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6
가을은 점점 깊어갑니다.
이제는 반팔, 반바지를 입는 것도 망설여질 정도로 아침기온은 제법 선선합니다.

소백산으로 가는 길.
대관령을 넘어서자 하늘은 잔뜩 흐렸습니다.
오늘은 낮기온이 17도 정도되며 하늘도 맑아서 산행하기엔 좋을 꺼라고 했는데...

차창밖으로 도담삼봉이 보입니다. 세 개의 바위섬인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중 하나이며, 2025년 단양 지질공원의 일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고 하죠.
가장 높은 가운데 봉우리를 장군봉, 북쪽 봉우리를 처봉, 남쪽 봉우리를 첩봉이라 하며, 장군봉은 처봉을 등지고 첩봉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되어 있는데, 전설에는 남편이 아들을 얻고자 첩(妾)을 들여서, 아내가 돌아앉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봉, 아들봉, 딸봉이라고도 하구요.

사진에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처음 1766년 단양군수 조정세가 '능영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지었는데 민폐를 끼친다며 헐어 내었던 것을, 1807년 김도성이 사각형 모양의 정자를 지었지만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답니다. 현재의 삼도정은 1976년에 김상수가 새로 지어서 단양군에 기증한 것이라 해요.
도담삼봉은 정선군에 있던 삼봉산이 홍수 때 단양으로 떠내려 왔으므로, 정선에서 단양에 매년 세금을 요구했답니다. 이때 어린 소년이었던 정도전이 나서서 도담삼봉은 우리가 갖고 싶어서 갖고 온 것도 아니고, 되려 물길이 막혀 피해를 보니까 정선군에서 도로 가지고 가라고 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틈틈히 찾았으며, 자신의 호 '삼봉'도 여기에서 따왔다는 속설이 있죠.

09시 45분
오늘의 산행 시작점인 천동탐방센터 주차장에 하차를 했습니다.

신발끈을 단단히 고쳐매면서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합니다.
천동탐방센터에서의 이 길은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 중 제일 완만한 길이라서 다른 곳에 비해 쉽다고는 하지만, 그대신 많이 걸어야 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합니다. 戰場에 나가는 兵士와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단양에서 소백산을 오르는 코스로는 천동코스, 어의곡코스, 죽령코스 그리고 도솔봉코스가 있는데요, 오늘의 이 천동코스는 도상 거리는 6.3km라고 하지만 실제 거리는 7km이며,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 중 가장 깁니다.
별로 힘들지 않게 간다고는 해도, 돌로 된 길은 등산하는 동안 계속 이어집니다.

영주에서 소백산을 오르는 코스로는 희방사 코스, 삼가사 코스, 죽계계곡(초암사) 코스가 있습니다.
'단양'이든 '영주'든 지금까지 소백산을 올랐던 제일 좋은 코스는 단양 어의곡에서 오르는 게 제일 좋았습니다. 그래서 소백산 비로봉을 간다고 하면 주저없이 어의곡을 추천합니다.

여기를 오는 동안 내내 흐렸던 날씨는, 천동에 도착하면서 해가 쨍하고 났습니다. 아침공기는 서늘하구요.


산행하기 전, 모여서 사진을 찍습니다.
성미급한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남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소백산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에 있는 100대 명산입니다. 산경표 상으로는 백두대간이 통과하구요.
면적은 322.011㎢로 단양의 대강면, 가곡면, 영춘면 일대와 영주의 풍기읍, 순흥면, 단산면, 부석면 일대가 포함되며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지리산과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가운데 4번째로 넓습니다.

정상까지는 7km
만만치 않게 지루한 길은 지금부터입니다.


다리안계곡을 가로지른 소백산교를 건넙니다. 다리안폭포는 천동 하산길에 몇번이나 보았기에 오늘은 그냥 지나갑니다.

