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4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닛폰바시다리 츠루동탄에서 나라와 고베로 가는 투어버스를 타려고 부지런히 걷는 길.

닛폰바시 Top1 건물은 우리가 3일동안 묵는 호텔형 아파트입니다.

도로 한쪽에는 스모선수 동상이 경기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사카 출신의 유명 스모선수인가 봅니다.

복작대는 숲에서 용케 가이드를 만나 버스에 오릅니다.
ZIPANG이라 쓴 버스가 오늘하루 우리와 함께 할 와쿠와쿠 투어버스입니다.


나라현(奈良県,나라켄)은 일본 긴키지방 내륙에 있는 현이며, 현청 소재지는 나라시(奈良市)입니다.
기이반도 내륙의 과거 율령국인, 야마토국의 영역을 차지하여 북서쪽 분지 부분을 제외하고 험한 산들이 솟아 있으며, 인구의 편차가 크고 도시 면적은 전국에서 8번째로 가장 좁다고 하죠.

일본속의 한반도, 일본속의 작은 백제, 일본이라는 국호와 국명, 일본이 처음 탄생한 고향과도 같은 그곳이 '나라(奈良)입니다.
羅唐 연합군에게 敗한 백제인들이 목숨을 걸고 현해탄을 건너 처음 도착한 곳이 난바인데, 이 난바는 어려울 亂, 파도 波 즉 '난파'라는 지명이 생기고, 이 곳에 도착한 백제의 귀족들은 여기에 宮터를 짓게 되죠. 그 궁터는 현재 오사카 박물관 지하에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新 문물을 백제로 부터 받아들였던 일본인들은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별 소용없다' '필요없다' 라고 할 때, '쿠다라나이'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쿠다라(백제), 나이(필요없다)라고 해서 '백제로 부터 온 게 아니면 소용없다'라는 뜻입니다.
과거 야마토 왕권시대에 백제를 '쿠다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비롯되었다 해요.
일본의 유명 역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쿠다라의 어원이 한국어 '큰 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따라 일본에서도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 지고 있답니다.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나라는 과거에 일본의 수도였었죠. 그 후에 교토가 수도였다가 지금은 도쿄가 수도가 되었습니다.

나라공원에도 버스주차장이 있지만, 오늘 아침에는 '주차할 수 있는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기에 골목길을 10여분 걸어서 갑니다.

나라공원으로 가는 길



공원입구에 도착하자 빨간 우체통이 반겨줍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우체통을 본따서, 우편물 투입구를 2개로 한 우체통을 설치했더랬죠.
얼마가지 않아 슬그머니 없어지긴 했지만...

나라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동대사는 나라여행의 필수 코스입니다.
그 동대사를 둘러보기 전, 사슴공원부터 먼저 들립니다.


남대문 앞에서 동대사를 배경으로,

그리고 동대사를 바라보며 한 컷.

일본 초등학생들도 수학여행을 왔습니다.
교복 자율화 조치로 우리나라는 교복을 거의 입지 않는 반면, 일본 학생들은 아직 교복을 입습니다.
브랜드교복이 생기면서 교복 부담이 컸었던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학생들의 교복은 한눈에 봐도 아주 저렴해보여, 학부모의 교복에 대한 부담이 없어보였습니다. 관광지마다 마주친 학생들의 복장을 보면, 좀 후줄근해 보일 정도로 저렴한 옷감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용성을 강조하고 교복을 입음으로써 소속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교복을 입히는 것 같습디다.
그리고 모자를 쓴 건 초등학생입니다.

도다이지 뮤지엄의 손바닥 조형물.

사슴공원으로 가기 전에 있는 도다이지 뮤지엄은, 경내에 있는 도다이지 종합문화센터 안에 있는데요, 메인 전시실은 제1실에서 제 5실까지 방마다 테마가 설정되어 있어, 알기 쉽게 견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 1실은 창건기의 도다이지, 제2실에는 국보인 석가불상이나 중요 문화재인 천수관음보살상, 보살반가상 등의 불상조각, 공예품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고 해요. 도다이지의 역사나 의의를 깊이 알 수 있으므로, 먼저 여기서 도다이지를 알고 난 뒤에 각 사당으로 가는 것도 좋다고 하는데, 일정이 바빠 들릴 시간이 없습니다.



도다이지(동대사) 뮤지엄 매표소

나라공원에 들어서자 사슴 응가 냄새가 많이 납니다. 사슴도 몇마리 돌아다니고 있구요.

