문에는 고인돌이 무너져 원형이 훼손된 상태여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고인돌마다 관리번호가 매겨저 있습니다.


12시 10분
어쩌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 옆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점심을 먹습니다.


이 길은 '강화나들길' 중 일부랍니다. 20개 코스의 강화나들길은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왕릉과 건축물, 조선시대에 외세 침략을 막아 나라를 살린 진보와 돈대 등 역사와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생활과 문화, 그리고 세계적 갯벌과 저어새, 두루미 등 철새가 서식하는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보 여행길이랍니다.

소나무숲길에는 솔잎들이 떨어져 수북히 쌓였습니다.

정상까지 1.3km 남았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이정표를 보게 되는 군요. 이정표는 이렇게 거리 표시를 해야 이정표 답죠.


두번째 고인돌群에 왔습니다.

여기도 우리가 책에서 봐 오던, 그 '탁자형 고인돌'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江華 富近里 支石墓)라고도 하는 강화도 고인돌유적지는 고려산 아래에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랍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 유적은 전남 화순과 전북 고창, 그리고 강화도에 집중되어 있는데, 세계의 고인돌은 한국이 전 세계의 절반 이상에 달할 정도로 많다고 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말고도 국내 전역에 많은 고인돌이 있답니다. 전남 무안군과 순천시에는 고인돌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남한의 고인돌은 대부분 전남 지방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역별로는 강원 338기, 경기도 502기, 충북 189기, 충남 478기, 전북 1597기, 전남 1만 9068기, 경북 2800기, 경남 1238기, 제주 140기로 거의 대부분의 고인돌은 전남에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춘천시 중도에서 대규모 유적지가 발굴되어 여기에 101기가 더 추가되었다고 해요.



강화 고려산(436m)은 매년 4월 진달래가 산 정상부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대표적인 봄 산행 명소로, 꽃이 필 때는 진달래꽃 축제를 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는데, 2023년에는 124,512명이, 2024년에는 132,092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 많았답니다.
그러나 2025년에는 산불로 인한 국가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발령되면서 행사가 취소되었고, 올해도 축제는 개최하지 않았는데요, 차량 주정차 문제와 쓰레기 증가 등 주민 불편이 주요 이유로 작용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지만 입산 자체는 제한되지 않으므로 누구나 무료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오히려 인파가 분산되면서 보다 한산한 탐방 환경,이전과는 다른 조용한 봄 산행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평일인 때문이기도 했지만 진달래가 절정이었음에도 탐방객들은 생각보다 적었거든요. 물론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지만 그게 지루해서 하품나올 그 정도는 아니었었죠.
2026년 진달래 행사는 4월 11일(토)부터 19일(일)까지 운영됩니다. 이 기간이 끝나면 5월 15일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통제가 있구요.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에 이르는 등산 코스는 5개입니다.
1코스는 고인돌광장, 2코스는 국화리 마을회관, 3코스는 고비고개, 4코스는 고천리 마을회관, 5코스는 미꾸지고개에서 출발하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1코스는 누구나 무난하게 오를 수 있고,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합니다.

고려산은 '강화 6대산'인 마니산(472.1m), 혈구산(466m), 진강산(443)m, 고려산(436.3m), 별립산(399m), 해명산(324m) 중에서 4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고려산은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내가면, 하점면, 송해면으로 뻗어 있는 해발 436.3m의 산으로 '월간 山'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입니다. 또한 블랙야크 '100 플러스'에도 올라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으로 고려 왕조가 몽골의 침공 때 강화도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며, 오련산이었던 이유는 416년(고구려 장수왕 4)에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였는데,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려 이들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적석사)와 백련사·청련사·황련사·흑련사를 각각 세웠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하죠. 현재는 백련사와 청련사, 적석사 정도만 남아있지만...

진달래꽃 구경을 온 사람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큰맘먹고 멀리서 단체로 왔습니다.

