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7
거리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봄이 일찍 찾아오는 우리동네 '남산공원'에도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벚꽃이 사방을 하얗게 물들이면, 사람들 마음도 환하게 피어납니다.
화사한 벚꽃을 보면 모든 잡념은 사르르 녹아버리고,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조팝나무도 연하디 연한 흰꽃을 피웠습니다.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으로 가는 오늘,
이름도 낯설고 처음으로 가 보는 산이기에 가슴은 설레고,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200여개의 남산 계단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창포다리에서 내려다 본 강물은 살며시 불어오는 봄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바다로 흘러가고.


다리를 건너와서 남산 벚꽃 핀 공원을 다시 돌아봅니다. 금방 져 버리지 말기를, 제발 오랫동안 피어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10시 30분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남한산성면은 과거에는 중부면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조선의 인조가 피신했던 남한산성이 있는 역사의 고장이라서 2015년 10월 16일 면 이름을 남한산성면으로 변경했습니다.
각설하고,
하남의 '검단산'은 광주시의 '용마산'과 연계산행을 할 계획이었죠. 그러면 대략 9km 남짓한 거리를 4시간 가량 걸을 수 있어 좋아라 했었는데

용마산 들머리에 도착했을 때 광주시로 부터 갑작스런 문자가 옵니다. '날씨가 건조해서 산불우려가 있으니 입산을 금지한다'는 말에 어찌하면 좋을지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봄철이면 지자체마다 산불이 날까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마당에 굳이 산행한다는 것도 그러니까, 광주 용마산은 포기하고 검단산만 산행하기로 결정을 하고서 하남시로 이동합니다.

버스는 몇분 거리의 검단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산곡초등학교 (하남시 하산곡동 431-6, 하남대로302번길 45) 옆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갑니다. 그냥 큰길에 내려서 걸어가도 되는데, 광주시의 입산통제 때문에 조금 지체를 했다고, 갈 수 있는데 까지 데려다 준다고 자꾸 들어갑니다.
산곡초등학교는 1948년 5월 1일에 개교한 이래 총 3,230명의 인재를 배출한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명문학교라고 합디다.

10시 40분
학교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승용차 몇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드군요.
도로는 승용차가 겨우 다닐 정도로 좁아서, 더 이상 버스가 갈 수 없어 이 주차장에서 하차합니다.

한적한 마을길을 갑니다.

학교 뒷편에 있는데도, 마을엔 民家가 몇 채되지 않는군요.


도로는 마지막 집까지 포장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간대도 더 이상은 '주차장이 없다'고, 작은 것에도 마음 써 주는 친절하고 선한 마음이 느껴지는 현수막.

검단사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오른쪽길로 갑니다.

포장도로는 검단산을 찾는 불자들을 위해서 그랬는 가 봅니다.

나무들은 이제 막 새잎이 돋아나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10시 45분
새잎이 돋아나 연두색으로 점차 바뀌는 산길로 접어듭니다.


아직은 삭막하고 황량한 산에, 연분홍 진달래꽃이 피어서 기분이 한결 밝아지게 하는 아침.


계단이 보입니다.
검단산은 산곡초등학교에서 3.1km 거리에 있으며, 정상까지 1시간 50분 가량 소요된다고 해요.

거리가 짧은 대신, 상당히 가파르다고도 합디다.

두번째 계단이 보입니다.
좀 가팔라 보이는 군요. 지금부터 가파른 오르막의 시작인가 봅니다.




계단이 끝나는 시점부터는 돌계단입니다.

그 돌계단 사이에서 보랏빛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4~5월에 꽃 피는 제비꽃을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오랑캐꽃'이라고 했었죠. 교과서에도 그렇게 써 있었습니다. 오랑캐꽃이라 부른 것은 꽃이 필 무렵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와서 붙었다는 說과, 꽃의 생김이 오랑캐의 투구 또는 머리채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이 있는데, 언젠부턴가 오랑캐꽃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제비꽃'이란 예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감이 안좋다고 이름을 바꾼 식물 중에는 '복주머니란'이 있죠. 원래는 '개불알꽃'이었는데 부르기가 뭣하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겁니다.

