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3
오늘은 원주 치악산을 갑니다.
가을이 오고 새봄이 올 때까지는 산불예방때문에 入山 통제하는 山이 많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갈 수 있는 산이 많지 않기에, 입산 통제를 하지 않는 치악산을 찾아갑니다.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황골로 580), 황골탐방지원센터앞에서 하차했습니다.
09시 45분

회차(回車)할 수 없는 길인데도, 버스는 치악산 산행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걷게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우리들을 내려줍니다.


화장실은 탐방지원센터에서 20m쯤 올라가면, 왼쪽에 있습니다.

윗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화장실이 있습니다만, 겨울되면 동파방지로 화장실 사용을 禁하기에 여기 화장실을 이용하고 가야합니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입석사(立石寺)까지는 포장도로를 걷습니다.

입석사 스님과 佛子들이 승용차로 다닐 수 있도록 포장한 길.
1.5km 남짓한 이 길은 비스듬한 언덕길 같아도 은근히 힘든 길입니다. 게다가 포도(鋪裝道路)를 걷는 것 처럼 싫은 것도 없죠. 발바닥이 아프고, 지루한 건 또 어떻구요?

10시
15분쯤 걸었을 때 입석대 입구 화장실이 보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화장실은 동절기라서 폐쇄를 했습니다.

안 추운 듯 하면서도 추운 날씨에, 입석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집니다. 숨도 찹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어떡합니까? 왠지 오늘도 힘든 산행이 될 것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입석대가 보이네요.
30m나 되는 절벽위에 있는 입석대.


10시 15분
입석사 주차장에서 아이젠을 장착합니다.

포장도로 옆 나무계단으로 올라갈 꺼 거든요.

아직 햇빛이 들지않은 입석사 주변은 푸르스럼합니다.

입석사 대웅전은 길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입석사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수도를 하던 천년고찰이라 해요.

대웅전 왼편에 입석대로 가는 계단도 보입니다만 오늘은 그냥 지나갑니다.
따뜻한 봄날이라면 룰루랄라 느긋하게 산행하면서 입석대도, 입석탑도 둘러보고 가겠지만, 지금은 눈이 내린 겨울이라 마음도 움추러들어서, 둘러보고 가기는 좀 그렇습니다.
입석사옆 절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 좌상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고, 또 '원우오년경오삼월일(1090년)'이라는 造成 연대까지 알수 있는 불상(佛像)도 있는데, 아쉽지만 오늘은 그냥 갑니다.

치악산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일행은 몇 안됩니다. 또한 겨울철 눈 산행이라 가급적이면 일행과 함께 다녀야 한다는 핑계로 20m 높이의 입석대는 그냥 멀리서 바라보고 갑니다.


삼성각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죠.


10시 25분.
여기까지 오는데 40분이 걸렸습니다.
황골탐방로 문으로 들어서면서 마음을 굳게 먹어봅니다. 치악산은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은 만큼 험한 산, '악산'도 많습니다. 악산(岳山,嶽山)은 말 그대로 크고 험한 산입니다. 험준한 지형과 날카로운 바위, 수직에 가까운 절벽들이 있는, 그야말로 산행하는 데 있어 난이도가 높은 산입니다. 관악산, 삼악산, 운악산, 월악산, 화악산, 설악산, 치악산 등 岳자가 들어간 산 중에서도 치악산, 월악산, 설악산 들이 대표적인 악산이며, 3대 악산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치악산을 오를 때는, 힘든 걸 감내하면서 오르겠다는 각오를 하고 올라야 합니다.

엇그제 내린 눈은 함박눈입니다.
다져진 눈이라면 힘이 덜 들텐데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눈,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이라 걷는 게 더 힘 듭니다.

나무계단에 덧씌웠던 폐타이어들은 다 걷어내서 쌓아뒀습니다. 눈,비 올 때는 미끄럼도 방지하고, 아이젠과 스틱으로 부터 나무계단도 보호하며 폐타이어를 재활용하는 것도 좋은데, 권력을 가진 사람 한마디에 다 걷어냈습니다.
某 국회의원이 등산을 갔답니다. 당연히 이름있는 국립공원이었겠죠. 그랬는데 계단에 폐타이어가 씌어져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는 군요. '고무냄새도 나고 환경호르몬이 검출되니까 당장 뜯어내라'고, 그래서 국립공원 등산로계단의 폐타이어 조각들은 철거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폐타이어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뜯어낸 계단을 보면 아주 보기가 흉합니다.

계단을 올라갑니다.


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 보기도 하고.
아이젠을 신었다해도 계단오르는 건 조심스러워 난간을 붙잡으며 올라갑니다.

