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7
오늘은 강릉시민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강릉의 안산 <모산봉>을 한번 걸어보겠습니다.
모산봉을 오르는 곳은 네,댓군데가 있습니다만
모산봉의 가장 기본적인 등산로라고 하면, '한국폴리텍3 대학교(직업훈련원)' 뒷편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일단은 한국폴리텍대학교와 샘물교회, 착한사랑요양원이 있는 갈림길에서 요양원쪽으로 갑니다.
(뒤돌아서 찍은 사진 참조)
착한사랑요양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시립복지원으로 가는 내리막이 보일꺼에요.
그 시립복지원 가는 내리막 직전 공터에 주차를 해도 되고
흰색차량이 있는 이곳에 주차하면 되는데, 주차공간은 2곳 다 합해서 스무대 정도 주차 할 수 있습니다.
---------------- 공사하느라 가림막을 설치한게 보이는데요,
여기는 지금 "강릉시 공립치매전담형 종합노인요양원" 시설 건축공사를 하는 현장입니다.
모산봉 들머리.
주차한 곳에서 여기까지는 300m 되며, 3~4분정도 걸립니다.
일단은 계단부터 올라가야죠.
처음부터 계단이라고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보기에는 저래 보여도 별거 아니거든요.
계단을 올라오면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걷습니다.
몇걸음 걷다보면 갈림길이 있는데요,
왼쪽은 진재등으로 올라 간 다음 내리막을 가야하고, 오른쪽은 그냥 순탄한 평지길을 걷는겁니다.
여기서는 진재등으로 갑니다. 너무 쉽게 가면 재미없잖아요.
모산봉은 착하디 착한, 누이같은 길입니다.
진재등에 도착했습니다.
들머리에서 5분정도의 거리에 있죠.
약간의 운동시설이 있는 여기는 해발 248m입니다.
몇발짝 앞의 저 2개의 의자가 있는 곳에서 내리막이 시작되고
내리막은 20m도 채 되지 않을꺼에요.
뒤돌아 본 내리막길.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죠?
내리막을 내려오면, 아까 그 갈라진 길이 여기서 합쳐집니다.
모산봉 가는 길은 너무나도 순해서, 누구나 찾는 산입니다.
노약자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걸을 수 있는 그야말로 산책로같은 곳입니다.
젊은이들은 성이 차지 않아서 몇번이나 왕복으로 뛰어다니기도 해요.
산짐승들의 출입을 막으려고 그물을 쳐 놓은 밭 옆으로 길이 있구요.
수로(水路) 밑으로 계단이 보이죠?
그리로 올라갑니다.
어디를 가든 계단이 있으면, 사람들은 계단을 피해서 옆으로 다닙니다.
여기 모산봉도 그렇습니다.
모래고개에 올라섰습니다.
모산봉은 여기서 왼쪽으로 갑니다.
가로등이 있는 쪽 길은 장현저수지로 가는 길인데요,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저수지도 가 보도록 할께요.
산소 옆을 지나가면
저 앞에 전화하는 사람이 보이죠?
대부분은 나무의자 2개가 있는 저 곳에서 잠시 쉰 다음, 약간 경사진 곳을 내려갑니다.
강릉지역에는 소나무가 많습니다.
강릉부근의 산들은 질 좋은 마사토로 되어있어 나무들이 잘 자라는데요, 그 중에서도 소나무가 아주 잘 자라죠.
소나무 종류는 9속 210종인데, 우리나라에는 6속 25종이 있답니다.
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반송, 줄기가 밋밋하게 자라는 금강송, 가지가 밑으로 처진 소나무 등 다양한데요.
강릉지역에는 바닷바람을 이기며 자라는 해송, 개량종 소나무인 리기다소나무, 윗부분이 방석처럼 동그랗게 된 방둥소나무, 대관령이나 대공산성 그리고 왕산 대기리에 높이 자라고 있는 적송(赤松), 임금의 관을 짤 때 쓰이던 황장목 들이 있습니다.
소나무 숲에 오면 소나무에서 발산하는 피톤치드로 인해 쾌적한 기분이 드는데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타솔의 혈중농도를 절반 이상 줄여 준다고 하며,
피톤치트를 가장 많이 방출하는 나무는 편백나무라 합니다.
그런데 2013년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박범진 교수팀이, 축령산 편백나무숲과 강릉 제왕산 소나무숲에서 세번에 걸쳐 피톤치드 양을 측정한 결과, 편백나무에서 나온 피톤치드 총량보다 소나무숲에서 나온 총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결론은 소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 양이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양보다 많다는 것이죠.