고려산이 있는 강화도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 때 고구려영토로서 이름은 혈구군(穴口郡)이었답니다. '강도지(江都誌)'에는 연개소문이 강화도 고려산 인근에서 태어났다는 전승을 수록하고 있답니다. 책에 따르면 강화도의 고려산 북쪽에 위치한 시루미산에서 연개소문이 태어났으며, 시루봉 중턱에 연개소문이 살던 집터가 있었고, 연개소문이 말을 달렸다는 치마대(馳馬臺),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오련정(五蓮井) 등의 지명에 대한 전승이 '강도지'에 수록되어 전한다 해요.
1993년에는 이 내용에 근거하여, 고려산 하부에 있는 부근리 지석묘 앞의 고인돌 공원에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유적지'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지기도 했답니다. 고려의 왕인 고종의 왕릉도 이 산의 중턱에 있다고 하고...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올라가 진달래꽃을 봅니다.

여기서부터 고려산의 진달래 군락지입니다.

진분홍의 진달래꽃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 마음도 붉게 꽃물이 듭니다.

꽃이 아무리 예쁘다 해도 키 보다 높이 피면 꽃을 제대로 볼 수 없는데,
고려산 진달래는 사람 키 보다 낮아서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진달래 군락지는 이 전망대 부근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무리지어 탐스렇게 피어있는 모습을 담으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고려산의 정상은 436.3m입니다. 그러나 정상 부근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출입을 통제하므로, '대체 정상지'로 진달래 군락지 중심인 376.5m에 정상목을 설치했습니다.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첫번째 장소.

데크 아래로 내려가면 더 탐스럽고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까 훨씬 더 꽃이 많아 보이고 더 아름답습니다.


산봉우리는 고려산 정상이지만, 군사시설이 있어 갈 수가 없죠. 정상에는 오련산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오련지(五蓮池)도 있다고 합니다. 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출입이 통제돼 지금은 그 우물을 볼 수는 없어, 그 아래에다가 ‘고려산 오정(五井)’이라는 명칭을 달아 새로 파 놓았다고 하던데.....

고려산에는 ‘고려산성’도 있었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흙으로 쌓은 고려산성의 둘레가 1만9천372척이라고 했다고 해요. 백련사 부근에 고려산성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과 이를 설명한 안내판도 있다는데,
안내판에는 ‘1232년 고려가 천도하여 나라 이름을 따서 고려산이라 고쳐 부른 우리나라 유일의 진산(鎭山)’이라면서,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이며 토축과 석축이 혼합된 토석성(土石城)으로, 성안에는 3개의 연못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는데 오늘 이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찍으려 줄을 서는 두번째 장소.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들

줄을 서서 사진을 찍을 만큼 예쁜 장소입니다.

진달래는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소박하면서 화사한 모습을 보면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 같구요.

한때는 진달래를 우리의 국화(國花)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산 어디에나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꽃 술도 담가 먹는 순한 꽃. 우리를 너무나도 많이 닮은 우리곁에 있는 친숙한 그런 꽃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무궁화꽃은 벌레가 많이 끼어서 보기가 않좋다는 이유도 있어 바꿔야 한다는 의견은 들불처럼 번져가는 것 같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궁화는 피고 지고 또 피는 게, 우리의 민족성인 <끈기>를 닮았다고 해서, 또 병충해에 강한 나무로 개량을 했기에 지금은 깨끗한 모습의 꽃이라고, 나라꽃은 무궁화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그 주장은 슬그머니 사그라졌습니다.

그랬었는데 근래에 와서 일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무궁화 대신 한반도 전역에 자생하는 진달래를 대한민국의 국화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달래의 강인한 생명력과 친근함이 한국인의 정서에 더 부합한다는 논리인 거죠.
최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강효백교수가 '진달래를 국화를 삼자'는 오래전 그 주장을 실은 '한국 진달래 오라'는 책을 발간하고서, '일본 무궁화를 왜 우리나라 국화로 하느냐? 그보다는 한국 진달래를 국화로 해야 한다’고 하고 말합니다.

