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
10월이 오고 낮 기온도 20도 남짓해지자, 가기 싫어서 자꾸만 서성대던 여름도 더는 어쩔 수 없어 아쉬운 발길을 돌립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져서, 언제 더웠냐는 듯 이제는 따뜻한 게 좋아지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희양산을 가봅니다.
먼동이 터 오고 있지만
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산 아래까지 내려왔습니다.
모처럼 가는 희양산인데 제발 산행이 끝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는 길.
구름사이로 하늘이 조금 보이는군요.
하루종일 이랬으면 참 좋을텐데...
차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은 평화로워 보입니다.
10시.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어번 휴게소를 들렸다고는 해도, 궁둥이가 배기고 지루해서 오는 내내 많이 힘들었지요.
버스는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쬐끔 더 올라와 우리를 내려줬습니다.
은티마을은 연풍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km 지점에 있는데, 동쪽은 중리마을, 북쪽은 삼풍리, 남쪽은 경북 가은과 접하고 있으며
연풍면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랍니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연풍면지 '응여리 문헌'에 의하면, 조선 초기 연풍현 당시 현내면 연지동에 속해 있었다고 해요.
1812년 작성된 '동절목'에는 인시동의 인촌리로 기록이 되어있구요,
1910년 경술국치의 왜인들이 의인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 하여 은티로 개칭했다는 군요.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치동, 진촌, 응암조, 봉중리를 병합하면서 '주치'와 '진촌'의 이름을 따서 주진리라 하였으며
8.15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주진리를 3개 마을로 나누었는데, 그중에서도 이 마을을 '은티'라 했답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에 자리하고 있어 洞口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해서 동구의 松林안에 남근석을 세워놓고,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을 정 祭日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 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다고 해요.
祭가 끝나고 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을 하고 제물을 나눠 먹는답니다.
길가에는 미국쑥부쟁이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미국쑥부쟁이는, 1980년 춘천 중도에서 처음 유입된것으로 확인된 이후 처음부터 우리땅에 살던 식물인양,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데요, 한번 정착하면 수많은 가지를 쳐서 키작은 관목성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결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쑥부쟁이가 정착한 곳은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해, 귀화식물 대부분이 그러하듯 미국쑥부쟁이도 생태계교란종이 되었습니다.
김장배추가 튼실하게 자라고, 들깨도 실하게 열매를 맺는 밭을 보며
사과나무밭 옆길로 걸어 올라가다가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듭니다.
오른쪽으로 가는 길은 호리골재, 마당바위, 구왕봉을 거쳐서 정상으로 갑니다.
마음같으면야 구왕봉으로 가고 싶지만 이제는 해도 짧아지고, 멀리 와서 너무 지체하면 귀가하는 시간이 늦을 것 같아 짧게 걷기로 한거죠.
다시 또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잔디를 파랗게 잘 가꾸어놓은 묘지가 있습니다.
이 묘지(산소) 끄트머리에 구왕봉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데, 그리로 가지않고 뒤돌아서서 갈림길 왼쪽으로 갑니다.
지름티재 방향으로 가는거죠. 아래의 지도를 한번 볼까요?
빨간색으로 표시한 길을 따라 한바퀴 돌아오면 대략 9km 정도 되고, 4~5시간 걸린답니다.
6년전인 2018년 6월 초에도 희양산을 왔었댔습니다.
그때는 아래의 지도처럼 분지리 안말주차공터 - 안말 - 사다리재 - 이만봉 - 성터삼거리 - 희양산 - 성터삼거리 - 육각정쉼터 - 은티마을 주차장까지 12.4km를 여섯시간 30분 걸었었습니다.
오늘과는 달리, 그때는 길을 걷다 만나는 '사다리재'와 '이만봉'에서 사진을 찍는 핑계로 쉬어가는 재미도 있었지요.
(위, 아래의 초록색이 진한 2장의 사진은 2018년 6월에 찍은 사진임)
희양산은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산입니다.
그래서 위 지도에 있는 이만봉, 구왕봉, 은티재 안내판은 블랙야크의 백두대간 인증장소입니다.
한때는 '사다리재 표시목'도 인증장소였고, '희양산 정상석'도 인증장소였지만 지름티재의 밧줄구간이 너무도 위험해서 지금은 인증장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그러나 희양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의 하나입니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고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 산에서 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기암괴석과 풍부한 수량이 어우러진 백운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마애본좌상 등 역사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100대 명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희양산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줄기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山인데요,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답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였다"고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대요.
