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7
눈꽃산행지로 유명한 백덕산으로 갑니다.
아침공기는 싸늘해서 두뺨과 두귀는 얼얼하고 코끝도 빨개집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입은 옷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는, 온몸이 덜덜 떨리게 합니다.
이 추운 날, 왜 밖에 나와서 청승을 떤답니까? 누가 시켰다거나, 등을 떠밀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평창 대화를 지나고

'방림 면소재지'를 지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09시 40분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문재터널의 문재쉼터에서 하차합니다.

백덕산 들머리는 터널 가까이에 있죠.

문재 쉼터에는 간이화장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등산객들외엔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없는 외딴 곳의 화장실은, 대부분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므로 이용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스패츠는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어, 아이젠만 장착하고서 배낭을 둘러 맵니다.
영동지방에는 올 겨울 내내 눈 한번 오지 않았는데, 영서는 눈이 제법 쌓였네요.


들머리로 가는 데크를 지나가는데, '횡성군 안흥면'이란 地名 안내판이 보입니다.
백덕산은 평창군 방림면과 평창읍, 영월군 주천면과 무릉도원면(옛 수주면), 횡성군 안흥면 등 3개군에 걸쳐있는 산입니다. 겨울이면 풍부한 적설량으로 설화(雪花)와 상고대가 만개하므로, 설경을 감상하려는 산행객들로 붐비는 곳이구요.


백덕산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는, '프랑스군 전투전적비'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백덕산 정상'이라고 되어있는 이정표는 부식이 되어, 밑둥이 부러져서 눈밭에 누웠습니다.
'프랑스 전투전적비'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5일,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1037고지 전투에서 승리한, 유엔군 소속 프랑스군의 전적비입니다.

눈에 덮힌 계단은 얼음이 얼어서, 딛고 올라가기가 조심스럽네요.



이정표는 '백덕산'을 가르키는 게 아니고, '프랑스군 전투전적비'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백덕산 정상이 영월군에 속해있기 때문에, 백덕산을 안내하지 않는 걸까요?
프랑스군 전투전적비는 유엔군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1037고지에 있다고 합니다.
1037고지는 1951년 3월 5일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프랑스군 28명이 전사하고 113명이 다친 격전지(激戰地)로서, 프랑스군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답니다. 이에 프랑스는 '1037고지 전투'를 기리기 위해 2010년 5월 전투전적비를 건립했구요.
그러나 프랑스대사관 주요 직위자가 교체되면서 전투전적비는 잊혀졌답니다.

그러다 육군 36보병사단이 2023년 11월, 등재되지 않은 프랑스군 전투전적비가 1037고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급부대와 협업해 전적비를 정식 전적기념물로 등재했답니다. 이후 예산을 마련해 전적비를 보수하는 등 지속 관리하고 있으며, 특히 지지난해인 2024년에는 주한프랑스 대사를 초청해서 한국과 프랑스 합동 추모행사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이 전투전적비는 방림면 계촌리에 있으므로, 오늘의 산행길인 운교리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09시 50분
임도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곤 임도를 40~50m쯤 걸어가다가, 이정표 옆 통나무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오르막은 그리 심하지 않지만, 그래도 올라가는 게 힘들군요.
아마도 눈길인데다, 아이젠까지 신었기에 발이 무거운 탓인가 봅니다.


10시
능선에 접어드니 한결 낫군요.

먹물로 그린 듯 검은색을 띄는 잣나무 사이로, 햇살이 환하게 비추입니다.


백덕산은 굵고 웅장한 산줄기가 매력적인 산입니다. 주변에 솟은 사자산(1,125m)과 청태산(1,200m), 태기산(1,261m) 등과 함께 강원 내륙의 고산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백덕산은, 조망이 좋아 시원스런 산줄기의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곳입니다.
지역민들 사이에서 '내륙 속에 숨겨진 신선의 놀이터'란 말이 회자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봄이면 능선 곳곳에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여름이면 계곡을 따라 연 이어진 폭포와 소(沼)의 푸른 물줄기가 청량감을 더한답니다. 가을철엔 계곡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단풍이 일품이며, 겨울철엔 많은 눈으로 인해 눈꽃이 만발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고 하죠.

