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이어 계속합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괴산 '미륵산성'에 대한 안내판이 보입니다.
화양동 남쪽에 있는 낙영산과 성암마을 동쪽에 있는 도명산 중턱을 둘러싸고 있어 일명 '도명산성'으로 불리기도 하는 미륵산성은, 성 안에 도명산 마애불을 비롯해 문터, 건물터 8곳, 성 안팎으로 물을 통과시키는 장치인 수문터, 우물터 4곳이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이랍니다
미륵산성은 도명산.낙영산.쌀개봉 등 3개 봉우리의 암벽을 이용해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지형마다 축성방식이 다르며,
전체둘레 5.1㎞, 외성을 합한 석축만도 3.7㎞에 달하며 성벽의 잔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라고 하는데,
산행하는 동안 산성의 모습은 전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km남짓한 곳에 공림사가 있답니다.
공림사는 한때 법주사보다 더 번성했으나, 임진왜란과 6·25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전소되어 새로 지은 사찰이라고 합니다.
낙영산 공림사는 신라 경문왕 때 자정(慈淨)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요,
자정은 국사의 지위를 사양한 뒤 그곳에 초암을 짓고 살았는데, 그의 덕을 추모한 왕이 절을 세우고 공림사라는 사액을 내렸대요.
임진왜란 때는 방화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을 인조 때 다시 중창하였구요,
1688년(숙종 14) 사적비를 세웠으며, 여러 번 중창했지만 6·25전쟁 당시 공비의 잦은 출몰로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고 모두 소실 되었었답니다. 그 후 1981년부터 1994년까지 대대적 중창을 이어나가 오늘의 공림사가 있는 것이며
공림사에서 유명한 것은 느티나무라는데요, 충북 도내에서 자라는 느티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로 수령 1천년을 훌쩍 넘는 답니다 (사진 자료 참조).
발밑에는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바위가 넘어질까봐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받쳐놓은 곳도 지나면서, 바짝 마른 땅에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봄이 되면 불어오는 양간지풍(襄杆之風)은 4월경에 강원도 양양과 고성(간성)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부는 바람입니다. 양양과 강릉으로 부는 바람이라고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도 하는데요,
봄철이 되면 한반도 남쪽에는 따듯한 고기압이, 북쪽에는 차가운 저기압이 형성되면서 동쪽으로 서풍이 불죠.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푄 현상을 일으키고 영동지역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건조한 이 바람은, 국지적으로 강한 돌풍을 발생하며 대형 산불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양간지풍이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주 대형사고를 친거죠.
11일 아침 8시 30분경 강릉 난곡동에서 발생한 불은, 강풍을 타고 인근 골프장과 주택, 펜센등을 덮치며 경포 바닷가까지 번졌습니다.
처음 이 불은 강풍에 소나무가 쓰러지면서 전깃줄에 닿아 전기불꽃이 발생해서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이 산불은 주택과 펜션 125채, 차량 1대, 불길을 피하지 못한 80대 남성 1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혔구요.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30m에 달하는 태풍급 강풍을 타고 손 쓸 틈도 없이 확산된 이 불로 인해,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방해정이 반소되고 상영정, 인월사 절이 전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릉의 자랑인 松林(170ha가량)포함해서 경포일대 379여 ha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경포호 주변에는 문화재급 누정(樓亭)과 고택이 있는데요, 불행 중 다행히도 보물 <경포대>와 중요민속자료5호인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인 <선교장>은 화마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경포대를 지키기 위한 후일담은 눈물겨웠습니다.
강원도와 강릉시, 문화재청 직원들은 초속 30m의 강풍속에서 경포대로 향하는 불길을 보고, 경포대의 현판 7개를 떼어 인근에 있는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겼으며 소화전과 등짐펌프, 산불진화차량을 이용해 경포대 주변에 물을 계속 뿌려대는 사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몹쓸 양간지풍으로 인해 발생한 이 불은 3시 30분경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면서 1시간정도 후인 4시 30분에 진화되었는데요,
이날 내린 비는 5mm가량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를 화마면적으로 환산하면 2억리터(1억 8,950만 리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양이고, 2천리터 기준의 소방펌프차 10만여대(9만 4,750대)가 일시에 쏟아부은 것 같은 단비였습니다.
