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4
아직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대청봉을 가려구요.
인제군과 속초시, 양양군의 경계에 있는 대청봉은 남한에서 한라산1,750m, 지리산(천왕봉1715m, 반야봉1732m)에 이어 3번째 높은 산입니다.
태백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지요.

대청봉은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가슴이 두근 두근해집니다.
한계령에서 대청까지 장시간 산행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걱정이 되는군요.
지난 번 북한산을 6시간 넘게 걸었던 것에 비하면 한시간 정도 더 걸을 뿐인데도 두려움 반, 걱정 반입니다.

한계령으로 가는 길은 단풍이 들고

울끈불끈 근육질의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 볼 수는 없지만 바라만 봐도 멋진 저 암봉들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건, 선물처럼 가슴 설레게 하죠.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08시 40분.
그다지 먼거리는 아니라해도 자주 올 수는 없는 곳이기에 사진을 찍고, 화장실도 들리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함께 온 일행들은 흘림골로 간다고 가버립니다.

휴게소와 화장실 사이의 시멘트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됩니다.
대청봉을 간다고 했지만, 정작 대청으로 가는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는군요.

계단 끝에 있는 '설악루'와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어봅니다.

대청봉을 갈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건, 쉽게 오를 수 있는 만만한 산이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2017.10월 처음으로 대청봉을 가던 날 그때도 지금처럼 한계령에서 출발하고, 중청에서 대청을 오를 때는 온 힘을 다해서 오른 뒤부터 대청봉은, 정상까지 최단거리인 오색에서 올랐다가 오색으로 내려오곤 했었습니다.
아니 딱 한번, 22년 6월 21일에는 오색에서 한계령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무지하게 더운 여름날이라서 그 날은 10시간이나 걸렸드군요.

대청봉 산행코스는 오색, 한계령, 설악동, 백담사 방면 등 4개의 코스가 있지만, 한계령에서 올라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한계령 코스는 처음 2km가량을 올라간 후, 비교적 평탄한 서북능선을 걸으며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도 보면서 가는 가장 멋진 길이기 때문입니다.

흠이라면 8.3km를 걷는다는 것.
그래서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하며 스틱과 등산화, 충분한 물과 행동식 그리고 보온용 옷을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잠시 쉬어갑니다.
겨우 500m를 오는 것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한계령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이라 땀 좀 흘려야 합니다.


대청봉은 설악산의 주봉으로서 예전에는 청봉(靑峯) 또는 봉정(鳳頂)이라고 불렀다 해요.
그 중에서 청봉이라는 이름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 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헸다고도 합니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의 서쪽(백담사)을 내설악, 동쪽(설악동)을 외설악, 남쪽(오색)을 남설악이라고 하죠.
설악산은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기암 절벽과 수많은 폭포가 있으며, 많은 암자와 기암 괴석 등이 어우러져 사시사철 절경을 이루어 금강산(1,638m)에 버금가는 명산입니다.

대청봉은 공룡릉, 화채릉. 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과 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을 합니다.

09시 30분
잠깐 동안을 쉬며 물 한모금 마시고 갑니다.

올 가을들어 제일 먼저 단풍소식을 전한 대청봉은 완연한 겨울입니다.
단풍이 일찍 물든다는 것은 겨울도 그만큼 길고 빨리 찾아온다는 것.

추위에 바짝 얼은 나뭇잎은 바스락거립니다.


계속 올라가다가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편안한 길을 걷는가 했는데

이런,
다시 올라갑니다.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600m를 더 가야해요.

덥다고 헉헉대던 푸르던 여름은 가 버리고, 황량해 보이는 갈색의 겨울이 왔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산행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무심하게 빨리도 흘러갑니다.


우람한 바위를 지나서 뒤돌아보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이런 바위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건너편 저 멀리있는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어 줌으로 당겨봅니다.
모자를 쓴 것 같기도 한 기암.

다시 또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한계령 삼거리에 도달합니다.

여기서 대청봉으로 가고, 대승령으로 가고, 귀떼기청봉으로도 갑니다.


10시 15분
한계령 삼거리 이정표는 백두대간 인증장소.


그늘진 응달에는 눈이 남아있습니다.

조망 좋은 곳에는 그림같은 풍경들이 자리하고

눈길 가는 곳마다 경치는 너무도 멋집니다.