다리안 소백산교 입구에는 산악인 허영호기념비가 있습니다. 소백산교 입구의 이 기념비는 탐험가이자 산악인인 허영호 대장이 이곳 소백산에서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한 훈련을 거듭했던 인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답니다. 이 기념비가 있는 소백산교를 시작으로 천동 계곡을 따라 비로봉, 어의곡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허영호 등산로’라고 합니다.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죠.
"오르기 힘든 산은 있어도 결코 오를 수 없는 산은 없듯이 산은 끊임없이 도전과 인내의 정신을 일깨워 준 나의 소중한 스승이었습니다.
내 어머니와 같은 산에서 새로운 꿈이 일어나 나는 끝없는 미지를 향하여 도전의 길을 떠납니다.
내 자신의 한계를 넘어, 또 다른 정상을 향하여" — 산악인 허영호

소백산국립공원 천동탐방안내소를 지나 천동탐방로 문으로 들어갑니다.

탐방로 문 입구에는 여우상이 있는데요, 영주시에서 백두대간의 생태축 복원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멸종 위기종인 소백산 붉은여우를 친근하고 생동감있게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너랑 나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암수 한 쌍의 붉은여우로 표현된 이 캐릭터는, 한반도의 야생동물이 복원된다는 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2481번길 33(태장리)에는 여우생태관찰원이 있습니다. 여우생태관찰원은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여우를 복원하고 있으며, 그 복원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곳입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토종여우의 복원을 위해 만든 생태관찰원은, 38억여원을 들여 2,880㎡의 터에 관리동 3층과 홍보동 2층, 4,610㎡ 규모의 생태학습장 등을 마련했습니다. 탐방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에서 인터넷 및 모바일 예약 또는, 현장 선착순으로 접수받고 있어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과 가면 무척 좋아합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8월 6일 아침에 붉은여우 28마리를 소백산국립공원에 방사했습니다.
공단은 내년까지 소백산권역 활동개체 100마리로 늘리고 '3대 이상 번식이 확인되는 小개체군 5개 이상'을 형성한다는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이 복원 사업은 2012년부터 추진해 왔었답니다.
이번에 방사된 여우들은 시설 내에서 증식으로 태어난 여우들로, 그중 90%인 25마리는 아직 만 한 살이 되지 않았다고 해요.

국내 복원 장소를 소백산으로 정한 이유는 여우의 먹이인 설치류(쥐)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토종여우는 개과 포유동물인 붉은여우 종에 속한다고 하죠. 몸길이는 60~90cn, 몸무게 5~9kg 정도이며 붉은색 털과 재를 뿌린 듯 까만 발, 긴 주둥이가 특징이고. 배와 가슴 털은 하얀색입니다.
붉은여우는 전 세계 곳곳에 서식하고 있지만, 국내 토종여우는 유독 적은 개체수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으로 분류돼 보호받고 있다고 해요.

길은 흙 하나 없는 돌길입니다.

그래도 평평한 편이고 길도 넓습니다.



10시 20분
이제 1km 남짓 왔습니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조망이란 건 아예 없습니다.


소백산 가는 길 중 가장 완만하다기에 오늘 처음으로 이 길을 가고는 있지만, 길고 긴 거리는 여간 지루한 게 아닙니다.


‘향기나는 풀’이라는 뜻의 토종 허브. 꽃향유
아름다운 것보다 더 아름다울 때
너는 누구에게나 꽃이 된다.
기쁜 줄도 모르고 기쁨을 느낄 때
너는 누구에게나 꽃으로 웃게 된다.
슬픈 줄도 모르고 슬픔을 느낄 때
너는 누구에게나 꽃으로 울게 된다.
그리하여 가장 슬픈 것보다 더 슬퍼질 때
너는 누구에게나 향유로 완성된다.
- 김윤현의 '꽃향유' -

10시 40분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걸어도 걸어도 자리가 나지 않습니다.
한줄기의 바람도 스쳐가지 않아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갑니다.

