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4월의 끝에서 '해파랑길 22구간'을 걷다

adam53 2025. 5. 1. 20:16

2025. 4. 29

4월을 보내면서 해파랑길을 걷습니다.

오늘의 해파랑길은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에서,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고래불해수욕장까지 걷는 22구간입니다.

10시 40분, 축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축산항은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산봉우리의 산세가 해안까지 밀려 내려와 만처럼 쌓인, 아름다운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1924년 3월 조성된 항구입니다.

인근의 여러 항으로부터 고기잡이 배들이 들어와 고기의 집하, 입찰 등을 총괄하는 곳이기도 하죠.

강구항과 더불어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이며, 대게 위판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으로 대게 원조마을과 함께 최고의 영덕대게 서식지로, 인근 축산항 어시장에서 대게를 구입할 수 있고

또한 해맞이공원을 출발하여 대탄항 - 석리마을입구 - 대게원조마을 - 블루로드다리 - 죽도산 - 축산항 - 남씨발상지로 이어지는 영덕블루로드 B코스 구간의 일부이면서, 축산항은 BTS의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구요.

'남씨 발상지' 碑 옆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신라 경덕왕 14년(755년 당현종 천보14년) 당나라 사신으로 왜국(倭國)가는 항해에 나선 여남(汝南 중국 하남성 여남현) 출신 김충(金忠)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기착한 곳이,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의 자그마한 섬이 죽도(竹島)였답니다.

신라 땅에 정착해서 살기를 원한 김충은, 경덕왕으로 부터 남쪽에서 왔다고 남(南)씨 성(姓), 영민한 사람이라 하여 '민(敏)'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남민(南敏)'으로 개명하여 남씨들의 시조가 되었구요.

'남씨 발상지 비'와 '영양 김씨 시조 유허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 2개의 비가 왜 함께 있는지는, 잠시 뒤의 얘길 들으면 이해가 갈 겁니다.

통사동을 지납니다.

통사동(通使洞)은 영양 남씨의 시조인 영의공 김충(남민)이 살던 곳인데, 통사동은 축산리로 통합하기 전의 지명이라고 해요.

통사동의 한 가정집 벽에는 '남씨 문중사람들만 화장실을 개방한다'고 써 붙였군요.

'영양 김씨 시조 유허비각'

당나라 안렴사 영의공 '김충'의 맏아들 김석중은, 아버지와 함께 일본을 다녀오다 표류되어 영양에서 살았으나, 당나라의 조상을 기리기 위해 김씨 姓을 고수하여 '영양 김씨' 시조가 되었다 해요.

그리고 아들 홍보는 영양 남씨를 계승하고, 아들 군보는 의령 남씨, 아들 광보는 고성 남씨의 3관으로 분관한 기원이 되어, 영양 김씨와 남씨(영양, 의령, 고성)는 일가가 됩니다. 그래서 계단 아래에 2개의 비가 있었던 겁니다. 이해되시죠?

'월영대'를 지납니다. 무슨 대(臺)이름이 이렇게 詩的일 수 가 있나요!

월영대는 시조 영의공이 노닐던 곳으로,

1846년 舊碑 옆에 2005년 새(新)碑를 건립했답니다.

월영대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일광대가 있는데요,

'일광대'는 영양 남씨 시조 영의공이 여기서 지는 해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곳입니다.

舊碑는 1845년, 새碑는 2005. 3. 11에 세웠다는데,

일광대는 옛날 영의공이 이름붙인 것이라 해요.

소가 누워있는 형국의 와우산(축산, 丑山)

화창한 4월의 햇빛과 싱그러운 솔향기를 마시며 걷는 길.

해발 66m의 와우산에서 운동시설이 있는 곳까지 내려오자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입니다.

지금부터는 바다를 보며 걸을테죠.

아름다운 해변길을 걸을 생각에 가슴이 설렙니다.

바다는 오늘따라 더 푸르게 보여요.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를 길동무삼아 함께 걷는 길로써,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해변을 따라 조성된 광역 탐방로입니다.

오늘은 그 길의 일부 구간을 걷는 건데,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왼쪽으로 길이 나 있습니다.

'대소산 봉수대'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보이고,

해안을 따라 걸으며 지나치는 마을의 예쁜 모습을 보리라 생각했는데,

왠걸,

산길로 접어듭니다.