그는 진달래가 우리나라 국화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에서는 야생 진달래가 수백만그루임에 비해 야생 무궁화는 단 1그루도 없으며, 일본에는 야생 무궁화는 수십만그루가 있으나 야생 진달래는 단 한그루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무궁화에 대해서는 전래 설화가 없음에 반하여 진달래에 대해서는 ‘백두산의 진달래’와 ‘나무꾼과 진달래’ 등의 설화가 있고, 우리 역사서에 무궁화에 대해서 나와 있는 것은 한 손에 꼽는데 비해 진달래에 대해서는 이보다 훨씬 많이 나오며, 또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는 진달래가 나오는 때는 태평성대였다고 합니다

“진달래는 수많은 선배 학인들이 나라꽃 제1순위로 손꼽아 온 꽃이다. 진달래의 속성은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데 있다. 진달래는 치열한 생명력을 수반한 봄과 함께 죽음의 겨울을 이기고 온 부활의 힘을 상징한다. 특히 일제 식민 통치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원형적 상징이 증폭된다.”고
그래서 그는 무궁화 대신 한민족 얼의 상징 진달래를, 대한민국의 진짜 나라꽃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기 위해 '한국 진달래 오라'는 책을 썼으며, 나라꽃을 진달래로 바꾸길 바란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봄이 오면 여인들은 개울가나 산자락에 나와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으며 화전놀이를 즐겼으며, 남자들은 진달래로 빚은 술 '두견주'를 즐겨 마시기도 했고,
또 무궁화에 대한 노래, 그림 등은 찾아볼 수 없음에 반하여, 진달래를 노래한 민요, 시, 그림 등은 많이 있으며 조선시대 그림에 나타난 꽃을 보면 진달래가 5위로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미꾸지고개에서 군락지까지 오는 동안의 그 산책로같은 평탄한 흙길, 따스하게 내려쬐는 햇살 그리고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진달래를 보면서 무장해제된 마음은 평화로움이 가득합니다.

'등산로 없음(진입금지)' 푯말이 있는 여기.
예전엔 이쪽길로 다녔었는데 지금은 못다니게 막았습니다. 군사시설이 있어 그랬답니다.

포장도로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뒤돌아 보면, 모두들 진달래꽃 매력에 푹 빠져서 사진찍기에 열심입니다.




온 사방을 분홍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이 풍경을 보면서, 고려산으로 갈까 말까 몇번을 망설였던 게 왜 그랬나 싶습니다.
주 군락지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꽃들은 활짝 피었습니다




계단을 다 올랐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포장도로가 이어지고 왼쪽은 정상으로 가고, 오른쪽은 국화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원래의 정상이 있는 군사시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는데까지 올라가려고 했지만, 진행요원이 통제지역이라 가면 안된다기에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 봅니다.

진달래꽃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 언제 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전망대에 올라 간 사람들


지나 온 군락지를 한번 더 바라보며 청련사 방향으로 갑니다.

청련사는 화장실과 꽃그림 사이로 갑니다.


청련사 방향은 나무 데크로 시작합니다.



계단 끝 지점에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그리로 가 봅니다.
'고려산 뱃지를 확보하였습니다' 라고 램블러가 고려산 정상이 있다고 알려줬거든요.

거리도 가까워보여서 그리로 올라갔죠. 행여라도 정상석을 볼 수 있지않을 까 하는 마음으로...

그러는 중에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올라가도 볼 수 없어요. 정상이 아니고 혈구산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도로 내려왔지요.


백련사, 청련사 갈림길에 왔습니다.

백련사쪽으로 돌아갔으면 했는데, 싫답니다. 그냥 청련사 방향으로 내려간답니다. 할 수 없이 따라가긴 했는데 혼자라도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뒤늦게 후회합니다.

