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0
떠나는게 못내 아쉬워, 여름은 자꾸만 머뭇거립니다.
9월도 열흘째 접어 들었건만, 양구 '사명산'으로 가는 날에도 더위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가 봅니다.
도무지 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오늘은 아침부터 땀이 날 정도로 더워요.
10시 40분
양구군 양구읍 웅진리 삼거리 '무량사'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등산로 안내판을 한번 보고
포장도로를 따라갑니다.
포장도로를 걷는 건 참 재미없죠.
지루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발바닥이 아프거든요.
길 왼편 아래에 선정사 절이 보입니다.
길 아래편 평지에 절이 있는 건, 과거에는 여기가 산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절 윗쪽으로 길이 나는 바람에 지금은 이렇게 된 거 겠죠?
특이한 모양의 불상이 보입니다.
불상도 세워야겠고, 탑도 세워야겠는데 이리저리 여건이 안되어 그런건가 아니면, 특별한 뜻이 있어 그런건지 몰라도 불상 머리위에다 탑을 얹어놓으니, 불상이 무척 힘들어 보이는 것 같군요.
이런 형태의 탑은 여기와서 처음 봅니다.
한참을 걸어온 것 같습니다.
여기가 용수암이죠?
기도 차량외에 일반 차량은 왼쪽으로 가라는데, 왼쪽은 포장된 작은 개울을 건너는 車길이고 그 길은 임도의 시작인 거 같아 보입니다.
여기 이 갈림길에서는 산 밑으로 난 길로 갑니다. 용수암 쪽이죠.
웅진리 삼거리에서 여기까지 포장도로를 2.7km 걸었군요. 정상까지는 2.5km 남았네요.
풀이 무성한 길에는 배초향꽃이 피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파란 철문안으로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이 철망으로 만든 울타리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막기 위해 산돼지가 내려오지 못하게 친 겁니다.
산행의 시작은 이제부터입니다.
철망 왼쪽은 계곡입니다. 길은 썩 좋지 못하군요.
자갈돌로 되어 있는데다가 풀들이 마구 마구 자랐어요.
축축하고 찌찌~한 풀숲에는 물봉숭아가 군락을 이뤘구요.
길이 정말 형편없군요.
블랙야크 '명산 100플러스'와 '2024 강원20챌린지'에도 포함된 나름대로 이름있는 山인데, 등산로가 이렇게 나쁜 길도 있나 싶습니다.
투구꽃의 일종인 진범도 꽃이 핍니다.
철문을 나와서도 철망은 계속 처져있습니다.
돌맹이는 이끼가 끼어서 걸음도 조심스럽고.
풀이 멋대로 자란 자갈길은 계속 이어집니다.
임도를 만납니다.
용수암 직전의 왼쪽에서 시작 된 임도가 빙빙 돌고 돌아 여기서 만나는 군요.
임도를 가로지른 다음부터, 등산로는 돌(石) 길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어떤 이는 걷기좋은 길이라고 합디다만, 무척이나 힘드네요.
바람도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는 그야말로 솥에다 삶는 듯 합니다.
발걸음은 자꾸만 더디어 지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모두 다 지칠대로 지쳐서 허덕 허덕합니다.
정상을 1.5km 남겨둔 여기까지 오면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옷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습니다.
국화꽃을 닮은 참취가 반갑다고 인사하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계속되는 오르막은 영월 '장산'보다 더 가파른 것 같군요.
처음 가 보는 산이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사명산은 양구군 양구읍과 화천군 간동면 그리고 춘천시 북산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랍니다.
정상에서는 양구군, 화천군, 춘천시 멀리는 인제까지 보인다고 사명산(四明山)이라 하며 소양호와 파로호도 보인다 해요.
웅진계곡은 진달래와 철쭉 가을의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고도 합니다.
설경도 아름다워서 겨울산행지로 좋다고 해요.
그리고, 이 산은 임진왜란 당시 이 고장 사람들이 왜군에 대항해 싸운 전장이기도 하답니다.
산행은 대부분이 오늘 우리가 그러했듯이, 선정사를 기점으로 해서 계곡길을 지나 능선을 타는 것이 보통이구요.
이 사명산도 산불예방을 위해 2월 1일부터 5월 15일,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는 출입을 통제한답니다.
참으로 힘든 길입니다.
1,200m 가까운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도 힘들고, 푹푹 쪄대는 날씨도 무척 힘들게 합니다.
한발 한발 떼는 발걸음이 이렇게 까지 힘든 건, 살다 살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처음엔 재잘대며 함께 걷던 일행들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혼자서 헉헉대며 갑니다.
그러다 조금은 평평한 곳에서 간식을 먹습니다.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
'빵'이고 '포도'고 '바나나'고 '사탕'이고, 하여튼 점심밥을 제외하고는 다 꺼내놓고 먹어댑니다.