대개의 암봉 산들이 등성이 위에 암릉과 암괴가 형성되어 있는데 비해, 희양산은 밑에서부터 정상까지 온통 바위로 되어있어 여느 岩峰 山과는 분위가 전혀 다르다고 하죠.
병풍처럼 둘러싸인 거대한 화강암벽은 설악산 울산바위에 필적할만 하며, 특히 암벽 하단부에 있는 200여m는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저녁 노을에 비친 암봉의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며,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고 해요.
산세는 사방이 마치 병풍에 둘러싸인 듯 한데 구름과 계곡의 물줄기가 조화를 이뤄 마치 봉황이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등산로는 잘 다듬어지지도 않고
발에 걷어채이는 너덜길과
볼 만한 경치도 하나 없는 그런 길입니다.
산행을 할 때 우리는 과일을 챙겨갑니다. 그리고 과일 껍질은 썩어서 나무에 좋은 거름이 될 거라 생각하고 산에다 버리는데, 과일 껍질을 그대로 버리면 거름이 되지 않아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과일 껍질은 시간이 지나 유기물에 의해 부패해서 분해가 된다고 해도, 식물이 직접 활용할 수 없는 탄소와 산소만 남는다는 군요.
이 부패한 음식물(과일 껍질)은 악취를 유발하고 해충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므로써 주변 경관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과일 껍질에 묻어있는 방부제, 잔류 농약 등이 생태계를 교란할 수도 있다고 해요.
과일을 먹을 때 사용하는 나무젓가락도 산에 버리면 안 된대요. 방부제 처리가 되어 있어서 썩지 않는다는 군요.
등산할 때 흔히 먹는 컵라면의 남은 국물도 산에다 버리는 게 아니랍니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국물을 토양에 버리면, 저농도에서 고농도로 이동하는 삼투압 현상으로 인해, 식물체 속 수분이 토양으로 이동해 식물이 마를 수 있다고 해요.
그러나 과일은 등산할 때 갖고 가면 간식으로 참 좋습니다.
등산 중에는 땀을 많이 흘려 체수분, 나트륨 등이 소모돼 탈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과일에는 수분과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해서 등산 중 섭취하면 탈수 증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죠.
또 등산은, 고강도 운동이라 혈류가 근육에 몰리며 소화가 어려울 수 있는데, 과일은 칼로리가 낮아 컵라면 등 흔히 먹는 등산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답니다.
------------------------ 등산할 때는 쓰레기봉투를 챙겨가는 거 잊지 말아야겠죠?
능선에 올라서자 나무울타리가 보이는데요, 이건 봉암사에서 사찰내의 출입을 막기 위한 거랍니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5년(1897)에 智證(智詵)國師 도헌(道憲)이 창건했으며 九山禪門의 하나였다고 해요.
후삼국시대에 이곳 문경이 견훤과 왕건의 격전장이 되는 와중에 봉암사도 불타 폐허가 되는데, 고려시대에 들어와 정진국사(靜眞國師) 긍양(兢讓)이 사찰을 중수하고 구산선문 중 하나인 曦陽山派(희양산파)의 본거지가 되었답니다.
1674년 현종17년에 信和가 조선시대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고 1915년 세욱(世煜)이 법당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는 봉암사.
봉암사에는 보물 169호 삼층석탑, 137호 보물인 지증대사 적조탑(寂照塔), 보물 138호인 지증대사 적조탑비, 보물 171호인 정진대사 원오탑, 보물 172호 정진대사 원오탑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요.
천년고찰 봉암사는 수도사찰로서, 1982년 조계종에서 이곳 봉암사를 특별 수행처로 지정한 이후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산행객은 물론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석가탄신일'에는 일반인에게 산문을 개방한다고 하는데,
희양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경내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특히, 일주문에서 오솔길을 따라 가며 사찰 옆으로 때묻지 않은 백운대 계곡이 있고, 계곡 초입 마애불앞은 맑은 계류가 흘러내리는 등 계곡미가 빼어나 석탄일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명소라는 군요.
잠깐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이때를 잘 맞쳐서 산행에 나서면 봉암사의 면면을 볼 수 있다지만,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쉽나요?
건조한 산길에는 먼지만 날립니다.
바위가 참 많기도 해요.
가을꽃 구절초도 다믄 다믄 피었구요.
구름 낀 하늘은 비를 뿌릴 태세를 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더위도 물러가고
약간은 선선한 날씨가 산행하기에는 딱 입니다.