날씨가 따뜻해지자 싱그러운 이파리들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겨울만 되면 여기는 눈이 얼어 매끌매끌해서 다니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는데, 이태 전 부턴가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계단과 밧줄을 설치하므로써 이제는 한겨울에도 마음놓고 다닐 수 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계단을 내려가 도로를 건너 모산봉으로 갑니다.
버스정류장 옆으로 가요.
비닐하우스와 흰색 탑차 사이에 있는 길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파란색 기와지붕이 있는 집 마당가까지 간 다음에는, 왼쪽으로 꺾어서 올라갑니다.
이정표가 있어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죠.
모산봉은 강릉 남대천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강릉을 떠받혀주는 네개의 기둥산 중 하나인데요,
모산봉은 어머니의 품 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다고 해서 그리 부릅니다.
봉우리 생김새가 노적가리같다 하여 노적봉이라 하기도 하고,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같다고 밥봉이라고도 하며,
강릉에 인재가 많이 난다고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강릉에는 네 기둥산(四柱山)이 강릉을 떠 받히고 있어 강릉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고, 또 앞으로도 지탱해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 네개의 기둥산은 강릉을 중심으로 마름모꼴로 버티고 있으면서 터를 단단하게 다진 것인데요,
남대천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에 2개, 북쪽 2개를 합해서 네개의 기둥산이 있습니다.
먼저 유천동에 있는 땅재봉은 옛날 이 봉에 당을 지어놓고 당재를 올렸다고 당재봉이라 하다가, 나중에는 땅재봉으로 되었다고 하며,
저동에 있는 시루봉은 생김새가 시루처럼 생겼다고 시루봉이라 하고,
두산동의 월대산은 초저녁 보름달이 떴을 때 동헌(東軒)인 칠사당에서 이 달을 바라보면 마치 산 위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그런 예쁜 이름을 가졌답니다.
장현동의 모산봉은 오늘 걷고 있는 산이구요.
아무튼 모산봉은 강릉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떠 받쳐주는 봉우리로 인식했기 때문에 강릉의 안산이 되고,
그러므로 모산봉을 보고 집을 지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한답니다.
소나무에 관한 얘기를 더 해 봅시다.
임진왜란(1592년)때 왜군들이 강릉에 처들어 오지 못한 이유는 송정의 소나무 때문이라고 합니다.
松亭은 고려말 강릉 최씨의 시조인 최문한이 부인 숭명공주(고려 충숙왕의 딸)와 함께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소나무 8그루를 화분에 심어 가지고 와서 이곳에 심어, 푸른 숲을 이루어 8송정이라 하다가 나중에 송정이라 했는데요,
송정에는 소나무가 유독 많아서, 이 소나무 때문에 왜군들한테 피해를 입지 않았답니다.
왜장 풍신수길이 조선 침공을 앞두고 있을 때, 평소에 점을 좋아하는 그의 누이가 점을 쳐보니 '조선에 가서는 송(松)자를 조심하라'는 점괘가 나왔다네요. 그래서 누이는 풍신수길에게 이걸 귀뜸해주었고, 풍신수길은 참모들에게 '조선에 가서는 <송>자를 조심하라'고 엄명을 내렸대요.
조선에 쳐들어 온 왜군들이 대관령 꼭대기에 와서 강릉쪽을 내려다 보니, 울긋불긋한 군복을 입은 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더랍니다. 이에 놀란 왜장이 옆에 있는 참모에게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송정에 있는 군사들입니다'라고 했다는군요.
이 말을 들은 왜장은 출병할 때 '조선에 가면 松자를 소심하라'는 풍신수길의 엄명이 생각나, 겁을 먹고 강릉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고 말머리를 다른 데로 돌렸답니다.
이 때는 마침 가을이었기에 송정 넓은 들에 심은 수수를 베어 말리기 위해 소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이 울긋불긋해 보여, 군사들이 붉은 옷을 입고 질서정연하게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운동기구가 있는 여기서, 숨 좀 돌리고서 모산봉을 올라갑시다.
쉬지 않고 그냥 올라가도 됩니다만, 그러면 숨이 차서 조금 힘들거든요.
소나무숲 사이로 이리저리 난 길을 올라가고
대나무가 있는 곳도 지나고,
검은색 복장의 사내가 가듯이 나무계단이 있는 쪽으로 가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단이 없는 왼쪽길로 올라갑니다.
