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9
햇빛이 환하게 부셔지는 아침, 화천 용화산을 가 봅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은 정겹게 보입니다.
오늘의 산행은 절골코스입니다.
용화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다가 사여골에서 하차, 절골- 고탄령 - 정상 - 큰고개로 내려온답니다.
버스는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용화산 자연휴양림가는 길은 노폭이 너무 좁아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버스가 위태 위태합니다.
모퉁이를 한번에 돌아가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후진, 전진, 후진, 전진하는 버스.
모두 다 조마 조마 마음을 졸이면서 가다가, 사여골 개울가 길옆에서 하차했습니다. 휴~
10시 35분.
'소나무산장' 팻말이 보입니다.
오늘가는 이 코스도 처음으로 가 봅니다.
과거에는 큰고개에서 큰고개로, 양통마을 들꽃펜션에서 정상을 거쳐 배후령으로, 큰고개에서 배후령으로 가곤 했었는데 오늘 또 새로운 길을 걸어보는 군요.
길 윗쪽의 이 집은 외벽이 흰색이라 '하얀집'이라 하구요.
들머리의 등산안내도를 보면서 어느 길로 갈까 의논합니다.
처음 계획은 고탄령으로 가려고 했지만 등산로가 점선으로 찍혀있어 길이 없는 것 같으니까, 중간부분 '합수머리'를 지나서 '안부'로 올라가자고 결정을 했죠.
모두 다 이 길은 처음이라서 약간의 두려움과 새로운 길을 걷는 기대감으로, 마음은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도 미묘합니다.
우리를 길에 내려 준 버스는 큰고개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도로가 좁아서 회차하지 못하고 휴양림까지 가서 돌아간다 하고,
우리는 산뜻하지 못한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길 아래는 개울이네요.
수량(水量)은 그리 많지 않은데도 개울물은 힘차게 소리내며 흐릅니다.
출발한 도로쪽을 돌아보고...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집 옆으로 갑니다.
농막도, 별장도, 산불감시초소도 아닌 집.
외부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마당으로 가는 길은 쇠파이프로 막아놓았습니다.
그 작은 집을 지나자 '고탄령' 방향 팻말이 보입니다.
합수머리에서 안부로 가기로 결정했던 그 길은, 좀 전의 작은 집 마당을 지나서 올라가는 거 였네요.
그런데 그쪽으로는 가지 못하게 막아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맨처음의 계획대로 고탄령으로 갈 수 밖에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군요.
묘지를 지나고
개울을 건너고
희미한 길을 따라갑니다.
아주 가끔씩, 우리들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이쪽 코스를 잡았다가 정상으로 간 사람들이 있어 생겨난 희미한 길.
개울을 또 건넙니다.
개울가 바위위에는 작은 돌탑이 있군요.
아마도 한여름에 들머리의 펜션에 온 사람들이 계곡을 찾았다가 하나 둘, 돌을 올려놓은가 봅니다.
개울을 건너고
또 건너고
건너면
또 건너고
몇개의 개울을 건너
숲으로 접어듭니다.
좀 너른 곳에 다달았습니다.
약간의 돌들이 있어 화전민들이 살 던 집터인가 생각했는데,
아하! 여기가 법화사가 있던 절터였네요.
절골이란 이름도 그래서 생긴거고
절터까지는 희미하나마 그런대로 길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법화사 절터를 지나면서는 길이 없어 이리갔다 저리갔다, 우왕좌왕합니다.
이리갔다가 되돌아오고, 저리갔다가 되돌아오고 그야말로 오합지졸 [烏合之卒]이 따로 없습니다.
그냥 무작정 윗쪽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 그래도 어딘가에는 길이 있을테니까 찾아보자는 사람.
이정표도 리본도 하나없는 산 중에서 갈팡질팡하면서 희미한 길을 찾아서 갑니다.
화천군에서는 이 길에 이정표를 다믄 다믄 세워 뒀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낙엽은 수북히 깔려있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않아 길이 없어서 헤매기만 하는데,
들머리에 딸랑 등산안내도 하나만 세워둔다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산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속에서 막 치밀어오릅니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새끼 잡는 격으로 정말로 어찌어찌 헤매다가 능선위로 올라왔습니다.
1시간 20분만에 올라온 거죠.
여기가 고탄령이랍니다.
누군가 매직펜으로 '고탄령'이라 써 놓았습니다.
'용화산 10지점' 고탄령안내판에서 오른쪽은 배후령으로 가는 길.
왼쪽은 정상가는 길입니다.
길이 없어 헤매던 답답했던 속이, 능선에 올라서자 구름걷히 듯 맑아옵니다.
각시붓꽃도 눈에 들어옵니다.
산철쭉도 이제야 눈에 들어오고...
이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면, 이 절골코스는 절대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능선에 다다를때 까지 고생하던 생각을 하면 두번 다시 이쪽길은 오고 싶지 않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서 정상까지 가는 길이야 용화산의 암릉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재미난 길이지만,
용화산 등반의 묘미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큰고개 - 배후령 코스를 추천합니다.
이길, 저길 다녀봤지만 그 길이 제일 좋은 거 같더라구요.
용화산에는 산철쭉이 지금 한창입니다.
산철쭉 군락이 아니라 등산로 양쪽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봄이 왔다고 너도 나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거든요.
아까까지의 그 어둡던 마음이 연분홍 산철쭉에 가슴속까지 화사해지는 것 같습니다.
용화산(龍華山)은 용이 되기 위해 지네와 뱀이 싸운 산이랍니다.
아주 오랜 옛날,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 이긴 쪽이 용이 되어 승천하기로 했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 싸움의 승자는 지네였는데, 지나던 선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모를 죽인 늙은 뱀의 원수를 갚았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시고
신록의 나무숲을 스치는 바람은 상큼하고 향긋합니다.
발밑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도 기분 좋은 한낮입니다.
암릉구간입니다.
5년전 가을비 내리던 날에도, 정상에서 배후령으로 내려가면서 이 구간을 지났었는데,
마치 처음 오는 것 마냥 새롭습니다.
암벽등반을 하는 듯한 이 스릴감.
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행복호르몬 도파민도 마구 마구 분비되구요.
산행하는 즐거움이 최고조로 달하는 곳.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얼마나 멋진데요!
연두색 숲따라 몸도 연두색으로 물들어갑니다.
싱그러운 5월, 우리의 마음도 푸르러가고
눈에 보이는 것 모두는 연두색 물결.
사각으로 된 벤치에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토마토도 먹고,
과일도 먹고 .
노랑제비꽃이 피었습니다.
이른 봄, 3월 초순에 산에 오르면 피어나던 꽃인데 5월에 피다니, 용화산에 봄은 늦게 늦게 오고있습니다.
내려가는 사람, 올라오는 사람.
멀리 전주에서 산악회 회원들이 용화산을 찾았네요.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들머리에서 출발할 때는 이 안부로 올라가자고 했었는데...
정상가는 길은 안부 팻말있는 곳에서 오른쪽길로 빠져야 하는데,
능선을 곧장 가던 그 방향으로 길이 있어 그리로 가 봅니다.
바위옆으로 길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길 따라 위로 올라갔는데
길이 없다고 도로 내려옵니다.
철쭉꽃은 피어나는데,
안부로 다시 와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
족도리꽃이 수줍게 피었네요.
자세히 보아야 눈에 띄는 꽃입니다.
연두색으로 물든 산과
심심할 틈이 없는 용화산 산행은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사진이 많거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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