계곡을 끼고 걷는 길에는 물소리가 시원스레 들리고,

길 옆에는 꽃향유가 피었습니다. 꽃향유는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중부와 제주도, 남부 지방의 산과 들에 60cm 내외로 자라는 향이 강한 식물입니다. 분홍빛이 나는 자주색꽃이 9~10월에 피고, 꽃은 칫솔처럼 한방향으로 몰려서 피죠.
꽃이 화려해서 '꽃 향유(香薷)'가 됐다고 하고, 꽃의 향기가 강해서 꽃향유가 됐다고도 합니다.
산악인들이 산에서 꽃향유를 보게 되면 구취를 없애준다고 잎을 따서 씹곤 했다고 해요. 양치 시 꽃향유즙을 짜서 사용하면 구취에 좋다고도 하구요. 봄에 돋아나는 꽃향유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답니다.

쉼터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물도 조금 마시고

다시 또 걷는 길에도 여전히 돌맹이들이 깔려있습니다.

일찌감치 소백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山客이 웃으며 말을 겁니다.
'언제 올라 갈려고 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오가 가까워오는 이 시각에 여기 밖에 못 올라왔으니 걱정입니다.


11시 30분
천동안전쉼터에 왔습니다.


건물 맞은편으로 탁자가 있습니다만, 쉴 여유는 없습니다.
앞서 간 일행들은 정상까지 갔을꺼라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발길은 더디어만 갑니다.

안전쉼터 화장실은 폐쇄했습니다.
관리할 인원도, 이용객도 적어서 그런가 봅니다.

평상옆으로 등산로가 있습니다.


'민백이 대궐터'에 다다랐습니다.
단양읍 천동리 소백산 비로봉과 민백이재를 지나 천동계곡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이 대궐터는, 소백산 깊은 곳에 민씨 집안의 큰 사가(私家)를 지으면서 마치 대궐처럼 크고 화려하다고 하여 '대궐터'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구한말 대원군과 명성황후가 대립할 때, 명성황후를 따르던 지방 토호 세력들이 은신과 세력 확장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대궐 형태의 피신처를 지은 곳이었답니다. '민백이재' 또는 '민폐동'으로도 불리는 이 대궐터는 토호세력의 지원으로 운영되다가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자금줄이 끊기면서 쇠락하게 되었고, 여기에 남은 사람들은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 '閔氏 火田'이라는 말도 있다고 해요. 현재는 제1·2기단, 돌담장, 온돌 방 흔적 및 주춧돌 등의 터만 남아 있구요.
천동리 천동쉼터 부근 대궐터와, 소백산 마당치 산성 뒤편에 있는 대궐터로 구분되는 소백산 대궐터는, '정감록'에서 난리를 피해 숨기 좋은 '십승지'로 꼽히던 소백산의 지리적 특성과도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천동삼거리까지는 2km 남았습니다. 꽤 많이 올라왔네요.

투구꽃이 예쁜 모습을 드러냅니다.
식물체는 강한 독성이 있어 조선시대엔 사약으로 쓰였지만, 꽃 자체는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용담과의 다년생인 과남풀도 꽃이 핍니다.
해발 600~1,000m의 높은 산지에서 자생하는 과남풀을 예전에는 칼잎용담이라고 불렀는데, 잎이 마치 칼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입니다. 산림청에서 희귀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가을에 뿌리를 캐 말린 걸 약용한다고 하죠.

과남풀은 관음초(觀音草)가 변형된 것으로, 꽃의 모양이나 약효가 관세음보살을 연상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답니다.
조선시대 문헌에 ‘관음플’, ‘관음초’ 등으로 기록되었다고 해요.
종소명 triflora는 ‘세 개의 꽃’(three flowers)란 의미인데, 과남풀이 대체로 3개가 모여 핀다고 해서 일본인이 붙였다고 하며, 중국어로도 三花龍膽이랍니다.


돌길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발바닥이 아파오고, 다리도 아픕니다.
오늘따라 몸은 찌부득한게 물에 젖은 솜처럼 무척이나 무겁습니다. 아마도 어제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산행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모든 국립공원 탐방로에는 '다목적위치표지판'이라고 하는 말뚝 모양의 이정표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01-01"로 표시되며, 위 사진에서 보듯 앞의 숫자 03은 코스의 번호이고 뒤의 숫자 10은 코스 상 위치입니다.
'다목적위치표지판'은 탐방로 상 각 500m마다 설치되어 있으므로, 탐방로 시작과 끝 부분의 다목적위치표지판의 뒷번호를 파악하고 있으면, 내가 전체 코스 중 얼마를 이동해 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철도 침목같은 이 계단을 오를 때 쯤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순 어거지로 올라갑니다.

