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9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선득 선득한 아침, 청량산으로 갑니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강릉에서 3시간 걸렸는데요. 저녁 늦게 귀가하지 않으려면 오늘도 느긋하게 산행하면 안되겠네요.
어쨋든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청량산은 올 때마다 입석에서 시작했었죠.
경일봉을 거쳐 자소봉, 하늘다리, 장인봉을 갔다가 청량폭포쪽으로 내려가기도 했고,
김생굴을 지나 자소봉, 장인봉을 간다음, 뒤돌아서 청량사로 내려가기도,
또 장인봉 뒷길로 내려가기도 했고,
청량산은 그때 그때마다 조금씩 코스를 달리했었는데,
오늘은 자소봉, 하늘다리, 장인봉 뒷편으로 내려갈려고 합니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리운 청량산은,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금탑봉·연화봉·축융봉·경일봉 등 30여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해요.
산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괴상한 모양의 암봉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며,
둥글둥글하게 생긴 암봉들이 여덟개나 되고그 암봉들이 품고 있는 동굴만도 열두개에 이른답니다.
청량사와 응진전 갈림길에서, 응진전 방향으로 접어듭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만든 멋진 광경을 보려면,
조금은 힘들다 해도 이쪽 길을 가는 게 맞죠.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백산맥에서 들로 내려오다가 예안강 위에서 고개를 이루었다.
밖에서 바라보면 단지 수개의 꽃송이와 같은 흙산 봉우리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짜기 마을로 들어가면 사면이 돌벽으로 둘렸는데 모두 대단히 높고 엄하며,
기이하고 험하여 그 모양을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라고 표현했다고 해요.
퇴계 이황은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예찬하여,
그를 기념하여 후세인들이 세운 청량정사가 남아 있기도 하구요.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가 주축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응진전에 왔습니다.
의상대사가 663년에 창건한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물렀던 곳이라 합니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피난왔을 때,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정진한 곳이고 기도영험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나한 기도도량이기도 한데,
이 16나한상들은 노국공주와 시녀들이 깎았으며 그 중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형상화한 상도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고 해요.
응진전 뒷편 바위의 '동풍석'은 바람이 불어도 건들거릴 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동풍석 또는 건들바위라 부른답니다.
좀 더 가깝게 당겨 볼까요?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것처럼 위태롭게 있는 이 동풍석은, 의상이 이 암자를 지을 때 저 바위가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도 암자도 큰변을 당할 것 같아서 그 바위를 아래로 내려 놓았다고 해요.
그런데,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보니 바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어 대사가 기이하게 생각하고 다시 그 바위를 내려 놓았더니, 다시 다음날 아침이면 제자리로 돌아가 있더랍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의상이 계속 바위를 내려 놓았지만, 그 때마다 바위는 다음날이면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는데, 하루는 의상이 해질녘에 그 바위를 내려놓고 누가 바위를 옮기는지 보려고 밤새 지키고 있는데,
자시(子時)가 되자 바위가 스스로 살금살금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걸 본 의상은, 다음날부터 바위를 내려 놓는 걸 포기하고 바위를 향해 합장한 뒤 그 아래에 예정대로 응진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응진전 뒤에 보이는 금탑봉은 9층 금탑이 구름 위에 솟은 듯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요,
예전에는 치원봉(致遠峯)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봉우리 아래에는 치원암(致遠庵) · 극일암(克一庵) · 안중사(安中寺) · 상청량암(上淸凉庵) · 하청량암(下淸凉庵) 등 5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응진전(應眞殿)만 남아 있다고....
또, 금탑봉 아래에는 어풍대(御風臺) · 요초대(瑤草臺) · 총명수(聰明水) · 감로수(甘露水) · 풍혈대(風穴臺) 등의 볼거리가 있는데, 조금 있다가 한, 두가지 보기로 하죠.
암자 마당가에는 매화가 피었어요,
올해에도 청량산에 봄은 또 찾아왔습니다.
돌담 사잇길로 들어가 봤죠.
암벽 아래에 샘물이 있드군요.