세계적으로 제비꽃은 806종이 있으며 이 중 한국에서만도 50여종이 넘고, 미확인 품종까지 확인하면 80종 이상일 꺼라고 하는 제비꽃은, 오랑캐꽃외에도 앉은뱅이꽃, 가락지(반지)꽃, 장수꽃, 씨름꽃, 병아리꽃, 외나물이라고도 합니다. 이중에서 제비꽃은 제비가 돌아오는 무렵에 꽃이 핀다고 제비꽃, 꽃의 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아서 제비꽃이라 한다고 하죠.

앉은뱅이꽃은 키가 작아 앉아있는 것 같다고 해서 그리 부르고, 가락지꽃은 꽃으로 가락지(반지)를 만든대서, 장수꽃과 씨름꽃은 꽃 모양이 장수(將帥)들이 씨름하는 것 같아서, 병아리꽃은 병아리처럼 귀여워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돌계단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검단산'은 하남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백제 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 진산(鎭山)으로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었답니다.
또한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가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통일기원탑까지 왔습니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이 탑을 쌓은 이는, 2004.6.25일에 완공된 이후부터는 여러분의 탑이니까 올라가던가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 달라고 합니다.

정성으로 한개 한개 쌓은 탑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될까 염려되어 그리 말하는 것이지만, 그건 기우(杞憂)일 뿐입니다. 山을 찾는 사람들은 돌 한개라도 더 얹었으면 얹었지, 돌탑을 훼손하지는 않거든요.

이 돌탑을 지나면서 오르막은 더 심해집니다.

검단산의 유래에는 두 가지 얘기가 전해옵니다.
백제시대 검단선사(黔丹禪師)가 그 산에 隱居해서 선사의 이름을 따 검단산(黔丹山)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건데, 그렇지만 검단선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답니다. 다만 전북 고창의 선운사(禪雲寺)의 창건 설화 중 신라 진흥왕이 세웠다는 것과, 백제 위덕왕(525년 ~ 598년) 24년인 577년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세웠다는 것인데, 만약에 검단선사가 검단산에 있었다면 6세기 중반이라는 얘기라는 것이죠.

또 하나는 한자로 검다는 뜻의 '검(黔)'은 고조선 때 단군 왕검같이, 제사와 정치의 기능을 겸한 제정일치 사회의 우두머리를 '왕검(王儉)' → '임검(壬儉)' → '임금'이라 불렀듯이 '검(黔)'은 '크다, 신성하다'는 뜻이라 해석하고, 붉다는 뜻의 단(丹)'은 현재와는 다른 '제단'이란 뜻으로 '검단산'은 '신성한 제단이 있는 산'이란 뜻으로 해석했다는 거죠.

한때는 검단산의 검(黔)을 '금'으로 읽어 '금단산'으로 부르기도 했고, 실제로 한성백제(漢城百濟) 시절에 왕이 검단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도 있고,
또한 검단산은 한강과 인접해 있어 산세의 막힘이 없고 동, 서, 북 3면의 조망이 뛰어나며, 남한강, 북한강과 팔당댐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죠.

이 지역이 한강에 접해 있으므로, 各處에서 한강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산(物産)의 집산지였기에 이곳에서 '검사하고 단속하였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답니다. 이 산 입구에 창우동(倉隅洞)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창우동이란 '창고가 있던 곳'이란 뜻이라 하죠.

'새싹이 움트고 있으니까 밟지 말아 달라'는 팻말이 있어 주변을 살펴보니, 풀고사리가 막 올라오고 있습니다. 등산로 바로 옆은 비탈진 산이라서 밟을 수도 없었는데, 행여라도 발길이 닿을 까 염려되어 세웠나 봅니다.

오르막은 힘이 들긴 했습니다. 쉴 의자를 더러 있기는 했지만, 쉬는 시간도 아깝다고 계속 올랐더니 땀이 막 납니다.



11시 25분
샘이 날 것 같지 않은 이 산중턱에 샘물이 호스를 타고 흐릅니다.
이게 장수약수터인가 봐요.