백련사는 하점면 부근리 231번지 고려산 북쪽에 위치한 조계종 사찰로써, 몇 백년 묵은 나무가 있고 숲이 울창해서 고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곳이랍니다. 전설에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왕명으로 절터를 찾던 중 고려산 정상에 오르니 신기하게도 오색 연꽃이 핀 연못이 있었다고 해요. 그 연꽃을 꺾어 공중에 날려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지었는데, 이 곳에 백련이 떨어져서 백련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던데

고종 18년(1881)에 벽담 대규가 현왕도를 조성하고, 고종 25년(1888)에 지장보살도, 신중도, 칠성도, 독성도 등을 조성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극락전과 삼성각, 칠성각, 범종각 등이 있는 경내는 아담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이며, 강화도 특유의 해양성 기후와 어우러진 산사 풍경이 인상적이라는데,

결국 신비로운 전설이 전하는 백련사도 못보고, 고려산성도 못보고 내려가는 청련사 길은 많이 가파릅니다. 먼지도 얼마나 날리는 지 바짓가랑이는 먼지가 날려서 허였습니다.

마을이 가까워질 때 쯤 청련사를 만났습니다.
청련사는 강화도에서 유일한 비구니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1821년의 중창 이후 계속 비구니들이 주석하고 있는데, 오련지의 연꽃을 꺾어 날렸을 때 靑蓮이 떨어진 곳에 세웠다는 전설속의 그 靑蓮寺입니다. 416년(장수왕 4) 인도승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그 인도승은 진나라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절터를 물색하였고, 고려 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하고는,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서 공중으로 날려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곳에는 청련이 떨어졌기 때문에 청련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작고 아담한 청련사 역시 고즈녁한 사찰 분위기이며, 사찰 경내에는 보물 제1787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고려가 몽골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던 시기인 1232년에서 127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2012년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하죠.

사찰 주변에는 여기 저기 수령이 오래된 큰 나무들이 있습니다.


청련사 안내문도 읽고 가야죠.

수령이 670년 된 느티나무.

법당 앞 너른 공터는 비워둔 채로, 나무를 보호하고 있는 청련사

대웅전도 '큰법당'이란 이름을 씁니다.


당우로는 대웅전(큰법당)을 비롯하여 산신각, 종각(鐘閣), 요사채 등이 있으며, 큰법당 안에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2004년 각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삼장탱(三藏幀) 및 현왕탱(現王幀)이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속암자인 원통암(圓通庵)에는 2004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감로왕탱(甘露王幀)이 있구요.

법당 門이 열려있으면 들어가기 좋지만, 문이 닫혀있으면 선뜻 법당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집니다.
청련사의 법당도 닫혀있어 밖에서 三拜만 하고 돌아섭니다.

보호수들 대부분은 몇백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입니다.


잠시 청련사를 둘러본 뒤 국화리 마을로 갑니다.

마을이 보이고, 오늘의 산행도 끝나갑니다.

국화리 마을은 下山한 탐방객들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14시 20분


국화리 마을 주차장은 만차라서 더 이상의 차량들은 주차를 할 수 없을 정도.



마을주차장 한켠에 버스가 보이고,
강화 고려산 진달래 꽃구경도 여기서 마쳐야 겠습니다.
산행코스는 미꾸지 고개 - 낙조봉 - 진달래 군락지 - 청련사 - 국화리 마을까지 였습니다. 9.4km를 3시간 45분간 걸었군요.



산행 후 강화 시장 2층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강화도의 봄철 별미로 밴댕이 회무침이 입맛을 돋군다는데 안먹고 갈 수 는 없죠.

밴댕이회, 밴댕이무침, 밴댕이구이에 강화 인삼막걸리로 오늘 산행의 피로를 풉니다. 끝.
'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월, 안보등산로를 걷다. (0) | 2026.05.13 |
|---|---|
| '석병산'에 노루귀가 피었다기에... (1) | 2026.04.23 |
| 4월의 산행 - 하남 '검단산'에 찾아온 봄. (0) | 2026.04.11 |
| 새 봄에 걷다. 단양 <제비봉>과 <구담봉> (1) | 2026.03.26 |
| 3월의 산행 - 홍천 '가리산' (1) | 202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