10시 20분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은 공룡의 등 같고 용의 이빨 같은 모습이지만, 이 멋진 풍광도 한동안은 볼 수 없습니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산불예방차원에서, 설악산의 일부 고지대는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탐방로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출입이 통제되는 탐방로는 공룡능선, 서북능선, 오색-대청봉, 비선대-대청봉, 백담사-대청봉 등 탐방로 입구에서 대청봉으로 연결되는 고지대 탐방로인데 비선대와 울산바위, 토왕성폭포전망대와 흘림골, 주전골 등 저지대 탐방로는 개방합니다.
그래서 겨울의 설악산은 비선대와 금강굴, 토왕성폭포, 울산바위 등을 제외하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기도 전에 설악산 고지대에 올가을 첫눈이 내렸었습니다.
10월 20일 새벽 대청봉을 비롯한 고지대에 첫눈이 내렸는데요, 이날 아침기준 영하 1도의 기온을 기록한 설악산 고지대 일대에선 약1㎝가량 눈이 쌓였답니다. 이번에 내린 첫눈은 지난해(10월 19일)보다 하루 늦고, 2023년(10월 21일)보다는 하루 빠른 기록이라 해요.

햇빛이 잘 들지않는 응달에는 눈이 녹지않아서 등산로의 바위는 매끌 매끌합니다.

미끄러질까봐 주저앉아서 한발 한발 겨우 옮깁니다.
돌아서 갈 길도 없어 여기를 통과해야만 하는 등산로의 바위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불독같습니다.

어디 하나 발 디딜곳도 마땅찮던 이 구간을 지나면서 무지하게 애먹었었죠. 휴~

계단에도 눈은 녹지 않았습니다.





'한계령'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가 있습니다. 정덕수 시인인데요, 그의 詩 '한계령에서' 한 수 감상하며 갑시다.

한계령에서 1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

11시 25분
쉼터처럼 넓은 곳을 지납니다.
분명 쉼터같은 데 쉬어 갈 의자 하나 없군요.

대청봉은 아직도 3.7km나 남았는데,
허기져서 못 걷겠다 해서 밥도 먹고 쉬어 갈 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11시 35분
아직 점심때도 안되었지만, 야생동물의 이동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감시카메라 부근에서 먹는 점심밥.
양지바른 곳도 아닌데 바람도 없고, 날씨도 따스해서 참 좋습니다.

11시 45분
오늘 대청봉으로 가는 인원은 전부 8명
나머지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흘림골로 가버렸습니다.

사실 엄두가 나지 않기는 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마음을 굳게 먹고, 오늘로써 대청봉은 마지막으로 간다는 심정으로 왔었습니다.

7~8시간을 걷는다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함께 발 맞춰가며 걷는 일행들이 있어서인지 힘들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걸을 만 하네' 그런 정도입니다. 이런 걸 걸어보지도 않고서, 지레 겁 먹고 엄살을 부렸었네요.

12시 40분
끝청에 왔습니다.
흙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아주 큼직 큼직한 바위덩어리들로 되어 있는 해발 1,610m의 끝청입니다.


백두대간 인증장소라서 사진 한 장 찍고


사방을 휘 둘러보고




목적지인 대청봉도 한번 쳐다보며 갑니다.

길은 중청으로 나 있습니다.

중청을 거의 다 가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중청봉 정상은 군사시설 보호 구역이므로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가면 안되는 곳이죠.



소청을 지나 백담사로, 대청으로, 한계령으로 갈라지는 갈림길

이정표 왼쪽은 한계령에서 넘어 온 길, 오른쪽은 소청으로 가는 길입니다.

중청대피소 공사는 아직도 한창입니다.
중청대피소는 1983년 민간산악회가 만든 임시건물에서 시작, 1995년 국립공원공단이 넘겨받아 공식 대피소로 운영해 왔었습니다.
40여년을 운영하던 중청대피소는 노후되어, 2016년 안전진단결과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한 D등급 판정을 받은 데다, 법이 개정되면서 철거가 결정되어 지난 23년도 11월부터 재건축에 들어갔습니다.

신축 대피소는 2024년 12월 31일 완공을 목표로 했죠.
그러면서 대피 공간, 직원 근무 공간 등 만 갖춰 기존 숙박 및 취사 기능 없이 소규모 대피소로 변경한다고 했습니다.