가끔은 밧줄을 매어놓은 곳도 있네요.
어떤 이는 말합니다.
꽃이 눈에 들어와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나이를 먹는 거라구요.
나이야 좋든 싫든 해마다 먹어가는 것.
이 깨끗한 모습의 구절초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바위틈으로 길이 있습니다.
이리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빠져 나가야해요.
몸이 끼어서 나갈 수 없으면, 엎드려서 갑니다.
희양산은 가파르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죠.
가끔은 바위 틈새로 올라가는 일이 즐겁기까지 합니다.
통나무 울타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들이야 즐겁자고 하는 산행이,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얼마나 방해가 되었으면 절에서 이리 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커다란 암벽밑으로 밧줄 잡고 올라갑니다.
밧줄이 끝난 지점부터는 이런 돌길을 올라가요.
밧줄구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런대로 올라갈 만 했죠.
여태까지는 산행하면서 밧줄구간을 만나면 즐거워지고 신이 났었습니다.
그런데요, 이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바짝 긴장을 하고 조심을 하며 밧줄에 매달립니다.
가파른 암벽, 차츰 차츰 빗방울에 젖어가는 바위.
자칫 미끄러지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어 신경쓰입니다.
발 디딜곳도 마땅찮아서 밧줄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겨봅니다.
여기는 가끔씩 사고가 나서, 헬기와 구급대원이 출동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의 산행 중 밧줄구간이 이리 힘든 건 처음입니다. 힘들다는 건 발을 옮길 데가 마땅찮아서 한 발 한 발 올라가기가 난감한 때문이었죠.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더라구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구간
이제 다 올라왔습니다.
지름티재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갑니다.
정상은 300m 거리에 있구요.
안개가 자욱히 끼었습니다.
빗방울도 계속 떨어지고, 바람도 불어댑니다.
바위능선을 지날 때, 바람은 더 심하게 불어대어 모자가 막 날려갑니다.
가을은 등산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가을은 말벌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라서 벌에 쏘이는 일도 빈번합니다.
말벌은 나무 위나 땅 속, 바위 틈 등 다양한 곳에 서식하므로, 지정된 탐방로로 다녀야 하며 주위를 봐가며 바위나 땅에 앉도록해야 해요.
벌 쏘임을 예방하려면 모자를 쓰거나 밝은 색의 옷을 입는 것도 좋답니다.
가을철에는 뱀도 조심해야 합니다.
보통 살모사류는 가을철에 새끼를 5~10마리를 낳은 후, 겨울잠에 들기 전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활동을 더 늘리는 습성이 있으므로 독사를 만났다면 위협하지 말고 피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해요.
말벌에게 쏘이면 즉시 머리를 보호하며, 현장에서 20~30m 이상은 벗어나는 게 좋답니다. 그런 다음 벌에 쏘인 자리는 차가운 물로 씻어 낸 후 병원으로 가야 하구요.
독사는 種(종)에 따라 피부괴사, 가슴 통증, 심근경색, 쇼크사 등 치명상이 우려되므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대요.
가을철 산행할 때는 독성생물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주위를 잘 살펴가며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 몰운대 산행하던 날, 앞서가던 일행이 실수로 머리위의 나무에 있는 벌집을 건드리는 바람에, 뒤에 가던 일행 2명은 벌에 대여섯방 쏘여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간 일도 있었거든요.
벌에 쏘이고 나자 1명은 심장이 조여드는 듯 한 통증을 느끼고, 1명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맥이 빠지더라지 뭡니까.
다행히 인근의 보건소와 읍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별탈 없었지만, 산행할 때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해요.
안개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치는, 먹으로 그린 한국화를 보는 것 같으네요.
바위틈에서 자란 풀도 붓으로 쓱쓱 그린 것 같구요.
보라색 산부추꽃이 가을비에 함초롬히 젖어갑니다.
와! 이 몽환적인 풍경 좀 보세요.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12시 20분.
사진 한 장은 찍어야겠죠?
희양산 일대는 봉암사 사유림으로 입산 통제구역이랍니다.
이 넓직한 바위 아래에는 봉암사가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위험하다고 쳐 놓은 가느다란 禁줄만 보며 돌아섭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정상에서 조망은 장쾌하고 아름답다고.