다시 나와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풍혈대(風穴臺)는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곳이랍니다.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번 올라가 보세요.
이 물을 마시면 지혜와 총명이 충만해 진다는 총명수.
최치원이 마시고 난 뒤에 더 총명해졌다고 하니까, 지나면서 한모금 마시고 가는 것도 괜찮겠죠?
어풍대에 서서 청량사를 내려다 봅니다.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문무왕 3년,663년에 창건했다고 하는데요,
청량사는 내청량사(內淸凉寺), 응진전은 외청량사(外淸凉寺)라 부르며,
두 절은 모두 663년(문무왕 3)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창건연대로 볼 때 의상은 중국에 있었으므로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합니다.
이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이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라고 해요.
이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있는데요,
한개는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琉璃寶殿)이고
또 한개는 지불(紙佛)입니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의 유리보전(경북 유형문화재 제47호) 위 사진은 2017년도에 들렸을 때
찍은 것이고, 아래의 사진은 이해를 돕기위해 빌려 온 사진이라 조그마합니다.
지불은 닥나무종이로 만든 부처인데 지금은 금칠을 했다고 하는데요,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임진왜란 이전인 1578년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한쪽 발을 내린 특이한 양식이면서 완성도도 높다고 해요(보물 제1666호).
《청량지(淸凉誌)》의 기록에 따르면 '어풍대'는 , 고대 중국의 인물인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이제 또 가볼까요?
김생굴과 경일봉 갈림길에 왔는데,
산불예방 때문인가 아님, 위험하다고 그러는 걸까?
경일봉 가는 길은 막았네요.
경일봉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생강나무가 노란꽃을 피웠습니다.
강원도에서는 이 꽃을 동백꽃이라 부릅니다. 사투리로 동박꽃이라도 하죠.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 동백나무 씨앗으로 짠 기름을 머리에 바르곤 하셨죠. 그게 동백기름이었구요.
김유정의 소설 속에 나오는 동백꽃도 이 생강나무꽃입니다.
계단이 많네요.
이 계단을 올라가면 경일봉입니다.
청량산에서의 이런 계단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건 그냥 사다리라고 봐야죠.
탁립봉 갈림길에 왔습니다.
훗날 이 산을 다시 찾을 때는 탁립봉도 한번 가 봐야겠어요.
탁립봉(卓立峰)은 웅장한 산세가 일품라고 하는데요,
경일봉의 위 바깥 뒤쪽에 있으며 자소봉에서 볼 때 동쪽 끝에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입니다.
옛날에 이름이 없었을때 주신재가 탁립봉이라 명명하였다고 해요.
아직은 이른 봄이라 나뭇가지도 아직 새순이 돋지 않았고, 땅위에도 새움이 돋지 않아 꼭 가을산같은 느낌입니다.
고사목이 멋진 여기에서 밥 먹고 가기로 합니다.
12시도 되었고, 자리도 넓직한게 밥 먹기에 아주 좋은 곳이네요.
햇빛도 따스하게 내려쪼이고
주변 경치도 엄청 보기 좋구요.
자소봉에 다다랐습니다.
보기엔 이래도 경사가 좀 있는 계단입니다.
후둘거리는 다리로 올라 간 자소봉.
기암절벽이 하늘로우뚝솟아있는 자소봉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입니다.
원래 보살봉(菩薩峯)으로 불리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고 해요.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 가운데 가장 높으며 청량산에서 세 번째 높은 봉우리랍니다.
자소봉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며
청량산 불교 유적지의 중심지였던 곳이기도 하다는군요.
암자의 유지(遺地)가 현재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질질 겁내면서 내려와
탁필봉으로 향합니다.
청량산은 이런 기암과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재미로 찾는 산입니다.
붓을 뽑은 듯한 형상 탁필봉(卓筆峰)은 자소봉에서 서쪽으로 30m 정도에 위치하고 있고 있는 봉우리이며, 생긴 모습이 마치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하여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과 비교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탁필봉에서 몇발짝 걷다가
작은 계단 하나 올라가면 연적봉입니다.