백덕산은 그동안 몇번을 다녀갔습니다.
10여년전 산행을 처음하던 그 해는 산 정상에 쑥부쟁이가 무리지어 피어있던 가을이었지만, 그 후로는 주로 겨울에 왔었습니다.
평창의 먹골에서 올라 문재로 내려가고, 영월 흥원사(영월 무릉도원면 옛 관음사)에서 올랐다가 흥원사로, 그리고 오늘처럼 문재에서 시작해서 먹골로 내려가기도 했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오늘처럼 문재를 들머리로해서 정상으로 간 다음 먹골로 내려갑니다. 그게 가장 쉽고 무난한 코스입니다.

바람은 불지 않아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눈앞에 상고대가 피어납니다.


상고대는 위로 올라갈 수록 더 아름답게 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물방울이 살짝 언 정도이던 것이, 점점 더 얼음이 두터워지면서 주위는 하얗게 변하고 있습니다.

10시 20분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헬기장에는 오른쪽으로 길이 있습니다.

헬기장을 내려가면서 상고대는 더 아름답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뭔 산이 이런답니까?

아니 글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리도 환상적인 상고대가 피어 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거 참,
이래도 되는 건가요? 이건 순 반칙입니다.

황홀경에 빠져서, 혼자 가는 길도 외로운 줄 모릅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상고대가 그린 풍경으로 인해 가슴이 벅차 오르고 연신 웃음이 납니다.

거기에다가 맑은 하늘에서는 꽃잎이 날리 듯,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나비처럼 나풀 나풀 내리던 눈은, 조릿대 잎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늘을 쳐다보아도 환상의 세계입니다.


사람이 처음 웃기 시작하는 건 생후 2~3개월 부터라고 합니다. 3~4개월된 아기들은 눈만 마주쳐도 웃고, '까꿍'해도 까르르 웃습니다.
18~20개월 되면, 애기 스스로 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이 가능하다고 하죠.

정신분석학자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평생을 두고 잘 웃느냐, 안 웃느냐를 결정하는 나이는 태어나서 2살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예뻐하고 그러면 잘 웃는 아이로 성장하고, 부모가 자주 다투는 행동을 보이면 잘 웃지않게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 봐 온 부모의 행동이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아기들은 자라면서 웃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는데,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이 웃는 나이는 여섯살때라고 해요. 하루에 크던 작던 300회 정도 웃는다고 하죠. 그러나 10살이 지나면 경쟁사회에 돌입하면서 하루에 웃는 양은 100번에서 15번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40세 기준으로 12번을 웃고, 50이 넘으면 6번으로 준다고 해요.
성인이 하루에 15번만 웃는다면 병원마다 가득한 환자들이 절반으로 줄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스텐포드 대학의 윌리암 프라이 박사가 말 하기를, 사람이 10초 동안 배를 잡고 웃으면, 3분동안 열심히 노를 젓는 것과 같은 운동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볼 메모리얼병원 (Ball Memorial Hospital)의 교육책자에는 '15초 웃으면, 이틀 더 오래 산다'고 적혀 있답니다. 웃음은 우리 몸에 내제되어 있는 각종 치료제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만드는 최고의 명약으로 증명되어, 요즈음은 많은 병원에서 웃음을 치료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죠.

인도의 봄베이에서는 새벽이 되면 시청 가까운 공터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간단한 아침 운동을 하고, 그런 다음 미소를 시작으로 낄낄거리는 웃음과 깔깔거리는 웃음에 이어 배꼽을 잡는 웃음으로 이어진다고 해요. 봄베이의 의사 '마단 카타리나'씨와 함께 5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이 웃음클럽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모이면 33배 더 잘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1주일이 되지 않아 100명의 회원으로 증가했고, 1개월이 지났을 때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하지 못해도, 행복지수는 엄청 높다고 해요.


