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윤연선
윤연선 얼굴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 .....(얼굴).....
통기타 시대라고 할만큼 통기타 연주와 노래가 문화를 주도하던 70년대....
긴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에 전혀 기교를 부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야말로 여성스런 고운 분위기로 참하게 노래하던 여가수가 있었다.
그녀의 친오빠는 당시 인기 있는 영화 배우(윤양하氏)이기도 했다.
그녀는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살던 고려대 의대생과 사귀게 된다.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지만
남자의 어머니는 귀하게 키워 의사로 만든 아들이대중가요 따위(?)나 부르는
얼치기 딴따라 여가수와 교제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게 되고....
효자이던 남자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절교를 선언하고
선을 보아 만난 여자와 결혼하고 만다.
혼자 남겨진 여자는 노래하는 것도 그만 두고 조용히 침잠하여
하루 하루 살아가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70년대 그녀와 함께 활동하던 통기타 가수들이 30년만에 뭉쳐서
그 시절의 노래들을 부르는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그녀를 찾게 되고...
어느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가 이 콘서트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면서
이 여가수도 함께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고 적으며
무슨 생각이었던지 그녀는 "아직도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문구를 기사에 덧붙인다.
그 한 줄의 문구가 그녀의 인생에 대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면서....
그녀가 30년만에 무대에 다시 서서 노래를 부른다는 기사를
두 아가씨가 보게 된다.
그들은 아버지의 첫사랑의 연인이
그 유명한 노래 "얼굴"을 부른 그 옛날의 통기타 가수인 것을
오래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아버지에게 그녀를 찾아가서 만나볼 것을 권유한다.
"배신자(^^) 고려대 의대생"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지만 이혼하여
홀몸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딸들의 집요한 권유에 못이겨
옛사랑의 여인이 운영하는 홍익대 앞 카페를 찾은 남자...
하지만 그녀는 그날따라 가게를 비워서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메모를 적어두고 돌아온 남자는
딸들의 연이은 강권에 못이겨 다시 그녀를 찾아가고....
사랑의 약속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배신남과
그 아픈 이별의 상처를 안고 혼자서 오롯이 30년의 세월을 헤쳐온 여자는
얄궂은 인연으로 27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몇번의 만남 끝에 남자는 다시 청혼을 하게 되고
오랜 세월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도 아니고
그저 야속한 30년 세월을 홀로 보내던 여자는
담담히 그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30년만에 무대에 서게 된다는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에
무심코 한 줄 덧붙인
"아직 미혼에 홀로 살고 있다"는 문구 때문에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금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된 두 사람의이야기는
무슨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기구하기도 하다.
사랑을 배신하고 30년이나 혼자 살게 만든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남자에 대한 미움도 야속함도
사랑의 아픔도 다 잊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가 찾아와 만나게 되니 어제일처럼 옛사랑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더라고 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 불러서 크게 히트했고
또 오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
"얼굴"을 부를 때마다 떠오르던 얼굴은 야속하고 미웠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했던 그 남자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얼굴"의 가수 윤연선씨가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친딸들처럼 또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두 딸들과 용기 있는 청혼으로
배신의 세월을 용서 받은 옛사랑과 함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지내며 우리들 곁에 오래 있어주길 빌어본다.
윤연선(본명-윤금옥)
출생 :1952년 (60세)
오빠 :영화배우 윤양하
데뷔 :1972년 1집 앨범 '평화의 날개'
추억 속에 갇힌 '무심코 그린 얼굴'
3~40대 중반을 넘어선 포크송 올드 팬들에겐
추억 저편에 아지랑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노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불후의 명곡 하나.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났던 하얀 그 때 꿈은..."
가수 이름조차 기억속에서 흐릿하지만
불현듯 뇌리에 떠오르는 이 노랫말과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단단한
바로 윤연선의 '얼굴'같은 곡 입니다.
그녀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70년대의
본인은 "직업가수도 아니었던 내 노래가
칼럼 소재가 될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사실 영화배우인 오빠 윤양하와 성우인 언니가 없었다면
그녀가 인기가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감수성 강한 소녀 모습 그대로입니다.
1972년쯤 포크열풍의 중심이였던 명동의 음악모임에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참여하면서 시작된 그녀의 노래 여정.
이때 어울린 음악친구는 4월과 5월의 멤버였던 이수만.
함께 방송국 구경을 가 인기 DJ 이종환과 사귀고
중앙대 학군단 축제에서는 "존 바에즈" 노래도 불러 보았습니다.
72년 가을에 나온 데뷔음반은
DJ 이종환의 배려로 이수만과 함께 했습니다.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막강한 이수만이 짱구머리 대학 초년시절에 작곡한
동요같은 습작들로 채워진 이 음반의 대표곡은 '내마음'.
윤연선 본인도 타워호텔에서 촬영한 음반 자켓을 본 기억만
첫 독집앨범 도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이 음반엔 윤연선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아방송 PD 이해성씨의 소개로
2기 '뚜아에무아'를 결성하기 위해 녹음했던 '님이 오는 소리'
'보내는 마음 가는 마음' 같은 숨겨진 곡들이 그 대상입니다.
"화음이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필원의 고백에서 보듯
우수에 젖은 듯한 두 사람의 하모니는 찬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못내 아쉬워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윤연선의 최대 히트곡 '얼굴'은
처음으로 자기의 음악을 내놓고 싶어
학교 강당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즉석 테스트를 받아가며 곡을 얻어냈습니다.
'얼굴'은 원래 어린이를 위해 만든 동요였습니다.
DJ 박원웅이 기획한 (윤연선/박승용-지구JLS120849, 1974년10월11일)은
'얼굴'의 첫 음반이건만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음반이라고합니다.
지구레코드 전속악단의 트로트풍 '얼굴'연주와
파트너로 함께 수록된 박승용도 이질감으로 영 못마땅했나봅니다.
깔끔하게 재무장해 발표한 음반이
(고아/얼굴-지구JLS120958, 1975년2월26일).
'고아'는 광주에서 처음 히트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방송금지곡으로 묶여
부를 수 없게 됐을 때가 가장 속상했다"고 말할 정도로
윤연선의 최고 애창곡이기도합니다
'얼굴'은 대박을 터트리며
방송과 다운타운가의 주요 레퍼토리로
하루도 빠짐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당연히 각 방송ㆍ음반사에서 출연 및 음반제작 제의가 밀려들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대중앞에 나서서 직업적으로 노래를 부를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자신을 홍보하거나 체계적인 음악공부에 몰입하고픈
이처럼 소극적인 윤연선 때문에 속이 탄 지구레코드는
은밀히 금지곡 '고아'를 삭제하고
'얼굴'을 타이틀곡으로 한 재판을 발매하였습니다.
'왜냐 묻지 말아요'등
4곡을 추가로 수록한 재발매음반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습니다.
그래도 어렵사리 구할 수 있는 재발매판에 비해
'고아/얼굴'이 함께 수록된 초판 구경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반응으로
이때 받은 거액의 수고비는
이후 김의철 곡 '강매' 등으로 녹음준비에 들어갔지만
어느듯 환갑을 넘긴 중년의 윤연선.
요즘은 홍대앞에서 '윤연선의 얼굴'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자신의 노래를 기억해주는 팬들의 사랑에 행복해 합니다.
'얼굴'을 듣던 중년의 관객들은 한 순간
"아! 이 노래가 윤연선의 것이었구나"라며
추억을 되새기기도합니다.
팬들의 변치 않는 사랑으로 그녀는 이제
'가수였음'을 행복하고 소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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