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1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3일 동안은 때 아닌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유독 영동지방에만 눈도 오지않고, 비도 오지않는 겨울가뭄이 계속되었기에 이 눈은 가뭄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단 눈(雪)이었는데요, 그렇다 해도 봄이 오고 있는 이 3월에 눈이 내리다니요!
눈이 오자 눈꽃과 설경을 보려고 너도 나도 선자령을 찾았습니다. 그 넓은 주차장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었죠.
눈 오고 엿새가 지난 후에 찾아간 선자령에는, 여전히 많은 눈이 쌓여있어 어쩌면 이 겨울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눈 산행을 했습니다.

08시 40분
(구)대관령 상행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차량들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다녀갈 사람들은 다 왔다 갔기에 그럴 수 도 있습니다.




오늘 산행코스도 언제나 그랬듯이 양떼목장 울타리를 지나 계곡길로 갑니다.

온 세상이 온통 하얀 눈밭입니다.


복수초가 무리지어 피어나는 곳에도 흰눈은 쌓이고

얼음 녹은 물이 흘러야 할 개울에도 눈이 쌓였습니다.

붓으로 쓱쓱 그려놓은 듯한 숲에는 고요함만이 가득 맴돌고...

매끌 매끌하게 얼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네요.
밧줄을 잡고서 한발 한발 떼며 올라갑니다.

언덕위의 나무들이 하늘 향해 두팔 벌리고 선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양떼목장 울타리에 도착했습니다.
09시.

철망사이로 보이는 양떼목장은, 언제 보아도 감탄하게 되는 한점 그림입니다.


풀밭을 뛰노는 양떼들의 모습도 그림같지만, 깊은 겨울잠에 든 목장도 그림같습니다.




목장울타리를 지나 전나무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눈을 처음 밟아보는 듯한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길을 갑니다.

'국사성황사'로 올라 온 일행들과 합류를 하고

마치 오랜만에 만난 것 마냥 이야기에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전나무숲과



낙엽송이 줄지어 섰는 숲길을 갑니다

재궁골삼거리까지 왔군요.
선자령은 그냥 직진합니다. 재궁골로 가는 오솔길은 대관령국민의 숲길로 가는 것이구요.

"자, 진격이다!"
정치가이면서 장군인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의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날씨는 무척이나 추웠고, 눈보라가 치고 바람도 매우 세차게 불어서 병사들은 거의 얼어죽을 것만 같았죠.

그런데 말을 탄 나폴레옹이 산꼭대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 산이 아니라 저쪽 산이다."
나폴레옹은 알프스산을 허겁지겁 내려와 옆 산으로 올라갔고, 병사들도 나폴레옹의 뒤를 쫓아 옆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병사들은 너무 힘들어 산꼭대기에 이르자 다들 풀썩 주저앉아 헉헉거렸죠.
그런데 이쪽 산꼭대기에 선 나폴레옹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아니다. 아까 그 산이다!"



발밑에서는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고

따스한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임도에 다달았습니다.

임도(林道) 왼쪽은 하늘목장으로 가는 길.
등산객들의 출입을 금(禁)합니다.

목장 草地로 가는 순환로는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갈 수 없군요.

그래서 전나무앞을 지나

대공산성 방향으로 갑니다.
눈(雪)이 녹아 찌찌한 길 가장자리로 살금살금 갑니다.

정상 뒷편으로 가는 곳까지 왔습니다.

올라가며 뒤돌아보면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있는 이런 이국적인 풍경을 보게 되죠.

파도가 밀려오듯 줄줄이 늘어선 눈 덮힌 산도 보고


선자령은 백두대간의 주 능선에 있습니다..
선자(仙子)란 신선, 또는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고 합니다.
선자령은 겨울에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겨울철 많은 눈이 내려 쌓이면, 눈길 가는 곳마다 탄성을 지르게 되죠.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막힌 곳 하나없이 뻥 뚫려서 조망은 더 할 나위없이 좋습니다.

장쾌하게 뻗어내린 산

선자령은 남여노소 그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고, 거리도 짧고

풍력발전기와 너른 풀밭은 마치 외국에 온 듯한 풍경이라서 종종 찾게 되는 곳입니다.

세차게 불어대는 대관령의 바람때문에, 나무들은 키가 크지 못하고 자그마합니다.

