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충주 <대미산>.<악어봉> - 평범한 산, 평범한 산행이 싫다면 이 山 어때요?

adam53 2023. 3. 22. 22:49

2023. 3. 21 춘분

오늘 가는 산은 충주 대미산입니다.

10시 40분.

충주시 살미면 내사2리 진말에서 하차를 하고

몽선암, 우리슈펴 앞길로 갑니다.

보리가 파릇 파릇 자라고 있는 봄날.

약간은 서늘한 듯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발걸음도 가볍게,  씩씩하게 걷습니다.

몽선암, 콜리네 민박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서...

서울 성락교회 충주수련원을 지납니다.

10여년 전, 등산이란 걸 처음 시작할 무렵 여기 대미산을 왔었습니다. 대미산보다도 악어봉을 가려고 했었구요.

봄비가 그친 직후라서 상쾌한 아침이었죠. 

그때도 과수원이 보이는 시골길을 걸어 산길로 접어들고,

한참을 가다가 '대미산'이라 써 붙인 나무에서 부터는 길이 없어 길 찾느라 헤매다가,  그만 '내려가자'고 해서 길도 없는 가파른 산을 내려온 기억이 있습니다만, 

오늘 걷는 이 길은 그 때의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인가 봅니다.

처음가는 것처럼 아주 낯이 설어요.

길가에는 산수유가 활짝 피었습니다.

아담한 콜리네민박을 지나고

빛바랜 '몽선암' 표지판을 지나 조금 가파른 포장도로를 훠이 훠이 올라가

몽선암에 왔습니다.

암자에 도착을 하니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키를 넘는 돌탑사이 돌계단을 올라왔는데,  암자 오른쪽으로는 넓직한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암자를 힘들게 올라와서 그런가, 앞만 보고 걸어서 그런가?

지난날의 그 길이 아닙니다.  이게 지금 처음부터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앞서 간 일행은 암자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어요.

우리도 그들을 따라 계단을 올라 갑니다. 

삼성각도

대웅전도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암자를 지키는 스님이 탁발하러 가셨는지, 인기척도 전혀 없군요.

대웅전 오른편으로 길이 있어 올라갑니다.

이 조용한 산밑에도 봄은 찾아왔는데,

몇년 전에도 여길 왔었던 일행이 암자 오른쪽으로 난 희미한 길을 찾아서 가는데,

한쪽에서는 그 길이 아니라고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암자 바로 뒷편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산나물 뜯으러 다니는 길인 듯, 윤곽만 나 있는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랬더니 왠걸, 시작부터 기운을 다 뺍니다.

가파른 산길을 주욱 주욱 미끄러지며 올라갑니다. 한발 올라가면 한발 미끄러지는 그런 상태였죠.

몽선암 오른쪽으로 가면 길이 좋다던데, 대미산 진행로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쪽으로 가야한다는 바람에 쌩 고생합니다.

왠지 오늘 산행도 순탄하지 않은 것같은 개운치 못한 느낌이.....듭니다.

낙엽에 미끄러지고, 돌맹이에 미끄러지며 간신히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가랑잎이 수북한 길입니다.

연분홍 진달래가 더러 보이고

노오란 생강나무도 보이는

그냥 평범한 산 같아 보입니다.

햇살은 따스하구요.

오르막이 시작되고

어우!

---------------------------  더워요.

몽선암을 오를 때 부터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한겹 한겹 옷을 벗었댔는데, 여기와서는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다 벗어버립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악어봉으로 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산을 넘어야 하는지,

그 산봉우리들은 또, 얼마나 가파르고 험한 지 예상도 못했습니다.

가랑잎은 왜 그리도 많이 쌓였던지,

해마다 이만큼의 낙엽이 떨어져서 썩었다면 흙이라도 기름지고 비옥할텐데 그런 건 전혀없습니다.

낙엽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져서 걷기도 불편합니다.

대미산에 도착했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나무판대기(널판지)에 글씨를 써서 매달아놓은 그대로입니다.

반대편의 굴참나무에도 대미산이라고 붙여 놨는데,  산 높이가 다르네요.

어느 것이 맞는걸까요?

대미산에서 악어봉으로 가는 길은 비법정탐방로입니다.

그래서 충주 市에서도,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도 관심을 갖지않아,

산객들이 다니면서 생긴 이 길에는 이정표 하나 없고, 등산로도 전혀 정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비탐>이라 다니면 안되는 곳이라고 무관심한 것이겠죠.

추위를 견디며 봄이 오기를 기다리던 꼬리진달래잎에 생기가 돕니다.

우산이 널리 보급되기 전인 60년대까지만 해도, 비가 올 때면 삿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 삿갓은 요즘의 얼굴을 가리는 크기가 아니라 어깨까지 덮을 정도의 큰 삿갓이라서, 차분하게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 않는 아주 큰 삿갓이었죠.  악어봉으로 가는 도중의 봉우리들은 그 삿갓을 닮았습니다.

뾰죽하게 올랐다가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산봉우리 하나 넘으면 또 하나 있고, 하나 넘으면 또 하나 있고 봉우리의 연속입니다.