머리로는 삼거리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서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다들 힘이 들어 그런가,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하는 군요.
어느 누가 이 길을 쉽다고 말을 했나요?

야자매트로 덮은 계단을 오릅니다.
야자매트 깔아놓은 건 언제였는지, 매트는 삭아서 흙이 되어갑니다.

고사목이 있는 곳에 왔을 때, 주변 풀밭엔 온통 이 과남풀 꽃밭입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낍니다.

어쩌다 어쩌다 한두포기만 봐 왔던 과남풀이 소백산에는 이렇게나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枯死木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림이 됩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천동삼거리에 다 온 것과 진배없습니다.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 보면, 안개는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주위을 감싸고 있습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오늘 비 소식이 없었는데도, 주목군락지에 다다랐을 때는 제법 쏟아집니다.

아무래도 비 옷을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꺼내입어야지 하는 참인데, 비가 뚝 그칩니다.
출발할 때는 해가 났다가 흐리면서 안개가 끼고,
비가 오다가 그치는 오늘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이는 소백산입니다.

소백산에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설악산 대청봉에도 단풍이 들고 있겠지요.

피로에 지쳤으면서도 누렇게 단풍이 든 나뭇잎을 보면, 마음도 단풍이 든 것 마냥 밝아옵니다.

12시 35분
드디어 천동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3시간 가량 걸렸지요.
비로봉까지는 보통걸음으로 3시간 소요된다고 합디다.
비로봉은 여기서 600m를 더 가야하는데 여기까지 오는데도 2시간 50분이 걸렸다는 건,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 인것 같습니다.


삼거리의 전망대에 내려 서서 앞을 바라보지만, 짙은 안개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린 산구절초와 개쑥부쟁이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숨 돌리고 비로봉으로 향합니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도 자욱한 안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억새꽃이 이제 막 피어나려고 합니다.


데크옆 풀밭에는 산구절초 흰꽃이 별처럼 예쁩니다.



정상에 왔습니다.

13시
언제나 정상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왠일로 오늘은 조용하고 잠잠합니다.
비로봉 일대에는 바람이 연중 강하게 부는데 15m/s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죠.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불어대고...

해발 1,439.5m의 비로봉

비로봉은 BAC 100대 명산 인증장소입니다.
지난해는 BAC 명산 100의 인증순위(TOP10)에서 소백산이 8위로, 총 14,565회 동호인들이 인증했다고 합니다.

정상석 바로 아래에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국망봉쪽을 보고, 연화봉쪽을 봐도 보이는 건 회색의 안개뿐입니다.


13시 15분
연화봉으로 가려면, 천동삼거리로 도로 내려가야 합니다.


풀밭에 피어있는 산구절초와 목책은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소백산에서 보는 구절초는 산구절초입니다.
구절초가 산과 들에 사는 반면, 산구절초는 산 중턱 높은 곳에 자랍니다.
둘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잎인데요, 넓은 달걀모양의 잎 가장자리가 약간 갈라졌으면 구절초, 깃모양으로 갈라졌으면 산구절초입니다.

비로봉 일대에 부는 바람때문에 나무들은 크게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다. 뒷편으로 보이는 주목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로봉 서쪽 1,200~1,400m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주목이 100여 그루씩 군락을 지어 2,000여본이 자라고 있는데, 이 주목들은 1973년 6월 20일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백산에는 주목지킴터가 있습니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불어대는 바람때문에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를 못하는 대신, 비로봉 일대에는 광대한 풀밭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천상의 화원이라고 할 만큼, 많은 들꽃들의 꽃이 피고 또 피어납니다.


높은 지역에 서식하기에 키는 작아도, 소백산 산구절초는 꽃이 크고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땅이 그리 비옥해 보이지 않는데도 아주 실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구절초든 산구절초이든 이렇게 꽃송이가 크고, 쑥부쟁이처럼 가지를 많이 친 것도 처음 봅니다.