남대문 양옆에 있는 돌로 만든 이 짐승은, 우리로 치면 해태상과 같은 거라고 해요. 이 石像 이름은 일본 역사의 野史에는 '고마이누'.
'고마'는 고려에서 왔다는 삽살개, '이누'는 곰입니다.
오사카에는 백제 마을, 백제 다리(橋)는 물론, 백제 姓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이 살고 있대요.
이 '고마이누'처럼 모르고 보면 일본의 것이고, 일본의 문화재이고, 일본의 관광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그곳이 바로 일본입니다.
어찌보면 일본의 이 모든 것들이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사슴공원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시간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사슴은 강아지처럼 사람들에게 달라붙습니다.

나라 공원(奈良公園)과 주변 도로에는 약 1,200마리의 꽃사슴들이 살고 있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고라니보다 덩치도 더 크고, 수컷은 뿔이 크고 멋지게 자라는 種이라서, 관광객들은 사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기념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공원이라는 말 그대로 사슴 공원 주위에는 방책 같은 게 전혀 없어서 사슴들은 공원 어디라도 막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나라 공원(奈良公園)에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사슴들

나라시대에 편찬된 '만요슈'에는 '나라의 사슴'에 대한 노래가 나온다는데, 767년에는 후지와라'씨의 우지가미(氏神)를 모시는 '가스가' 대사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 때, 우지가미 중 한 위인 '타케미카즈치'가 카시마 신궁(鹿島神宮)에서 가스가 대사로 올 때, 흰 사슴을 타고 나타났다고 해요. 후지와라씨는 사슴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고, 나라의 사슴은 신성한 동물로서 보호받았다 합니다.

남대문이라 하는 大華嚴寺에도, 문 밖 동대사에도 사슴들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센베이과자를 얻어 먹으려고 사람 주위를 서성이는 사슴들

에도시대에도 사슴을 신성한 동물로 여겨서, 사슴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하고 가족들은 쫓겨났다는 기록이 있다 하는데, 사슴으로 인해 다친 경우도 꽤 있었지만, 정작 사슴을 해치면 처벌을 받다보니 대처하는게 쉽지 않았던가 봅디다.


공원내의 화장실은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버스기사의 쉼터도 있고 울타리밖 주차장에는 승용차 몇대 밖에 없던데,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저기에 주차를 하지 못했습니다.

신성한 동물로 특별 대우를 받는 사슴이지만,17세기엔 사슴의 만행을 보다 못한 나라봉행에 의해 몇몇 숫사슴들의 뿔을 잘랐고, 지금도 나라 공원에선 가을만 되면 뿔 자르기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엔 폐불훼석(廢佛毁石) 기조로 인해 사슴들도 덩달아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어, 현령의 조치로 사슴 농장(鹿苑)을 세웠으나, 잘못된 사육으로 사슴들이 떼죽음을 당해 38마리의 사슴밖에 남지 못하였다 해요. 그 후 정식으로 '나라 공원'을 세우고 민간을 중심으로 사슴 보호 활동이 일어나 사슴의 수를 복구할 수 있었답니다.


공원 안의 구멍가게와 노상에서는 사슴에게 줄 사슴전용의 센베이(전병)를 10개에 200엔에 파는데, 시카 센베이(사슴 전병)는 쌀겨와 밀가루로 만들기에, 맛이 없고 텁텁해서 사람이 먹기엔 좀 그렇답니다.




센베이는 사슴 보호 기금 조성 목적으로 상인과 협업해서 파는 것으로, 이 과자를 들고 있으면 사슴들이 마구 몰려드는데 센베이 줄 때에 물릴 수도 있으니 손바닥 위에 얹어서 주지 말고 과자 끝을 잡고 줘야합니다.

숫 사슴들은 뿔로 받기도 합니다.
풀을 먹지 않으면서 주로 센베이 먹이에 익숙한 사슴들이 그러한데, 사슴들이 주위를 둘러싸며 먹으려 할 때는 겁이 날 정도입니다. 과자를 보면 환장을 하며 달려들거든요.



센베이를 파는 노점상.
200엔이라고 가격을 써 놓았군요.





풀을 먹는 사슴들과 어린 사슴들은, 센베이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성격도 온순(?)해 보입니다.