정상 바로 밑 왼쪽으로는 논둑길을 걸어서 모산봉으로 오는 길이 있는데요,
그다지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닙니다.
모산봉 전망대가 보이네요.
이젠 다 왔어요.
모산봉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놈들이 우리민족의 혼을 절멸시키려고 이 곳 바위에다가 쇠막대기 네개를 박아 산의 혈로를 차단했다고 해요.
강릉의 안산 <모산봉>이 수난을 겪은 또 하나의 얘기가 있죠. 바로 '한급'의 얘기인데요,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인 한급이 고을 원으로 부임하여 육조가 있는 옥천동에 와, 옥거리에 사는 강릉 김씨와 안동 권씨들 즉, 토호들한테 부임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개폐문(아침, 저녁으로 문을 열고 닫아주는)을 해주지 않는 수모를 당했대요.
한급은 고을 원으로서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자 강릉의 산세를 살펴봤답니다.
그랬더니 남쪽의 모산봉이 김씨들이 사는데서 正午方이어서 문필봉이 되고, 문필봉이기 때문에 육조가 났다고 하여 하룻밤에 사령들을 데리고 모산봉에 가서 3자 3치를 낮추고, 아흔 아홉개로 혈을 지르고 나머지 한개를 가지고 칠사당 앞에 도랑이 있는데 여기가 용의 배라 하여 거기다 혈을 질렀다고 합니다.
한급은 모산봉과 남대천 물줄기와 경포의 금계포란형국, 그리고 강릉주위에 있는 두껍바위 때문에 강릉에 인물이 많이 나는 걸 알았고, 여기를 훼손해야 강릉에 인물이 나지않는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서 한급은 강릉의 안산인 모산봉이 문필봉이라 하여 강릉에 인재가 나는 봉우리라고, 모산봉을 3자 3치 낮추었고, 남대천 물줄기가 하평의 넓은 들을 지나 경포호로 흐르는 것을 현재의 견소봉(전주봉)으로 흐르게 했고, 동서남북 사방에서 강릉 칠사당으로 향하고 있는 4개의 두껍바위를 깼고, 방해정 부근 인원사 터에 있던 경포대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해요.
경포대는 금계포란형 중 닭의 머리에 해당되며,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도 목이 마르면 둥지에서 내려와 물을 마시는데 경포호수가 바로앞에 있어 둥지에서 내리지 않고도 물을 마실 수 있어 명당자리였답니다.
그런 이 닭의 머리에 무거운 정자를 올려놓아 닭이 알을 품을 수 없어서, 강릉에 인물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급이 3자 3치(약 1m)를 깎아내렸던 모산봉.
2005년 6월 초 '모산봉을 1m 높이자' 는 구호아래 강릉시민과 강남동민, 군부대 장병, 그리고 강남동 향우회 및 자율방범대 포함 10여개 자생단체 등 1000여 명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까지 일렬로 서서 흙 자루를 산 정상으로 옮기며 봉우리를 높이는 복원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자생단체는 이후 몇 차례 대대적인 복원작업과 함께, 산봉우리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 안내문과 함께 흙을 담은 자루를 비치하고, 주민들이 등산(산책)을 하면서 자발적으로 복원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6개월간의 긴 작업끝에 해발 104m였던 산봉우리의 높이가 105m로 원래의 높이를 되찾는 복원운동이 마무리되고, 마침내 12월 20일 복원 준공식을 가졌었습니다.
이 복원운동은 10만여 명이 동참했고 15t트럭 10여 대 분량의 흙이 정상을 높이는 데 들어갔다고 해요.
누구나 정상에 오면, 한그루 소나무의 그 멋지고 잘생긴 모습에 감탄을 합니다.
모산봉은 쉬엄 쉬엄 걸으면 정상까지 1시간 정도 걸리던데, 오늘은 한번도 쉬지않고 올랐더니 40분 걸렸네요.
산 아래 산소 뒷편으로도 잘생긴 소나무가 한그루 있구요.
지금은 나무들이 쑥쑥 자라 시야를 가리므로, 조망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전망대를 왼쪽으로 끼고 내려오면, 농산물 도매시장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또 하나 있는데 그 끝에는
승용차 여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구요.
모산봉은 매년 1월 1일에 해맞이 행사를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제 내려가야겠어요.