산불발생 8시간만에 진화는 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중에서도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경포주변이 황폐해진 탓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정부에서는 화마가 휩쓸고 간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지만, 하루아침에 살던 집과 재산들이 잿더미로 변한 이재민들의 아픔과 슬픔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 재산이 한 순간에 날아간 그 참담함, 살아내야 할 막막하기만한 앞날을 생각하면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생필품들이 답지되고 천막으로 당장은 어떻게 지낸다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주택복구금은 이재민들의 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합니다. 때아닌 재난을 당한 이재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따뜻한 소식이 전해지기를,
암담하기만한 그들에게 용기내어 살아갈 수 있는 기반과 보금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써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날이 오기를,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간절히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들 모두가 기운내어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또 다른 능선에 올라서니 아까 봤던 미륵산성 안내판이 또 있군요.
쬐끔이라도 山城(산성)이 보였다면 몰라도, 이건 아예 보이지도 않는 산성에 안내판만 있다니 좀 그렇네요.
이 능선에서 공림사로 가고, 도명산으로 가고 또 낙영산으로 갈라집니다.
낙영산은 90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어요.
한숨 돌리고서
도명산도 낙영산도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종종 쉬어가며 산행하면 덜 힘들텐데 별로 쉬지도 못하고 강행군을 하다보니 지쳐오는 상태라 힘을 내어 올라갑니다.
힘들고 빡센 산은 아닌데, 여유롭지 못한 산행을 하니까 체력이 조금 떨어진 그런 상태.
도명산을 통틀어 낙영산으로 친다고 해요
옛날 중국의 천자가 세수를 하려는데 물속에 아름다운 경치가 보여 그림으로 옮겨 찾게 했는데, 이곳이 바로 떨어질 낙(落), 그림자 영(影) '낙영산'이었다고 한답니다.
낙영산 가는 길에는 발 편하라고, 야자나무 껍질로 만든 곳도 있고
바위를 밟고 올라가다 뒤돌아보면
멋진 경치도 눈에 들어오고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산은 봄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낙영산 정상입니다.
684m의 정상에서 인증사진 한번 찍고
가령산 방면은 5월 중순까지 입산통제를 합니다.
그래서 도명산으로 다시 가는거죠.
내려가면서 봐도 저 산은 멋지네요.
미륵산성 안내판이 서 있는 능선에서 도명산쪽으로 ~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면 더 할 나위없이 좋은데,
속으로는 산행을 마칠 때 까지 참아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ㅎ
낙영산으로 가면서 처음 봤던 미륵산성 안내판을 지나면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했었는데
저기 무영봉이 보입니다.
조난과 추락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는 구간.
질러가면 좋겠지만 조금 돌아가더라도, 출입금지 하는 이 길로는 가지 말아야죠?
도명산 정상에서 내려와 낙영산(공림사 방면)으로 가는 그 갈림길에 왔습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고 양도 많아집니다.
학소대 방향으로 가는 그 길에는 낙영사터 마애불이 있는데요,
이 바위구멍으로 가도 되지만, 이것보다 왼쪽편으로 마애불앞을 지나는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마애불은 다른곳에서 보던 것처럼 윤곽이 뚜렷하거나 선명하지 않아, 아무 생각없이 걷다 보면 그냥 지나칠 수 도 있습니다.
옛 낙양사 터의 삼존불인 마애석불은 도명산 1경이랍니다.
고려 초기 것으로 30m 수직암벽에 새긴 불상으로 모두 3구의 불상을 선으로 표현하였는데요,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모두 3기이며, 좌우에 협시불을 세우고 중앙에 본존불을 모신 삼존불입니다.
본존불은 얼굴 길이가 2m이며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고 큼직하며, 사각형의 신체에는 선으로 새긴 U자형의 옷주름을 촘촘하게 표현하였으며 본존불은 현재 높이 9.1m 정도지만 깨진 부분까지 감안하면 15m가 넘는 것으로 보인답니다.
오른쪽 보살은 14m, 왼쪽 보살은 5.4m로 당대를 대표할 만한 거대한 삼존불(三尊佛)이고...
괴산 도명산 마애불상군(槐山 道明山 磨崖佛像群)은,
--------- 도명산 암벽에 새겨진 마애 삼존불은, 1984년 12월 31일 충북 유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마애불상군을 지나면서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배낭도, 옷도 비에 젖어갑니다.
다리위에서 바라 본 코끼리바위.
코끼리같아 보이나요?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지건만, 비옷은 거추장스럽다고 안 입는다 고집부립니다.
가랑잎도, 계단도, 나무들도 봄비에 촉촉히 젖어가고
땅도 젖고, 마음도 젓습니다.
그래도 이 비가 그리도 고마울 수 없습니다.