센베이에 길들여진 사슴들이 좀 사나울 따름이죠.
사슴들이 적극적으로 사람에게 붙는 건, 사람과 익숙해져 있기도 하고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 의해 학습되어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는 데다가, 같은 사슴 무리에서도 먹이 경쟁 관계에 있어 사슴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무리들의 경쟁도 심해졌기 때문이랍니다.
게다가 인간 의존형 사슴들이 생겨나 센베이와 간식만 먹는 편식을 하며, 그걸 못 먹으면 그냥 굶어버리기에 인간이 주는 센베이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해요.

이 우리 안의 사슴들은 센베이에 큰 관심이 없는 사슴들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만지려고 하면 뒷걸음치거나 달아납니다.

어리고 순하며 사람주위에 몰려들지도 않죠.



'곤니찌와' 인사하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슴도 같이 인사합니다.
관광객들이 나라 사슴에게 인사를 하고 사슴도 따라서 인사를 하면, 센베이를 주는 게 학습이 되어 그러는데, 이 사슴이 인사하는 건 나라공원만의 특징이며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단체사진을 찍는 학생들 앞으로 사슴이 일렬로 한 사람을 따라가는 건, 사진이 멋지게 잘 나오도록 센베이를 들고서 유인하는 겁니다.

두고 두고 추억에 남을 멋진 사진이 되겠죠?


나라공원의 이 사슴들은 천연기념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슴공원은 여기까지
남대문이라 불리는 대화엄사(大華嚴寺) 문을 나가 동대사로 갑니다.


이 남대문(南大門, 난다이몬)은 송나라 양식으로 좌우에 금강 역사상도 있는데요, 일본 나라 동대사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은 남대문(南大門) 양쪽에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 초인 1203년 운경(運慶)과 가이케이(快慶) 등 유명 조각가들이 제작한 국보급 목조 조각상으로, 매우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이며, 일본 불상 조각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답니다.

금강역사상은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그물망에 갇혀있어, 갑갑해 보입니다.

자료사진을 보면, 전에는 이리했었던 모양인데.....




동대사에 왔습니다.


동대사 안 연못까지 와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사슴들


'大佛殿 入堂' 안으로 들어가 입장권을 구매합니다.
입장료는 성인 800엔, 초등학생 400엔, 유치원생은 무료입니다.
중복되는 얘기입니다만, 입장권은 현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매표소는 관람객 인원수에 따라 1인, 2인, 3인 그런 식으로 창구를 운영합니다.


표를 끊고 들어가자, 바로 검고 흰색의 대불전이 보입니다.

회랑에는 '이리로 가라'고 손으로 가르키며 안내를 하고.


세계 최대급 목조건축물, 대불전
도다이지의 금당인 대불전은 폭 약 57m, 안 길이 약 50m, 높이 약 48m라는 스케일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급 목조건축으로 유명한 건물입니다. 현재의 건물은 에도시대에 재건된 세 번째 건물이며, 지금도 세계 최대급 목조 건축물이지만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대불전보다 폭이 더 넓었답니다.

남대문과 대불전의 건축 양식은 '대불양식(다이부쓰요)'라고 합니다. 각 시대마다 형태와 구조가 조금씩 다르며 일본에서는 상당히 드물게 시도된 양식인데, 기본적으로 복잡한 구조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양식으로, 건물을 세우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대량식 구조지만, 엄청나게 큰 건물을 지탱하고자 수많은 보와 포로 겹겹이 연결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며, 심지어 후대에 건립된 대불전은 일반적인 동양 전통건축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보를 대각선으로 설치하는 방법까지 적용하였다고 하죠.
대불양식은 8세기에 지어진 도다이지가 불타 사라지고 다시 지은 12–13세기에 나타난 양식으로, 처음의 양식과는 다소 다르다고 합니다.

대불전은 1709년 화재로 인해 재건한 뒤, 약 200년 동안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이었다 해요.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기술의 발전으로 스페인의 메트로폴 파라솔, 미국의 틸라묵 항공 박물관, 노르웨이의 미에스토르네 빌딩 등 거대한 건축이 이루어져 세계최대라는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지만, 법당으로서는 아직까지 대불전이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이랍니다.


대불전 앞마당에 있는 '곤도핫카쿠토로(金銅八角燈籠금동팔각등롱)'는 도다이지에서 몇 안 남은 나라시대 창건 당시의 유물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조각이 아름답고 여러 글씨도 새겨져 있고 그 외에 중문, 좌우 회랑, 대불전 좌우의 불상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요.