아까 올라올 때의, 나무계단이 있는 쪽으로 내려갑니다.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려면 박월동 쪽(농산물 도매시장방향)에서 올라오면 거리가 짧아 좋긴 합니다만,
한꺼번에 많은 양의 차량들이 주차할 수 없는 게 좀 문제이긴 하죠.
나무계단이 있는 길은 대나무숲 사이로 가는 길입니다.
정상가기 전에 한번 쉬는 게 좋다고 한, 운동시설이 있는 곳을 지나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모산초등학교로 갑니다.
버스정류장이 있던 도로를 쭉 걸어가도 학교가 나오긴 해요.
강릉에는 '산 김가 셋이 죽은 최가 하나 못 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시죠?
옛날 강릉 최씨 여인이 <모산>에 사는 강릉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 셋 낳고 살다가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장례를 치뤄야하는데, 최씨 여인이 등이 굽은 곱추였기 때문에 시신을 관에 넣을 수 가 없었대요.
그래서 세 아들은 궁리끝에 어머니의 허리를 펴서 관에 넣으려고 큰아들은 어머니 하체를 누르고, 둘째와 셋째는 상체를 눌러 허리를 바로 펴려고 힘을 쓰고 있는데, 상체를 누르고 있던 동생들은 어머니의 허리를 펴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 겁이 나서 누르고 있던 상체를 놨대요.
그랬더니 시체가 평형을 잃어 상체가 큰아들쪽을 덮쳤다는군요.
깜짝 놀란 큰아들은 엉겁결에 하체를 놓고 뒤로 자빠졌답니다. 동생들도 그랬고.
순식간에 시체가 평형을 잃고 벌떡 일어나 앉자 아들 셋 다 놀라 자빠진거죠.
그래서 최씨어머니 하나에 김씨아들 셋이 못 당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도로를 건너 아까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가 모래고개로 갑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모산초등학교에서 장현저수지로 가도 됩니다만, 그건 너무 싱거우니까 좀 더 걸어서 가려구요.
이정표가 가르키는 <정상>은 진재등을 말합니다.
'한급'이 깨버렸다는 4개의 두꺼비바위 얘기도 하며 걷자구요.
강릉에는 강릉을 지켜주는 두꺼비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들은 강릉부사가 머무는 칠사당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하나씩 4개가 있구요.
신기하게도 이 두꺼비바위의 머리는 모두 칠사당 쪽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동쪽에는 입암동, 서쪽에는 유천동, 남쪽에는 노암동, 북쪽에는 교동에 있는데 강릉부사 한급의 시기와 질시때문에 지금은 모두 금이 가고 깨졌답니다. 풍수가 좋고 인재가 많이 나는 강릉을 시기한 한급은 강릉을 수호해 주는 두꺼비바위 모두 금이 가게 하여 죽여버렸는데,
이 바위의 목에 징을 박아 피가 흐르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꺼비바위가 죽은 형체로 남아있다고 해요.
그리고 두꺼비바위에 징을 박으니까 바위에서 피가 튀어나와 인부의 얼굴에 묻었는데, 그 인부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두꺼비바위는 입암동과 유천동, 노암동은 남아 있으나 교동이 있던 바위는 없어졌다네요.
이 얘기들은 모두 김기설 님의 '강릉에만 있는 얘기'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모래고개에 왔습니다.
장현저수지도 가 봐야죠?
모산봉 가는 길에는 군데 군데 이정표가 있습니다만, 이정표에 거리 표시가 없는 게 좀 아쉽죠.
오솔길을 따라가면 저수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도 뜸한 호젓한 길을, 마치 전세를 낸 듯 혼자서 걷습니다.
마을을 이어주는 도로를 건너, 산불조심 현수막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요,
호수주변의 소나무들은 한아름이나 되는, 아주 잘생긴 나무들입니다.
호수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구요.
한껏 물 오른 버들가지가
찰랑이는 호수에 손을 담그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이죠?
이 멋진 장현저수지에 지금 둘레길 조성공사가 한창인데요, 이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둘레길이 빨리 완공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송파정 지붕이 조금 보이네요.
경관이 수려한 강릉지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정자가 많이 있는데, 주로 호수 주변에 많고 남대천 주변에도 더러 있습니다.
정자는 선비들이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 놀거나 쉬기 위해 아담하게 지은 작은 집인데요, 선비들은 이곳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담론도 하였다지만, 그럴 일 없는 지금의 정자들은 우리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입니다.
