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후 '대흥사'로 갑니다.


대흥사: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구림리 799)

대흥사 입구에서는 주차비를 받습니다.
경차 2,000원, 소형차 3,000, 대형 5,000원.
그리고 안내문에도 써 있듯이 절까지는 3km를 더 가야합니다.

대흥사 일주문을 지나가면 대형 주차장이 있습니다만, 거기서 절 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하죠.

버스는 車 한대가 다닐 정도의 좁은 길로 구불 구불 들어가, 아는 사람만 안다고 하는 사찰 경내에 있는 '일주문 주차장'에서 우릴 내려줬습니다.

대웅보전까지 2분이라니, 이건 횡재한 거나 다름없죠.

대흥사(大興寺)는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해요.


길따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대웅전 가는 길' 표시를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꽃 필듯이 한껏 부풀은 꽃봉오리

대웅보전입니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海南 大興寺 大雄寶殿)는 2008년 9월 19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라고 하죠. 조선중기의 다포계 건축이나 정면의 화려한 용두장식 등 여러 장식요소가 다분히 혼합되어 있는 등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중정식 가람배치의 전형을 보여 주며, 그 중심의 위치에 서서 주변 경관에 적극적으로 조화되는 이른바 山寺의 모범이라 하며, 가운데 현판은 조선후기의 명필인 원교 이광사(1705~1777) 선생의 글씨랍니다. 전각에는 목조삼존불을 봉안하고 있구요




대웅보전에서 더 나아가면 윤장대가 있습니다.
윤장대(輪藏臺)는 팔각형으로 된 책장에 밑에는 바퀴를 달고 중앙에는 기둥을 세워, 궤를 돌리면 찾고 싶은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로 한 책궤를 말하는데, 안내문에서 보듯이 윤장대를 한번 돌리는 것은 불경을 한번 독송하는 것과 같은 공덕을 지닌다는 겁니다.
마니차(摩尼車)와 같은 거죠.

마니차는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이 적힌 수행 도구로, 원통형으로 되어 있으며, 겉에는 '진리의 말'을 뜻하는 만트라가 새겨져 있는데, 원통 안에는 경전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어, 겉에서 이것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며 마니차는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른 봄에 피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따뜻한 봄입니다. 길고 춥던 겨울은 이제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응진전 삼층석탑은 보물 제320호입니다. 이 삼층석탑외에도 대흥사에는 많은 성보문화재가 있는데,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1357호), 천불전(보물 제1807호), 천불상(전남유형문화재 제52호), 용화당(전남유형문화재 제93호), 대광명전(전남유형문화재 제94호), 관음보살도(전남유형문화재 제179호), 표충사(전남기념물 제19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대흥사 도량 전체가 사적명승 제9호로 지정되어 대흥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말해줍니다.


위 건물 왼쪽은 응진당(응진전), 오른쪽은 산신각입니다. 조금 특이하죠?
대부분 사찰의 산신각은 전각 뒷편에 있는데, 여기엔 한 건물을 나눠 쓰고 있군요.

대흥사의 북원구역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대향각, 청운당, 선열당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조금 더 가서 남원구역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세심당, 적묵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당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원구역이니 남원구역이니 하지만, 실제로 한번 둘러보면 대흥사 경내는 넓어도 너무 넓어서 딱히 여기가 어디다 하고 나누는 건 별 의미없습니다.

대흥사에는 특별한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연리근(連理根)인데요, 연리목과 연리지는 가끔씩 목격합니다만 연리근은 보기 힘든 경우죠.

연리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면 사랑도, 마음속에 품어 온 소망도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수령이 무려 500년인 느티나무 연리근


큰 대문과 같은 단층 5칸 맞배집인 가허루(駕虛樓) 중앙의 문간(門間)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천불전이 있습니다.


대흥사 천불전은 조선 후기 승려 '완호대사'와 '제성대사'가 중건한 것이랍니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조선시대인 1811년(순조 11)에 화재로 불탔으나 2년 뒤인 1813년에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玩虎)대사와 제성(濟醒)대사에 의하여 1813년에 중건되었다 합니다.


천불전에는 1817년에 조성된 천불상(千佛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천불상은 경주에서 조성되어 해남 대흥사로 옮기기 위해 1817년 11월, 2척의 배에 실렸으나 1척이 풍랑으로 표류해 일본까지 갔다가 돌아와 1818년 8월 15일 천불전에 추가로 봉안되었다고 해요.

천불전의 千佛像





대흥사를 찬찬히 둘러보려면 한나절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충 대충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리 저리 둘러보다 발길이 멈춘 곳은 대호국전(大護國殿)


계단을 오릅니다.

한눈에 봐도 엄청 큰 전각이 자리했습니다.

문수전(文殊殿)도,

보현전도 큼지막하구요.

마당도 무척 넓고, 현판 양 옆의 네마리 龍 조각도, 전각도 무지하게 큰 대호국전은 2024년 11월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소나무향이 아직도 풍기는 것 같더라니...

대호국전은 서산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교육을 하는 곳이라 합니다.
사진은 없지만, 전각안에는 삼존불을 모셔 놓았습니다.

대호국전 뒷편 건물들은 뭘까 궁금해서 가 봅니다.

여기는 일반인들의 발길을 금하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라서 황급히 되돌아 나왔습니다.

옆에서 본 대호국전


좌측부터 문수전, 가운데 보현전, 오른쪽 지붕은 대 호국전.

매화가, 홍매화가 피었습니다.