대불전 안에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마주한 大佛. 높이 14.98m에 무게 452t인 청동 비로자나불도 여러 번의 화재로 부분이 녹거나 파괴되어 다시 제작되었지만, 상당한 크기이기 때문에 일부분은 남아 이어져 왔답니다.

처음 제작한 대불은 청동으로 만든 후 도금한 金銅佛이었는데, 이 당시의 도금 방법은 水銀에 금을 섞어 아말감을 만든 다음, 도포하고 열을 가해 수은만 증발시키고 금만 남기는 방법이었대요.

대불의 어마어마한 크기 만큼이나 엄청나게 많은 양의 수은이 사용되었는데, 작업 중 수은 증기가 대불전 안을 가득 매웠고 나라市 전체에 퍼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작업 인부들과 나라市 시민들의 상당수가 수은 중독으로 고통을 받기도 했구요.

지금의 대불은 1691년에 완성된 것으로 佛像 하부에는 처음에 만든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특히 불상이 앉은 연꽃 대좌에는, 창건 당시 법화경의 내용을 새긴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요.
손바닥은 성인 16명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크며, 대불의 좌우로는 허공장보살과 여의륜관음을, 대불 뒷편으로는 광목천왕상과 다문천왕상을 모셨답니다.

동대사 대불전 얘기를 좀 더 이어가 봅시다.


큰 크기로 유명한 대불전은 758년에 준공되었답니다. 최초로 세워진 대불전과 청동대불은 한국계 도래인들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해요.
기사나라현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도다이지 건축에 있어, 신라계 도래인 목수가 총감독을 맡았고, 거대한 청동 불상은 백제계 도래인이 디자인했으며, 사자 석상은 중국 남조 유송출신 석장이 작업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백제, 신라, 중국의 문화가 조화를 이룬 사찰이라는 거죠.

이 대불전은 화재를 두 번 입어 파괴되었답니다. 첫 번째는 헤이안 시대 말기인 1181년 헤이시 정권이 난토(南都)의 승병들을 추포(追捕)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는데 승병 진압을 띠고 난토로 파견된 '다이라노 시게히라(平重衡)'가 한밤중에 기습을 앞두고 "불을 밝히라(횃불을 가져오라)"라고 한 것을 부하가 "전부 불태워라."로 잘못 알아듣고 절에 불을 놓은 것이 그만 온 경내로 옮겨붙어 절이 통째로 불타 버렸다고 해요. 하필 불을 놓은 때가 음력 12월 겨울로 한창 건조할 때였으니 활활 타기 좋은 때였대요.

화재가 있고석 달 만에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사망했고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가 패망한 뒤에, 시게히라도 겐지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난토로 호송, 분노한 승병들에게 처형되었다 하죠.
그 후 대불전은 무로마치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나 센고쿠 시대인 1567년, 두 번째로 불에 탔답니다.

화재 두 번 모두 승병(僧兵)뿐만이 아니라, 당시 대불전 안으로 몰려든 승려와 피난민들도 2천여 명에 달하였는데,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면서 모두 목숨을 잃었고 내부에 안치된 대불 또한 녹았버렸고, 현재의 대불전은 1709년에 재건된 3번째 금당이라 합니다.





타몬텐(多聞天) 상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대불전의 명물로 구멍이 뚫린 기둥이 있는데, 이 구멍을 통과하면 1년치 액땜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시도를 합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남학생들 몇명이 하고 있었는데요, 아이나 몸이 작은 여자가 아니면 힘들다는 얘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약간 과체중의 성인 남성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크기입니다.

조금 뚱뚱해 보이는 사람도 힘들게나마 빠져나올 수 있는데, 보통 체격의 성인이라면 들어가면서 다리가 움직일 여유공간이 없기 때문에 팔 힘으로만 빠져나와야 한다고 해요. 그러므로 팔 힘이 적다 싶으면 반대편에서 팔을 당겨줘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죠.
이 나무구멍의 크기는 대불의 콧구멍 크기라는 말이 있대요.








염주를 파는 곳


어떤 것이냐에 따라 10만원 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시한번 大佛을 보고 동대사를 나옵니다.


밖으로 나가는 곳은 대불전 왼쪽입니다.

과거 화재를 입었던 동대사 사진이 보입니다.

이 사슴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합니다.

센베이를 안주는데도 여섯, 일곱번씩 계속 인사를 합니다.


동대사 경내를 나와 버스주차장으로 갑니다.
다음 일정인 '아리마온천'으로 가거든요. 온천 뜨거운 물에 푹 담갔다가 나오면 산뜻하고 개운해 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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