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2월, 양평 용문산 산행(가섭봉에서 사나사까지)

adam53 2023. 2. 16. 12:06

가섭봉에서 사진 찍으며 어물어물하는 사이 시간은 벌써 1시 반이 되었네요.

3시 30분까지 용천리 마을주차장으로 하산하라 했는데, 2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을까요?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렇다 해도, 아무리 바쁘다해도

겨울가는 것이 아쉬워 하얗게 핀 상고대와 눈맞춤은 하고 가야죠. 

앞산도 바라보고

옆도 둘러보고

발아래로 보이는 작은 정자도 보며 갑니다.

예전에는 저 정자에 빙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었었죠.

밥 먹기에는 참 좋은 곳이더라구요.

눈앞에 보이는 산 여기 저기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어 희끗 희끗합니다.

여기는 군 부대가 있어 출입을 통제하는군요.

이 계단을 내려가

장군봉 방향으로 갑니다.

아이젠을 신으면 좋고, 안 신어도 좋은 좀 어정쩡한 눈길.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지금부터는 백운봉까지 계속 능선길을 걸으므로,  평지를 걷는 것처럼 산행하는 것은 수월합니다.

장군봉은 500m앞에 있대요.

백운봉은 3.7km 더 가면 되구요.

재미나는 곳도 지납니다.

조금도 다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길.

장군봉에 왔습니다.

쉼터에 올라가 앞을 바라보면

먹으로 그린 것 같은 산, 그 너머에 또 산이 있고, 

흐릿한 하늘과 맞 닿아있어 산이 하늘같고, 하늘이 산 같습니다.

등산하려고 모인 모인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네 사람 모두 정상에 도착했지만 그 과정은 달랐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산에 오르기 위해 값비싼 등산화를 마련해서 산에 올랐는데, 등산화가 발에 잘 맞지 않아 계속 투덜거리며 산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산 중턱에서 경치를 바라보다 숲으로 둘러싸인 농장과 언덕 위의 집을 보더니, 그것은 가격이 얼마나 될지 쓸데없는 생각에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작은 구름만 봐도, 비가 쏟아져 혹시라도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산에 오르며 나무와 풀, 바위와 계곡을 보며 감탄했고 자연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인생은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정상에 올라가야 아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등산을 하고 있을까요?

 

함왕봉에 도착했습니다.

함왕봉에서 사나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백운봉쪽으로 좀 더 가보기로 합니다.

가다가 보니 이정목에다 '883봉'이라 표시한 곳이 있군요.

여기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내려갑니다.

883봉 여기에서도 사나사로 가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만,

백운봉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일단은 좀 더 가보기로 합니다.

가다가 중간에 빠지더라도 그냥 가 보는거죠 뭐.

나무사이로 보이는 저 높은산이 백운산인 것 같네요.

희미한 길 찾느라 이쪽 저쪽 살피며 찾아서 가고

산짐승이 다녔음직한 길 따라가다보니, 작지만 요래 또 재미있는 곳도 있고... 

백운봉을 1.5km 남겨두고 여기서 사나사로 내려갑니다.

우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백운봉을 돌아서 내려갈 수 있을텐데, 아쉬운 마음 가득안고 내려가는 길은 급 경사.

희미한 길에 낙엽은 왜 그리 쌓였는지 발은, 아니 몸이 앞으로 쏠려서 발가락도 아프고 무릎까지 아파오는데,

약간은 넓고 평평한 곳에 다다르니, 여기가 함왕성지라 합니다.

함왕성터는 천연적인 바위절벽을 활용한 성터라네요.

용문산 줄기 해발 740m의 험준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려시대때 축성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요.

함왕성은 함공성(咸公城). 양근성. 함씨대왕성이라고도 한답니다.

용문산과 백운봉 사이에 있는 함왕성터는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던 옛 성터로, 둘레 8km의 내성은 용문산 중턱에 지금도 뚜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대요.

외성은 용천리에서 15분 정도 오르면 현재의 문바위 근처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구요.

내성 둘레는 2㎞에 이르고, 외벽은 천연적인 바위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축성 둘레가약 8,800m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2,150m 정도만 남아 있으며,

북서쪽 성역은 보존이 잘된 편이라고.

산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부정형의 다각형 모양이며, 산 사면을 따라 축성되어 성 내부의 평탄지가 매우 협소한 편이랍니다.

성의 주요한 유구인 장태지(將台址)가 성의 북쪽과 서쪽에 남아 있고, 서쪽 장태지 옆에 있는 성역은 높이가 1.6m나 되는데,

이곳의 능선에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대요.

성지에는 돌무덤이 있는데 자연석 단층쌓기 방식으로 축성되었구요. 성의 산 꼭대기 북쪽에는 60m×40m 면적의 터가 있는데, 주춧돌로 이용된 듯한 편평한 큰 돌과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봐서는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는군요.

