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3
석굴암으로 향합니다.토함산을 내려오면 석굴암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드군요.
진행방향 오른쪽에는 주차창이 있어요.
석굴암 가는 길은 평지.
깨끗하고 편안한 신작로(新作路)입니다.
신작로는 말 그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새로 만든 큰길을 뜻하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들은 마을앞의 큰길을 신작로라 부르며 자랐기에 오늘날에도 차가 다닐 정도의 큰길이면 '신작로'라 합니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답니다.
'석굴', '조가절'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석굴암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석불사'라는 현판도 발견되었다고 해요. 석굴암은 1913년 이후 일제가 해체하고 조립하고 수리하기를 세차례나 했답니다. 그 후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저절로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지금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갖가지 장치를 해 두고 있대요. 즉, 부실 복원에 따른 습도 문제로 유리벽으로 막아 보존하고 있답니다.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하는 석굴암은, 신라 예술의 극치이자 동양 불교미술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어서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습니다.
1962년 12월 20일 경주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구요.
얘기가 중복됩니다만,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대요. 돌로 이루어진 절이라는 것이죠.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고 해요.
석굴암 가는 길에는 군데 군데 항아리가 놓여있어 가까이 가 봤습니다.
그랬더니 휴지통으로 쓰는 항아리네요.
누가 휴지통으로 항아리를 쓸 생각이나 했겠어요?
석굴암만의 특색있는 휴지통인거였죠.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는 안 될 경주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 지언정 세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1991. 2월 석굴암 연구회 세움"
가까이서 읽어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경덕왕 재위 당시 토함산 중턱에는,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석굴암에 도착했습니다.
국보 제24호를 마주한다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서 올라가 볼께요.
먼저 석굴암에 대한 안내문과 이해를 돕기 위한 석굴도를 보고
돌계단을 올라갑니다.
석굴암 가는 길 한쪽에는, 석굴암을 수리할 때 교체된 구 부재들과 주변 석물들을 소중하게 보관했습니다.
석굴암을 만들던 신라인들의 손길이 스며있는 귀중한 유물들이라고요.
관람안내문도 읽어보고
두근 두근하는 가슴으로 암자 내부로 들어갑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360여 개의 넙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이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라고 합니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구요,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있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는데요,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본존불만큼 강한 인상을 보여주는 금강역사상.
나신의 상반신에 근육이 도드라지고, 불끈 쥔 주먹을 쥔 채 서 있는 모습은 지금이라도 당장 밖으로 튀어나올 듯 한데,
'금강역사'의 임무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수호하는 것이었답니다.
부처님 일대기를 표현한 간다라 미술에서 흥미로운 점은, 부처님 열반 후 사리분배나 분사리 귀성 등에서는 '금강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해요.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는 지켜야 할 존재인 부처님이 사라지면서, 금강역사 또한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석굴암 내부는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래좌상을 포함한 몇장의 내부사진들은 internet에서 가져 온 사진들입니다.
석굴암 내부는 통로가 너무 좁아서 본존불을 오래 볼 수 가 없었습니다. 사람하나 지나 갈 정도의 여유공간이었기에 사람들에 떠 밀리듯이 밖으로 나왔지요.
출입통제구역인 여기는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같았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 한켠에는 '수광전' 단청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했구요.
올라가는 길에도 있듯이 내려가는 길 한쪽에도 석물들을 한데 모아놓았어요.
아랫쪽에는 연등을 접수하고, 한쪽에서는 기념품을 팔고 있네요.
아이스크림과 커피와 캔음료 자판기도 있구요.
맑은 물이 샘솟는 감로수도 있어요.
말 그대로 어찌나 차고 시원하면서 물맛이 좋던지, 빈 물병에 물을 가득 담았습니다.
甘露水란 원래 불교에서 나온 말이라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욕천(六慾天)의 둘째 하늘인 도리천에 있는 달콤하고 신령스런 액체를 ‘감로’라 한다는데요, 이 액체는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살아 있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있고 죽은 이는 부활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불사주(不死酒)로도 일컬어지는데, 때로는 부처의 교법(敎法)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합니다.
돌로 만든 단아하면서도 근엄한 부처님의 모습을 보려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왔더군요.
석굴암을 떠납니다.
설렘 가득안고 찾았던 석굴암.
신라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인 석굴암을 보았다는 뿌듯함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석굴암주차장에서 석굴암을 둘러보고 온 시간은 1시간 정도.
탑동마을에서 토함산을 오르고, 석굴암 관람까지 소요된 시간은 3시간이였습니다.
석굴암 관람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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