신축하는 중청대피소는 2025년 1월 오픈할 예정인데 공사완료시점에 따라 시기가 다소 늦어질 수 있다고 하던 것이, 지금의 공사가 진행되는 걸 보면 내년 연말까지도 완공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늦어보입니다.

가운데 희끄무레한 암봉은 울산바위입니다.
나는 새도 앉기 어렵다고 하는 950m의 울산바위




오른쪽 화채봉은 비탐구역입니다.
통제를 하지않던 시절에 다녀 온 이의 말에 의하면, 위험해서 출입을 금한다 하드군요. 설악산의 비탐구역들은 다 위험하기 때문에 출입을 금합니다.
모두 다 가보고 싶어하는 용아장성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어 엄격히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1.10월 3일 오전 7시쯤, 용아장성 등반을 하던 A(64)씨와 B(51)씨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들 2명은 출동한 119산악구조대와 소방헬기로부터 구조됐으나 결국은 숨졌었죠. 그러니까 가지말라고 하는 곳은 가지 말아야해요.

중청을 지날 때는 바람 한 점없이 따스하던 날씨가, 대청에 가까워지자 심한 바람과 함께 기온도 뚝 떨어져서 배낭에 넣었던 재킷과 조끼를 입고 올라갑니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댑니다.

엄청 추워요.



13시 30분
1,708m의 대청봉은 일출과 일몰로 유명해서,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려고 대청봉을 찾습니다.

오늘따라 바람은 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심하게 불어댑니다.
태풍과도 같은 바람에 날려 갈까봐 바위를 잡고서, 간신히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바람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 없군요. 그래서 쫓기듯 아래로 내려옵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기에 오늘은 기필코 찾으리라 했건만, 오늘도 허탕치고 옵니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까지는 5km,


오색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해 빨리 갈 수도 없습니다.

드문 드문 놓인 나무토막은 넘어지기 딱 알맞습니다.




제2쉼터에 다달았지만 여유를 갖고, 쉬었다 갈 처지가 못되어 그냥 지나갑니다.

흘림골로 내려간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느라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꺼라는 생각을 하면,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쉬는 시간도 '딱 1분'.
그 정도면 가다가 잠깐 멈추는 것 밖에 안되는 시간입니다.

다소 가파른 계단


또 다시 계단은 이어지고

계단은 참 길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단이라서 편하게 내려갑니다.
만약에 계단이 없는 돌투성이 너덜길이라면 얼마나 발이 아플까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더니 발바닥과 발가락이 많이 아픕니다.
아마도 몸이 아래로 쏠리다 보니 발 쪽에 하중이 실려서 그런가 봅니다.


15시 10분
OK쉼터에 왔습니다.

여기까지 와도 거의 다 온 것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탐방지원센터까지 엄청 가파른 돌길을 내려가면 끝이거든요.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OK쉼터까지의 이 길은 돌을 깎아 정비해서 아주 좋아졌다고 하드군요.
그렇지만 막상 여기를 내려올 때는 무얼 정비했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한발 한발 마음대로 내딛지도 못하고 돌맹이 한개 한개 골라 밟으며 진땀을 흘리면서 내려갑니다.
여기에 계단을 설치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걸음마를 하는 아기처럼 간신히 발을 떼며 내려오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발가락이 몹시 아프군요.
지금부터는 조심 조심하면서 내려오지 않아도 됩니다.



산 아래는 단풍이 들어서 가을답습니다.





15시 50분,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여기까지 거리는 13.3km, 7시간 걸렸습니다.

산을 다 내려왔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주차장까지 700m 가량을 더 걸어가야 해요.




오색그린야드호텔 주변의 단풍나무는 새빨갛게 물 들었습니다.

'용소폭포-주전골-약수터' 현수막이 있는 도로 왼쪽은 주전골, 흘림골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다 온 거죠.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10분.
오늘은 꼬박 7시간 10분 걸었습니다. 평균속도는 2.9km,
처음부터 이게 마지막이라고 마음먹었던 대청봉.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대청봉.
엄두가 나지않는다고 수없이 망설였던 대청봉 산행을 끝내니, 뿌듯한 생각이 듭니다.
오늘 산행도 여기서 끝냅니다.



산행코스 : 한계령휴게소 - 한계령 삼거리 - 끝청 - 중청 - 대청봉(정상) - 설악폭포 - 오색탐방지원센터 - 오색주차장(13.3km, 7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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