산에는 연분홍 산철쭉이 피었네요.

이따금씩 바람이 스쳐가지만, 햇살은 소나무 사이로 내려비추어 이마엔 땀이 송글 송글 맺힙니다.

11시 15분

축산항에서 괴시리 전통마을까지 9.5km 중에서 8.5km는, '목은 사색의 길'이며 영덕 블루로드 5코스 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육산인데도 은근히 힘들군요.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워요.

힘들게 힘들게 올라오다가,

대소산 봉수대에 왔습니다.

여기까지 겨우 2.8km를 왔을 뿐인데도 많이 지쳤습니다.

아마도 따가운 햇빛 때문이겠죠.

이 봉수대는 조선 초기의 것으로 남쪽으로는 영덕 별반산봉수대, 북으로는 평해의 후리산봉수대, 서쪽으로 광산봉수대를 거쳐 진보의 남각산봉수대로 이어진다고 해요.

해발 282m의 대소산의 봉수대

막힘이 없는 봉수대에서의 조망은 시원스럽습니다.

저 멀리 축산항의 죽도가 보이네요.

조릿대가 많아 죽도(竹島)라 했는데, 일제 때 매립공사를 하므로써 지금은 섬이 아닙니다.

죽도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지만, 축산항에서 시작한 해파랑길이기에 가 볼 수는 없었죠.

봉수대를 둘러 싼 돌담들

봉수대를 내려와 망월봉, 망일봉으로 향합니다.

블루로드 쉼터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35분.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한개씩 쌓았을 작은 돌탑을 지납니다.

돌무더기 위에는 누군가가 '수막새와 암막새 조각' 한개를 올려놓았네요.

듬성 듬성놓인 통나무 계단을 내려오면 갈림길이 있습니다.

11시 45분

여기서 '목은 이색등산로'로 가던가, 아니면 '이색 산책로'를 생략하고 동부초등학교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목은 이색등산로'로 갑니다.

팥배나무 흰꽃이 무리지어 피었습니다.

5월에 꽃피는 팥배나무는, 가지 끝의 산방꽃차례에서 6~10개의 흰색 꽃이 모여 피는데, 꽃은 배꽃을 닮았으나 열매는 팥처럼 작아 팥배나무라고 부릅니다.

지름 1cm 정도의 열매가 9월에 열리는데 팥 모양과 비슷한 모양으로 빨갛게 익으며, 열매를 달고 겨울을 나죠.

물푸레나무도 흰꽃을 피웠습니다.

가지를 꺾어 물에 넣으면 물이 푸른색이 된다하여 물푸레나무인데, 나무가 단단하여 야구방망이, 괭이자루, 맷돌손잡이등으로 사용했었죠. 옛날에는 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풀어서, 스님들 옷을 만드는 염료로 사용하기도 했구요.

11시 55분

앞서 간 일행이 망월정에서 점심을 먹네요.

우리도 여기서 먹고가야 겠습니다.

망월정에서 내려다 본 동해바다

12시 10분

망월봉을 떠납니다.

오늘은 부지런히 걸어야 해요. 종착지까지 17km를 걸어야 하거든요.

'목은 이색 등산로' 방향으로 갑니다.

산등성이를 넘어 내려오면, 임도를 가로질러서 망일봉 가는 길이 있습니다.

해파랑길 22코스는 강릉의 '안보등산로(괘방산, 山우에 바닷길)'처럼, 산위에서 바다를 보며 걷는 그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파랑길'임을 알려주는 리본은 종종 보게 되구요.

산봉우리를 내려오면 구름다리가 있는데요,

이 다리는 '사진마을 구름다리'입니다

구름다리이지만 흔들림은 거의 없군요.

다리에서 내려다 본 축산항으로 가는 도로

이 길은 '영덕 블루로드 C코스'임을 강조하듯, 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안내판

'괴시 전통마을' 방향으로 갑니다.

봉우리를 넘어 소로(小路)로 내려서서

'영덕 블루로드'를 가르키는 방향으로 몇발짝 가다가, 오른편의 산봉우리로 다시 올라갑니다.

12시 40분

어우, 힘들어.

조금만 쉬었다 갑시다.

