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선착장 - 광명항으로 이동(버스 탑승) - 소무의도 바다누리길 트레킹(1시간) 후 호룡곡산 산행 - 구름다리 - 국사봉 - 하나개해수욕장 - 실미도로 이동 - 무의항(3시간 가량)
◐섬 산행의 백미, 서해의 알프스 ‘호룡곡산’◑
실미도를 찾았던 발걸음이 무의도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면서 유명해진 것이 '서해의 알프스'로 각광받는
무의도 호룡곡산(虎龍谷山)이다.
영화의 약발이 약해진 후 요즘에는 실미도를 대신해 호룡곡산이 사람들의 발길을 무의도로 불러모으는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춤추는 무희의 옷자락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무의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도동에 위치해 있는데,
영종도의 서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영종도와 제방으로 연결된, 잠진도 선착장에서 배편으로 약8분이면 도착할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산 이외에도 무의도에는 하나개 해수욕장,실미해수욕장등 비교적 조용한 휴식처가 있다.
송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운모래사장은 수심이 낮고 잔잔하여 가족 해수욕장으로도 적당하고, 썰물때 단단한 갯벌에서의 조개잡이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무의도는 본 섬인 대(大)무의도와 새끼섬인 소(小)무의도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 주민들은 대무의도를 실미도·해리도·상엽도 등과 섬이 무리져 있다 해서 '큰무리',
소무의도는 본섬 일부가 떨어져 나가 생긴 섬이라 해 '떼무리'라고 부른다.
큰무리선착장에서 배 시간에 맞춰 수시로 다니는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리면 대무의도 끝인 광명항에
도착하고, 마을 뒤로 난 좁은 비탈길을 오르면 호룡곡산의 산행이 시작된다.
국사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코스를 따라 걸으면 바다를 조망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해 섬 산행의 백미를 경험할 수 있다.
호룡곡산은 해발 245.6m의 낮은 산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호랑이와 용이 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할 만큼 거창하다.
낮은 산이어도 해수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너무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또한 갖가지 기암괴석의 절경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장쾌한 풍광은 높은 산이 주는 감동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서해의 알프스라고 했을까. 코스는 호룡곡산~국사봉~당산~선착장으로 이어지는 7.6㎞로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세가 크게 험하진 않아도 초반 능선에 올라탈 때까지는 경사가 계속돼 쉬엄쉬엄 올라야 숨이 가쁘지 않다. 오르는 중간 중간 마당바위, 부처바위, 수직절벽 등 곳곳에 절경을 품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능선에 올라서면 저 멀리에 소무의도와 서해바다, 그 뒤에 인천 송도의 고층빌딩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최고봉인 호룡곡산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풍경은 무의도 제1경으로 단연 압권이다.
산 아래로 무의도의 명소 하나개해수욕장과 큰무리해수욕장의 은빛 모래가 반짝이고, 그 너머로 망망대해에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둥둥 떠다니는 풍경은 정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하산 길의 끝은 큰무리선착장과 닿아 있다.
▶ 실미도 사건 ◀
실미도 부대는 1968년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인 '1.21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968년 4월 1일 북한 침투 특수공작원 양성을 목적으로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창설되었다. 정식 부대 명칭은 '209파견대'로 알려졌다. 실미도 부대원 31명은 현역 군인과 민간인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모집 과정에서 훈련 뒤 장교 임관과 미군부대 취직 등의 약속을 받고 실미도 부대원이 되었다.강제 격리된 상황에서 고된 훈련과 구타 등에 시달리던 실미도 부대원 가운데 5명은 훈련 도중 탈영을 시도하거나 기간병에게 반말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살해되었다.
1971년 8월 23일 견디다 못한 부대원 24명은 청와대에 가기 위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인천 중구 소재)를 탈출했다.탈출한 실미도 부대원들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던 중 인천에서 육군과 총격전을 벌였고,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다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 20명이 사망했다. 이때 경찰과 민간인도 모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군법회의를 통해 생존한 부대원 4명에 대한 사형이 1972년 3월 10일에 집행되었다.사건 직후 정부는 '무장공비들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가 3시간 만에 '공군 관리 아래 있는 군 특수범'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2003년 실미도 사건을 소재로 만든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가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실미도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2006년 7월 발표된 진상조사 결과 실미도 부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북파공작을 위해 중앙정보부가 주도적으로 창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10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법은 실미도에서 탈출하다 사망한 북파공작원 3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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