시간이 지나면 물방울로 사라질 상고대가 아쉬워, 이 풍경을 저장했다가 훗 날 다시 꺼내 보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댑니다.



백덕산 현위치를 가르키는 말목이 보입니다.

백덕산을 가르키는 이정표도 보입니다.

10시 53분
들머리의 이정표를 제외하고는, 여기서 처음 보는 이정표입니다.

백덕산은 산림청 100대 명산이며, 블랙야크의 100대 명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덕산 정상이 평창이 아니고 영월이라 그런 지 몰라도,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었으니까요. 얼마를 왔는 지, 얼마를 더 가야하는 가를 가르켜주는 이정표는,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걸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들머리의 이정표에는 '프랑스군 전투전적비'를 안내하고 있었지만, 한참을 올라와도 그리로 가르키는 이정표는 없었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리로 갈 일은 없긴 했지만요.

평일이라서 그렇겠지요. 우리들 외에 산행하는 사람이 없어 한발 앞서 간 일행들의 발자국을 따라 갑니다.


서리꽃은 정상가는 길 내내 피었습니다.
하늘에서도 눈발은 계속 날리고 있습니다. 벚꽃이 질 무렵이면,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 듯 그렇게 나풀 나풀 내려옵니다.

삭막한 겨울산에 눈만 내려도 예쁜데, 상고대까지 핀 백덕산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해발 1350m의 백덕산은 눈꽃과 상고대가 아름다워서 겨울 산행지로 각광을 받는 산입니다.
높은 산을 넘지 못하는 눈구름의 영향을 받아, 잦은 폭설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백덕산이란 지명은 윤두서(1668~1715)의 <동국여지지도>에 처음 등장한다고 하죠.
“백덕산은 지역 주민들이 부드러운 능선이 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밥 같아서 명명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맞은편 구봉산에서 백덕산을 보면,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이 물결치듯이 굽이져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으며, 또한 능선에 눈이 쌓이면 그 모습이 인근 주민들에게 하얀 쌀과 같이 큰 덕으로 보인다 해서 주민들이 지은 地名으로 본다고 해요.

국토지리정보원에는 이 능선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백덕산으로, 주능선 서쪽의 두 번째 봉우리를 사자산으로 구분해서 명기하고 있다 하구요.

'세종지리지'에는 ‘거슬갑산琚瑟岬山, 일명 백덕산이라 한다’고 돼 있다는데요, 거슬갑산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산이란 의미로, 산의 형태가 그러하고, 능선이 아름답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랍니다.

어쨌든 백덕산은 주민들이 명명한 듯한 '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밥'처럼 완만한 능선을 자랑하는 명산이며, 눈이 내려서 쌓인 모습이 절경을 이루는 산으로 평가받는 산 입니다.

사진 색깔이 약간 푸른색이 돌죠? 그건, 그늘진 곳을 지나면서 찍었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곳에서 찍은 아래의 사진과는 색감이 완전 다르죠?

가파른 내리막이 나타났습니다.

거리가 그다지 길지는 않아도, 눈이 쌓여 미끄러워서 간신히 내려옵니다.



11시 20분
1125m의 당재에 왔습니다. 백덕지맥 한 줄기인데요,
백덕지맥(白德枝脈)은 영월지맥의 태기산(1258.8m) 남서쪽 1.2km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며 청태산(1194.2m), 술이봉(888.2m), 사자산(1180.4m), 백덕산(1350.1m)을 넘어 평창강에 입수하는 산줄기를 말하며, 주천강(95.4km)의 우측, 평창강(149.4km)의 좌측 분수령이 되는데 최고봉인 백덕산의 이름을 따서 백덕지맥이라 한답니다.

이 안내판은 관리가 전혀 안되어, 안내문이 떨어져 나간 상태입니다.
등산로 정비에 조금의 관심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게 눈에 보입니다.