강릉지방의 정자의 시작은 삼국시대 부터 랍니다.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임해정(臨海亭)과 한송정(寒松亭)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임해정은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이 잠시 쉬었던 곳이고, 한송정은 신라시대 서라벌에서 온 화랑들이 머물면서 심신을 연마하던 수련도장이었대요.
제방둑 저 끝까지 가 봅니다.
장현저수지는 해방 직후인 1947년 완공되었는데, 2002년 태풍 루사로 강릉지역에 폭우가 내렸을 때는 제방 40여 미터가 유실되기도 했습니다. 루사는 2002년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강릉을 중심으로 전국에 엄청 큰 피해를 입혔는데요,
재산 피해는 5조 1천억여원이며 이재민도 8만명이 넘을 정도로, 지금까지 가장 큰 재산피해를 준 걸로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태풍 루사는 강릉에 하루 870mm의 비를 쏟아부었는데, 이 비로 장현,동막 저수지 둑이 무너져 하류에 있던 공군 18비행단과 인근마을은 완전히 물에 잠기는 엄청난 피해를 보았었죠. 루사는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내게 아픈 추억을 남겼습니다.
8월 말, 삼척에서 공군부대 내에 있던 직장으로 전근 오자 마자 피해를 당해서, 공군부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사무실도 물에 잠겨 금고든, pc든 모든 집기들은 사용할 수 없어, 복구할 때까지 2달 가까이 업무를 볼 수 없음은 물론 차량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었는데요, 강릉에 내린 이 비는 우리나라 최고 강수량으로 기록한답니다.
그 이듬해인 9월 12일에 상륙한 태풍 매미때 역시 저수지의 범람으로 인해 공군부대에 물이 들어옴은 물론이려니와, 또 한번 차량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던 쓰린 경험이 있는 장현저수지입니다.
끔찍했던 기억은 모두 잊고 지금은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 오른편에 성불사 절이 보입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도 완공했고
제방둑 아래로는 주차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그린쉼터도 만들고.
송파정 정자로 돌아옵니다.
정자는 소나무와 어울려 아주 기가 막힙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그림 같을까요?
다리를 놓은 곳도 주차장을 만들려나 봅니다.
모래고개로 올라가요.
길은 자연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이 다님으로써 자연스럽게 생겨난 길.
모래고개에서 진재등을 거쳐 내려가면 오늘의 산행은 끝나는거죠.
강릉에는 봄이 없다고 말합니다.
봄이 오면 강릉에는 바람이 자주 부는데, 이른 봄이면 바다에서 샛바람이 불어오고 늦 봄이면 대관령에서 편서풍이 불어옵니다.
샛바람은 추위를 몰고와 입술과 손등을 트게하고, 편서풍은 모자를 벗길 정도로 세게 불어대곤 하죠.
봄철에 이렇게 바람이 불어대니 사람들은 봄이 되어도 겨울옷을 입고 지내면서 봄 다운 봄을 느껴보지도 못하다가, 여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진재등에 있는 의자에서 잠시 쉬며 불어오는 바람에 봄내음을 맡아봅니다.
그러면서 경포호수에 대해 전해오는 얘기를 끝으로 <모산봉> 산행을 끝냅니다.
옛날 경포에 부자가 살고 있었대요. 하루는 스님이 와서 동냥을 청했는데 인색한 주인은 마구(외양간)를 치고 있다가 욕을 하면서 거름을 한 삽 퍼서 바랑에 담아 주었답니다.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름을 받고서 돌아섰는데 이 광경을 본 며느리는 스님에게 시아버지의 무례함을 빌었다고 해요. 그러자 스님은 뒤따라오는 며느리에게 '잠시후에 집이 물에 잠길테니 돌아보지 말고 그냥 달아나라'하고 사라졌답니다.
이 말을 들은 며느리는 겁이 나서 딸을 두고 그냥 달아났대죠.
한참 가는데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집이 물에 잠기고 마을도 물에 잠기더랍니다.
딸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나왔던 며느리는 자기 딸을 생각하며 하도 서럽게 울다가 그만 돌이 되었다고 해요.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들머리 - 진재등 - 모래고개 - 버스정류장 - 쉼터 - 모산봉 - 뒤돌아서 모래고개 - 장현저수지 - 모래고개 - 진재등 - 날머리
총 6.4km를 걸었구요, 2시간 5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장현저수지를 가지않고, 정상까지만 갔다가 오면 2시간 가량 걸리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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