솔향가득한 숲길을 걷다보면 아래 사진과 같이, 나무를 베어내고 QR코드가 있는 종이를 붙인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건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베어 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벌레들이 기어나가지 못하도록 천막으로 꽉 덮은 나뭇더미들도 꽤 많이 보였구요.

궁금한 마음에 안을 들여다 보려고 해도 너무나도 단단히, 빈틈없이 덮어놓았기에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드군요.

12시 55분

얼마 가지않아 또 쉽니다.

계속해서 봉우리를 넘고 또 넘다보니 흙길인데도 발이 엄청 아파옵니다.

'관어대 탐방'은 생각하지 말고, 괴시마을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괴시 전통마을 가는 길에 '목은 기념관'이 있다지 뭡니까?

'목은 기념관' 가는 길에는 주세붕의 시 '망일봉'과 목은 이색의 시 '영해를 그리워하며 같은 詩들이 있습니다.

문신 주세붕은 어릴 때 옥에 갇힌 부친을 구명하기 위해, 망월봉에서 해돋이를 하던 관찰사 앞에서 詩를 지어 올렸다고 해요.

그리고 이 시비들도 원래는 망월봉에 있었다더군요.

목은 이색기념관에 들려보려고 걸음을 빨리 합니다.

소나무 사이로 기념관이 보여요.

고려말에 삼은(三隱)의 충신이 있었습니다.

'목은(木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그리고 '야은(冶隱) 길재'

그중에서 오늘 들린 곳은 여기가 생가였던 '목은'의 기념관입니다.

'목은 선생'은 20여세에 부친을 따라 원나라에서 유학을 했었답니다.

그런 뒤 삼은 (三隱)이 모여, 고려 말 '안향'이 원나라에서 들여 온 성리학을 연구해서 기초를 확립했었지만,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켰던 분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기념관.

기념관 앞에는 목은의 동상이 있습니다만,

흰색도 좋지만, 동상에다가 약간의 色을 입혔으면 그 모습이 더 또렸하게 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념관은 작고 소박합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목은 선생에 관한 자료들이 많았지만,

블로그에 많은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제약때문에, 약간의 사진만 소개합니다.

기념관 뒷편 언덕에는 목은 선생의 '觀魚臺 小賦' 詩碑 2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왼쪽 키 큰 것은 한자로, 오른쪽 키 작은 것은 한글로 번역을 한 것인데요,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를 내려다 보고 있어 암석의 낭떠러지 밑에 유영하는 고기들을 셀 수가 있으므로, 觀魚臺라 이름한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外家가 있는 곳이므로 小賦를 지어서 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영해의 동쪽 언덕, 일본의 서쪽 물가엔 큰 파도만 아득할 뿐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네.....

이러한 내용의 '관어대 소부'

목은 기념관을 몇 발짝 걸어서 내려오면 '괴시리 전통마을'입니다.

병아리같은 유치원생들이 봄나들이를 나왔습니다.

'꽃밭에 들어가면 안돼요.' 선생님 말씀을 따라 유채밭 가에서만 놉니다.

아고! 하나같이 이렇게 귀여울 수 가...

괴시(槐市)마을 이름은, 회화나무의 한자이름 괴목(槐木)이란 뜻인데, 고려 공민왕 8년 목은 이색이 원나라 구양현의 괴시마을과 비슷하다고 원래의 '호지마을'을 괴시(槐市)로 바꿨다고 하죠. 

우리나라에는 민속마을로 지정된 곳이 8군데 있는데, 그 중 5곳이 경북에 있답니다.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성주 한개마을 그리고 영덕 괴시마을이며,

함창 김씨 김택의 외손인 목은 이색(1328~1396)은, 외가마을인 여기 '괴시리'에서 태어났던 겁니다.

괴시리 전통마을에서는 사전 예약을 하면 한복입기, 다도 체험 등 고택문화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3시 45분

괴시리 전통마을은 도내에서도 보기드문 고가옥들로, 남씨 괴시파종택 외 6점의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200년 된 고가옥 30여동이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마을 앞에는 영해평야가 펼쳐저 있는데

영양 남씨 집성촌이 되기 전에는 1260년 경 고려말에는 함창 김씨가 맨처음 터를 잡은 뒤로 한산 이씨, 수안 김씨, 영해 신씨 등이 차례로 정착했다가 1630년 인조 8년, 영양 남씨가 들어 온 뒤로 다른 성씨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영양 남씨 괴시파의 집성촌이 되었다고 하죠.