발 아래로 봉암사와 봉암용곡이 보이고, 그 너머로 대야산과 속리산 줄기가 날카롭게 솟아있는데, 서쪽으로는 장성봉, 악희봉, 군자산 등 충북 내륙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동북쪽 조망은 끝없이 펼쳐지는 백화산, 운달산, 주흘산 줄기가 연꽃잎이 피어난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그러나 오늘에 보이는 건 잿빛 하늘 뿐,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뒤늦게 올라 온 후미팀
빗줄기가 더 거세져서 비옷을 꺼내 입었지요.
다시 지름티재로 왔습니다.
여기서 성터를 지나 계곡길을 걸어서 은티마을로 내려갑니다.
지름티재 갈림길에서 10분정도 내려가면 자연석으로 쌓은 성터를 만납니다.
희양산성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있는데요,
희양산성은 해발 988m의 희양산 주봉 뒷편 산기슭에 있는 성으로, 험준한 계곡의 지형을 이용해 쌓은 石城으로 높이는 1~3m, 폭은 4m이며 대략 145m가 남아있답니다.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짐작해 보건대, 동국여지승람에는 '가은현 북쪽 15리에 옛 성이 있으니, 삼면이 모두 石壁이며 옛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하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曦陽古城은 가은폐현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삼면이 모두 석벽이다'고 했대요.
실제로 북족은 큰 돌로 축조되었으며 주변에 군창터 등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 성에 대해서는 신라말에 견훤이 군사를 보내 축조했다는 설과, 신라 경순왕 때 축조했다는 설이 있는데 경순왕과 대적하던 견훤이 가은현을 포위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얘기와, 경순왕이 봉암사로 피신했다는 전설로 미루어 볼 때 경순왕 때 축조했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다고 하죠.
성터를 지나면서 급경사가 시작됩니다.
가을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비 맞으며 걷는 발걸음도 무겁고, 비에 젖은 마음도 무겁습니다.
그런데도 급경사는 계곡에 접어들 때 까지 계속됩니다.
길도 형편없어요.
층층히 쌓아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
조각 조각 이어붙인 것 같은 바위
계곡에 당도했지만, 바짝 마른 계곡은 물도 하나도 없군요.
기분이 꿀꿀하다 싶을 때 보이는 마을 입구.
다시 기운이 납니다.
머리도 상쾌해지는 군요.
비도 그쳤습니다.
비에 젖어도 꽃은 예쁩니다.
늦은 오후에도 나팔꽃은 피어있습니다.
마을길을 걸으면서 둘러 본 山은,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았습니다.
백두대간 희양산(999m) 자락에 위치한 은티마을은, 풍수지리학상 자궁혈(子宮穴) 형상을 이루고 있어 천지간(天地間)의 기(氣)를 모아 생명 잉택(孕宅)의 땅이랍니다.
옛 문헌 동절목(1812년)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해요.
조선 말기 천주교의 탄압 때 또, 일제시대 의인(義人)들의 은신처였으며, 6.25사변 때에도 화를 면했다는 명당 중의 명당(明堂)인 땅이라 하죠.
자궁혈(子宮穴)의 땅은 포근하고 물이 많아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지만 기(氣)가 너무 세다는 설에 따라, 마을 입구에 소나무 숲(陰毛에 해당됨)을 가꾸고 남근석(男根石)을 세워 남녀 간 기(氣)의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어서, 은티마을에 발길만 들여놓아도 무병장수(無病長壽)의 복(福)을 누린다고 합니다.
또 남근석 앞에서 남자가 정성을 들여 기도를 올리면 구구팔팔(九九八八) 하게 되고, 여자가 남근석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은티마을이랍니다.
마을에서는 2015년부터 정월 보름날(예전에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에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고제(洞告祭)를 올리는 풍습을 전승(傳承)하고 있는데, 이 동고제(洞告祭) 터는 2016년 충청북도 풍경이 있는 마을가꾸기사업으로 복원되었다 하네요.
가을에 생산되는 사과가 유명한 은티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입니다.
이 소나무는 수령이 400여년이 된 보호수입니다. 높이 18m, 둘레가 5,76m나 되는데 마을에서 보호하는 소나무는 16본이나 된다고 해요.
가을비 맞으며 산행한 희양산도 여기서 마칩니다.
비가 내려서 좀 경황이 없었던 산행이긴 했어요.
오늘은 8.3km를 걸었군요.
4시간 20분이 소요되었구요. 평균속도는 1.9km였습니다.
산행코스: 은티마을~ 지름티재~ 희양산~ 은티마을 (8.3km, 4시간 2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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