깔딱고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온통 바위투성이 길

500여미터 정도되는 이 고개를 올라가며 잠깐 잠깐씩 섰다가 갑니다.
비로봉까지 3.9km 밖에 되지않는 최단거리라지만, 눈 쌓인 산행길이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황골탐방지원센터에서 비로봉까지 가는 길 중에 제일 힘든 구간.


몇발짝 가다가 쉬고, 몇발짝 걷다 쉬고를 반복합니다.

저 앞에 능선이 보입니다.

11시
황골쉼터에 도착하자 마자, 통나무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황골에서 첫발을 떼면서 여기까지 2km를, 1시간 15분 걸었습니다.
가야할 길은 1.9km 남았구요.


조금전 힘들게 올라온 곳도 바라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바라보면서, 충분히 쉬었다 싶을 때 일어섭니다.

11시 05분


영서지방에는 몇차례 눈이 내렸었습니다. 반면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은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특보가 이어지고 산불 위험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강릉의 지난 해 1월 강수량은 16.5mm였던 것에 비해 올해의 1월에는 3.7mm에 그쳐, 지난 해에도 비가 왔었다고 말하기도 그런 상태였는데 올해는 더 말도 못할 정도입니다.
지난 해 여름, 심한 가뭄으로 인해 물 부족으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인데, 올해에는 제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치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국립공원 지정면적은 약 182.09㎢나 되는데요, 국립공원답게 곳곳에 쉼터(통나무의자)와 계단을 설치했습니다. 특히 계단은 등산로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만큼 엄청 많이도 설치했죠.
덕분에 험준한 산도 쉽게 오릅니다.


치악산은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차령산맥의 줄기로, 영서 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입니다.
남북으로 웅장한 치악산맥과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는데, 주봉인 비로봉(飛蘆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峰, 1,043m), 남대봉(南臺峰, 1,182m)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 1,084m), 삼봉(三峰, 1,073m) 등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며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습니다.

1391년(공민왕 2)에 왕의 태(胎)를 안치하기도 했던 치악산은, 조선시대에는 5악의 하나인 치악산에 동악단을 쌓고 원주, 횡성, 영월, 평창, 정선 등 인근 5개 고을의 수령이 매년 봄, 가을에 동악신에게 함께 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치악산은 동악의 신령께 감사하고 국가의 진호(鎭護)를 기원하는 호국대제로 받들어 올렸던 신성한 산이었다는 겁니다.

치악산 서쪽에는 영원산성, 금두산성 등 옛 산성이 남아 있는데, 이들 산성은 군사적 요지에 위치한 원주를 지키는 요새로서의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고 하죠. 또, 많은 승려와 선비들의 수련장으로 사찰과 사적이 많아, 한때는 7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치악산에 있었다고 합니다.


11시 30분
비로봉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올라오던 방향으로 곧장 가면 비로봉이고, 왼쪽으로 꺾으면 향로봉과 남대봉으로 갑니다.
남대봉 가는 길에는 은혜갚은 꿩에 대한 전설이 있는 '상원사'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많지 않아서, 더러는 이런 생 눈을 밟고 가기도 합니다.


쥐너미재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쥐너미재는 옛날 쥐 떼가 넘어간 고개라 해서 '쥐너미재'라고 한답니다.
옛날 범골에 범사(凡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쥐가 너무 많아서 스님들이 쥐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절을 떠났다고 해요. 그랬는데 하루는 그 많은 쥐들이 줄지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범사를 떠나고 난 후, 이 절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절도 폐사(廢寺)가 됐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고개입니다.

국립공원이라 확실히 다르군요.
이런 안내판을 세움으로 해서, 지명 유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떡깔나무가 새 움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일이 立春이라 찬바람 속에서도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거죠.

치악산의 원래 이름은 적악산이었답니다. 가을오고 단풍이 들면 산 전체가 붉게 물들어서 적악산(赤嶽山)이라 했는데, 꿩의 보은으로 위기에서 목숨을 건진 나그네의 전설 때문에 치악산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한 선비가 산길을 가던 중,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서 죽이려는 것을 보고, 재빨리 활을 쏘아 꿩을 구해 주고는 갈 길을 갔답니다. 그러다 산속에서 날이 어두워져서 잘 곳을 찾다가, 마침 불빛이 보이는 곳을 찾아갔더니 예쁜여자 혼자 살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고서, 그 여자가 차려내 온 저녁밥을 먹고는 잠자리에 들었대요.
그러다 밤중에 갑갑해진 선비가 눈을 떴더니 여자가 구렁이로 변해 선비의 목을 감고는, “나는 아까 너에게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널 죽이려 한다. 단, 자정까지 절 뒤에 있는 종이 세번 울리면 살려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네요.