가을색으로 바뀐 등산로 주변 풀밭에서는 가을내음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완전 가을입니다.

낮은 기온과 찬바람에 시달린 철쭉나무 이파리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가고 얼었습니다.



사진 오른쪽 끄트머리에 있는 '주목지킴터'는 안개에 묻혀서 희미하게 보이고.


다시 천동삼거리입니다.

제1연화봉을 거쳐 연화봉으로 갈 겁니다.
그 연화봉까지는 3.7km를 가야한다고, 이정표는 친절하게 가르키고 있습니다.



천동삼거리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그저 그렇습니다.
약간의 오르막은 바위를 딛고 올라가야 하고, 등산로도 한사람만 가야할 정도로 폭이 좁습니다.

푸르던 풀과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해가고, 잎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기온도 점차 내려가고 있어, 나무들은 서서히 겨울을 날 준비를 합니다.



독특하게 생긴 꽃을 피우는 수리취도, 씨앗이 단단하게 여물어 갑니다.

가을로 접어 든 소백산에는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세상입니다.

구절초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구절초꽃 / 김용택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너머 그너머 검은 산 넘어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구절초 / 나태주
날씨가 차니
물이 맑고
물가에 하얀 꽃 핀다
너도 이제
물가에 와
꽃이 되어라
나도 네 곁으로 가
하얀 꽃 한 송이
피우려 한다

구절초 / 최두석
계절이 바뀌는 산등성이에서
단풍잎 응시하며 피는 꽃이 있다
지상의 마지막 시간 앞두고
청을 높여 우는 풀벌레 소리 따라
아련히 맑은 향내 풍기다가
낙엽과 함께 사라지는 꽃이 있다.

구절초의 북쪽 / 안도현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본 적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 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 있는 것을 보았는가?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제1연화봉 가는 길에도 안개가 자욱합니다.

국망봉 삼거리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그 길처럼,
제1연화봉 가는 길도 완만한 오르막과 풀밭이, 능선을 따라 부드럽고 아늑하게 펼쳐집니다.

줄지어 나란히 이어지는 나무울타리도 정겹고

모처럼 드러난 하늘과 구름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풀밭 한가운데로 난 데크도 그림같고, 잿빛의 하늘도 수채화같습니다.






소백산(小白山)의 명칭은 원래 소백산맥 중에는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백산(白山)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작은 백산(白山)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小白山)이라고 합니다. 작은 백두산이라고 해서 소백산이라 했다고도 하죠.
삼재(火災, 水災, 風災)가 들지 않은 산이라 하여 풍수의 명당으로 꼽혀, 조선시대에는 병란과 기근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 산이랍니다.

소백산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신성시하여 온 山 중 하나로,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국경을 마주하던 산이기도 했으며, 역사적으로 수많은 슬픔과 긱쁨을 남기기도 했던 산입니다.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라고 친 울타리.
평범해 보이는 이런 모습도 참 마음에 드는 풍경입니다.

이런 능선길을 걸으면 마음은 마냥 푸근해지면서, 이따금씩 쥐가 나서 저릿해지는 다리의 통증도 잊게 합니다.


소백산의 철쭉을 보고 퇴계 이황은, '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이라 했다죠.
아직까지는 완전히 물들지 않았지만, 단풍이 들면서 울긋불긋한 가을 소백산도 봄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14시 10분
제1연화봉에 왔습니다. 해발 1,394m.

제1연화봉을 가르키는 이 이정표는 BAC 백두대간 인증장소입니다.
그래서 땀에 젖어 후줄근한 상태로 인증사진 한 장 찍어봅니다.


이정표 옆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습니다.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구간은 야생생물 서식지 보호를 위해서 탐방로 이외의 길은 가지 말라는 군요.

제1연화봉에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깜찍하고 예쁜 빨간 열매를 봅니다.

앵두처럼 생긴 이 새빨간 열매는 산앵두랍니다.
어쩌다 산행길에 한,두개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소복히 달린 걸 보는 건 오늘 처음입니다.