지도에 있는 '작은 당재'는 어디쯤인지, 아무런 표시가 없으니 도통 알 수 가 없습니다.
당재는 왜 '당재'라 하는지, 그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요?


11시 40분
두번째로 백덕산 현위치를 알려주는 말목을 만납니다.
비상시에 연락할 전화번호가 적혀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백덕산 정상이 보입니다.

저기까지 갈려면 아직 멀었지만, 힘 내서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밧줄이 두줄 매어진 오른쪽을 보면 사람들 발자국이 보이는 이 길은, 정상까지 가지않고 먹골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산행이 힘들다 싶으면, 정상까지 가지 않겠다면 그리하는 것도 좋죠.

바람이 불지않아 큰 추위를 체감하지는 못하지만, 눈길이라 어디 쉴 만한 곳이 없어 줄창 걸었더니 다리가 많이 아픕니다.
완만한 능선이라지만 어디 기대어 서서 쉴 곳도, 앉아서 쉴 곳도 없어,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계속 걷습니다. 험한 길이 아닌 게 다행이긴 합니다.


더 좋은 것은 어는 한 구간만이 아닌 가는 길 내내 피어있는 상고대가 있어, 그 풍경을 보며 걷느라 행복해서 피로감을 덜 느낀다는 거죠.

오늘은 아주 그냥 횡재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상고대가 이렇게 줄곳 피어있는 곳은 없었거든요.





거의 다 왔네요.
500m를 가면 정상이랍니다.

12시 17분
이정표가 있는 여기는 먹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구요.
여기서 정상까지 갔다가 도로 내려와서, 먹골로 가는 겁니다.

서울대나무를 지나갑니다.

신갈나무가 서울대 정문처럼 굽어 있어 '서울대 나무'라 불리우는데, 이 굽은 나무밑으로 댓번쯤 드나들면 자녀가 서울대에 간다는 말이 있다는 백덕산의 명물입니다.

뒤돌아본 '서울대 나무'

철쭉나무에도 하얗게 꽃이 피었습니다.



12시 30분
밧줄이 매어있지만 그 옆으로 가는 게 더 안전해 보입니다. 발자국을 보니까 앞서 다녀간 일행들도 그 옆으로 다녔군요.

드디어 백덕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12시 40분


정상 직전의 '평창산림문화8경' 안내판 좀 봐요. 관리가 전혀 안 되었다니까요. 진짜 너무한 것 같지 않나요?


바위로 이루어진 1350m의 백덕산 정상은, 흰눈에 덮혀 있습니다.

조망은 기가 막힙니다.

여기도 안내판이 있습니다만, 다 벗겨지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몇년 전에 찍은 사진을 가져와 봤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높이는 1350m이며 산세는 험한 편이어서 능선의 곳곳마다 절벽을 이룬다.
바위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에서는 가리왕산과 오대산의 산 군과 함께 남쪽으로는 소백산, 서쪽으로는 치약산맥이 보인다.
크고 작은 폭포와 소(昭), 담(潭)이 수없이 이어진 법흥리 계곡일대에는 잘 보존된 원시림과 주목단지가 있으며, 남서쪽 기슭에는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보물 612호)와 법흥사가 있다."

정상 오른쪽(西)으로 구병대산과 치악산이 보입니다.

남쪽 방향의 봉우리.
이 봉우리를 두고 어떤 이는 신선봉이라 하고, 어떤 이는 백덕산 쌍봉이라 하는데 대부분 산객들은 신선봉이라 부릅니다.
2024.1. 4 영월 백덕산 신선바위에서 50대 남성이 40m 아래로 추락해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4일 오후 1시 30분쯤 영월군 무릉도원면 백덕산 신선바위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남성(57)이 산악회 일행 40명과 함께 등반 도중 40m 아래로 추락했는데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일행에 의해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심정지 상태의 남성을 발견하고, 헬기로 구조 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는 숨졌다고 해요. 사고원인은 쌓여있던 눈에 미끄러져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구요.

