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詩) 한수 감상하시죠.
오탁번 시인의 폭설(暴雪)입니다.
----------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들고 회관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렀당께!!
이틑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 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이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동네
몽땅 좆돼부렀소잉!!
------- 끝입니다.
배우 이인철님의 낭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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