그렇게 쉬며 먹으며, 속도 든든히 채우고 휴식도 어느 정도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가파른 길과 무거워진 몸은 마음대로 진전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산을 다녀간 어느 블로거는 이 길이 '육산이라서 걷다 좋다'고 했던데, 제대로 표현한 게 맞나 싶습니다.
올 여름은 우리모두를 다 힘들게 했습니다. 폭염은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일 때를 말하는데, 강릉의 폭염일수는 9월 1일 현재 32일이나 되어 1973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답니다. 30년 평균값인 12.7일보다 2.3배 많았고, 1994년과 2013년의 26일보다 훨씬 더 많았던거죠.
지난 5월 23일 강릉은 처음으로 폭염이 관측되었고 폭염일수는 32일, 열대야 발생일수는 35일이나 지속되어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강릉뿐만 아니라 강원지역 곳곳에 열대야는 계속되었고, 지금도 수도권에서는 열대야가 계속된다는 소식입니다.
열대야는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때를 말하는데요, 강릉에서는 지난 6월 10일 첫 열대야가 발생했으며, 7월 19일 부터 8월 7일까지 20일간 연속으로 열대야가 나타나 지속일수 집계 이래 가장 길었다고 해요.
1912년 열대야 집계가 시작된 이후 113년 중 가장 많았으며, 2022년에는 29일을 기록했답니다.
폭염과 열대야는 영서지역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죠.
원주는 폭염 26일과 열대야 24일을, 춘천은 폭염 23일, 열대야 18일을 기록했다고 해요.
이상하게도 올 여름은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에 가뭄이 들어서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7월 23일경 장마가 끝난 후 여태까지 비가 한방울도 안왔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농작물을 비롯해서 주변의 나무들도 시들 시들 말라갔고, 시민들의 식수원인 '오봉저수지'도 저수율이 30%로 내려가는 바람에 제한급수 얘기도 나오고, 수영장도 문 닫았으며 농업용수도 제한했었죠.
그러다 8월 말, 겨우 먼지를 재울 정도의 소나기를 한차례 뿌린 태풍 '종다리'와 '산산' 덕분에 식물들은 살아났고,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의 구절초가 한송이 피어났습니다.
구절초의 유래에는 몇가지가 있죠.
하나는 음력 9월 9일날 꽃과 줄기를 함께 잘라 부인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한약재로 이용한데서 구절초(九折草)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
두번째는 5월 단오에는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 오면 아홉마디가 된다하여 구절초(九折草)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
그리고 세번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약으로서, 줄기에 아홉 마디의 능(稜, 모서리)이 있으므로 구절초(九折草)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구절초는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 꽃이 피며, 가지를 많이 치는 쑥부쟁이에 비해 구절초는 한,두개의 가지를 칩니다.
12시 50분
드디어 능선에 올랐습니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서 더는 걸어 갈 기운이 없군요.
패잔병같이 축 쳐진 모습으로 걷다가
100m 앞에 정상이 있다기에 마지막 기운을 내 봅니다.
13시
정상입니다.
일단은 이쪽 저쪽 사방을 빙 둘러봅니다.
사방이 막히지 않아 조망은 좋군요.
1,198m의 정상.
하산은 '수인리' 방향으로 갑니다.
13시 15분.
너도 나도 사진찍는다고 부산을 떨어 조용히 밥먹을 곳도 없어서, 점심을 거른 채 내려갑니다.
흥덕사 방향으로 내려가요.
정상에서 400m쯤 내려오면 헬기장이 있는데, 풀이 키만큼 자라서 헬기장이라는 걸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헬기장 끝에는 용수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구요.
오늘은 그리로 하산합니다. 그 길은 임도에 다다르기까지 무척이나 가파른 길이었지요.
그렇지만 몸 상태가 좋지않아서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는, 이처럼 짧은 길로 내려가는 게 좋습니다. 산행은 무리하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당초에는 문바위와 7층 석탑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갈 계획이었으나, 오늘따라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 무리하게 산행했기에, 계획을 수정한 것인데요,
내려가면서 보고 싶었던 문바위와 칠층석탑(칠성탑)은 다른 이의 사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사명산 산행은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뭔가 도중에서 툭하고 끊긴 것 같은,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산행코스: 웅진리 삼거리 - 선정사 - 용수암 - 임도 - 월북현 삼거리 - 정상 - 헬기장 - 용수암 ( 7km, 5시간 소요)
'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산행은 즐겁다 - 원주 감악산 (1) | 2024.10.13 |
---|---|
희양산에는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다. (0) | 2024.10.05 |
가을바람, 가을꽃, 영월 <장산>에는 가을이 온다. (2) | 2024.09.07 |
늦여름의 강릉 모산봉 (0) | 2024.09.01 |
괴산 <칠보산>은 무지하게 더웠다. (0) | 2024.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