한개를 똑 따서 입에 넣은 일행이 그러드군요. '단맛이 조금 나면서 새콤하다'고.
그 말은, 보기보다는 그리 맛있지 않다는 말이겠죠?



계단을 내려가면서 드는 생각은, 희방사로 가는 깔딱고개에도 계단을 설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겁니다.
국립공원임에도 왜 거기는 계단을 설치하지 않는지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일까요?



억새처럼 키가 훌쩍 큰 풀밭에는 구급상자함이 보입니다.

'가을'하면 억새꽃인데, 소백산에는 억새풀이 별로 눈에 띄질 않습니다. 억새가 살기에는 마땅치 못한 곳인가 봅니다.


키 큰 풀 만큼이나 키가 큰 마타리가 노란꽃을 피웠습니다. 산과 들의 물이 잘 빠지고 부식질이 풍부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는 마타리는 '막'과 '타리'의 합성어로 '막'은 거칠고 험한 부분을 일컫고, '타리'는 갈기를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그럽디다.


연화봉이 가까워져 옵니다. 1.3km를 더 가면 된다네요.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 힘이 들어, 지친 몸을 달래가며 기운을 내어 봅니다.
Fighting !!



연화봉과 제2연화봉 갈림길에 왔습니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왼쪽의 연화봉길을 택합니다.

14시 50분
100m만 가면 연화봉입니다. 이젠 다 온거나 다름없습니다.



드디어 연화봉에 도착합니다.
연화봉은 백두대간 능선의 중심축 중 하나로, 정상석과 함께 태양계 모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연화봉 바로 아래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천문대인 소백산천문대가 있구요.
소백산 연화봉을 찾을 때마다 천문대를 한번 둘러봐야지 마음먹으면서도, 늘 下山 시간이 빠듯해서 여태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14시 55분
천동에서 연화봉까지 5시간 10분이나 걸렸지요.


평일이라 소백산 비로봉을 찾는 사람들은 몇명 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산행을 하는 그들은 주차한 곳으로 원점회귀를 했기에, 연화봉에는 우리들 뿐입니다.

제2연화봉도 한번 들려보지 못했습니다. 국립공원 숙박시설인 제2연화봉대피소와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자리 잡고 있다는데, 그리로 갈려면 죽령에서 제2연화봉을 거쳐서 연화봉에 온 다음, 희방사로 내려가는 코스가 좋다던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쪽길로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태양계 모형이 있는 전망대.
연화봉에 도착해도 조망은 아무것도 ....... 없습니다.

해발 1,383m의 연화봉(蓮花峰)에는, 1987.5.31 제5회 철쭉제를 기념하여 단양군에서 세운 연화봉 정상석이 있습니다.

희방사로 내려가는 길.

여기서 잠깐,
정상석 옆을 보면 등산로가 있는데 이건 제2연화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가면 제2연화봉으로 갈 수 있으니까, 희방사로 가려면 뒷편 길로 가야합니다.

연화봉 풀밭에도 흰색과 붉은색의 구절초와 과남풀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가끔씩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파스를 뿌리고 갑니다. 근육이완제나 아스피린도 좋지만 응급처치할 때는 에어파스가 좋아서, 배낭에 늘 휴대하고 다니면서 쥐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뿌려줍니다.


15시 20분
전망대는 그냥 패쓰하기로 해요 ~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지체되었거든요.






깔딱고개 안전쉼터까지 내려왔습니다.
잠시 앉아 쉬면서 심호흡을 합니다. 내리막길은 경사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희방사로 내려가는 길 처음엔, 나무계단이 있어 수월합니다.

그러다 계단이 끝나면서 울퉁 불퉁 너덜길입니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네요. 돌맹이로 계단을 만들어서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길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한발 한발 돌계단을 디딜 때마다 잔뜩 신경쓰며 내려왔더니 진땀이 다 나네요.

16시 05분
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2개의 갈림길에서 희방사 가는 길로 갑니다.