한바퀴 휘돌아서 내려가는 길에, 별원구역의 표충사를 보고 가려고 護國門으로 들어갑니다. 표충사의 외삼문인 호국문.
외삼문은 종묘나 문묘에 들어가는 문을 따로 설치해서, 雜人의 출입을 금하고 정결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만든 거랍니다.
三門은 종묘, 문묘, 향교, 서원 등의 출입문을 말하며 神三門이라고도 합니다. 신삼문이란 문을 세칸으로 나누고 출입구를 셋으로 만든 것으로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구분을 하죠. 현판 글씨는 心居 임병근(林秉根)선생이 썼다고 해요.

보련각(寶蓮閣)
보련각은 전남 기념물 제19호입니다. 1852년 철종 때 역대 조사들의 진영을 모시기 위해 표충사 동쪽 언덕위 대광명전 뒤에 지었던 일종의 조사당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낡아서 1944년에 다시 지었으며 2009년에 여기로 옮겼다고 합니다.
정면 여덟칸, 측면 한칸 반의 긴 건물.

표충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내삼문인 예제문


조사전[祖師殿] 내부는 3폭의 조사 진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진영은 창건주 아도조사(阿度祖師)를 비롯하여 대흥사 13 대종사와 13 대강사의 진영을 모신 3폭으로 구분되는데, 6명(1폭)ㆍ5명(2폭)으로 2단 구성 아래 진영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대흥사는 제1대 종사 풍담(風潭) 의심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의순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사명대사의 사당 '표충사(表忠祠).
충(忠)을 드러내는 사당 '표충사'는 1669년,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대사의 선인과 같은 기질, 풍채 등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합니다.
표충사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며, '王이 쓴 글이 있는 곳'이라는 '御書閣'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위당(威堂) 신관호의 글씨라고...

표충사(表忠祠)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1520~1604]을 기리기 위하여 정조의 명령으로 1789년에 건립했으며,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1544~1610]과 뇌묵당 처영의 진영도 함께 봉안하고 제향을 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니까 임진왜란 때 활약한 충절 삼승(忠節三僧)인 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영대사 진영을 모시고 제향을 하고자 1788년(정조 12) 7월 사우 건립 상소를 올렸고 1789년(정조 13) 사우를 건립하고 사액을 받았다는 겁니다. 예조정랑 정기환이 왕명으로 치제를 하였으며, 1836년(헌종 2) 동남쪽으로 옮겼다가 1860년(철종 11) 현재 자리로 돌아왔다고 해요.

표충비각에느 2개의 비(碑)가 있는데 1기는 높이 316m의 표충사건사적비(表忠祠建事蹟碑), 다른 1기는 서산대사 표충사기적비(表忠祠紀跡碑)로 높이는 365m나 된다 합니다.






표충사와 표충비각을 보고 돌아나오면 초의선사 像이 있는데요,
초의선사(1786~1866)는 대흥사의 13대 종사의 한 사람인 대선사로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켜 다성(茶聖)으로 불립니다. 초의선사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으나 유학, 도교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섭렵하며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같은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넓게 사귀었고 범패와 서예, 시, 문장에도 능했다고 하죠.

초의선사는 차(茶)와 선(禪)을 하나로 보아 그의 저서 '동다송'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차 한잔을 마시는 것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으며, 차는 그 성품에 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것이며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 같은 것이라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茶는신라 선덕왕(善德王 632~647) 때 우리나레에 들어왔지만, 茶가 우리나라에서 널리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흥덕왕(興德王3년, 828年) 김대렴(金大廉)이 당(唐)나라로부터 차의 종자를 가지고와 왕명(王命)으로 지리산(智異山)에 심은 이후부터의 일이라고 해요.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영호남(嶺湖南)이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 된것은 이지방의 기후와 입지조건이 적당했기 때문이었구요.

신라시대(新羅時代)에는승려(僧侶)와 화랑(花郞)들을 중심으로 차가 유행하였으며,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왕실이나 귀족들 사이에 차가 널리 유행했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와서 불교가 쇠퇴함과 함께 차도 쇠퇴했는데,
신라때부터 유행하여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우리나라의 다도(茶道)는, 조선후기 대흥사(大興寺)의 초의선사(草衣禪師)에 이르러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은 연못가의 이 소나무는 수령이 200년이나 되어 보호수로 지정되었구요.


범종루를 끝으로 해남 대흥사와도 안녕~입니다.


대흥사의 창건연기 자료는 '죽미기竹迷記)', '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 '북암기(北菴記)' 등이 있으며, 1823년(순조23)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志)'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지금까지의 사찰역사를 총정리해 놓은 중요 자료라고 하죠.

대흥사는 426년(백제 구이신왕7)의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 設이 있습니다.
신라의 정관스님이 426년 대흥사 산내 암자의 하나인 만일암을 창건, 이후 508년(무령왕8)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 하나, 이 자료에서 창건주로 소개한 정관존자의 생애나 활동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랍니다.

'죽미기'는 514년, 아도화상(阿度和尙)의 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스님과 도선(道詵)스님이 계속해서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고 하고, 지금 대흥사에서도 아도화상의 창건 設을 따르고 있답니다.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알기는 어렵지만,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는 걸 보면, 대흥사는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두륜산 대흥사 관람을 끝으로 1박 2일간의 남도 여행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막 꽃이 필 무렵의 이른 계절에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이었지 싶습니다.
따뜻한 봄이 돌아왔습니다.
새봄을 맞아 모두 다 매일 매일 행복한 날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남도 여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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