언제나 도전도 해보기 전에 지레 포기해 버리곤 했던 아들과, 그렇게 나약한 아들이 늘 안타까웠던 아버지가 처음하는 산행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험난한 여정이였죠. 가파른 길을 오를 때마다 아들은 넘어지고 깨지고 돌부리에 채여 피가 나기도 했지만, 산을 오르며 만나게 된 사람들의 격려로, 또 아버지가 내민 손을 잡으며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
"예, 아버지..... 헉헉"
한걸음 한걸음이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아들은 차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몇배나 더디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 물 마시고 몇 걸음 가다 땀 식히고...
그러는 사이 모두가 부자(夫子)를 앞질러 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에서야 부자는 정상이 코앞에 보이는 곳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정상입니다.
기쁨에 들뜬 아들이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 걸음을 떼려는 순간, 아버지가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자, 자 이제 그만 내려가자"
"네? 꼭대기가 바로 저긴데... 내려가자구요?"
아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된 아들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주며 지금 내려가야 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우리는 산에 오르기 위해서 왔지, 정상을 밟으려고 온 건 아니다.
네가 지금 정상에 서면 다시는 이렇게 힘든 산을 오르려고 하지 않을 게 아니냐?"
아버지의 말을 다 듣고 난 아들은 말없이 산을 내려왔습니다.

1,157m의 선자령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11시입니다.

정상에는 햇살이 환하게 부서져내리고

바람 한 점 없는 포근한 날씨는 5월의 한낮 같습니다.





하늘목장 초지에는 백패킹의 흔적들





옆 텐트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닥 다닥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운 사람들의 흔적은, 그 넓은 목장에 가득합니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친한 스님이 한 분 계셨죠. 그 스님은 스스로 아는 게 없다고 하여 무학(無學)대사라 했는데,
하루는 이성계가 스님을 놀려주려고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스님은 꼭 돼지 같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왕께서는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이성계는 기쁘게 웃으며 물었죠.
"허허, 그렇습니까?
그런데 대사께서는 돼지같다고 해도 화가 나지 않습니까?"

"그럼요."
"아니 정말이요?"
무학대사는 다시 껄껄 웃었습니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겁니다."
자비심을 가지면 모든 것을 자비롭게 볼 수 있다는 얘기죠.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의 반대편 길로 갑니다.

한국공항무선표지소를 지나 KT중계소가 있는 길로 내려갑니다.
이 길은 주차장까지 5km 되는데요, 계곡길은 5.8km 됩니다.

눈길 닿는 저 먼곳까지 눈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 아주 제대로 눈구경을 합니다.

선자령(仙子嶺)은 대관령 북쪽에 솟아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주 능선에 위치해 있죠.
산 이름에 묏 '산(山)'이나 봉우리 '봉(峰)'이 아닌 재‘령(嶺)'자를 쓰게 된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답니다.

또한 선자령은 해발 1,157m나 되지만 (구)대관령휴게소가 840m여서, 정상과의 표고차 317m를 긴 능선을 통해 산행하게 되므로 일반인들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등산로는 동네뒷산 가는 길처럼 평탄하고 밋밋하여 가족단위 산행으로 아주 좋구요.

정상에 서서 바라보면 남쪽으로는 발왕산, 서쪽으로는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이 바라다보이고, 맑은 날에는 강릉시내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일품입니다. 선자령 산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죠.

지금 내려가고 있는 이 일대는 짧게 자란 억새풀이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계곡길 주변은 전나무, 낙엽송, 자작나무 등 수목이 울창한 게 특징이기도 하죠.

날씨가 풀리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봄 산행은 상쾌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즐길 수 있지만, 방심하면 뜻밖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죠.
특히 3월과 10월은 산행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라서 특별한 대비와 주의가 요구됩니다.

3월은 따뜻한 날씨때문에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리한 산행으로 부상을 입거나 길을 잃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체력이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긴 코스를 걷게 되면 위험해 질 수도 있죠.

산행사고의 절반 가까이는 주말에 발생한다고 해요.
주말에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등산로가 혼잡해지고, 무리하게 오르내리다 다치는 경우가 늘어 난답니다. 그래서 여유를 갖고 안전한 산행을 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고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사이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데요, 한참 등산을 즐기는 시간대이지만, 체력이 떨어지면서 발을 헛디디거나 탈수증상을 겪는 경우가 많아 이 시간대에는 더 신중하게 움직이고, 중간 중간 충분히 쉬어 가는 게 좋습니다.

봄철에는 눈이 녹으면서 바위가 떨어질 위험도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목을 단단히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고, 아이젠도 챙기는 게 좋습니다. 산행하다 보면 얼음이 남아있는 곳도 있으니까요.

