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 후 시모노세키로 갑니다. 여기는 기타큐슈가 아닌 혼슈에 속한 지역, 야마구찌 현인데요,
조선통신사가 객관으로 머물던 '아카마 신궁'으로 가는 겁니다.
아카마신궁은 도로옆 언덕에 있습니다.
아카마 신궁( 赤間神宮 아카마진구)은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 있는 신사로 일본 안토쿠천황을 모시는 신사입니다.
에도시대까지는 안토쿠천황 어영당(安徳天皇御影堂)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사찰인 아미타사(阿彌陀寺)였으나, 일본제국 시기 폐불훼석의 일환으로 인해 신궁으로 개조한 것이죠.
안토쿠천황은 세살때 천황이 되었고 여섯살때 죽었는데요,
겐페이전쟁의 단노우리해전에서 다이라가문과 함께 있던 어린 안토쿠천황에게는, 어머니 도쿠시와 외할머니인 니이노아마가 있었는데
다이라 가문의 패색이 짙어지자, 니이노아마는 보검을 허리에 차고 삼종신기와 안토쿠 천황을 품에 안고 뛰어내릴 각오를 하며, 외손자 안토쿠천황을 껴안았대요.
그리고 안토쿠 천황에게 용궁으로 간다 하고 함께 뛰어내렸다 해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안토쿠 천황을 기리는 신사로 아카마 신궁이 건설되었다고 하며, 이후로 아카마 신궁은 조선통신사의 혼슈지역 첫 방문지이자 숙박지이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찰이었고, 메이지 유신시기에 신사로 개조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경내 전각들이 전소되었던 것을 1965년에 재건했다 합니다.
아카마 신궁은 다른 신궁과 다르게 유난히 붉은 색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류구의 양식이랍니다.
류구는 용궁의 일본식 발음이며, 일본 신화속에 등장하는 해신의 궁전이라 해요. 안토쿠 천황이 죽어서 용궁으로 간다는 전설을 반영한 것이죠.
현재 신궁 안에는 안토쿠천황의 능인 아미다지능(阿彌陀寺陵)이 있구요.
이 아카마 신궁은 단노우라 해전이 일어난 단노우라근처에 있는데, 단노우라 해전에서 죽은 다이라가문 사무라이들의 영혼이 게 딱지로 들어가 헤이지 게가 만들어졌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겐페이 전쟁(源平合戦 겐페이 캇센)는 1180년부터 1185년까지 헤이안 시대 말기에 벌어졌던 내전인데,
이 전쟁에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헤이시(平氏)와 지방세력인 겐지(源氏)는 일본 각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고, 결국에 헤이시는 패배하고 겐지가 전국을 장악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되었죠.
그리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막부의 수장인 쇼군이 되었다죠.
"겐페이"는 원평(源平)입니다. 기타큐슈가 북 구주(北 九州)이듯이..
아카마신궁은 귀가 없는 한 스님의 얘기가 유명합니다.
장님인 스님은 노래를 구슬프게 잘 불렀답니다. 이 스님이 노래를 하면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어느날 스님이 비파를 치며 노래를 할 때, 너무도 노래를 잘 부르니까 한 사람이 우리집에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 청했답니다.
매일 밤마다 와서 노래를 부르되, 네가 와서 노래하는 걸 절대로 어디가서 얘기하면 안된다고 하기에
장님스님은 그리하겠다면서 밤마다 그 집에 가서 노래 불렀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스님이 볼 때는, 이 장님스님이 이상하더래요.
밤이 되면 어딜 가는데 '어디 가냐?'물으면 '아무데도 안간다'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뒤를 밟았더니, 한 무덤앞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는 거죠. 알고보니 '우리집에 와서 노래 불러 달라'던 사람은 귀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안토크천황'의 묘지에 가서 노래를 불렀던 거죠.
스님은 이 '장님스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거기가 어딘줄 아느냐' 하자 '모른다'는 대답에, '너 귀신이 데려가니까 절대로 가지마' 하니까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귀신이 또 올지도 몰라, 이 스님이 외출하면서 '장님스님'의 몸에 불경을 써 놓았답니다. 귀신이 와도 어쩌지 못하도록.
그런데 실수로 한 곳, '귀'에다 불경을 쓰는 걸 빼먹었답니다.
스님이 출타하고 밤이 되자 귀신이 찾아왔고 '우리집에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보니까, 장님스님의 온 몸은 전부 다 불경이 써 있는데, 그때에 귀신의 눈에 다른 건 다 안보이는데 '장님스님'의 귀가 보여, 귀신은 스님의 두 귀를 떼어가 버렸습니다.
앞이 안보이는 스님은 귀까지 없자, 듣지를 못했고 그래서 노래는 더 구슬펐다고 해요.
아마도 아카마신궁은 이 '장님스님'의 얘기로 인해 더 유명한지도 모릅니다.
아카마신궁은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곳입니다.
조선통신사가 와 보니 일본 길거리에는 쓰레기하나 없이 깨끗하더랍니다. 그때부터 일본은 깨끗한 나라로 인식되었다고 해요.
아카마신궁 옆으로 돌아가 보면 기도하는 곳이 있고
평씨 가문 묘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겐페이 전쟁 때 의 그 헤이시(平氏)와 관련이 있지않나 싶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귀(耳) 없는 장님스님을 모셔놓은 곳도 볼 수 있죠.
귀없는 장님스님을 모신 곳은 신궁 옆으로 가야만 봅니다.
도반 스님의 실수로 귀에 불경을 써 놓지 않아, 귀신이 떼어간 장님스님의 두 귀.
사람들은 아카마신궁에서 결혼식도 하고
신궁 아래로 내려오면 피로연 장소도 있습니다.
아카마신궁 출입문의 국화 문양
일본에서 국화문양은 일반인들이 쓸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국화(菊花)는 황제와 황실의 상징이며, 황제와의 관계를 의미하므로 아무데서나 쓸 수 없는겁니다.
그리고 벚꽃은 일본의 대표적인 꽃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 일본의 국화(國花)를 벚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에는 나라꽃 '국화(國花)'가 없습니다!
아카마신궁(赤問神宮)을 나와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를 보러갑니다.
여기 우체통은 파란색입니다.
아마도 시모노세키의 우체통 색깔은 파란색인가 봅니다.
도로를 건너 바닷가쪽에 기념비가 있습니다.
정치가였던 김종필씨가 쓴 글씨체가 아주 멋있습니다.
모지항에서 식사를 하고 건너왔던 다리.
날씨가 온화한 지역이라 종려나무가 잘 자라는군요.
가라토시장 입구 가까이의 해변에는 어부와 복어 동상이 있습니다.
모지항과 시모노세키는 복어로 유명한 곳이지요.
일본에서 복어가 가장 많이 잡히고 유명한 곳으로 저렴하게 복어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가라토시장
가라토 시장으로 들어갑니다.
시장은 이 건물안에 있는데요, 수산물과 잡화를 팔고있는 이 시장은 규모도 작고, 파는 물건들도 별로 없으면서 장소도 협소해서 둘러보기가 좀 그렇더군요. 술안주로 할 싱싱한 횟감을 사려고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건물밖에는 이름모르는 노란꽃이 피었습니다.
보라색의 이 꽃도 낯이 서네요.
우리를 태운 투어버스는 벳부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벳부까지는 2시간 걸립니다.
그럼, 이따가 가마도 지옥온천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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