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행복한 순간들

다시 찾은 경주 [대릉원]

adam53 2019. 3. 15. 21:42











































































 

대릉원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서 장사지냈다”고 한 데서 땄다.

총면적 12만 5400평으로 신라시대의 왕과 왕비,귀족등의 무덤 23기가 모여있다.

미추왕릉은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른 신라 13대 미추왕의 능

14대 유례왕 때의 일이다. 이서국이 쳐들어와 곤경에 빠졌는데, 어디선가 귀에 대나무잎을 꽂은 병사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적을 무찌르곤 사라졌다. 조사해보니 그 대나무잎은 미추왕릉 앞에 높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미추왕릉을 ‘죽릉’이라고도 불렀다.

1970년대 정부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98호분(황남대총)을 발굴한 뒤 내부를 복원하여 교육 및 연구 자료로 삼고자 했으나 그와 같은 큰 고분을 발굴해본 경험이 없는 터라, 그보다 작고 가까이에 있는 155호분을 발굴하여 경험을 쌓으려 했던 것이 지금의 천마총이 되었고 이때 모두 1만1,500여점의 유물이 발굴.

경주의 신라무덤들을 능, 총, 묘로 구분하는데, ‘미추왕릉’처럼 어느 왕의 무덤 인지 확실 할 때는 왕의 이름을 붙여 '능'이라 하고 '총'은 천마총과 같이 발굴 후, 출토된 유물의 보존 가치가 높지만 누구의 무덤인지 모를 때, '묘'는 '김유신묘'처럼 귀족이하 일반인들의 무덤에 붙여진 이름

 

천마총은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155호 고분이다. 1973년 발굴 과정에서 부장품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가 출토되어 천마총(天馬塚)이라 부른다.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되는데 금관, 금모자, 새날개모양 관식, 금허리띠, 금동으로 된 신발 등이 피장자가 착용한 그대로 출토되었다. 특히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이다.

높이 12.7m, 지름 50m의 능으로 봉토 내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고, 적석층 안에는 길이 6.5m, 너비 4.2m, 높이2.1m의 나무로 된 방이 있어, 그 중앙에 목관을 놓고 시신을 안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