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귀주성여행 5일째 - 충칭 임시정부청사
상해임시정부는 한번쯤 다 가보셨죠?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설립했던 대한민국의 망명 임시정부.
상해임시정부는 우리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대부분 가 봤을겁니다..
상해 홍구공원의 윤봉길의사 사진.
-------- 3·1운동 이후 국내외에는 상하이 임시 정부를 비롯해 러시아의 대한국민 의회 정부, 천도교 중심의 대한 민간 정부, 한성 임시 정부 등 다양한 임시정부가 조직되어 활동을 펼쳤는데요. 이중에서 국내 13개의 도를 대표했던 한성 임시정부와 러시아의 대한국민 의회를 통합해 공식적인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로 나선 단체가 상해에서 조직된 임시 정부입니다.
이번 중국여행의 끝은 충칭임시정부 청사입니다. 오늘 충칭(중경)임시정부 청사를 가 봅니다.
여기 충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6년 1월부터 8월까지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한 정부 청사입니다.
임시정부가 옮겨온 뒤의 마지막 청사이고 또 네번째 입주했던 곳이기도 한데요.
현지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경의 처음 임정청사는 한적한 곳에 있어 찾기도 힘들고 아는 사람도 없어 고생고생하며 물어물어서
찾아갔는데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더랍니다.
현재의 충칭(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화지 청사는 중국정부로 부터 국가 2A급 관광지, 충칭시 시급문물보호단위 65-38로 지정되어 있다고 해요. 또한 충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유적지이기도 하답니다.
상해에서 처음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홍구공원) 의거 후 일본의 탄압으로 중국 7개 도시를 전전하게 되었구요. 항저우, 자싱,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등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정착한 임시 정부는, 여기서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여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전까지 항일 투쟁에 힘썼다고 합니다.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임시정부가 오랜 타향살이에 마침표를 찍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5년간 사용했던 청사이자, 기나긴 항일 투쟁의 마지막 근거지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해요.
아침 9시에 개방하므로 기다리는 중입니다. 관리인이 출근을 해야 개방을 하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시대(1919~32), 이동시대(1932~40), 충칭시대(1940~45)로 구분되는데 이중 임시정부의 근간을 만들고 활발히 활동을 했던 때가 바로 상하이(상해)시대이고 이 시기에 교통, 군사, 외교, 교육, 재정, 사법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정책을 세우며 뿌리를 내렸다고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바깥 건물외벽의 안내문을 읽어보고...
이제 문이 열리네요.
안으로 들어갑니다.
1991년 충칭 도시개발계획으로 청사가 존립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내 대기업이 복원에 힘을 모아,
1995년 8월에 복원하여 대중에 공개하였답니다.
그 당시에 사용하던 전화기, 선풍기, 야전 침대를 비롯, 임시정부의 비품이 그대로 보존 전시되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외무부, 문화부, 재무부, 국무위원회의실, 김구 주석실 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또, 임시정부 요인들이 사용하던 유물과 사진, 문서 등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1층부터 봅니다.
대한민국 임정 수립, 군대 구성, 반일 의거, 내각 조직 및 국정운영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어요.
2층은 주석실, 재무부, 국무위원 회의실 등이, 3층은 집무실이 있구요.
여기는 임정청사 복원 기념비 옆 건물에 있습니다.
기념품점에는차와 말린 꽃차, 스카프등의 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드군요.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볼 때는 너무도 좁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렸었는데, 그보다는 훨씬 커서(12배 정도된다고 해요.)
둘러보는 마음이 조금은 낳았던 충칭임시정부 청사.
충칭에 가시면 여기 임시정부 청사는 꼭 들려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도 야경이 아름답던 장강 그리고 주변 건물들.
닷새동안의 귀주성 여행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