이제 대진항으로 갈꺼에요.

괴시리 전통마을에서 대진해수욕장까지 3.3km는 블루로드 6코스입니다. 시간은 대략 1시간 40분 걸리구요.

괴시리 전통마을 앞 도로변.

목은 선생의 詩 '白雪이 잦아진 골에'와 '목은 선생'에 대해 자세한 안내문이 독특한 조형물과 함께 눈길을 끕니다.

대진항으로 가려면, 교통량이 많지않은 한적한 도로를 건너서 갑니다.

괴시2리 마을길을 지나는데, 저기 왼쪽 산 위에 보이는 관어대.

동해안 명승 절경 중 하나인 관어대(觀魚臺)를, 줌으로 당겨봅니다.

상대산(上臺山, 183m) 정상에 있는 관어대에 올라보면, 북쪽으로 울진 후포, 남쪽으로 포항 호미곶, 서쪽으로 형제봉과 읍령(을치재)을 조망할 수 있고, 관어대 주변으로 동해 바다와 명사 20리의 고래불해수욕장, 곰솔의 푸른 소나무숲, 영해와 병곡의 드넓은 평야와 송천(松川)의 다섯가지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고 하죠.

'관어대'는 물밑에 노니는 물고기를 헤아릴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목은 이색의 '관어대 소부'에는,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석벽 밑의 물 속에서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영덕군에서는 '고려충절 삼은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목은 선생이 지역에 남긴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여기에 '관어대' 정자를 세웠다고 해요.

위 사진 3장은 관어대의 모습이 궁금해서, 다른 이의 사진을 가져 온 것입니다.

14시  

길 옆에 서낭당이 있네요.

神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신앙 중 하나인 서낭당은, 성황당(城隍堂)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괴시전통마을에서 1.6km 를 걸어오면 관어대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산 자락에는 관어대 마을이 있습니다.

행정구역 통폐합때 괴시동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에 괴시 2리가 된, 상대산 아래의 관어대 마을

1509년(중종 4녀) 안동 권씨 魚松派 파조(派祖)인 권응상(權應商)이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로 대은종택, 영덕 변호택, 영덕 만송당 등의 古家가 있답니다.

권응상은 안동권씨 영해입향조인 오봉(五峯) 權策의 후손이며, 마을의 인물로는 정유재란 때 忘憂堂 곽재우와 함께 義兵으로 활동한 권의정(權宜正)과  權宜恪, 陶溪情舍에 배향된 權璟(권경), 文科에 급제하여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권창익과 예조정랑을 역임한 권규를 비롯한 많은 유학자(儒學者)를 배출한 마을이랍니다.

관어대를 들렸다 오기에는 너무도 지친 상태라서 그냥 대진항으로 왔습니다.

대진항은 정박해 있는 배와 물고기를 말리는 등 전형적인 항구의 모습입니다.

바다에 사는 동물을 표현한 조형물을 보고

일행들을 쫓아 갑니다. 바쁘네요.

바닷가에 있는 건축물은 뭔가 궁금해서 발걸음을 서둘러 가 봅니다.

벽산 김도현선생의 '도해단'입니다.

1910년 8월, 왜적들에 의한 나라의 강탈이 있자 울분을 머금은 채, 부친의 考終命(고종명)을 기다려 孝를 다한 연후, 1914년 11월 7일 동짓날에 동해 건너 왜적의 무리들을 막는 구국의 魂이 되고자, 대진리 산수암(汕水巖)에서 장렬히 도해순국(蹈海殉國)한 벽산 김도현선생도해단(蹈海壇) 안내문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벽산 김도현 선생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여기에 와서야,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의병을 일으켰던 훌륭한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금오공대 수련원앞을 지나고

테트라포드를 알록 달록 색칠한 곳도 지나

여기는 대진해수욕장입니다.

14시 30분

영덕군 영해면 해안마을인 대진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진해수욕장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하죠. 맑고 깨끗한 바닷물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으며, 길이 8km, 폭 100m의 백사장 뒤로는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해요.

주차장이 아주 넓직하군요. 수심이 얕으면 가족단위로 많이 오기에 피서객들이 많은 가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대진해수욕장은 수심이 1~2m 정도로 깊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여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피서지로 좋다고 합니다.