또한, 건물터 옆에는 성에서 유일하게 물을 구할 수 있는 우물이 있으며,  건물터에서 서쪽을 보면 멀리 한강 너머 백병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양평읍과 옥천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한강을 중심으로 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대요.

대부분의 지리지에 고려 때 고을 사람들이 몽고의 군사를 피해 이 성으로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일시 난을 피할 수 있는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함왕성터.

 

---------------   길이 형편없다고 계속 투덜 투덜하며 내려왔었는데, 뜻밖의 유적지를 보고난 후에는 평정심을 되찾았습니다.

개울가의 이정표.

백운봉에서 내려오면 얼음이 허연 저 개울을 건너와, 이 길과 만나는 거네요.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백운봉까지 들려왔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자꾸 머리에서 맴돕니다.

개울을 건너 사나사로 갑니다.

이 외진 곳에 그네가 있다니.....

아마도 사나사 방문객을 위한 게 아니겠나하는...

마음이 푸근해지는 이 길을 걸어가자

사나사가 보입니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로, 경내에는 삼층석탑과 원증국사비, 부도 등이 있다고 해요.

신라 경명왕 7년 (923)에 고승인 대경대사가 제자 용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하였답니다.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고왕사 보우가 140여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 12월 24일 보우스님이 용문산 소설암에서 입적하고, 이듬 해인 1383년에 문인 달심이 태고의 부도와 비를 '사나사'에 세웠대요.

사나사도 화재를 여러번 겪었습니다.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 한방손이 재건하였구요.

순종 원년(1907)에는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는군요.

2년 뒤인 1909년에 계헌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으며, 1937년에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하고 조사전 5칸을 지었대요.

1950년 6.25사변으로 인해 사찰이 전소된 것을,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 방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으며, 1993년 주지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 현 주지 화암스님이 주석하면서 포교와 교육, 기도 도량으로 일신하였다고. 

 

우리나라 어디, 어느곳을 가던지 창건 당시의 사찰이 온전한 곳은 거의 없고, 대부분 화재를 몇번씩이나 겪으면서 중건한 사찰만 있어 볼 때마다 애잔하기만 합니다.

사나사 경내를 벗어납니다.

일주문을 지나 여기서 마을주차장까지는 1km를 더 가야 한다네요.

길가에 사나사 약수터가 있어 물 한모금 마시려 들렸는데,

이 약수는 수질검사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아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A4용지에 마시면 안된다고, 인쇄를 하고 코팅을 해서 붙여놨드군요.

지금은 2월 중순이라, 산에는 잔설이 남아있어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포근하고 온화한 날씨는 봄이 오고있다고 합니다.

힘든 듯 힘들지 않은 용문산 산행도 여기서 끝내야겠습니다.

용문사 관광단지에서 정상을 들려 용천리 마을주차장까지 걸었던 거리는 12.5km였네요.

6시간 걸었구요.

평균 속도는 2.1km였답니다. 보통사람의 보통 걸음걸이죠.

산행코스: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 - 용문사 - 계곡길 - 마당바위 - 정상 - 장군봉 - 함왕봉 - 사나사 - 용천마을주차장 (12.5km, 6시간)

용문산 (1,157m)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 다음으로 높으며, 노송군락 어우러진 암릉들 사이로 제법 깊고 긴 협곡들이 발달되어 있다.

여기에다 산 전체가 울창한 천연수림으로 뒤덮여 산세가 웅장하다.

이 산은 명산이 갖추어야할 겨울 설경,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억새와 단풍 등 철따라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다 산자락에는 용문사, 사나사, 상원사, 윤필암터 등 천년 고찰들을 품고 있으며, 

특히 수령 1,100년이 넘고 동양에서 유실수로는 가장 오래된 용문산 은행나무로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은행나무에 이어 용문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일제 때인 1937년 신자 300여 명을 살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백백교 사건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이 산에서는 한강기맥 북쪽 북한강과 남쪽 남한강은 물론,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로 사방 100km 거리가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로도 유명하다.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때 몽고군 침입 당시 이곳 주민들이 숨어 살았고, 6.25 때에도 피아간에 군단 병력이 목숨을 건 밀고 밀리는 격전을 치룬 전략요충지다.

정상(1,157m)은 2007년 11월 17일 부터 개방되었다.

  

정상 옆 전망바위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하며, 남서쪽 능선으로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이 이어진다.

용문산은 바위산으로 정상은 중급자 이상의 산행코스이며 옛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다.

용문산 남동쪽 기슭에는 거찰 용문사가 자리하고 있고, 일대는 국민관광단지로 지정어 각종 편의시설이 조성되어있다.

 

용문사에는 나이는 약 1,100살 정도로 추정,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인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