희방사(喜方寺)는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는 삼국시대 '두운'이 창건한 천년고찰입니다.
그러나 희방사는 1850년(철종 1)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江月)이 중창하였으나 6·25 때 4동 20여 칸의 당우와, 사찰에 보관되어오던『월인석보』권1과 권2의 판본(版本)도 함께 소실되었었답니다. 다행히 주존불(主尊佛)만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봉안하였다가, 1954년에 주지 안대근(安大根) 스님이 다시 법당을 짓고, 사찰을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해요.

희방사에는 호랑이에 얽힌 창건 설화가 있습니다.
'두운'은 태백산 심원암(深源庵)에서 이곳의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하던 중, 겨울밤에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더랍니다. 그래서 호랑이를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었으므로 뽑아주었대요. 그 뒤 하루는 쿵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어여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있어서,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고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사연을 물으니, 그녀는 계림(鷄林)의 호장(戶長) '유석(留石)'의 무남독녀로서, 그날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불이 번쩍 하더니 몸이 공중에 떴고, 그 뒤 정신을 잃었다고 했답니다. '두운'은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넘긴 뒤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해요. 그랬더니 '유호장'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었으며, 무쇠로 수철교(水鐵橋)를 놓아 도를 닦는 데 어려움이 없게 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은 산행시간을 6시간 줬지만, 지금은 6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라서 서둘러 희방사를 떠납니다.
법당안에는 동종이 있음에도 안으로 들어가 볼 여유가 없습니다. 법당앞에도 '안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다'고 안내문을 붙여놓았던데...

동종은 1742년(영조 18)에 제작되었는데, 특히 은은한 종소리가 유명하다고 하죠.
동종(銅鍾)은 1986년 경북 유형문화재 그러니까 지금은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던데, 잠깐 동안 볼 여유도 없는 빡빡한 산행길.

희방폭포에 왔습니다.
희방폭포(喜方瀑布)의 높이는 28m로 영남지방 최대의 폭포이며 영남 제1의 폭포로 일컬어지기도 한다고 하죠.
조선시대의 학자 서거정은 희방폭포를 보고 '하늘에서 내린 꿈 속에서 노니는 곳'이라는 의미인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라고 평하기도 했답니다.

소백산 중턱 해발 7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희방폭포는,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랍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경북팔승(慶北八勝) 중 으뜸으로 꼽혔다고 해요.
이 희방폭포의 수량은 계절과 큰 관계없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데, 비가 많이 올 때면 장관이겠죠.

폭포 앞에서 / 정호승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좋다.
떨어져 산산히 흩어져도 좋다.
흩어져서 다시 만나 울어도 좋다.
울다가 끝내 흘러 사라져도 좋다.
끝끝내 흐르지 않는 폭포 앞에서
내가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내가 포기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증ㅇ마저 사랑스럽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폭포가 되어
눈물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되어
머무를 때는 언제나 떠나도 좋고
떠날 때는 언제나 머물러도 좋다.



계곡으로 난 탐방로가 있는데도 앞서가는 일행들이 포장도로로 가기에, 무슨 좋은 게 있는가 하고 따라갔습니다.
이리저리 구불 구불 돌아가는 포장도로는 지친 몸을 더 지치게 하는데도 터덜 터덜 힘없이 따라갔죠 .


주차장에 도착하고 '왜 그 길로 갔냐'고 물어보자 돌아 온 대답은, '탐방로가 있는 줄 몰랐다'는 겁니다.
이런 바보 같은 인사가 있나? 이 길이 처음도 아닌데 따라갔다가 발바닥만 더 아파옵니다.

포장도로는 발바닥이 아프다고 모두 다 기피하는 도로인데, 그 길로 내려왔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아무튼 패잔병같이 축 쳐진 상태로 '희방탐방센터'까지 왔습니다.

16시 45분
드디어 희방탐방센터 주차장입니다.
길고도 지루했던 소백산 산행도 여기까지입니다.

지금 시간은 16시 45분
꼬박 7시간을 걸었습니다.
거리는 15.3km였구요, 평균 2.2km 속도로 걸었습니다.

산행코스 : 천동탐방센터 → 천동쉼터 → 천동삼거리 → 비로봉(회귀) → 천동삼거리 → 제1연화봉 → 연화봉 → 희방사 → 희방탐방지원센터 → 주차장 (15.3km,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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