또한, 백사장의 모래는 알이 굵고 질이 좋아 모래찜질에는 그만이며, 몸에 잘 붙지 않는 것이 특징인 그런 해수욕장이랍니다.

이쪽에서도 관어대로 올라간다는데, 관어대는 생략하고 그냥 가려구요.

아직도 갈 길이 멀거든요.

병곡면으로 넘어갑니다.

대진해수욕장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4.6km는 블루로드 7코스입니다.

시간은 1시간 남짓 걸린다 해요.

고래불대교의 가로등과 난간은, 대게를 형상화하고 色을 입힌 예쁜 다리입니다.

언뜻 봐도 참 예쁘죠?

대진해수욕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백사장을 가로질러 흐르는 폭 200m의 송천천이라고 해요.

여기에서는 담수욕을 즐길 수 있어서 천연 샤워장으로도 좋으며

또,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서,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데다가 어족도 풍부하다고 하니까 더 할 나위 없죠.

다리를 건너 '고래불로' 안내판에서 오른쪽 바닷가로 갑니다.

깨끗한 화장실을 지나면서 '고래불 국민야영장'이 보입니다.

야영장 바로 앞 길에는 착시그림도 있고 담 너머엔 길고 긴 주차장,

그리고 줄지어 서 있는 소나무들 그 뒷편엔 백사장

 

야영장에는 카라반이 줄을 이었군요.

동물모형의 카라반이 사이 사이에 있구요.

다시 도로(道路)로 나왔습니다.

누렇게 말라버린 갈대, 새로 파랗게 올라오는 갈대는 붓으로 쓱쓱 그린 수채화입니다.

해안산책로 데크도 그림같구요.

길고도 지루한 이 길은 언제쯤 끝날까요?

몇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달래가며 터덜 터덜 기계적으로 걷습니다.

진짜로 너무 너무 지루하고 재미하나 없는 길입니다.

발바닥이 아픈 건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러다가,  '영덕고래불 국민야영장 1.9km'를 가르키는 해안산책로로 꺾어듭니다.

해안산책로는 데크길이라, 딱딱한 포도(裝道路)가 아니라서 조금은 발이 편하군요.

데크따라 갑니다.

영덕 청소년야영장을 가르키는 솔 숲에도 데크가 있군요.

영리해수욕장을 보자 눈이 시원해져 옵니다.

영덕군 병곡면에 있는 영리해수욕장도 백사장의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다고 해요.

또한 소나무 숲과 바다가 바로 붙어있어 조용하게 캠핑하기 좋은 장소로,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여행지이구요.

노지 캠핑장으로 원하는 곳에 텐트를 설치하면 되는데, 대규모 주차장을 비롯해 화장실, 샤워장, 해안 산책로, 소나무숲 등이 갖춰져 있어 좋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걸어서 가도 될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고래불해수욕장과 병곡방파제가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고래불 해안은 길이가 약 4.6km, 폭은 30~100m에 달하여 오목하고 길쭉한 초승달모양의 해변으로, 경북 동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고래불’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 학자 이색이 동해 바다에서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불’이라 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불'은 영덕지방 방언으로 모래사장을 말한다네요.

고래불 해수욕장은 4.6km의 길이라 '명사 20리'라고도 하고, 해변 뒷편에 솔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저 있다고 '송림 20리', 백사장을 왕복으로 걸어야 그 묘미를 알 수 있다고 '황금해변 20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고래불해수욕장의 송림은, 고려 때 1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서 병곡평야에 태풍피해가 없도로 심은 방풍림이구요.

15시 40분

드디어 고래불해수욕장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17km를 꼬박 5시간 걸었습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어촌마을을 보면서 걸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축산항에서 출발하면서 부터 병곡리 고래불해수욕장까지, 대부분은 산길을 걸었던 해파랑길 22코스.

그러나 해발 282m 대소산 정상에 건립된 조선시대 '봉수대', 목은이색기념관이 있는 400년 전통의 영양 남씨 집성촌 '괴시리전통마을', '대진해수욕장'과 울창한 송림과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고래불해변' 등, 숲길과 바닷길이 적절히 섞인 구간을 걸었던 것도 나름 괜찮았다는 생각입니다. 해파랑길22코스는 여기까지.

 

다음에는 어떤 길을 걸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