하남 地域民인 듯한 사내가 윗옷을 벗어들고 우리를 앞질러 갑니다.

빈 몸으로 오르는 그도 오르막길은 힘든 지, 한발 한발 떼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군요.

정상까지 1.45km 남았다고 해요.
하남시의 관광안내지도를 보면 정상까지 3.1km라 되어있던데, 이정표에는 산곡초등학교에서 정상까지 3.49km라는 얘기.
실측을 하고 이정표를 세웠을테니까 이 거리가 맞는 거겠죠?

검단산에 찾아온 봄은 조금씩 조금씩 나뭇잎을 틔우고 있습니다.

우리를 앞질러 가던 사내는 땀을 많이 흘렸는가 봅니다.
샘물로 세수를 하고는, 샘터에서 되돌아 가는군요.

곰터약수터도 샘이 솟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곳에서, 샘물이 솟아 흐릅니다.

샘물을 본 김에 한 바가지 마셔 봅니다. 샘물은 차면서 시원하네요.

약수터 부근에는 쉴 의자도 있고

참나무 아래에도 넓직한 바위가 있어, 한가로이 쉬면서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장소입니다.

샘물도 마셨겠다 다시 옮기는 발걸음.
이 계단은 아주 아주 오래되어서 나무들이 부서져 내립니다.

계단주변에 흰 천으로 덮어놓은 것은 계단을 보수하기 위한 資材같은데,
계단 보수는 시급해 보입니다.

계단을 오르자 완만한 능선길이 나타납니다.
검단산은 아기자기한 면이라던가, 큰 볼거리는 없습니다. 그저 人家 가까이 있어 접근성이 좋은 산입니다. 오늘 처음와서 본 느낌은 그랬습니다. 땀 꽤나 흘려야 하는 구간도 있지만, 가볍게 산행하기 좋은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환경으로 보면 활엽수림이 대부분인 산이라 봄에는 진달래꽃, 여름에는 울창한 녹음, 가을에는 단풍 그리고 겨울에는 설경 산행을 할 수 있어 사계절 산행지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시 30분
고개마루에서 잠시 앉아봅니다.

뒷편의 통나무계단은 광주시의 용마산으로 연결된 길입니다. 처음에 계획했던대로 라면 우리는 용마산을 지나 저 계단으로 내려왔을 것입니다.

정상은 500미터 남짓 남았습니다.
점심식사도 정상에서 할 예정입니다.


11시 45분
돌탑을 지나고

삐죽 삐죽한 돌들이 제멋대로 나 뒹구는 길을 오릅니다.



새로 설치한 계단

낡아서 바스라질 것 같은 계단

그리고 이 돌계단을 오르면 정상입니다.


12시
657m의 정상에 왔습니다.


검단산 정상은 의외로 크고 넓습니다.
헬기장으로도 이용하고 있네요.



아침일찍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이도 있습니다.

전망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집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두물머리)도 보이고 팔당댐도 보입니다. 두개의 강은 여기서 합쳐지고 팔당댐 아래로 흐르면서 한강이 됩니다.



따사로운 햇빛과 넓다란 정상, 2개의 전망대와 나란히 설치한 의자가 있어 사람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뾰족하게 솟은 유명산과 용문산도 보이고






용마산을 거쳐서 검단산으로 오지 않았기에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급할 거 하나 없기에 천천히 점심을 먹어도 시간은 남아, 볼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과 봄볕에 온몸을 맡깁니다.
산행을 하면서 오늘같이 이렇게 여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면 이 순간이 마냥 소중해집니다.

12시 40분
동네 산도 아닌데 정상에서 40분을 소요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겠습니다.

내려가는 방향은 유길준 묘소가 있는 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방향



이 길도 경사가 많이 급합니다.

산행 중 사고가 발생할까봐 계단을 설치한 길에는, 끊어졌다 이어지고 또 끊어졌다 이어지는 계단의 연속입니다.


하산거리는 3.92km.
짧은 거리임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쉼터가 있는 정자에 도착했습니다.


정자에 올라섰지만 나무들에 가려서 조망이 썩 좋지많은 않습니다.