선비는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하고 있는데, 때마침 절 뒤의 종이 3번 울렸답니다. 그러자 '종이 3번 울렸으니 약속대로 너를 살려주마'하고 구렁이가 스르륵 사라졌다고 해요.
한밤중에 종이 3번 울린 걸 이상하게 생각한 선비가, 날이 밝자마자 절 뒤에 있는 종각으로 가 보았더니 암,수 두 마리의 꿩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더라는 겁니다.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머리로 종을 들이받아 종소리를 울리고 죽었던 거죠.
그 후, 죽음으로써 꿩이 은혜를 갚았다 하여 꿩 치(雉)字를 써서 이 산을 치악산으로 불렀다고 하는 이 이야기는 1936년 1월, 강원도 원주군 원주읍에서 박동필氏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서, 1958년 최상수(崔常壽)의 [한국 민간전설집]에 소개 된 것이라고 합니다.

3개의 미륵불탑이 잘 보이는 헬기장에 왔습니다.

11시 55분
이 헬기장까지 왔다면, 정상은 멀지 않았습니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내리막이 내닫고, 계단으로 연결되는데


계단 직전에 '황장금표'라 쓴 작은 바위가 있습니다.
색이 누렇고 질이 좋아 왕실에 진상하던 소나무 '황장목'의 벌채를 금지한다는 글귀인데, 구룡사 매표소 입구, 그 인근 새재골마을 입구의 황장외금표 그리고 여기 비로봉 황장금표 이렇게 국내에서 유일하게 3개의 황장금표가 있다고 합니다.

구룡사 매표소입구의 황장금표는 강원도 기념물 제30호이며, 새재골 마을입구의 황장외금표는 1993년에, 비로봉의 황장금표는 2016년에 발견한 것이라고 해요.


18세기 전후에 황장금표를 설치했기에 글자는 오랜 풍상(風霜)에 마모가 되어, 흐릿해 보입니다.

그래서 몇년 전 찍은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선명하게 잘 보이죠?



비로봉을 300m 남겨둔 지점
계곡길은 落石으로 인해 전면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쉬기도 하고, 점심도 먹고가라고 설치한 평상은 눈이 덮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계단

마지막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올라오는 사람들


드디어 정상에 왔습니다.
푸석 푸석한 눈을 밟고 올랐더니 오늘따라 더 힘든 것 같군요.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는 3개의 돌탑이 있습니다. 남쪽에는 용왕탑, 가운데는 산신탑, 북쪽엔 칠성탑이 있는데 이 3개의 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용진수)이란 분이 쌓았다고 해요.

사방은 막힘이 없어 조망은 좋은데, 바람이 너무 찹니다.

눈 온 다음날은 따뜻하다는데, 너무 추워요.
손은 시리다 못해 아파옵니다.

용왕탑과 산신탑사이에 정상석이 있습니다.
칠성탑은 사다리병창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구요.



이 미륵불탑을 쌓은 이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혼자힘으로 3년 안에 비로봉 정상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 했답니다. 그래서 용씨는 1962년 9월부터 1964년까지 5층으로 된 돌탑을 쌓았었는데요,

1967년, 1972년 두차례에 걸쳐 원인 모를 이유로 돌탑이 무너져서 다시 복원했다고 해요.
그리고 1994년 이후에는 세차례나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복원했다고 합니다.

12시 20분
비로봉 정상석 글자는 칠이 벗겨져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군요.

산림청 100대 명산, BAC의 인증장소이기도 해서 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추위에 바짝 얼어서, 보기에도 추워보이죠?

12시 30분
바람을 피해 한쪽 구석에 앉아, 간단히 요기를 하고 일어섭니다.
눈앞에 보이는 계단입구는 부곡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치악산 등산로 중 제일 완만하면서도 쉬운 코스는 이 부곡코스입니다. 한가지 흠이라면 주차장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죠.

예정된 대로 '사다리 병창길'로 내려갑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바라 본 앞산

흰 눈에 덮힌 산 줄기들


계단은 길고도 가파릅니다.


눈이 없는 계절에도 이 계단을 내려갈 때는 비장(悲壯)한 마음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전장(戰場)에 나가는 병사처럼 굳게 마음먹으면서........갑니다.

이 계단만이 아니라 곧게 세운 사다리같다는 '사다리 병창길'은 너무도 가파르고 위험해서, 매번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심한 내리막길에 아이젠은 아무 도움도 되질 않습니다.
쇠난간을 붙잡아도 미끄럼 타듯이 그냥 주루륵 막 밀려갑니다.


앞을 보고 내려가도, 뒤로 돌아서 내려가도 그냥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집니다.