한동안 이 산에 못 온 사이에 연적봉 정상의 소나무가 죽어버렸습니다.
연적봉에서 바라 본 탁필봉.
연적봉(硯滴峰)의 경치는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끝내줍니다.
형상이 마치 연적(硯滴)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요,
탁필봉(卓筆峯)에서 서쪽 약 6m 떨어진 곳에 있으며 . 금탑봉(金塔峯)과 함께 옛 이름 그대로 전해져 온
봉우리입니다.
맑은 날 정상에서 바라보면 소백산(小白山)과 재산면(才山面) 일대까지 요원(遙遠)하게 보인다고 해요.
계단을 내려 와 하늘다리로 향합니다.
연적봉에서 하늘다리까지는 800m미터 남짓한데요,
이 짜릿한 계단을 내려와야 합니다.
이정도 기울기의 계단을 내려와야 산행하는 재미가 있죠. ㅎ
청량산은 도립공원인데도, 국립공원 못지않게 이정표를 많이 세워뒀습니다.
계단도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설치를 잘 했구요.
등산로를 조성하면서 많은 돈이 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하는 게 조금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산!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세상에 얼마나 친절한지 이런 곳에까지 이정표가 있다니까요!
하늘다리에 도착했습니다.
지상으로부터의 높이 80m, 길이 90m, 바닥넓이 1.2m의 하늘다리는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현수교인데요, 2013년 4월 21일에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이 다리를 촬영했답니다.
2008.5.10일에 준공한 이 하늘다리는 초속 50의 풍속에 견딜 수 있고 최대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봉화군은 이 일대 등산로가 가파르고 위험해서 21억원을 들여 2007년 4월부터 포크레인과 케이블, 복합유리섬유 바닥재 등의 자재를 헬기로 공수해 하늘다리를 만들었는데요,
산악지대에 설치된 보도형 교량 중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하늘과 가장 가깝다 해서 ‘하늘다리’로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하늘다리는 개방과 함께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는데요,
다리 길이에서 전북 완주 대둔산(길이 50m) 및 순창 강천산(70m), 전남 영암 월출산(54m) 등 국내 산악지대에 놓인 다른 현수교를 제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다리가 개통되던 그해 청량산을 찾은 연간 관광객은 50만 2000명에 달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늘다리 인기가 치솟자 봉화군 홍보대사 이태호는 '하늘다리'라는 노래까지 불렀습니다.
‘오죽이나 그리웠으면 다시 찾은 하늘다리야
꽃반지 끼워주며 송이 따던 내 사랑아
새하얀 내 가슴에 사랑을 그려 놓고
너무 쉽게 떠나간 사람아
정답게 오르던 청량산 길에
하얀 목련꽃은 나를 반기는데
반겨야 할 내 사랑은 어디 갔을까
기다리다 청춘만 저물어
그래도 잊지 못해서
행여 찾은 청량산에는
하늘다리만 외로이 떠 있네’
이태호 노래 ‘하늘다리’
학이 솟구치는 듯한 선학봉(仙鶴峰)은 장인봉(丈人峯)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으며,
봉우리 모양이 학이 공중으로 날아 솟구치는 듯 하므로 주세붕이 선학봉이라 이름 지었다 합니다.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을 청량산 바깥쪽에 있다 하여 외산(外山)이라 부르는데,
선학봉은 이 외산 중에서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외산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을 기준으로 그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요.
선학봉 맞은편의 자란봉(紫鸞峰)은 멀리서 바라봤을 때 신비로운 새가 춤을 추는 듯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선학봉(仙鶴峯)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외산(外山) 중 가장 안 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연화봉(蓮花峯)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난(鸞)새가 마치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주세붕(周世鵬)이 자란봉이라 했다고 전해진답니다.
하늘다리를 건너오면 통나무계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청량폭포로 가고,
오른쪽길 - 장인봉으로 gogo~
오늘 산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청량산 주봉인 장인봉에 왔거든요. 청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870m)이죠.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이 중국 태산(泰山) 장악(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해요.