속이 출출한데 점심을 먹고 가야겠습니다.
이따금씩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지만, 정상에는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 쬡니다.

12시 55분
점심을 먹고나니 기운이 납니다.

이젠 내려갑니다.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백덕산에는 정상석만 외롭게 서 있습니다.

13시 07분
먹골로 내려가기 직전의 통나무 쉼터.
올라오는 길에도 이런 쉼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먹골로 가는 길에 접어 듭니다.

조금 올라가는 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그리고 걷기좋은 능선, 여기는 헬기장이랍니다.
헬기장이라기엔 좀 좁은데요, 여기서 태양광시설이 있는 왼쪽길은 비네소골로 가고, 직진하면 먹골로 갑니다.


한동안은 평범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걷습니다.

100년도 더 넘은 아름드리 신갈나무가 이따금씩 서 있는 길

공병효 동판앞을 지납니다.

산행 중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공병효씨를 기념하는 동판
줌으로 당겼더니 초점이 맞지 않았네요. 그래서 전에 찍었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평택에서 살던 천주교 신자였었나 봅니다. 공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이 있군요.


이 통나무의자들은 아마도 먹골가는 길이 가파르니까, 좀 쉬었다 가라고 마련한 건가 봅니다.
내리막은 너무도 가팔라서 진땀이 날 정도이니까, 쉬었다 갈 만도 해요.


사진에는 평범해 보여도 이 길은 엄청 가파릅니다.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내리막길은 눈 길이라 더 위험해서, 밧줄을 꼭 잡으면서 내려옵니다 .



내리막은 계속됩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내리꽂힐 듯한 무척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은 낙엽송 숲길에 다다라서야 끝이 납니다.


13시 35분
이정표가 서 있는 곳. 여기는 먹골재입니다.

통나무의자와 현재위치를 알려주는 고개(먹골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갑니다.

아직도 마을까지 3km를 더 걸어야 해요.

낙엽송 숲길은 이어지고

내리막도 그리 심하지는 않습니다.

발밑에서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

눈 내린 백덕산 산행도 거의 끝나갑니다.

13시 45분

이제 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13시 55분
지자체에서는 백덕산에 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나지를 않습니다.
이정표를 세우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이건 또 뭡니까? 글씨도 제대로 읽기 힘들군요.
지난 가을 산행했던 가평의 태화산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민가가 보입니다.
이 주택들은 별장인가 봅니다. 집 마당가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쇠로 만든 줄을 쳐 놓았습니다.


집들은 하나같이 근사한데, 사람이 살지않는 빈집같아 보입니다.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먹골주차장이 보입니다.
백덕산은 1350m입니다. 들머리인 문재가 830m이니까 520m만 올라가면 되고 또, 오르막도 완만해서 산행하기가 쉬운 산입니다. 그렇지만 눈밭이라 쉴 만한 곳도 없어, 쭈욱 걷기만 했더니 쥐가 날 것같이 다리가 아파오고 몸은 지쳤습니다.
은근히 힘든 산행이었던 백덕산 산행기도 여기서 이만 마칩니다.
오늘은 좀 많이 투덜거렸네요.

14시 10분
주차장에는 우리 버스 뿐입니다.
산행코스 : 문재→삼거리→당재→작은당재→삼거리→백덕산→삼거리→헬기장→먹골재→먹골주차장(운교리) 11.5km, 4시간 30분, 평균속도 2.5km





'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월의 오대산, 그리고 '나옹선사 수행길'을 걷다 (0) | 2026.02.26 |
|---|---|
| 2월, 눈 내린 '치악산'을 올라가다. (1) | 2026.02.05 |
| 2026, 민족의 靈山 '태백산' 가는 길. (4) | 2026.01.22 |
| '26, 눈 쌓인 <대관령 옛길>을 걷다. (0) | 2026.01.15 |
| 2026, 울진 '응봉산'에서 새해 첫 산행을 하다. (1) | 2026.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