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이야기가 있는...
산행코스: 소요산주차장 - 요석공원 - 일주문 - 속리교 - 공주봉 - 의상대 - 나한대 - 칼바위 - 상백운대 - 중백운대 - 하백운대 - 자재암 - 원효대 - 백팔계단 - 일주문 - 소요산주차장(9km, 쉬엄쉬엄 5시간)
[소요산]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559m)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서 옛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인적 뜸한 겨울 정취도 낭만이 그윽하다.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자재암이 있는 백운대를 오르는 계곡은 암봉과 바위능선 사이로 골짜기가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청량폭포,
원효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수도권에 있어 거리도 가깝고 교통편도 좋다.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눈썰매장, 수영장등이 있어 수도권지역의 일일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자락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
수행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 하여 자재암이라 했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 또는 경기의 소금강 등으로 불린다.
서울에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의 거리에 있는 소요산 (587m) 은 해발은 낮아도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줄지어 있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 야기가 스며 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다.
산 중턱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 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 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 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 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 (元曉 617-686) 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 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 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 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 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 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 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 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소요산에 가면 원효가 과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수 있는 자취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높은 산 불끈 솟은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들 곳이요,(원효대)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깃들 곳이니라.(자재암)"
"주리면 나무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달랠 것이요,(소요산)
목이 타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힐 것이니라.(원효폭포)"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법당으로 삼고,(나한전-굴)
슬피우는 기러기를 기쁘게 마음의 벗으로 삼을 것이니라."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이 완벽하게 발견되어, 보물 121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의상대는 소요산 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어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장관이다.