뒤돌아 정자에서 앞을 바라보면 두물머리가 보이고

푸근하고 둥그스럼한 검단산도 보입니다.





진달래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검단산은 하남시와 광주시에 걸쳐있는 산이지만,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 교통이 편리해서 수도권 등산인들이 많이 찾는 산이랍니다.

코스도 몇군데 있고, 정상까지 왕복하는 시간도 2~3시간 정도이므로 가벼운 산행지로 많이 이용한다고 해요. 그래서 배낭하나 메고서, 오후로 접어 든 이 시간에도 하나 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여기는 진달래 군락지라고 합니다.
군락지라고 해서 우리가 봐 왔던 곳처럼 엄청 많이 있는 건 아니고, 심심찮게 꽃이 핀 그런 정도입니다.


돌맹이 투성이의 가파른 길이라 쉼터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따스하다 못해 여름 날씨같이 더운 이 봄날에, 진달래꽃 보면서 가노라면 가파른 길도 대수롭지 않아 보입니다.


실종사고 다발구간 푯말에서 길은 왼쪽으로 꺾이고

이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유길준 묘가 있습니다.
유길준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외교관이고 작가이며 대한제국의 정치가, 개화 사상가, 계몽운동가였다고 합니다. 또한 근대 한국최초 일본과 미국 유학생이며, 개화파 이론가로서 수많은 저작물을 발표하여 개화사상을 정립한 인물이라고 해요.

死後에 안창호와 윤치호에 의해 애국자로 추모된 유길준(1856~1914)의 사상 중 하나는, 조선의 실정에 맞춘 개화를 해야 한다는 일명 '실상개화(實狀開化)'가 있으며, 미국에서 본 것이 인상적이었던지 '군민공치'를 주장하면서 상공업 진흥, 근대적 조세와 화폐, 근대 교육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서유견문, 구당시초, 대한문전, 노동야학독본, 조선문전 등이 있고 이 중에서 '서유견문'은 최초의 한글 조사를 사용한 국한문 혼용 도서로만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단순한 서구 여행기가 아니라 서구의 근대 모습을 보고 우리 체질에 맞는 근대화 방안을 정치, 경제, 법률,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략서로 지금 봐도 배울 점이 있을 수 있는 兩書라고 하죠. 다만 지나치게 서양에 경도(정신,마음을 쏟는)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신장병으로 고생하다 57세로 사망한 그의 장례는 이상재, 윤치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러졌으며, 조문객은 대부분 조선총독부 관리였다고 합니다. 그의 묘소는 경기 광주군 동부면 덕풍리(지금 바로 여기, 경기 하남시 덕풍동) 검단산의 부친 유진수 묘소 근처에, 병사한 전처 경주 김씨와 재혼한 충주 이씨와 합장되었답니다.



유길준 묘 아래로는 계단과 야자매트가 깔려있어 걷기 편합니다.

욕심같았으면 계속 이런 길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부드러운 흙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양편으로는 소나무들이 도열하듯이 서 있어, 아름다운 길이 됩니다.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산벚꽃이 피어나고

벚꽃이 지고 난 길을, 산벚꽃이 뒤를 이어 이 봄을 아름답게 합니다.

검단산 산행도 끝났습니다. 여기가 등산로 入口네요.

무더위 쉼터옆엔 화장실이

건물 뒷편엔 먼지털이기도 있습니다.

14시 05분

경기창업혁신공간 주차장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가 보입니다.


따라서, 다시 돌아 온 봄날의 검단산 산행도 여기서 마칩니다.

7km를 3시간 30분간 걸었던 것은 정상에서 40분간 노닥거린 때문입니다.
평균속도는 2.1km였다고 해요.


황매화가 노랗게 핀 강릉 남산공원엔

가지가 휠 듯이 몽글몽글 핀 벚꽃들

살랑이는 봄바람에 벚꽃은 눈처럼 날려서 땅 위에 살포시 내려않습니다.


연두 연두한 사철나무 새순과

분홍색 영산홍도

자주색 자목련이 활짝 핀 지금은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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