봄 산은 생각보다 쌀쌀할 수 있습니다. 따뜻하다가도 바람이 불면 추워지니까, 바람막이 점퍼, 모자, 장갑같은 방한용품도 챙기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혼자보다는 2명 이상 함께 다니는 게 좋구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등산하기 좋은 계절 3월입니다. 안전하게 즐겁게 봄 산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눈 속에서 꽃피는 나무, 매화나무가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매화꽃에는 휘파람새가 따라 다닌다고 하죠.
------------ 옛날에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살아가는 '춘기'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춘기'에게는 예쁜 약혼녀가 있었는데, 그만 몹쓸 병에 걸려 결혼을 사흘 앞두고 죽고 말았답니다. 그는 매일 약혼녀의 무덤을 찾아가서 혼례도 치르지 못한 그녀의 원혼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덤가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 있는 걸 본 '춘기'는 그 꽃이 죽은 약혼녀의 넋이라고 생각하고 그 꽃을 자기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답니다. 그리고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그 꽃을 가꾸며 사는 것을 낙오로 삼았다고 해요.
세월이 흘러 '춘기'는 늙고, 매화나무도 자랄대로 자라났구요.
그는 명절 때마다 매화나무의 꽃 그릇을 새로 만들어 옮겨 심으며, 마치 산 사람에게 말하듯 읊조리곤 했답니다.
"내가 죽으면 누가 널 돌봐줄까"

'춘기'는 더 늙어 눈도 잘 안보였으며, 몸도 더욱 쇠잔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춘기'를 돌봐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몇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동네사람들은 '춘기'노인 집 대문이 굳게 잠겨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답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춘기'노인이 앉았던 자리에는 예쁘게 만든 그릇이 하나 놓여 있더랍니다.
그 그릇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휘파람새가 나와 날아올랐는데, '춘기'노인이 죽어서 휘파람새가 된 것이었대요.
그 후부터 매화꽃에는 꼭 휘파람새가 따라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리와 간격을 맞춰서 일정하게 심은 전나무숲까지 왔습니다.
곧 포장도로가 나오고 평탄한 길을 걷게 되겠죠.

도로에 나왔습니다.
길 왼쪽으로 '한국공항무선표지소' 건물이 보이는 군요.

12시 25분.
주차장 가는 길은, 숲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갑니다.

눈이 없을꺼라는 예상과 달리 포장도로에는 눈이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아이젠을 벗었으면 발이 가벼워서 좋을텐데 생각하며, 타박 타박 내려갑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행복한 얘기를 하며 갑시다.
------------ 노인은 오늘도 그물을 챙겨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노인은 백내장 치료를 제때 받지못해 두눈을 모두 잃은 시각장애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날마다 조각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어장까지 매 놓은 줄을 따라 배를 몰고 간 뒤, 실명 후 몇 배나 예민해진 손끝의 감각을 이용해 그물에 갇힌 물고기들의 몸부림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우럭, 도미, 전어 등 오늘도 그가 쳐둔 그물에는 씨알굵은 고기가 열마리도 넘게 걸렸습니다.
노인은 그물속에 팔딱대는 물고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여어차! 가만 있어라 이놈들 ..... 이런, 그물이 또 나갔네 그려."
물고기 팔딱대는 소리를 들으며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바둥대는 고기들을 건져내고 찢어진 그물코까지 찾아내 깁는 노련한 어부였습니다.

노인이 시력을 잃고도 어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아들의 숨은 효성 덕이었습니다.
군에서 갓 제대한 아들은 큰 도시로 나가 번듯한 일을 할 기회를 모두 접고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됐습니다.
바다를 버릴 수 없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는 대신, 절망을 닫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아버지의 눈이 되기로 했던 것입니다.

노인은 아들이 바닷길을 지켜주고, 배를 안전한 곳에 더 잘 대고 찢어진 그물을 기워 놓는다는 걸 모릅니다.
행여 아버지가 자신감을 잃기라도 할까 두려워, 그림자처럼 숨죽여가며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노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언덕 위 집에는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 방향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 하며, 문밖에 서서 내내 기다리는 착한 며느리가 있습니다.
흥얼 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오는 노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눈을 가진 행복한 어부입니다.



이제 다 내려왔습니다.

'대관령국사성황당' 입구를 가르키는 표지석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주차장입니다.

3월에 내린 선자령 눈 산행도 여기서 이만 끝냅니다.
이정표 상으로는 10.8km 이지만, 실제로 걸었던 거리는 11.8km였습니다. 어찌 어찌 걷다보니 좀 더 걸었네요.
시간은 4시간 20분이 소요되었구요. 눈길인데다, 너무도 따뜻한 정상에서의 햇살때문에 지체한 것도 이유입니다.
평균속도는 2.8km 였구요.

13시에 도착했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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