3단으로 된 평평한 쉼터를 지날 때는 13시 05분.



헬기구조 제2포인트에 왔습니다.

헬기장을 만들 마땅한 장소가 없어, 구조활동은 몇걸음 앞 전망대에서 하는 가 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앞 산은 웅장하고도 우람해보입니다.







치악산에는 치악8경이 있습니다.
제1경 비로봉 미륵불탑을 비롯해서, 제2경 상원사, 제3경 구룡사와 구룡계곡, 제4경 성황림(1962년 천연기념물 지정), 제5경 사다리 병창, 제6경 영원산성, 제7경 태종대와 부곡계곡, 제8경 기암괴석 입석대인데요,

지금 내려가는 이 험한 '사다리 병창길'이 치악 8경 중 5경에 속한답니다.
그러니까 길이 형편없니 어쩌니하며 투덜거릴 게 아니라, 치악 8경 중의 하나를 걷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험하고 가파른 바위투성이길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통나무 의자도 예뻐보입니다.
눈이 있어 못 앉고, 하산시간을 맞추려고 바삐 가느라 앉아보질 못하지만, 치를 떨고 악을 쓰며 오르는 치악산 산객들에게 잠시나마 쉬어가라고 만들어 준 그 마음이 고맙고 예쁩니다.

13시 20분
아직도 구룡사까지는 3.3km나 남았습니다. 평지 같으면야 까짓 거 금방 가겠지만, 이렇게 경사가 급한 바윗길을 내려가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13시 25분



헬기구조 제1포인트 지점까지 내려왔습니다.


구급함이 있는 쉼터까지 내려왔지만, 여기도 그냥 지나갑니다.
웃고 떠들면서 함께 갈 일행도 없는데 혼자 앉아있으면, 왠지 외로운 모습이 청승맞아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갑니다.


13시 35분


사다리 병창길은 계속 됩니다.

사다리 병창길은, 산을 다 내려가야 끝이 나죠.

눈이 내려서 더 조심스러운 길


와, 이제 그 끝이 보입니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산을 다 내려온 겁니다.


계단이 시작되는 여기는 계곡길과 사다리병창길로 나뉘어지는 곳입니다.

계곡길은 낙석위험이 있어 아예 막아버렸군요.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갑니다.
오른쪽으로 700여 미터만 가면 세렴폭포가 있는데,

치악산을 올 때마다 세렴폭포를 들려봐야지 맘 먹었었지만, 오늘도 그냥 갑니다.
이 추운 날에 폭포는 꽁꽁 얼었을테니까요.
사실은, 다리가 많이 아파서 거기까지 갔다가 올 체력이 안되어서 패스하는 겁니다.


13시 55분


세렴안전센터에서 구룡사까지는 2.2km를 더 가야합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평지길이라 한결 수월합니다.



14시 15분
대곡안전센터까지 왔습니다.

대곡안전센터 화장실앞 다리를 건너서 구룡사 방향으로 가요.


구룡사입니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치악산 구룡사사적'에 따르면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해요.
지금은 '강희45년'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 출토되어, 숙종 32년(1706)에 구룡사가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구요.

구룡사에는 의상과 아홉용에 얽힌 전설이 전해옵니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곳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답니다. 의상은 치악산을 향해 가던 중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지른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워 이곳은 절을 세울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대요.
그래서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죠. 먼저 용들이 솟구쳐 오르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는 군요. 용들이 흐뭇해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더랍니다.
이번엔 의상이 할 차례가 되어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답니다. 그때 놀란 용 여덟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도망가지 못하고 못에 머물렀다네요. 그래서 절 이름을 구룡사(九龍寺)라 했구요.

세월이 흘러 절은 퇴락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氣가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했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더니 절이 더 힘들어졌고 廢寺가 되려 했는데,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훈수하기를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쇠락해졌으니, 다시 그 혈맥을 이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절 이름은 九龍寺가 아닌 거북이 구(거북 귀,龜)자를 써서 구룡사(龜龍寺)입니다.

14시 35분
商街를 지나고, 구룡사 주차장을 지나서 도로를 한참 걷다가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 건너 마을에 있는 승용차주차장을 지나, 다시 또 다리를 건너면 대형버스주차장입니다.

아침의 예상대로 오늘도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눈길 산행이라 어찌나 피곤한지, 한숨자고 싶네요.

14시 58분.
하산시간은 15시 30분까지 였는데, 쉬지않고 내려왔기에 반시간이나 일찍 왔군요.
오늘은 10.8km가량을 4시간 15분간 걸었습니다.
치악산 산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산행코스: 황골 - 입석사 - 비로봉 - 사다리병창길 - 구룡사 - 주차장 (약10.7km, 4시간 1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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