아주 진이 빠집니다.

참나무들에 가려서 조망도 전혀 없고...

어쩌다 보이는 풍경은 이 정도.

그냥 산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가고를 반복할 뿐입니다.

저기 나무울타리안에 일행들이 있네요.

해발 617.3m 두루봉입니다.

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이런 팻말이 없다면 솔직히 이 봉우리가 두루봉인지도 모르고 갑니다.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산봉우리.

그 봉우리가 그 봉우리같은데, 봉우리 이름을 어떻게 알까요?

팻말의 나일론 끈은 끊어져있어, 나뭇가지에 걸쳐놓고

멀찍이서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어느 봉우리하나 순한 봉우리가 없군요. 

쭉 쭉 밀리며 간신히 내려갑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산행한다는 건 생각할 수 도 없는,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발목을 접지른다던가 내려굴다가 다치기 딱 알맞은 산입니다.    길 양편으로는 경사가 제법있는 그런 곳이거든요.

험한 산을 넘느라 체력은 고갈이 났습니다.

장딴지는 뻣뻣해지고 쥐가 납니다. 약을 먹어도 별 효과가 없구요, 땀은 빗물처럼 흘러내립니다.

물을 마시고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한번 다녀갔다던 일행들도 죽상입니다.

그 힘든 와중에도 봉우리를 세며 가며 가던 일행은, 우리가 넘은 산봉우리가 스물두개 였다고 해요.   그만큼이나 많았다는 거 겠죠.

하여튼 지겹도록 넘고 또 넘습니다.

저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입니다.

막상 가 보면 그런데, 여기서 바라보니 꽤 근사하고 멋지게 보입니다.

근래에 비가 온 적이 없어 대지는 바짝 메말랐습니다.

수북히 쌓인 가랑잎을 보면 산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다행하게도 요즘에는 흡연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 안심이 되긴 해요.

봄이 오면 영동지방에는 바람이 많이 붑니다.

'양강지풍 통고지설(襄江之風 通高之雪)'이라고 해서 양양과 강릉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통천과 고성지역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는 말이 있죠. 기후의 온난화로 인해 요즘에는 눈이 많이오는 편은 아닙니다만,

양양과 간성사이에 부는 바람이라 '양간지풍'이라고도 합니다.

태백산맥 서쪽에서 발생한 상층의 더운 공기와 하층의 찬 공기가 만나 동해안으로 빠르게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

그 양강지풍(양간지풍)으로 인해 봄철이면 동해안 지역에는 산불이 많이 나기에, 봄이 오면 모두 다 마음을 졸입니다.

그러다가 새잎이 돋아나고 녹음이 욱어지는 5월쯤에야 산불걱정을 하지 않고 안심을 하죠.

먼지가 풀풀 나는, 바짝 마른 가랑잎이 수북한 산길을 걸으면서 올 봄에는 어디에서든 산불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밧줄구간을 만났습니다.

아무런 손길도 닿지 않은, 생각도 못한 곳에 밧줄이 있어 내려가는 길이 한결 수월하군요.

가랑잎밑으로는 뾰죽하게 생긴 돌맹이가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한 구간만 그런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날카롭게 생긴 돌맹이들이 깔려 있어 잠시도 방심하며 걸으면 안됩니다.

낙엽에 미끄러지고, 돌맹이에 걷어 채이며 산행하노라니, 두번 다시 여길 찾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짜릿하고 색다른 경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재미없는 산은 진짜 처음입니다.

이맘때면 어느 산이나 진달래꽃 피어 예쁘지 않은 산이 없건만, 여기는 어쩌다 어쩌다가 진달래나무 한그루를 만나곤 합니다.

먼산 진달래를 보며 / 서지월

 

봄이 오면 먼산 진달래를 보며

나는 울었다.

닿을 수 없는 하늘과

닿을 수 있는 바다의 꿈으로

세월은 피었다가 지고

그대로 우리는 ‘안녕’하고 떠나지만

찾아드는 봄날 온몸 아지랑이 피고

막막한 구름 밖에 비껴선 풍경 하나

산자락에 숨겨둔 하얀 적삼 하나

꽃 좋고 시절 좋고 바람 좋지만

먼산 진달래꽃 보며

입맛 다신 쏙독새처럼 나는 울었다.

바지에 묻은 흙먼지가 보이죠?

마른 땅과 가랑잎에 묻은 먼지는 털어내어도 금방 허옇게 묻어납니다.

흙먼지를 마시며 걷느니 차라리 가랑비를 맞으며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르고 또, 오르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서 

끝이 없을 것 같은 봉우리를 넘어갑니다.

봉우리라고 하기엔 좀 뭣한 곳에 오니까, 여기가 '큰 악어봉'이라하네요.

나무사이로 호수가 조금 보이는군요.

내일(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한달은 윤달이 시작됩니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한달 주기를 기준으로 하기때문에 1년은 354일 정도 되고, 365일인 양력과 음력의 날짜에 대한 격차를 없애려고 3,4년에 한번씩은 음력이 13달이 되는데,

윤달은 1년 12달의 규칙에서 벗어 난 공달이어서 '곤란함이 없는 달'로 여겼습니다.