얼마 내리지도 않은 적은 양이지만, 이 비가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거든요.
이 비 그치면 산과 들은 더 푸르러지겠죠?
마른 논에 물이 고이면 가래질을 하고 볍씨를 뿌리고
옥수수, 감자, 상추, 대파같은 농작물은 비를 맞고 쑥쑥 자라날테고.
드디어 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물가에는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서서 학소대를 바라봅니다.
화양구곡 중 제8곡인 학소대.
학소대가 보이는 다리에서 주차장까지는 2.5km랍니다.
층층의 커다란 바위 위에 옛날 靑鶴이 둥지 틀고 새끼를 쳤다는 학소대(鶴巢臺)를 지나 아래로 조금 내려오면 물가에 와룡암이 있습니다.
용이 누워있는 모습의 와룡암은 7곡이구요.
계곡을 보며 걷는 길에도
계곡 저 편에도 온통 꽃, 꽃들
능운대 화장실까지 내려왔어요.
조금전까지 봄비를 맞은 금낭화는 새초롬합니다.
큰바위가, 마치 구름을 뚫고 솟아 오른듯이 우뚝하다는 '능운대'는 6곡
5곡 첨성대(瞻星臺)는 송시열이 천문 관측을 하기 위해 올랐다는 바위라 합니다.
강의 남쪽 낙양산 기슭에 바위가 층층이 포개져 대를 이루고 있죠.
화양계곡은 맑고 푸른 물과 고운 모래가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채운암으로 가는 아치입구에는 산벚꽃 하얀꽃이 피어 채운암에 들려보고 가라고 손짓하는데, 와룡암과 능운대와 첨성대를 보면서 가다보니 맨 꼴찌가 되어서, 그냥 지나갑니다.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는군요.
길에서 30m쯤 가면 채운암인데, '구름도 채색하는 아름다운 절' 또는 '구름에 물든 절' 이란 뜻의 예쁜이름을 가진 절인데...
채운암은 원래 첨성대 안쪽에 있던 절로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 도일선사가 수도암으로 창건하였으며, 1610년에 중창을 했고, 1896년 동학군이 봉기할 때 왜군이 불을 질러 대웅전 3칸만 남았었는데, 1948년 산사태로 채운암이 파괴되자 요사채 일부를 가져와 지금의 자리에 있던 환장사와 합치고 채운암이라 했다고 해요.
채운암은 암서재 뒷편쪽에 있죠.
길에서 바라 본 채운암.
채운암 대웅전에는 조선 경종 3년(1723년)에 만든 목조여래좌상이 있는데,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3번이나 불태우려다가 실패하자 겁 먹고 도망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대요.
송시열이 이곳에 암서재를 지은 때는 60살이 되던 1666년 8월이라는데, 지금봐도 경치는 그야말로 끝내줍니다.
금사담 바위에 새긴 글씨 들
국내의 수많은 구곡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화양구곡
괴산 청천면 화양구곡 입구의 화양서원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으로, 1999년 12월29일 사적 제417호로 지정되었답니다.
송시열이 은거하던 장소에 세워졌으며 1696년(숙종 22) 사액을 받았다고 해요.
나중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좀 찬찬히 둘러봐야겠습니다.
높이 솟아 있는 기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경천벽(擎天壁)
운영담
비 그친 뒤의 강물은 찰랑 찰랑거리고
봄꽃들이 피어나 예뻤던 화양계곡.
도명산, 낙영산 산행도 여기서 이만 마칩니다.
오늘 걸었던 거리는 11.9km 였구요, 5시간 1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평균속도는 2.1km 였지요.
산행코스 : 화양동주차장 - 운영담 - 금사담 - 화양3교 입구 도명산 들머리 - 도명산 - 공림사 갈림길 - 낙영산 - 공림사 갈림길 - 마애석불 - 학소대 - 와룡암 - 능운대 - 첨성대 - 금사담 - 운영담 - 화양동주차장 ( 11.9km, 5시간 10분 소요)
도명산(643m), 낙영산(684m)
낙영산의 뜻은 산 그림자가 비추다 혹은 그림자가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신라 진편왕 때 당고조가 세수하려고 물을 받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쳐 이상하게 여겨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이 산을 찾도록 했으나
나라안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어느날 동자승이 나타나 이 산은 동방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서, 신라에 사신을 보내 찾아 보았으나
신라에서도 찾지못해 걱정하던 중, 한 도승이 나타나 위치를 알려줘서 그 산을 찾아 산 이름을 낙영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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