정상에서 굽어보면 산 아래는 빼어난 기암절벽들이병풍처럼 늘어서고,
눈앞에 펼쳐지는 원근 수백리의 크고 작은 산맥과 하천들이 연출하는 장관은선인들의 아낌을 받아 왔고,
현재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은 이 장인봉 뒷편길로 내려갑니다.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인들이 기념으로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 입구로 가는거죠.
기암절벽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푸른 물을 봅니다.
저 아래에는 전망대도 조그맣게 보이구요.
청량폭포로 내려가는 길에도,
청량정사로 내려가는 길에도 가파른 철계단이 있습니다.
정말로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날 철계단이 연속으로 이어져있죠.
또, 계단이.....
철도침목같은 나무계단을 내려오자
노란 생강나무꽃이 반겨줍니다.
병아리처럼 샛노란꽃이 반갑다고 손짓을 해요.
전망대는 반드시 들렸다 가야해요.
청량산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이 멋진 모습을 안 보고 가면 서운해서 안되죠.
우와~
볼 수록 멋져요!
서둘러 가야겠네요.
진달래꽃이 피었어요.
중국 귀주성의 마링허대협곡의 한 부분같은 절벽 밑 길을 가고
이제 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오늘 산행도 여기서 끝냅니다.
거리가 짧은데도 4시간이나 걸렸네요.
이 다리를 건너 왼편으로 가면 넓은 주차장이.....
산행코스: 입석 - 응진전 - 경일봉 - 자소봉 - 연적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주차장 (7km, 4시간 10분)
청량산 (870m)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량산에는 지난 날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0여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이 남아있다. 또한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서성(書聖)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金生窟),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었다.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문명산·만리산·투구봉 등이 있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금탑봉·연화봉·축융봉·경일봉 등 30여 개의 봉우리가 있다.기반암은 편마암이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으며, 우리나라 3대 기악의 하나로 꼽혀왔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예찬하여 후세인들이 그를 기념하여 세운 청량정사가 남아 있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낙동강 상류가 서쪽 절벽을 휘감아 흐른다.조선 후기의 불전건물인 청량사유리보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이 있다.
1982년 8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아슬아슬한 암봉·망굴 등의 자연경관을 비롯하여 내청량사·외청량사 등의 고찰과 유적이 많다. 특산물로 춘양목·송이버섯·대추가 유명하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금탑봉·연화봉·축융봉·경일봉·선학봉·탁필봉 등 30여 개의 봉우리들이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이다.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렸으며, 우리나라 3대 기악의 하나로 꼽혀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백산맥에서 들로 내려오다가 예안강 위에서 고개를 이루었다.
밖에서 바라보면 단지 수개의 꽃송이와 같은 흙산 봉우리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짜기 마을로 들어가면 사면이 돌벽으로 둘렸는데 모두 대단히 높고 엄하며, 기이하고 험하여 그 모양을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라고 표현했다. 퇴계 이황도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예찬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여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가 남아 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낙동강 상류가 서쪽 절벽을 휘감아 흐른다. 소나무·단풍나무 등이 우거져 있으며 산정부에는 칡덩굴·다래덩굴·노박덩굴 등이 엉겨 있다. 산 일대 면적 48.76㎢가 1982년 8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아슬아슬한 암봉·망굴 등의 자연경관을 비롯하여 내청량사·외청량사 등의 고찰과 유적이 많다.
산의 남쪽 연화봉 기슭에 내청량사가 있으며 조선 후기의 불전건물인 청량사유리보전(淸凉寺琉璃寶殿: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이 있다.
산의 동남쪽 금탑봉 기슭에 있는 외청량사는 높은 절벽 중간에 있으며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어풍대와 잘 조화되었다.
남쪽 축융봉에는 고려 공민왕이 피난와 있던 청량산성과 공민왕당(恭愍王堂)이 있다.
그밖에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를 공부한 곳으로 알려진 김생굴, 최치원이 수도한 곳으로 알려진 고운대 등이 있다.
낙동강 상류인 광석나루터 일대는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물로 여름철 피서지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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