공달은 인간을 감시하고 심판하는 神이 없는 시간으로 여겼기에, 수의를 지어두면 오래산다고 윤달에 수의를 짓기도 하고

산소를 이장하거나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개장하기도 합니다.

산소를 이장해도 탈이 없는 좋은 때가 윤달이라는 거죠.

神이 없는 달이기에 신비롭고 주술적인 성격을 부여해서 3곳의 사찰을 돌면 극락에 간다고 하는 '3절밟기' 풍속도 있는데요,

개인이 해 오던 이 '세절밟기'는 현대의 사찰에서 하는 단체여행 '3寺巡禮'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합니다.

드디어 악어봉에 도착했습니다.

악어봉 전망대로 가는 길은 울타리로 막아놓았습니다.  아직까지는 <비탐>이라서 그런거죠.

그래서 우리는 목책을 넘었습니다.  안그러면 내려갈 수 가 없는걸요.

설치한지 얼마되지 않은,  첫눈에 봐도 금방 설치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전망대가 있네요.

충주호는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 계곡을 막아 지은 인공호수입니다.

수면면적 97㎢에 27억 5000t의 저수량을 지닌 국내에서 가장 큰 호수로 흔히 '육지 속 바다'라고 불리우는데요,

이 인공호수의 산자락들이 호수에 잠긴 모습은, 마치 먹이를 쫓아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악어의 모습을 닮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충주시가 처음 악어봉 개방을 추진한 건 2013년이라고 해요.

악어봉은 산악사진가들 사이에서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알음 알음 알려져 있었는데,  2010년대 초반 모 사진 공모전에 악어봉 사진이 입상하고, 이것이 언론과 SNS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얻었답니다.

그 후 비법정탐방로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는 명소라고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줄을 이었다고 해요.

이 게시물을 보고 비탐지역을 오르다가 국립공단에 단속을 당해 항의하는 민원이 줄줄이 생기면서, 충주시 관광과는 환경부에 악어봉 개방 건의 신청을 냈지만, 자연생태계에 대한 예측과 야생동식물의 보호대책 및 환경오염 방지대책에 대한 내용 부재로 반려되었다네요.

 

이듬해인 2014년에 일부 내용을 보완해서 재신청했지만 이번에는 악어봉 탐방로가 문제였대요.

즉, 탐방로 들머리가 지금의 '게으른 악어'카페 주차장에서 국도 36호선을 가로질러 건넌 다음, 악어봉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도로가 곡선이라,  탐방객이나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죠.

또한 악어봉 정상에서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비법정탐방로 출입이 활성화될 우려도 지적 되었다고 해요.

2017년, 이번에는 산림정책과에서 악어봉 개방 추진을 했지만 2018년까지 반려되었답니다.

그러다 충주시장, 국회의원 등이 악어봉을 직접 방문해 둘러본 후 강한 사업 추진 의지를 보여주었고, 정치권에서 힘을 실어주자 개방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되어, 2019년 10월엔 입지 적정성 평가심사가 시작되었고 그 해 12월에는 심의를 통과했대요.

2020년에는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 및 대체지정 용역을 수행했고,

이 결과에 따라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 건의 및 대체지역 지정 보완서류를 제출했는데, 이것이 일사천리로 승인이 났고,

현재는 탐방로 조성을 위한 공사를 하고 있어, 조금 전에 보았던 악어봉에는 전망대를 설치했구요.

들머리 부근에도 데크를 설치했습니다만,  악어봉에서 대미산으로 가는 방향은 막혀 있습니다. 아직은 비법정탐방로라 그런거죠.

아무튼, 악어봉 개방을 위해 많은 애를 썼던 충주市 덕분에 우리는 이 기막힌 절경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주시 관계자 여러분 고생많으셨어요!

 

악어봉에서 신당리로 내려가는 길.

900m의 거리에 탐방로 공사를 하고 있건만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은 걸려있고

완전히 바닥까지 체력이 소진된 상태의 대미산 산행은

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끝이 납니다.

뒤돌아 본 하산 길.

'게으른 악어'에서 바라봤을 때는 들머리이죠.

충주시에서는 도로를 건너야만 하는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 도로위에 육교를 설치할 예정이라 합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겹게 봉우리를 넘었던 대미산 산행도 여기서 끝냅니다.

오늘은 9.3km를 걸었는데 꼬박 6시간이 걸렸군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요?

백두대간 걷는 것도 성이 안찮다는 분은, 우리가 걸었던 이 코스를 한번 걸어보기를 바랍니다.

그야말로 액티비티한 산행이 될겁니다.

산행 후에 <게으른 악어>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집에 가는 것도 괜찮겠죠?

 

오늘 산행코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산행코스 : 충주 살미면 내사2리 - 콜리네 민박 - 서울성락교회 청소년수련관 - 몽선암 - 대미산 - 두루봉 - 큰악어봉 - 악어봉 - 살미면 신당리 게으른악어 카페주차장 ( 9.3km, 6시간 소요)

평균속도 1.9km,   최고속도 5.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